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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성이 구원받은 세 가지 원인 욘3:1-10 2011.10.16.
서론
이라크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나라인데
이곳에서 성경의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이고, 인류의 타락이 시작된 곳이며,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갈대아 우르도 이라크 지역입니다.
또한, 야곱이 형의 진노를 피해서 20년간 도망가 있던 외삼촌 라반의 집인
밧단 아람과 고대 근동을 지배했던 바벨론도 이라크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역사상 가장 짧은 메시지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라크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오늘날 모술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불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요나의 삶 가운데 풍랑이 오게 되었습니다.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서 인생 가운데 가장 불편한 삼일 밤낮을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 3: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번 불순종했다고 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기회와 여유를 주는데도 계속 불순종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두 번째 기회에 순종했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자
니느웨로 가서 하루 종일 다니면서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요나가 증거한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우리말로 계산해보면 16글자이고 히브리어로 계산해보면 5글자입니다.
이 짧은 메시지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다 회개한 것입니다.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니까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자신도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며 사람이나 짐승 모두 금식하고
악한 일에서 돌이키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니느웨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니느웨의 인구가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1).
‘좌우를 분별치 못한다’는 것은 ‘오른손과 왼손을 분별치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신을 때 좌우를 바꿔 신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라는 것은 보통 5살 미만의 아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5살 미만의 아이들이 12만 명이라고 했으니까 사람 수명을 50세로 보면
니느웨의 인구는 최소 60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증거한 간단한 메시지가 어떻게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구원을 이루었느냐?
그 원인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요나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나는 지금 따끈따끈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재앙을 내리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으로 인해 물고기 뱃속이라는 불편한 상황에 처해도
회개하고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라는 것도
체험한지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는 이처럼 직접 체험하고 선포한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설교자로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말하면 힘이 없습니다.
자기가 직접 듣고 체험한 것을 이야기해야 믿지
남이 체험한 것을 이야기해주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려면 자신이 체험한 것을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도 요나의 경험을 알았을 것입니다.
요나가 직접 이야기했을 것이고, 나중에 선원들로부터 이런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풍랑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요나라는 하나님의 선지지가 불순종해서 그런 것이었소.
그래서 그 사람을 바다에 던지게 되었는데 어떻게 며칠 만에 니느웨에 나타나서
설교했단 말이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요.”
요나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눅 11:30).
요나는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야 되는 우리 성도들의 예표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며 구원받은 경험이 있어야
그것을 남들에게 전할 때 충격을 주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삶의 변화를 보고 도전받습니다.
“저 사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술 먹고 방탕하게 살더니 예수 믿고 확 변했네.
저 사람이 변한 것을 보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의 변화가 전혀 없고 성령의 체험도 없고
구원받은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도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자체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표적으로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2. 요나가 증거한 메시지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나가 증거한 메시지는 언뜻 보면 100% 부정적인 메시지입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 아닙니까?
요나는 니느웨가 악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욘 1:2).
우리는 다 악하고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러다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하시면
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독이 하늘로 올라가다가도 상달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삶의 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니느웨는 얼마나 악했는지
하나님께서 그 악독을 보시고 40일 후면 멸망을 시켜야 되겠다는 판결을 내리신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설교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메시지를 증거했는데도 하루 만에 120만 명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메시지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부정적인 것 같지만, 엄청나게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40일이 지나면 멸망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40일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께 회개하면 멸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일 그 짧은 기간을 준 것이 무슨 은혜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보십시오.
유황과 불비의 심판을 내리실 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주민에게 1초라도 여유를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롯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에게는 어떠한 경고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갑자기 경고도 없이 유황과 불비를 내리셔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한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니느웨 사람들에게 40일 동안 여유를 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메시지를 전하면
부정적인 메시지로 생각해서 듣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반대로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왜 빨리 실현되지 않느냐?
이것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옛날 초대교회 때도 있었고 또 지금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지 않고 계시느냐?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인간 모두를 구원하기 위함이란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고 기다리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눈 뜨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한, 다리로 걸어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병원에 가보시면 다리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희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하는데 10미터를 걸으니까 의사가 많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미터를 걸으니까 장족의 발전을 하셨다고 했고
30미터를 걸으니까 퇴원해도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10미터, 20미터를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를 주시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신 것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계신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여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40일이 영원한 시간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유와 기회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있을 때 예수님을 믿으시고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3. 니느웨성 백성이 “올바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올바른 반응을 보여야 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째,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고 둘째,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확신하고 회개했습니다.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올바른 인간의 반응입니다.
