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147:1~20 큐티묵상
시편 146편은 그 내용이 <개인적> 감사를 드리는 예배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나의’ 와 ‘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반면에 147~150편은 <공동체적> 감사를 드리는 예배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 시는 이스라엘이 드리는 예배 가운데
찬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작하는 1절에서부터 찬송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편 147:1)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하고 아름다운 일로서
우리 인간이 마땅히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시편 147편에서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내용 분해)
1)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처를 싸매주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
2~3절,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파괴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새롭게 모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모든 지방이 망가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도 상한 갈대처럼 다 찢겨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고 있는 이 상처를 고쳐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신 기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2) 자연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찬양 (4~9절)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3)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10~14절)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14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4) 다시 자연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찬양 (15~18절)
: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주1)
5)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찬양 (19~20절)
: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말씀(특별은총)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계의 모든 피조물과 인간에 대해서
놀라운 창조의 섭리와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 찬양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능력과 권능으로 창조의 섭리를 펼치시는 하나님을
우리 역시도 진실하고 기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시 147~150편은 "공동체적으로 드리는 예배시, 또는 예배 기도문"입니다.
다윗의 시편 등은 주로 '개인적인 기도'의 형식이었다면,
아삽, 고라 자손, 헤만 등 레위 자손의 시는 '공동체적 특징'이 강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예배 인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회중이 다들 모인 성전 마당에서
그 중심엔 번제단이 있고, 거기엔 번제가 불 태워져 드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회중이 운집한 자리에서, 노래하는 레위인이 큰 목소리로
본문과 같은 시를 읊으며 노래했다고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이 공동체적 예배시의 첫 번째 특징은 '즐겁다 pleasant'는 것입니다.
이 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할렐루야!' 라는 말씀 자체도
'즐거움'이 배인 소리입니다. 슬프거나 우울하게 '할렐루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대속죄일이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울며 자복하는 특별집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예배)는 '즐거움'이 .. 가장 우선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1번도, '사람의 가장 근본된 본분이 (삶으로,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적 예배를 지향한다고 할 때
'즐거움'의 요소를 빼 놓으면, 가장 큰 기초를 놓치는 것입니다.
지금 시인은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5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7
라고 선포하는데, 그 어조가 모두 '즐거운, 기뻐하는' 색채입니다.
그들은 지금 제사를, 어떤 의무감에 의해서,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된 가운데 억지로
(오늘날 우리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예배드리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약간 흥분이 고조된 상태에서 예배(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뛰어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로 충만하면.. 예배와 찬양이 즐거워집니다.
반면에 거룩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경색되어 있으면.. 사실은 거룩하지 않은 것이죠.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즐거운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는 거룩'을 추구해야 되겠습니다.
▲2.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찬양하는 성가대원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회중들의 눈에는, 성가를 부를 때의 찬양대원들의 모습은
매우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예배자들은 스스로 잘 모를 수 있습니다만
불신자들이 예배자들을 볼 때, 그러니까 동네에서 교회로 향하는 어느 가족을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눈에 보기에는.. 예배드리러 가는 일가족의 모습이 매우 영광스럽고 아름답죠.
인생이 언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기도 하고요. 사43:21
사람이 본분에 충실하는 모습이 아름답거든요.
오늘 본문의 <회중 예배 때 찬양 시 (오늘날로 치면 대표기도)>의 분위기는
이렇게 존귀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도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솔로몬 성전에는, 전문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주2)
본문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에스라 때는 노래하는 자들이 128명 있었습니다. 스2:41
그래서 시편은, 마음 속으로 읽지 말고, 큰 소리로 낭독하며 읽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고조된 음성으로 큰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것을 회중이 듣습니다.
이때가 우리 인생에게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가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로 마치는 것입니다
우리도 늘 큰 목소리를 울려서 찬양을 부르든지, 이런 시편을 낭송하면서
가정에서도 하나님을 찬양드리는 영광스럽고도 존귀한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본문은 시작하는 1절에서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편 147:1) 라고 선포한 후에,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에 대해, 20절까지 구구절절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습니다.
크게 대지를 나누어 보면,
1)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고 상처를 싸매주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 (2~3절).
2) 자연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찬양 (4~9절)
3)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심을 찬양 (10~14절)
4) 다시 자연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찬양 (15~18절)
5)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찬양 (19~20절)
마치 샌드위치 구조처럼 '사람 - 자연 - 사람 - 자연 - 사람'
이렇게 교차적으로 감사제목으로 찬양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게 다 감사의 제목이요, 하나님께 찬양할 내용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자연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해 찬양을 묵상해 봅니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천지창조 때, 먼저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사람은 맨 마지막 날 6일째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다 조성하신 후에
하나님은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비로소 에덴에 입주시키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대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면서도,
우리 인간을 위해서도 만들어지고 조성된 것입니다.
오늘도 별 - 구름 - 하늘 - 비 - 산 - 풀 - 눈 - 서리 - 우박 - 바람 등
모든 것들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주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만 감사하고, 말씀을 주신 은혜에만 감사하고
우리를 위해 자연적 환경을 조성해 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회복시켜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사랑해 주신 은혜, 말씀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중간 중간에 대자연이라는 '삶의 환경'을 조성해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은혜 받은 사람의 공통된 고백은,
길 가에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 예사롭게 보지 않고, 그 속에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자연을 보며 감사드리고 찬양드리는 은혜'가 회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람이 깨어있지 못하면, 야외에 드라이브를 나가서도
그저 맛있는 음식 먹거나, 운동을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 1절을.. 못 부르고 집에 돌아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날씨를 보고서, 구름을 보고서, 하늘과 비를 보고서도
그 대자연을 나를 위해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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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은성도 목사님이 중국 감옥에서 20년 형을 선고 받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탈북자들 2백 명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한국으로 오게 하는 일을 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서 재판을 받고 중국 감옥에 갇혔습니다.
무려 20년이 넘는 형을 살아야 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목사님을 위해서 1년 10개월 동안 계속 중보기도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서 20년 형을 살 것을 생각하니까
정말 앞이 캄캄하고 절망이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기서 20년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졌던 그 때, 정말 놀랍게도
밤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주님이 너무나 놀랍게 말씀으로 그 목사님께 임하셨습니다.
그 순간에, 말할 수 없는 위로가 오고
그리고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이 다 떠나버렸습니다.
감방이 완전 다른 곳이 되었습니다.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졌습니다.
20년이라도, 이런 은혜를 계속 내게 부어주신다면
‘예수님 한 분이면 진자 충분합니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입니다.
20년 동안 이 감옥에서, 여기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한들, 그게 제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렇게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2년 6개월 형을 받고, 이번에 출옥해서 한국에 돌아오셨습니다.
그 감격을 증언할 때, 그런 부흥회가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보안 때문에 녹음을 공개할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말씀으로 얼어붙어 있던 은성도 목사의 마음을 주님이 다 녹여주셨습니다.
주2)
다윗은 성가대원을 288명을 만들었고,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다음에 레위인에게 음악을 담당하여
늘 노래하는 사람을 4천 명이나 두었습니다. 역대상 23장에 나옵니다.
악기를 가지고 늘 찬양하는 사람도 120명이 있었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 중 128명의 청년 남녀들이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것이 에스라 2장 41절에 나옵니다.
또한 성전을 다 완성한 다음에 148명의 찬양대원들이
하나님께 늘 영광 돌렸다는 기록이 느헤미야 7장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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