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이 다 귀하고 영감이 깃든 내용이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사무엘서를 제일 좋아합니다. 사무엘서를 먹을 때마다 영감이 이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또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만, 나는 그 숱한 인물들 중에서도 사무엘 선지자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도 사무엘 선지자 처럼 살아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또 성직자로서 성경 인물 중에 사무엘을 아이덴티파이 (동일시) 하고 싶어 합니다.
3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근데 한 20~30년 전부터 '나는 사무엘 선지자처럼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해 왔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가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오히려 '사무엘 선지자에게서 내가 자꾸 멀어지지 않나?' 그런 반성을 스스로 하곤 합니다.
◑1. 제가 어떤 점에서 사무엘을 닮고싶느냐면 사무엘상 12장 1절입니다. 사무엘이 평생동안 투명하고 깨끗하게 '미스터 클린'으로 살았던 점, '그 점을 내가 본받았으면..' 그렇게 소원하곤 합니다.
삼상12: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사무엘은 어린 나이에 성전에 바쳐 졌습니다. 평생 하나님 성전을 지키는 일꾼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백발에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사무엘상 12장 첫부분이 사무엘의 고별 연설에 해당됩니다.
사무엘이 세운 왕 사울이 지금 그 자리에 같이 있습니다.
2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백발이 성성해진 사무엘은, 지금 백성들과 왕과 백성들 앞에서 (은퇴) 고별연설을 하는 겁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그 어린 아들을, 포대기에 싸서 안고 다닐 그 어린 나이에 예루살렘 성전에 바쳤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라면서 어린 나이 때는 시중을 들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 앞에서 자기 삶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3절이 핵심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평생토록 투명하고 깨끗하게 산 사람이, 노후에 진솔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너희 평생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너희들이 말해 봐라. 내가 누구한테 뇌물을 받았느냐? 내 권력을 남용했느냐? 누구한테 내가 몹쓸짓을 했느냐? 그런 게 있으면 말해 봐라!' 참 부러운 장면입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삶이 성공적인 삶이냐? 뭐 재물을 많이 쌓았다, 명예를 이루었다, 인기를 얻었다..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정말 인생이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지는 것은 평생에 하늘을 우러러 사람들 앞에서, 또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보통 명예로운 축복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 평생에 어떻게 살았느냐? 내가 얼마나 평생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미스터 클린 으로 살았느냐?'
본문에서 백성들이 그걸 다 인정합니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본보기 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서 헌신을 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깨끗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고, 본받고 싶은 일입니다.
◑2. 두번째로 사무엘을 본받고 싶은, 아이덴티파이 하고 싶은 것은 사무엘의 영향력이 워낙 그 시대에 크니까..
사무엘은 역사의 과도기에, 즉 전환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옮겨가는 중간, 과도기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나중에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당신이 우리 왕이 되어 주세요!' 왕이 되어 달라고, 정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백성들이 여러 번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참 훌륭한 것은, 자기 위치를 확실히 지켰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바쳐진 제사장, 성직자로서 내 자리가 소중하다. 너희들이 꼭 왕을 요청하면, 우리가 한 사람을 뽑아 세우자!'
그래서 먼저 세워진 왕이 사울 왕입니다. 근데 사울 왕이 참 아까운 인물입니다. 젊을 때는 정말 훌륭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변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주 좋지 않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 사울 왕이 너무 하나님 중심으로 정치를 안 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요즘 말로 포퓰리즘이죠. 그렇게 사람들 비위 맞추고 인기 위주로 정치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을 내쳤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재위 중에 있는데, 다른 왕 후보자를 세웁니다. 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사람, 요즘 말로 킹메이커 라고 하지요. 그는 자신이 킹메이커 가 되는 데서 만족했지,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성직자의 한계, 자기 자리를 분명히 지켰다는 점! 나는 이 점을 대단히 참 본받고 싶습니다. '아 나는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3. 세 번째는 내가 제일 사무엘을 본받았으면.. 하는 점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것은 정말 사무엘에게서 본받을 점 입니다. 뭐냐면, 사무엘이 노후에 어떤 인생을 지냈느냐?
