20201116 새벽 / 여로보암과 싸우다 / 역대하13장1~14장1절 / 김형욱목사 - YouTube
◈여로보암과 싸우다 역대하13장1~14장1절 출처, 녹취
이제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야가 왕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가요?
13:1~2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18년째 통치를 하고 있던 그 때에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2절에서,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그래서 이 아비야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싸움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그러면 이 싸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는 아비야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여로보암과의 싸움이 있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여로보암 재위 18년 째 되던 해에 북왕국 여로보암이 남유다 아비야를 침공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여로보암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인가요?
이 전쟁은 어떤 의미의 전쟁인가요?
▲그 첫 번째 특징은 5~6절에 나옵니다.
: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주1)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6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
여로보암의 영적, 상징적 특징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소금언약 즉 변하지 않는 언약으로
다윗과 또한 그 후손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로보암은 무엇입니까?
그 다윗의 후손을 배신한, 다윗을 배신한, 즉 하나님이 세운 왕을 배신한 자이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과 그 자손과 관계없는 세력..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떠난 자..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배신한 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지금 우리로 말한다면,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자,
그분을 배반한 자, 그의 통치 아래에 있지 않은 자, 순종하지 않는 자!
여로보암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여로보암의 영적인 특징은 무엇이냐면 8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배신한 그에게는 순종이 없습니다.
:8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배신하여 떠나서,
그(여로보암)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없는 자요
그리고 또 하나 그의 특징은 무엇이냐면
그들도 신이 있는데 어떤 신입니까?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 :8
그러니까 자신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서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나라는, '이스라엘' 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과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왕에 대한 순종이 없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스라엘인데, 속으로 들여다 보니까 그 왕이 다윗의 후손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또 자세히 보니까, 나라 이름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허울은 가지고 있어요.
또 더 자세히 보니까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만든 신이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되고,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신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인도에 갔었을 때, 좀 인상적이었던 신이 있었어요.
인도는 모든 게 다 신이거든요. 3억 3천 개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이 많으니까 그 가운데 그래도 좀 인기 있는 신도 있을 것 아닙니까?
좀 높은 자리에 있는 신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중에 하나가 여신인데 깔리 입니다.
깔리는 신인데, 그의 형상 모양 그림 이런 것들을 보면, 어휴 너무 잔인하다 싶어요.
깔리 라는 여신 뒤에는 시체들이 수두룩 합니다. 해골들도 수두룩해요.
그리고 여신이 한 발로는 목이 잘린 시체를 이렇게 한 발로 밟고 있어요.
그리고 한 손에는 방금 목을 자른 한 남자의 머리를 딱 들고 있어요.
어떤 한 남자가 목이 잘려서 손에 쥐어져 있고, 그 몸은 여신이 발로 밟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근데 이런 신.. 얼마나 잔인합니까?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이 깔리 라는 여신이, 지금 방금 목을 자른 남자는
어젯밤 하루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했던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림에) 자기 뒤에 있는 모든 시체들도,
그런 식으로 여신이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고, 다 목을 잘라 죽인 남자들의 시신이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신이라면 좀 고상하고, 좀 아름답고, 좀 바라볼만 해야 되는데
어떻게 이런 신이 인기가 있는가요?
그런데 인도라는 사회를 조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인도는 여자들이 가구 취급을 받고,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들이 그저 하룻밤 즐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이런 식으로 남자들에게, 그리고 사회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여자들의 마음 속에는
남자들을 향한, 사회를 향한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도 이런 남자들을 하룻밤 즐기고 그냥 아침에 목을 잘라 죽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그 인도의 여성들의 마음 안에 있었겠지요.
근데 그런 마음이 만들어낸 신이 누굴까요?
바로 깔리 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을 신으로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어요.
출애굽한 역사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 하자마자, 그들이 모세가 더디 산에서 내려 옴을 보고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신을 만들었더니 '금송아지'가 나왔습니다.
여로보암이 다윗을 배신하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신을 만들었더니
또 '금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이라는 성경에 계시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부패한 마음에서부터 만들어낸 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낸 신'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을 따라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는 존재들이 아니라
여로보암 같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따라,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들어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악한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존재라면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의 생명 되시는 그분의 DNA 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은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닮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30년 40년을 결혼 생활하면서 옆에 있는 배우자와 닮아가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돼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가야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면서 그를 닮아가야 됩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삶이 그러하듯이
즉 우리가 우리 육신의 아버지를 닮아가고, 우리 옆에 있는 배우자를 닮아 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닮아가야 돼요. 그래서 그 분을 닮아서
우리 형상이 빚어지고 다듬어져서 그분을 닮아 가야 되는데
그런데 여로보암 일당은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마음의 소원을 따라 신을 재단하고 바꾸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우상을 만들어냈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여로보암 이라는 존재들은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여호와 와는 상관없는 존재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로보암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9 '너희가 아론 자손인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들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르호보암 때, 여로보암이 북왕국에서
아론의 자손들, 레위 지파들을 쫓아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비워 둔 것이 아니고,
이제 스스로가 어린 숫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7마리를 끌고 와서
'내가 제사장 하겠습니다' 라고 스스로 자원하면,
그래서 아론의 자손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 아니고
스스로가 되기 원하는 그 사람을 새로운 제사장으로 세워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자기가 투자한 금액만큼 뽑아내야 됩니다.
