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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죄, 두 종류의 복 창12:3, 행1:8, 갈3:14 출처, 번역
Two Types Of Sins & Two Types Of Blessings
잭 푸닌
사람이 저지른 처음 두 가지 죄가 창세기 3:장과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즉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을 심판하시는 방식과, 가인을 심판하신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하게 되는데요..
하나님은 아담이나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결코 그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단지 땅을 저주했습니다. *창3장
그러나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는 하나님이 즉시 그를 저주하셨습니다. *창4장
성경에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처음 나오는 대목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습니까? 아담의 죄와 가인의 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건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는, 자신만 다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는, 그는 다른 사람까지도 상처를 입혔습니다.
어떤 죄는 짓는 그 자신에게만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상처를 주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사람까지 해치는 죄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십니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유해한 약물을 복용하거나
안 좋은 습관이나 더러운 생각에 빠지거나 마음에 쓴 뿌리나 분노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런 죄는 자신만 다치게 하지, 다른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진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을 험담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악하게 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나 쓴마음, 분노를 표출하거나 또는 증오심으로 행동하거나,
간음하거나 살인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칩니다.
오직 자신에게만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담이 지은 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들도 너무 많습니다. 이것들은 가인이 범한 죄의 범주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정죄하신 것은,
주로 그들이 범한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어쩌면 자신만 상처를 주는 죄일 수 있습니다. 요8:1~11
그녀가 그걸 강요당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그 일로 내몰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수님이 그녀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용서하신 것을 보면, 그런 짐작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간음죄로 그녀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사랑 없이 사람을 비난하고, 공개적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면서도 길게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세를 제 때 지불하지 않은 가난한 과부를
월세 집에서 매정하게 쫓아내는 것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그 과부들을 거리로 내보내는 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잘못되고 악했습니다!
우리의 행동 역시 어떤 상황에서는 법적으로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참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롭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기에, 그도 남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범죄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대한 사람들은
심판 날에, 주님도 그들을 무자비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기독 교회는 불행히도 이 두 가지 유형의 죄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신자들이 가십을 하거나 험담을 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술 마신 것 가지고는 뭐라고들 많이 말합니다.
이 두 그룹의 죄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인을 저주하셨을 때
그분은 어떤 유형의 죄를 더 미워하시는지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험담이나 가십하는 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중대한 범죄이므로
수찬 금지를 시킨다든지 교회에서 엄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에서 이런 죄가 너무 가볍게 다뤄지거든요.
이것은 하나님이 가인을 저주하신 대처법과 너무 다른 것입니다.
가인은 돌을 들어서 동생을 쳐죽였지만
오늘날 신자들은 입술의 말로써 같은 형제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치는 것과 그의 명성을 훔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까?
똑같은 도적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는 절도죄로 심하게 다루고,
후자는 그저 가십(험담) 정도로,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 하며..’ 그저 넘어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사람의 평판이 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범하는 죄들 중에, 특별히 다른 사람을 해치는 죄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죄들을.. 아주 엄중한 죄라고 스스로 여기십시오.
그러고 나면 술담배 하는 사람들이 (그걸 하면 안 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들이 비난하는 당신보다 훨씬 낫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해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두 종류의 축복 Two Types Of Blessings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 2~3
신약에서도 성경은 성령의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브라함의 축복"(갈3 :14)을 이방에 나눠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3 :14
그래서 축복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받는 축복’과, ‘내가 나누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 주실 때도
‘내가 네게 주는 복’이 있었고
‘너는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았고, 동시에 우리가 복을 나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창12 :2, 갈3 :14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복받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만연한 성령의 가짜 체험이 많은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땅 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행1 :8
이 말은 우리가 땅 끝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창12 :2~3절의 연장 선상에서, 예수님이 행1 :8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성령의 권능이 임한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열방에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는 창12:장 3절의 성취를
예수님은 행1:장 8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날 땅끝, 지구 끝자락에 사는 가정들이
우리를 통해서 복음의 복,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당신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그 결과로 흘러나오는 축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 :18~19
위 구절에서 또 다시,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의 모든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음을 주목하십시오!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한 말도 같은 맥락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 :38
또 다시,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의 모든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음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성령을 구하라’고 가르치실 때
그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눅11 :5~13
바로 밤 중에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려고
이웃집에 가서 빵을 얻을 때까지 계속 문을 두드리는 남자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비유의 요점은 ‘성령을 구하는 끈기’입니다.
눅11 :13절에서 요점이 분명해지는데,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비유에서도, 그 남자는 자신을 위해 빵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밤 중에 이웃집 문을 두드린 것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였습니다.
그가 이웃에게서 빵을 빌려서 손님에게 음식을 먹인 후에는
그가 곧장 잠자리에 들었고, 이 선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사역을 선전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을 디스하는 말)
우리는 이 남자가, 자정에 자기를 찾아온 방문객에게 빵을 주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의 복사본을 자기 모든 지인에게 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들이 하는 선한 일들을 널리 광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우리의 왼손조차도 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엄청나게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저 복을 저장하고만 있는 저수지나 호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수의 강의 수로(통로)가 되어서,
이 생명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나가는 경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요7 :37~39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그 강이 은밀하고 조용히 흐르기를 원하십니다.
신약의 서신서에 언급된 모든 성령의 은사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전12:장, 롬12:장, 엡4:장
우리를 개인적으로 덕을 세우도록 해주는 방언의 은사조차도
우리가 항상 영적으로 신선하고 하나님과 접촉하여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축복이든지, 성령의 복이든지 구하되,
그것을 자기 개인적 용도로 받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신자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포함하여
육체적 건강, 물질적 번영, 또는 정서적 흥분 등 모든 축복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복의 근원이 되라고,
네가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로 개인적인 축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것은, 그분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일뿐입니다.
신자로서 우리의 소명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축복하기 (잘되기) 위해 지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잘되게 하기) 위해 지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복의 원래 목적’을 잘 깨닫고,
그 목적대로 받고 또한 사용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