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시편145:1~21 큐티 묵상
◑본문 분해 및 해석
시편 138편부터 시작된 다윗을 표제로 하는 여덟 편의 시 가운데 마지막에 있는
시편 145편은 <다윗의 찬양시>라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1)
-다윗 개인의 찬양(1~3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함께 드리는 찬양(4~9절)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의 찬양(10~17절)
-그 크신 하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심 (18~21절)
▲1. 다윗 개인의 찬양(1~3절)
시인은 하나님을 ‘왕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영원히 주님을 높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찬양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시편 145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주의 이름을 송축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 분이 행하신 모든 일들을 포함한 하나님과 관련된 전부를 찬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2.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함께 드리는 찬양(4~9절)
이제는 그 범위를 확장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6~7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많은 경우 전도나 선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몰라 부담을 갖습니다.
그런데 전도나 선교는 자기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하나님을 전하여
상대방과 함께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나 혼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확장하여 가족, 이웃, 직장 동료, 학교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도자의 사명, 선교적 사명을 이루어 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3. 살아있는 모든 만물의 찬양(10~17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다윗 개인, 그리고 이스라엘을 넘어
이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함께 찬양하는 모습으로 확장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자연의 모든 만물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0~13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이 단락에서 '나라'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시인 개인>의 찬양이 <민족의 찬양>으로 확장되고,
이제 나아가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함께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확장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2)
▲4. 그 크신 하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심 (18~21절)
온 백성과 모든 만물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 크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아주시고,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크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이라도
나와 개인적 관계가 없으면.. 사실 내게는 그리 중요한 분이 아니십니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다윗은 자기 개인적 찬양 → 온 이스라엘과 함께 찬양 → 모든 만물과 함께 찬양
→ 그리고 다시 개인적 찬양과 신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밤에 달이 온 세상을 비추고, 사람들은 달을 쳐다 볼 때 '저 달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이렇게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만나주십니다.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개인적인 신앙’과 ‘공동체적인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신앙이 구비됩니다.
◑적용
▲1. 찬양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내게 강물처럼 임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찬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존재하지만..
내게 임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찬양해야 할 이유입니다.
성도의 마땅한 본분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찬양을 하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찬양을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내 마음에 임재하시기 시작합니다.
찬양을 하면 내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하기 시작합니다.
찬양하면 귀신이 떠나갑니다. 찬양하면 모든 질병들이 다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하면 내 마음에 어두운 것들이 다 토해지고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입술이 말씀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바랍니다.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모든 악한 말들이 내 마음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올 수 없는 것처럼
찬양이 내 안에 가득 차게 하고 예배가 내 안에 가득 차게 하고,
감사가 내 안에 가득 차게 하면 원망과 불평과 절망과 좌절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뱅뱅 돌다 그냥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입술에 다 말씀을 놓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과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의 그 모든 것으로 다 채워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악한 것, 부정적인 것들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내 영혼은 기뻐하며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이 시편 145편은 전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이 구절을 복음성가로 많이 부르는데,
하용인 선교사가 이 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시편을 읽다가 작곡을 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영감을 받아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은 나의 왕, 나의 아버지입니다. 두 가지가 다 참으로 내게 좋은 분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그 하나님을 높이고 그 이름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선언하면 그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온 몸이 저리게 좋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라고 선포하는 순간에
그 왕이신 하나님이 내게 왕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라고 말하는 순간에 그분은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신 분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언제 해야 할까요? 그것은 날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불러도 너무 좋은 것입니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여기서 '날마다' 와 '영영히'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그분을 송축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크신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내 상상력이 피곤할 정도로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광대하십니다. 측량할 길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높임을 받으시고,
그의 이름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것입니다.
그의 행사와 그의 능력을 보십시오. 그분은 홍해를 가르셨고,
바위에서 샘물을 나게 하셨고, 하늘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주셨습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치 못하도록 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하신 일과 능력을 보고 찬양할찌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그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분의 능력이 내 안에서 더 크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선포하십시오. 그 위대함을 찬양하십시오.
그의 하신 일과 능력을 찬양하십시오.