명예를 보상받든지, 자리로 보상받든지.. 뭔가 땅의 것으로 보상받으려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사역자는 직업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투자한만큼 뽑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 주변에 가 보면, 결국 사역의 끝에는 돈이 관계 됩니다.
그리고 또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땅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졌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요?
초점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래서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뭘까요?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해서 성도들이 기뻐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없어요.
성도들이 즐거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은 예배가 아니라, 공연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즐거움이 있게 되어지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이 세워지고, 땅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예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헌신이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헌신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랬다가 사람들에게서 자기 자리가 박탈당하면 어떡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뭘 기뻐하는지 살피고..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을 살피면서
'아 이런 필요가 있구나, 저런 필요가 있구나' 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준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닙니다만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예배인데
'우리가 은혜 받았느냐? 우리가 즐거웠느냐? 우리에게 감동이 있었느냐?'
이것이 전부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어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떠났기 때문에 순종이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없어요.
자기 자신이 만든 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거룩이 없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없어요.
그리고 이 아론의 자손들의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예배가 없어요. 헌신이 없어요. 결국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겉은 그렇게 보이지만 결국은 아닌,
결국 이들은 유사 기독교 pseudo Christiantiy 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비기독교 (타종교) 이것도 매우 위험한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아비야가 맞이한 전쟁은 무엇이냐면
겉으로 슬쩍 보면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유사 기독교(사이비)입니다.
여로보암은 다윗의 자손 관계가 없습니다.
'여호와'라는 계시된 신과 관계가 없습니다. 아론의 자손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면 기독교처럼 보입니다. .
이것이 아주 유대나라 가까이에서, 아주 강력한 힘으로 내려와서 전쟁을 걸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사기독교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을 수 있고, 내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전부 다 예수님 믿는 거 같아요. 전부 다 목사, 장로, 집사 다 진짜 믿음 같아요.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없어요.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니에요.
내 마음에서부터 만들어낸 하나님을 각자 믿고 있어요.
그리고 아론의 자손,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이 아니고
땅에서부터 스스로 장립된, 땅의 사람들에 의해 장립된
정통 아론의 자손과 관계없는 제사장들이 서 있는 유사기독교!
이것과의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특징은 유사기독교 입니다.
그래서 오늘 결국 이 아비야의 이야기를 통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2. 여로보암과, 즉 유사기독교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기독교와 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기독교가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깊숙이 파고 들어오려고 하는 유사기독교!
이 여로보암과 싸워야 한다.. 라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기독교는 구별이 쉽지만
유사기독교는.. 구별이 아주 어렵습니다.
사실 실질적으로는 유사기독교인 여로보암이 먼저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마치 아비야가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야가 화친을 하거나 그냥 용납한 것이 아니라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유사기독교 여로보암과 더불어 힘써 싸우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앞서 11장에서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스마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전쟁을 포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는 아직 여로보암과 북왕국이, 유사기독교가 무르익지 않았나 봅니다.)
우리 안에 '기독교' 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유사한 기독교!
다윗과 관련이 없어요. 예수와 관련이 없어요. 성경의 계시가 아니에요.
그리고 아론의 자손과 관계 없는.. 즉 비정통적인 기독교!
이런 유사기독교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것들과 화친을 하거나 용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비야가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숫자적으로보면 아비야의 남유다는 40만명을 택했어요.
북왕국 여로보암은 큰 용사 80만명입니다. 숫자적으로 의미도 있을 수 있겠죠.
어쩌면 내 속에, 우리 안에, 유사 기독교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나 쉽게 성도들이 유사기독교에 빠져요.
구원관이 잘못 되어 있고, 신앙적 추구 목표가 잘못 되어 있고..
그리고 또 그들의 특징은 13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그들은 전략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냥 막 치고 내려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강하기도 하거니와 복병을 두면서 전략적으로 우리를 향해서 공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되는데 어떻게 싸워야 될까요?
14절 읽어 보겠습니다.
'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
유사기독교를 이기는 방법은 딱 하나 뿐입니다.
여호와께 우리 모두가 부르짖는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제사장들, 즉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며
하나님께로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싸우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15절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부르짖는다, 소리지른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사기독교 를 이기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그들이 소리를 지를 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유사기독교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도 보면요, 우리 안에
성경과는 다른 신앙(유사 기독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특히 오래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하신 게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스스로 만들어 놓으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그 목사 안에 유사기독교, 그 장로님 안에, 그 권사님 안에, 그 집사님들 안에
유사기독교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유사기독교와 힘써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여로보암과, 우리 안에 있는 여로보암과
힘써 "부르짖어" 싸워야 하는 것이죠...
그 결과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십니다.
17절 '아비야와 그의 백성이 크게 무찌르니 이스라엘이 택한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진 자들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20절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이것이 바로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입니다.
내 속의 유사기독교와 싸워이기는 길은,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길입니다.
그 싸움의 결과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대하14;1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솔로몬과 르호보암은 '비거룩'과 싸웠고
아비야는 '유사기독교'와 싸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어 싸워" 승리하여,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
주1) 소금 언약이란,
소금은 변치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물에 녹이면 없어지는 것 같지만, 물이 증발하면 다시 소금으로 남습니다.
날씨가 매우 더운 중동지방에서도, 소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변질되는 음식을 소금에 절이면, 음식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금 언약'이란, 절대 변치 않는 언약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