삼상12장 서두에 나오듯이, 백발이 성성한 자리에서 지금 왕이 있고, 또한 자기 자녀들이 보는 자리에서 고별설교를 했습니다. 그러고서는 자기 고향으로 낙향 했습니다.
사무엘의 고향이 라마 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농촌 입니다. 거기에 라마다임소빔 이라는 곳이 사무엘의 고향입니다. 삼상1:1
줄여서 '라마'라고 하죠. 삼상1:19, 2:11
거기 고향으로 낙향을 해서, 보통 노인들 같으면 손자들 재롱이나 보고, 낚시나 하고, 장기나 두고.. 이렇게 보낼 나이에 사무엘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고향에서 젊은이들을 모아가지고, 낮에는 같이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같이 기도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나아갈 길, 백성들이 따라야 하는 도리! 이런 걸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젊은이들의 혼을 깨우는 그런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히브리 말로 공동체는 '나욧'입니다. *나욧 : habitations 사무엘의 고향이 '라마' 이니까, '라마 나욧' 이라고 성경에서 부릅니다. 삼상19:19, 20:1
라마 나욧에서 젊은이들을 모아서, 낮에는 같이 노동해서 자급자족하고 저녁에는 같이 기도하면서 민족의 나갈 길, 백성들이 따를 길을 제시하면서 청년들의 혼을 깨우는 그런 일에 자기 노후를 보냈습니다.
정말 우리가 본 받아야 될 일입니다. 정말 이거는 대단한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 '인생 삼모작' 이란 말이 있는데 60~70세 넘어 가지고 인생 삼모작을 어떻게 보람되게, 뜻인게 정말 생산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그렇게 보낼 수 있느냐?
우리 크리스찬들은 그래야 됩니다. 사무엘을 본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영어로 은퇴가 리타이어 retire 입니다. 이 말은 '자동차 바퀴를 다시 갈아 끼운다', 영어로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 60~70 넘어 가지고는, 리타이어, 즉 자동차 바퀴를 다시 갈아 끼워 가지고 다시 새 출발을 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사무엘이 대단히 우리한테 훌륭한 본보기가 됩니다.
그 사무엘이 나이 들어가지고 세운 라마나욧에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서 이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거기에 다윗이 찾아 왔습니다.
다윗이 왜 거기에 왔느냐 하면, 사울왕이 컴플렉스가 많았던 사람 같아요. 젊은 다윗이 나라를 구하고, 인기가 높고, 아주 국민들이 따르니까 질투를 해 가지고 시샘을 해서 어떻게 하든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국에 다윗을 찾아서 없애라고 특공대를 3천 명을 풀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큰 나라가 아닌데, 3천 명을 전국에 풀었으니까 다윗이 빠져나갈 곳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왔습니다. 라마나욧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왜냐, 사무엘의 명망이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니까 사무엘 밑에 있으면, 다윗이 보호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무엘 찾아왔는데, 사무엘이 다윗을 공동체 라마나욧에 받아들여서 한 동안 같이 지냅니다. 거기서 다윗을 키우는 겁니다. 두 가지 목적으로 받아 줬습니다.
첫째는, 사울 왕의 그 훼방에서 보호하는 것, 둘째는, 차세대 지도자, 앞으로 훌륭한 왕이 되게 하는 견습입니다.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 말씀이 삼상19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상상력을 가지고 좀 깊이 읽어야 됩니다. 대충 대충 뭐 이렇게 소 풀 뜯어먹듯이 대충 읽으면, 깊은 의미가 우리 마음에 다가오지 못합니다.
