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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2:1~13 사랑 때문에 병이 생긴 술람미 여인

LNCK 2021. 7. 15. 17:19

 

◈사랑 때문에 병이 생긴 술람미 여인            아2:1~13                     큐티 묵상

 

 

▲2:1 (여자)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여기서 말한 ‘수선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선화가 아니다. *daffodil or narcissus

영어성경에는 rose 로 번역했는데, 장미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넓은 샤론의 평원에서 피는 ‘들꽃’을 통칭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 수선화의 히브리어가 ‘수산’이다.

그래서 우리 말에 ‘수선화’로 번역한 것은, 아마 히브리어 ‘수산’의 음역인 것 같다.

거기에 꽃 ‘화’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백합’도 우리가 알고 있는 흰 백합꽃이 아니고, *히, 헤벧젤렡

샤프란이나 크로크스 같은 연보랏빛 꽃인데.. 역시 들꽃이다.

 

무슨 꽃 이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1절의 메시지는,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표현하는데

<들판에 허드르지게 피는 들꽃>의 하나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확한 표현이다.

예루살렘 인근의 시골마을에서 포도원을 돌보며 양을 치던 ‘들꽃 여인’이

바로 술람미 여인의 정체였던 것이다.

 

그에게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찾아와 주셨다.

그리고 자기를 왕의 신부로 간택해 주셨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마6:28~29절을 생각해 보게 된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생명 life을 가진’ 꽃 한 송이가

‘생명이 없는’ 화려한 왕의 화려한 명품 옷보다도 더 영광스럽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 life을 가진’

마치 들꽃 한 송이같은 존재인 우리 성도들이

‘생명이 없는’ 세상의 왕들과 셀럽보다도 더 영광스럽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야외에 나가면, 들꽃 사진을 자주 찍는다고 한다.

들꽃들의 특징은 일단 크기 부터가 작다.

모든 꽃은 나름 색깔과 자태가 있기 때문에, 들꽃도 예쁘기는 하나

너무 크기가 작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꽃을 지나치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그 작은 꽃을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 보면.. 아주 멋있고 훌륭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들꽃 사진을 자주 찍는 이유는

‘그들을 알아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라고 한다.

들꽃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꽃을, 자기라도 알아주고 싶어서’ 그는 들꽃과 대화하며

들꽃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바로 이 마음이다. 솔로몬은 그 마음을 본문 2절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2

 

‘가시나무’ 역시 광야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나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어른 무릎 높이 정도로 자라는 가시 돋힌 식물이다.

아마 들꽃만큼 흔하게 서식하는 것이 가시나무일 것이다.

 

그 들꽃이 (본문에 백합화) 가시나무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보기에는, 예루살렘에 여러 여인들은 ‘가시나무’와 같았고

술람미 여인은 그 속에 감춰진 ‘들꽃’과 같았다.

 

여기서 핵심은 ‘왕이 그 들꽃을 알아주었다. 눈여겨 보았다’는 사실이다.

 

너무 허드러지게 많이 피어서.. 이름도 없이 그냥 ‘들꽃’ 정도로 불리는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 아니 하늘의 하나님이

그를 알아보셨다는 것이다.

그 가시나무 사이에 감춰져 핀 들꽃을 눈여겨 보셨다는 것이다.

 

▲“꽃” 이란 제목의 김춘수 시인의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존재감도 없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그 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주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기 전에는

나는 존재감 제로의 사람이었다. 그저 숨쉬고 사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님이 술람미 여인에게, 또한 나에게 찾아오셔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나는 왕의 신부가 되었고, 그의 사랑받는 아내로 간택되었다.

 

오늘날 사랑과 인정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증거로,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만족감을 누린다.

혹시 사람이 자기를 선택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하나의 이름 없는 들꽃에 불과한 존재라 하더라도

주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3

 

술람미 여인은 실제로 이런 음성을 들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 :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 :13

 

▲사랑은 열정이다 Love is passion 이라는 말이 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주님께 대한 열정이 뜨겁다.

 

예수님이 채찍으로 성전을 정결케 하셨을 때,

그것을 목격하던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2:17, 시69:9

 

다윗의 열정이, 예수님의 열정이 얼마나 컸으면

자기 자신을 삼켜버릴 정도로.. 그 열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나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 :4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3 :16

 

그럼 나는 오늘 어느 쪽인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인가,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인가?

 

설교자도 뜨거울 때는.. 막 설교가 하고 싶어진다. 설교시간이 기다려지고

빨리 설교단에 올라가서 말씀을 증거하고 싶어한다.

 

설교자가 식을 때는.. 설교하기가 주춤해지고 꺼려진다.

설교할 거리도 별로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가급적 남이 대신 설교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에서 불러주신 은혜는 모두 받았을 것이다. 아2:1~2절의 은혜다

 

그런데 그 사랑도 식을 때가 있고, 목마를 때가 있다.

그때 술람미 여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2:5

 

그럼 이때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상사병이 나야 한다.

상사병이 날 정도로 주님을 사모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왕이 다시 술람미 여인을 찾아주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8

 

그런 가운데서, 아래와 같은 왕의 초청이 있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 :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 :13

 

어떻게 하다보니, 이 큐티묵상글의 결론이 아가서 2: 5절로 끝마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5

 

오늘 내가 뜻뜨미지근한 이유는.. 사랑 때문에 병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을 대하면서, 술람미 여인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5

 

그때 우리는,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다시 뜨겁게 만날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8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