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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44:1~15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

LNCK 2021. 7. 5. 17:09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                 시144:1~15                       큐티 묵상

 

◑본문 설명

 

본문은 시138~145편까지에 있는 다윗의 마지막 시편 8편 가운데 7번째입니다.

그리고 표제어에는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다윗의 시>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70인역과(LXX)’과 ‘벌게이트성경(Vulgate)’에는 표제어에

‘골리앗에 관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시편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후에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후반부는 임금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들은 이 시편의 배경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라

사무엘하 10장에 나오는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

그 전쟁을 앞에 두고서 쓴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국가 간의 전쟁을 앞두고

어떤 마음을 갖고 기도하고 있는지 본문에 15절에 걸쳐 자세히 나옵니다.

그 내용 설명은 아래 글을 참조하십시오.

https://blog.daum.net/rfcdrfcd/15979383

 

 

◑적용 :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

 

▲1. 다윗은 <매일 새롭게> 하나님으로부터 전략과 기술을 배웠습니다. 

 

:1절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다윗은 원래 목동이었죠. 하나님은 그런 그를 취하여 군인이 되게 하셨고,

전쟁을 가르쳐 장군이 되게 하셨고,

이제는 이스라엘 전 군대를 통솔하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다윗이 전쟁에 나가서 패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굉장히 ‘타고난 전략가요, 전쟁의 명장’이었습니다.

 

그는 그 공로를, 지금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가르쳐서 싸우게 하셨고, 전쟁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1

그의 전장터에서의 전술, 전략은 모두 하나님께 배운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략, 전술, 기술만 배운게 아니라

어쩌면 전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기, 불굴의 정신, 용기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 특이한 표현은, ‘손과 손가락’이 등장하는 점입니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

 

여기서 ‘손가락’은 특별히 뭘 지시하고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검지’손가락을 뜻합니다. *에츠바

그리고 고대 사회에서 ‘손바닥’이나 ‘손가락’은,

길이나 깊이를 재는 용도로 사용되었죠.                                                           주1)

 

즉 자기 팔을 뻗어 ‘손’이나 ‘손가락’으로 저 멀리 대진한 적진의 길이를 재어보면서,

아군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이며, 전선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계산을 하고서

다윗도 자기 군대의 전개에 대한 작전을 짰을 것입니다.

 

위 1절은, 그런 뜻으로 봅니다.

다윗이 자기 손과 손가락을 이용해서 거리 측정을 하면서,                           주2)

지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전을 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의 배경을, 다윗이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 대진한 시점으로 볼 때 *삼하10장

다윗은 지금 나라를 접수하고 왕이 된 이후 초기 행적에 해당합니다.         *30세에 즉위

그 시기까지 벌써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었고, 지금도 아직 젊은 시절입니다.

힘과 패기가 넘치는 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감과 패기가 넘치는 시기에 찾아오기 쉬운 함정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패배입니다.

너무 자신감이 충천했기 때문에.. 교만해서 의외의 역습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패배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비결이 1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

 

그는 전날의 승리를, 오늘의 승리에 대한 보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오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식과 전략’을 따른 것입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매일 새롭게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가르치다’는 현재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제 하나님께 가르침 받은 것으로, 오늘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매일 오늘 하나님의 가르침과 지도를 받아서, 전쟁을 수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전쟁을 백전백승 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신선한 기름부음이 매일’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직장, 직업, 사역 전선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매일 새롭게 그의 손과 손가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략>과 <기술>을 매일 새롭게 주셨던 것입니다.

 

▲2. 수동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했던 다윗

 

2절,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뭇 백성을 나의 발 아래에 굴복하게 하신다’

 

‘반석, 요새, 산성, 구원자, 방패, 피난처..’

이게 표현이 모두 다 너무 수동적이며 소극적입니다.

 

본문 144편뿐만 아니라,

‘주님은 나의 반석, 피난처, 산성, 요새’라는 표현은,

시편에 수 십 군데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런 수동적, 소극적 표현은,

전쟁에 나서는 장군이 보여주어야 할 대담함, 용맹성 이런 것과 거리가 멉니다.

 

이게 바로 다윗 왕의 비장의 필살기였습니다.

절대 자기 힘 자랑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호언장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여호와께 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영웅 다윗의 히든 카드였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영웅입니다.

 

심지어는 아람(건국 초기)까지 정복하여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삼하8:6

 

그 뛰어난 전쟁의 영웅이,

자기 완력, 군대의 힘, 무력을 자랑하지 않고,

마치 수줍은 여인처럼

‘여호와는 나의 반석, 요새, 산성, 구원자, 방패, 피난처라서

나는 항상 그 분께 피합니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 2절이 본문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만나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내가 적극적으로 공격해서, 고지를 선점하는 방식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며,

하나님이 내 대신 싸워 주시도록, 나를 겸손히 낮추는.. 그런 비결입니다.

 

아무리 적이 불의하고, 내가 의롭더라도

교만한 사람은.. 그래서 큰소리 치는 사람은..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기 힘듭니다.

 

내게 힘과 능력이 실제로 충분히 있더라도

그것을 철저히 감추고, 말을 아끼며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주님이 나의 산성, 방패, 피난처, 요새라고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신비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백전백승 다윗의 '비밀 무기'였습니다.

 

▲3. 다윗은 하나님을 ‘현실적으로’ 느꼈습니다. ‘관념적’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전능하신 주님과 늘 동행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에녹처럼요!

 

3절,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4절,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그의 일생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5절, 주님, 하늘을 낮게 드리우시고, 내려오시며,

산들을 만지시어 산마다 연기를 뿜어내게 하십시오.

 

6절, 번개를 번쩍여서 원수들을 흩으시고,

화살을 쏘셔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주십시오.’

 

다윗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상대해 주시고, 교제해 주시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그가 대하는 주님은, 실제적(현실적)인 하나님이었고,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를 지어 노래할 만큼, 주님과 교제를 생생하게 나누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시를 지어 바칠 만큼, 주님을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대한 적이 있나요?

 

‘내려오시며’ .. 그는 주님을 전장의 한 복판에 초대했습니다. :5

 

시18 :29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꼭 주님을 자기 파트너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되려면,

평소에 자기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운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뜻/생각/전략으로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통해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 전장의 한복판에, 주님을 초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주1)

성경에 규빗도 팔꿈치에서 손 끝까지의 길이며,

우리나라도 ‘한 길’은 사람 키 높이를 뜻헀죠.

 

영어권에서

‘인치 inch’는 엄지손가락 길이를 뜻한다는 설이 있으며, *2.54센티

‘피트 feet’는 한 발바닥 길이 *약 30센티

‘야드 yard’는 한 나뭇가지 길이 *약 90센티, 30피트

 

주2)

과거에는 자나 거리를 재는 측정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원시적인 방법으로 거리를 계산했다.

예를 들면, 강남에서 남산타워의 높이를 계산할 때는, 자기 손가락으로 타워의 높이를 잰 다음에

이제 자기 손가락을 90도 각도로 옆으로 눕혀서.. 그 손가락 길이만큼의 평지 지점이 가늠된다.

 

그러면 이제 그 평지 길이를 '걸어서 재어보면'

남산타워의 높이를 대략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손과 손가락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거리 측정을 했을 것이다.

그 때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