사무엘상 19장에서,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왔던 얘기가 쭈욱 나옵니다. 삼상19: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나욧, 사무엘이 세운 공동체에서 같이 지내는 겁니다. 다른 젊은이들하고 같이 공동체를 이루어서 지내는 겁니다.
그런데 정보원이 사울 왕에게 직보를 했습니다. 19절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보고가 사울 왕한테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사울왕이 다윗을 찾아서 해코지 하려고 그러지요.
그런데 사무엘의 국민적, 영적 권위 때문에 다윗이 사무엘 밑에 있을 때는 해코지 하지 못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어떻게 했느냐면, 군대를 라마나욧 외곽에 상주시켜 가지고 언제든지 다윗이 나오면 잡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라마나욧 밖으로는 못 나오는 거지요.
그러면 사울 왕은 언제까지 기다리느냐 하면 사무엘이 나이 많아 가지고 지금 노쇠하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사무엘이 죽고 나면, 라마나욧으로 들어가서 다윗을 잡아내서 처치한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드디어 죽었습니다. 누가 제일 먼저 알겠습니까? 밖에 있는 지키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데, 다윗은 옆에서 모시고 있으니까 가장 빨리 알지요.
사무엘이 숨을 거두자 다윗은 즉시 라마나욧을 탈출했습니다. 그 뒤로 어디로 갔느냐? 오늘 본문말씀 22장입니다.
중간에 과정이 있지만 생략하고 줄여서 설명하면, 삼상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라마냐욧)을 떠나 (중간에 몇 곳을 거쳐서)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서 숨을 죽이며 지내고 있는데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는 겁니다.
'다윗이 어디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대'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는가요?
제가 오늘 특별히 1절, 2절 말씀을 읽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가 아둘람 교회의 역사, 아둘람 동굴의 비전, 아둘람 굴과 같은 경륜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된다 ... 그런 뜻입니다.
삼상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아둘람 굴에 몸을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니까 사람들이 거기로 모여 드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냐? 환란 당한 사람, 빚진 사람, 원통한 일 당한 사람..
요즘 말로 하면, 부도 난 사람, 억울하게 수배 받는 사람, 한 많은 사람, 한 많고 짓밟힌 영혼들..
재주는 있고 뜻은 있는데, 그걸 현실에서 펴지 못하는 눌린 사람들.. 한 많은 사람, 부도난 사람.. 이런 사람들이 다윗의 휘하로 모여들었습니다.
전체가 400명이 모였다 그랬습니다. 그 400명이 모인 아둘람 굴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다윗 왕국이 그 속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국을 세울 때에, 대제사장, 군대장관, 각급 참모들이 아둘람 출신 둘입니다.
나중에 다윗의 아들이 반역을 하고 쫓겨 다닐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다윗을 떠나고 배반했는데 아둘람 굴의 동지들은 마지막까지 다윗과 영욕을 같이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동지들로서 그들이 성화가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영적 상상력을 가지고 깊이 묵상해야 됩니다. 여러분, 원통한 사람, 빚진 사람, 도망 다니는 사람.. 이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보면 상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한이 많다는 것, 상처가 많다는 것, 이게 자기 마음 속에 큰 상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싶습니다.
성장기에 아주 고생고생해서 자란 사람이 결혼을 해가지고 자기 상처 때문에 아내한테 상처를 줍니다.
클 때 너무 짓밟히고 자존심 상하고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 자식 키울 때,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 상처 때문에 자식에게 상처를 줍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너무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상처가 많다는 것은 그게 아주 대단히 인격적으로 아주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잘 부딪칩니다. 그래서 서로 깨지고, 갈라지고, 어려워집니다.
이것을 극복 해야 되는데,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그 사람들은 서로 시비하고 고발하고 다투고 할 그런 경력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다윗 왕국을 건설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든 겁니다.
그 비결이 뭐냐? 이것이 요점입니다. 우리가 이런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영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째서 그랬을까? 다윗이 무슨 재주로 그랬을까?' 묵상해 봐야 됩니다.