그때 그의 거룩과 능력과 위대하심이 내 안에 임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2. ‘기도와 찬양을 똑같은 분량으로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시간 기도할 때, 꼭 30분은 기도, 꼭 30분은 찬양하라..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는 기도할 때, 주로 기도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간구, 소원, 강청’ 위주로 하는데
그게 원래 기도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 돌림입니다.
실제로 시편의 많은 부분도, 본문처럼, 이렇게 ‘찬양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도가 곧 찬양이고, 찬양이 곧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다’ 라고 말하는데,
기도를 .. 너무 자기 소원의 기원.. 위주로 드리지 말고, (이건 이방종교의 기도 특색)
기도를 ..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송축하는 .. 이게 더 본질적인 기도라는 것이죠.
그래서 생긴 말이 ‘기도와 찬양을 같은 분량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나타났습니다. 행16장에서!
그들이 <기도>했을 때 응답이 온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도와 찬양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긴 합니다.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 홀로만 가지고는 응답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만 했더라면,
응답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부인이, 이런 간증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그녀는 천식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 대도시의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별로 차도가 없었고, 천식으로 인한 괴로움은 더해 갔습니다.
남편이 석유회사 중역이라서, 병원비로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차도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이 저희교회에 오셔서 부흥집회를 여셨습니다.
저는 신유기도를 하실 때마다, 매번 빠짐없이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신유능력이 강하셨던 신유 부흥사, 레이몬드 리치 목사님도
인근에 오셔서 천막집회를 하시기에, 제가 가서 신유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에게 기도하다가 중단하고, 저를 쳐다보면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님은 여러 번 기도를 하시고 받으셨죠?’
‘네’
리치 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위해 기도를 안 하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시키는 일을 하시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쉽다면 하겠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당부하고 싶은 일은 쉽습니다. 병문제가 생각될 때마다
하나님이 치유해 주심으로 인해 <찬양>하십시오!’
제가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치유 받지 못했는데요?
제가 응답받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까?’
리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 :17절에서 하나님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질병을 대신 담당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말씀의 약속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나를 치료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후로 기도를 → 찬양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성경말씀에 따르면 저는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주님이 저를 조금씩 더 고쳐주시는 줄도 믿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기도시간에 주님을 찬양하는데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꼭 기도시간에만 아니라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남편을 직장에 보내면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입으로 찬양했습니다.
저는 침대를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병문제로 염려될 때마다, 저는 말씀(마8 :17)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천식의 통증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편이 대답하길, ‘한 30일이 됐어.’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천식으로 인한 통증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그녀는 신유집회가 있었을 때마다,
모든 신유사역자들에게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치유응답은,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났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찬양에 똑같은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찬양을 하는지요?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뭔가를 해주시기를 구합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나눠서
기도와 그분께 찬양 드리면서 주님과 교제를 갖는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강력한 그분의 능력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어느 신앙잡지에 실린 한 여선교사의 치유 간증입니다.
그녀는 천연두백신이 나오기 수 년 전에, 천연두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천연두가 전염병이라서 그녀를 격리를 당하였습니다.
그 여선교사가 혼자 따로 격리되어 있었을 때
그녀는 기도하기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신비한 환상을 보여주셨답니다.
환상 속에서 그녀는 대칭(천칭)저울을 보았습니다.
대칭저울의 한쪽은 “기도”라고 명칭되어 있었고
그쪽은 꽉차 무게가 실려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고,
다른쪽은 “찬양”이라고 명칭되어 있었는데
그 안은 조금만 채워져 있어서, 허공에 솟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시길,
‘너의 찬양의 양이 기도의 양과 동등하게 될 때에 너는 병고침 받을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틀 낮과 밤으로 하나님을 찬양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온전히 치유 받았습니다!
천연두의 징후는, 그녀가 기도한만큼 찬양했을 때..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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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시145편은 알파벳 시
그리고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각 절의 첫 머리가 시작되는 ‘알파벳 시’인데, *Acrostic
1절은 알레프, 2절은 베트, 3절은 김멜, 4절은 달레트.. 즉 a b c d .. 이렇게 시작되죠.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가운데 열네 번째 글자인 ‘눈’ 행이 생략되어
전체가 2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2) 이 장면은 이사야서 11: 6~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에서는 더이상 분쟁과 미움과 시기는 사라지고
모든 존재가 함께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