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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3:25 예수께서 가장 미워하신 다섯 가지 죄

LNCK 2021. 6. 14. 11:43

 

◈예수께서 가장 미워하신 다섯 가지 죄        마23:25         출처, 번역

Five Sins That Jesus Hated Most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 갈 때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주로 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래서 마찬가지로 ‘죄’도 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십계명에 언급된 표준 또는 기준을 생각합니다.

그것을 준수하는 것이 ‘의’라는 거죠.

 

그러나 ‘새 언약 아래의 의’는 기록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로 나타나 보여졌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반대하신 죄를 생각하면

그분이 가장 미워하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다섯 가지 죄를 살펴보면

십계명에 열거된 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롭게 살라고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외적으로, 형식적으로만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니 사실은 안 지킨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새언약을 통하여

보다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근본적으로 의롭게 살아야 할

‘5가지 죄’를 지적, 즉 ‘5가지 의의 표준’을 이렇게 제시하셨습니다.

 

▲1. 위선

 

위선자 hypocrite 라는 것은, 자기가 실제 본모습보다 더 거룩하다는 인상을

남들에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항상 진실한 척 하면서 행합니다.

‘지금 이게 거짓이다’ 하면서, 거짓을 행하지 않습니다. .. 그게 바로 위선이죠.

 

예수님은 마23:장에서 위선자들에게 일곱 번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성령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전심으로 예수님의 제자인 척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내면의 삶이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3 :25

이것은 그들이 단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삶만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도 잘 알고, 금식도 하고, 기도하며, 십일조를 냈기 때문에

자기가 매우 거룩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외적으로는 매우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는 긴 기도를 드렸지만, 개인적으로는 길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일 아침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평소의 삶에서

평일의 삶속에서 찬양이 없다면.. 그 주일날의 찬양은 위선입니다.

(특히 성가대나 찬양인도자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등불에 여분의 기름이 숨겨져 있었지만 (내면적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겉으로 등불을 비출 만큼의 기름만 갖고 있었습니다.

즉 사람들 앞에서 좋은 평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만의 신앙생활이고,

내면적으로 여분의 은밀한 신앙생활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25:1~4

 

기독교 지도자가 갑자기 간음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갑작스런 타락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오래전부터 살았던 신실치 못한 삶의 최종 결과임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위선자로 살았던 결과가.. 어느 날 남들에게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2. 영적인 우월감 Spiritual Pride

 

영적인 교만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죄입니다.

보통의.. 평균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영적 교만이 없습니다.

(인격적 교만은 있겠죠)

 

우리는 기도를 드리는 시간 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경멸한 독선적인 바리새인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눅18:9~14

 

오늘날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드리는 기도의 90%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실은 주위에서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한 기도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외적인 삶에서 다른 죄인들처럼 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절기 준수나 금식 등으로 영적인 행위를 하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바리새인의 교만을 싫어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을 끊임없이 비판, 판단하는 것은

영적인 교만, 영적인 우월감의 죄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나쁜 죄인으로 여긴 세리는

하나님께 용납되어 졌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한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한 때 자신을 ‘죄인의 괴수’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장 겸손한 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18:4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미덕은 겸손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만이 모든 면류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며, 자신은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며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면류관을 벗어드림을 봅니다. 계4 :10~11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했다 하더라도

종들은 오직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17 :10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넘어질 때는.. 우리는 어떻게 고백해야 되겠습니까!

절대 교만하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3. 부정함 Impurity                      *不淨 : 정결하지 못함

 

부정(더러움)은 주로 눈과 귀를 통해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들어온 불순물은 다시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외부로 표출되는데

주로 우리의 혀와 눈을 통해, 또는 우리 몸의 다른 지체 (손, 발 등)를 통해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순결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과 듣는 것에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더러움(부정함)을 너무 미워하여

제자들에게 그것으로 죄를 짓는 것보다는

기꺼이 오른쪽 눈을 뽑고 오른손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 :27~29

 

언제 의사가 오른손 절단 또는 한쪽 눈 제거 수술을 권합니까?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그 장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온몸이 죽게 될 때입니다.

 

이것이 ‘죄와 관련하여’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너무나 심각해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생의 우리 생명과, 내세와 영생의 생명 둘 다 위협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엄중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혀와 눈을 사용하는 방식에 부주의합니다.

우리는 눈과 혀로 죄를 짓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차라리 눈먼 사람과 말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낫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4.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무관심

Indifference To Human Need

 

회당의 지도자들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을 고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개역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라고 했는데, 막3 :5

리빙바이블은 ‘그는 인간의 필요에 무관심하여 심히 괴로워하셨다’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갈6 :10

예수님은, 기본적 생활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에게

아무 것도 돕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그분의 면전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25 :41~46

 

우리는 병든 신자들을 고치는 치유의 은사를 혹시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픈 사람들을 방문하고 그들을 격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눅16:장의 부자는, 동족 유대인이자 같은 신앙인 (아브라함의 자손)인

형제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부상 당해 길가에 누워있는 동족 유대인 형제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의해 위선자로 규정되었습니다.

 

성경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보고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5~17 

 

그런 그들이 자기는 거듭났다고 말할 때.. 스스로 자신이 속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궁핍 한 형제를 돕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에 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는 구원과 관련됩니다)

 

요일3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예수께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 활동에만 열심히 참여하고

궁핍한 형제를 돕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를, 예수님은 미워하셨기 때문입니다.

 

▲5. 불신 Unbelief

 

우리가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죄는, 모든 신자들이 쉽게 죄로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신자들이 그것을 죄가 아니라

자기 연약함 weakness 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죄를 미워하는 만큼, 불신의 죄를 미워하지 않는데요..

 

그러나 성경은 믿지 않는 마음을 악한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히3 :12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불신에 대해 제자들을 일곱 번 꾸짖으셨습니다.

마6:30, 8:26, 14:31, 16:8, 17:17~20, 막16:14, 눅24:25

 

그분은 제자들을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의 책망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신 unbelief 에 대해서만큼은 반복해서 (7번) 엄히 책망하신 것입니다.

 

불신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지상의 악한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돌보고 부양하는 것만큼이나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를 돌보거나 부양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얻는 수단으로 위조된

가짜 믿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설교하신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우울증, 암울한 기분, 낙심에 대해 승리하는 삶은

 

하늘에 계신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믿을 때,

또한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들을 믿을 때만 올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놀라신 경우가 두 번 있었음을 봅니다.

한 번은 그가 믿음을 보았을 때, 그리고 한 번은 그가 믿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마8:10, 막6:6

 

예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좋아서 흥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사랑 많은 아버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실망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무엇을 가장 미워하셨는지 이해했으니

이 다섯 가지 죄를 미워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삶에서 이러한 죄를 발견할 때, 무자비하게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설교준비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만 이와 같은 설교문을 읽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설교준비를 이런 설교문을 이용하도록 여러분을 유혹할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5가지 죄를 철저히 미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세상의 다른 여러 설교자들처럼..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