이게 다윗이 가지는 영적인 리더십입니다. 다윗이 그 상처 많은 사람들, 그 모여든 오합지졸들에게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준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서로 다투고, 서로 신세타령 하고 살지 말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
우리 이스라엘 역사가 지금 한밤 중인데, 우리가 새벽을 깨우자,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 나가자!
그런 일에 승화된,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에 동지가 되자! 거기에 헌신하자! ... 그 사람들이 거기에 비전을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는 자기 한계와 약점과 아픔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둘람 굴에서 다윗 왕국이 거기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둘람 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뭐냐?
두레교회가 이 역사의 아둘람 굴이 되어야 된다! 우리가 그런 도전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고 그런 교회들 중에 하나로, 그냥 예수 믿고 왔다갔다 하다가 끝내지 말고 우리 신앙 생활을 하는 그 품위, 격을 높여야 됩니다.
다윗과 그 아둘람 굴에 모인 동지가 몇 명입니까? 불과 4백명 입니다. 교인 많다고 큰 교회가 아닙니다. 뜻이 있고 꿈이 크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비전이 있어야 .. 큰 교회이지 그저 숫자 많이 모인다고 큰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시대, 지금 역사에 한국 땅에서, 한반도에서 미래를 향한 아둘람 굴의 역사를 우리가 한번 일으켜 보자!
그래서 우리가 두레 교회 교인으로 머물지 말고 같은 목적, 같은 비전을 같이 공유하는 동지가 돼야 됩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녀야 예수 믿는 게 신바람이 나고 멋있고 격이 높아지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단지 우리가 그 목표에 도전하고자 하는 우리의 포부, 경륜, 비전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그 사람들을 깨우치고 모았느냐? 바로 시편 57편에 그 비결이 적혀 있습니다.
다윗이 정말 위대한 시인이자, 전략가이자, 지도자였습니다. 정말 우리 시대에 그런 다윗같은 지도자들을 우리가 길러내는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제가 기도제목으로 오래전부터 삼고 있습니다.
시편 57편에 표제어가 이렇게 나옵니다. '다윗의 믹담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있던 때에 지은 시'
다윗과 그의 모인 무리는 4백명 가량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아둘람 굴에서 뭘 생각하고, 뭘 기도하고, 무엇을 꿈꾸었느냐? 이 시편 57편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먼저 1절 보겠습니다. 시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여러분, 그들은 아둘람 굴 속에 숨어있다고 생각 안 했습니다. 어디에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고 있다!' 차원이 달라져버리는 겁니다.
정말로 영적인 사람들은, 정말로 은혜 받은 사람은 환경과 조건을 극복해 버리는 겁니다.
아둘람 굴의 밑바닥에 숨죽이고 사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둘람 굴에 한 번 가 봐야 돼요. 얼마나 열악한 환경 인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걸 넘어서 버린 겁니다. 그 자리가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라고 이해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을 넘어 서 버린겁니다.
거기서 뭘 꿈꾸고, 뭘 기도 했습니까?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자기 확신입니다. 셀프 컨빅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나는 내 인생을 이렇게 산다 나는 여기에 내 인생을 투자한다!' 이런 자기 확신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실히 섰습니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절이 다윗의 성공 비결입니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 다윗의 비결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둘람 굴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서 같이 꿈꾸고 기도하고 응답 받아서 이 역사, 이 시대에 새벽을 깨우자! 이게 다윗과 그 동지들의 영혼이 뜨거워진 겁니다. 거기에 인생을 투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그때의 하나님이 동일한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두레교회에 모여가지고 그냥 그렇고 그런 그런 교회 하나 세워나가지 말고 정말 우리 시대에 영감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고, 포부를 가지고
정말 우리가 말씀으로 우리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 .. 그런 새벽을 깨우겠다는 포부, 기도제목 그런 비전을 함께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