요나3:5절을 보면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라고 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믿었고 요나가 증거하는 메시지가 진실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복을 줍니다. 아브라함이 복 받은 것도 믿음으로 받았고
우리가 복 받은 것도 믿음으로 받은 것이고 니느웨 백성도 믿음으로 복 받았습니다.
‘나는 안 믿겠다’는 말은 나는 복을 발로 차버리겠다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갈 3:6-7).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 3:9).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아도 복을 받고
돈도 많고 권력도 있고 공부도 잘한다고 합니다.
물론 믿지 않아도 돈 벌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안 믿어도 얼마나 부자입니까?
그러나 돈과 권력과 지식은 거품입니다. 지금 비록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이것은 다 거품입니다. 이것이 지나가고 그다음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어야
그게 복 받은 사람이지 거품만 잔뜩 있고 그 뒤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것이 무슨 복입니까?
니느웨 백성은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믿음은 니느웨 백성의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악독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믿음이란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둘째, 니느웨 백성은 왕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과 심지어 짐승들조차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물만 먹고 40일을 금식 기도하는 것과
물도 안 먹고 3일을 금식 기도하는 것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아무리 죽을 위기가 와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욘 3:7).
왕이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악한 길에서 떠나자고 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금식을 하면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도 금식을 하면 기운이 없어 담을 못 넘기 때문에
도둑질을 못하게 됩니다. 남을 욕하던 사람도 금식하면 기운이 없어 욕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금식은 악독을 예방하는데 매우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가 진실했다고 증거하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2)
심판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니느웨 사람들이 놀린다는 것입니다.
요나 같이 불순종하고 돌아온 선지자가 와서 전도해도 회개하고 믿었는데
요나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와서 전도했는데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를 합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로부터 방향을 돌이켜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와야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나는 회개만 하고 믿음은 갖지 않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는 믿긴 믿어도 회개는 하지 않겠다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반역에서 충성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심입니다.
여러분 중에 우상숭배를 오래하신 분이 계십니까? 우상숭배 오래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얻은 것도 없고 복 받은 것도 없고 귀신만 달라붙는데 왜 그런 것을 계속 믿으십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을 믿어 회심하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니느웨에 살던 100만 명 이상의 영혼을 다 구원하신 것입니다.
결론
영혼 구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천하보다 한 영혼이 귀중하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29-30).
눈이 하나 뽑혀도 지옥 가는 것보다 천국 가는 것이 낫습니다.
팔 하나 잘려도 지옥 가는 것보다 천국 가는 것이 낫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하나님께서는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분은 지옥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일부만 믿으십니까? 믿으려면 다 믿어야합니다.
우리 팔이 잘려도 부활하면 다시 생겨납니다.
눈이 뽑혀도 그때는 영원히 아프지 않는 눈이 생겨납니다.
온몸을 잃어도 그때가 되면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몸이 멀쩡해서 지옥 가는 것보다
못생기고 다 뽑히고 찢겨도 천국 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 구원은 눈보다도 귀하고 손보다도 귀하고 몸보다도 귀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체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요나처럼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는데 도망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입술을 열어 증거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입술을 열어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냥 행복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도 파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은 전도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혼자 오시지 마시고
꼭 옆에 한 분씩 새로운 분을 모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자기 남편을 전도하는데 남편이 뺀질거리면서 교회를 나오지 않자
할 수 없이 남편의 구두를 들고 와서 강대상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구두의 주인 아직 나오지 않고 구두가 먼저 나왔습니다.
구두 주인도 따라 나오게 해주시옵소서.”
남편이 출근하려고 보니까 구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두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까
예배당 먼저 가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남편이 웃으면서 그날은 고무신을 신고 출근하고
그 다음 주일 교회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일에 전도해도 안 나오면 구두라도 들고 오십시오.
구두라도 들고 오면 하나님께서 그 정성을 보시고 영혼을 구원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영혼을 구령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