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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1:1~16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사람

LNCK 2021. 7. 24. 17:53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사람          시91:1~16             큐티 묵상

 

 

◑1.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할 줄 아는 사람

 

본문 시 91: 편의 키워드는 '날개 그늘 아래' 라고 본다.

왜냐면 약간 표현을 달리 해서, 같은 뜻의 말이 본문에 3번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1

 

여기서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란, 지성소를 뜻할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지존자(가장 높으신 자, 곧 하나님)는 지성소에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는 휘장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하루 종일 어둑컴컴한 곳이라서,

또한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은밀한 곳' 이다.

 

시편 저자는, 비록 자기는 대제사장이 아니라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그 곳에 "거주"해서 살기를 갈망하고 있는 마음을.. 시로 노래한 것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늘 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을 대구법적으로 반복해서 표현을 달리한 것으로 보거나,

또는 출애굽 때 구름 기둥의 그늘 아래 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다.

 

본 시편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환란과 시험과 고난!

 

본 시편의 저자는 이 때 우리에게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살아라!' 라고 권면한다.

 

잠시 5분~10분 머물다가 떠나라는 말이 아니라,

아예 '거주해라, 살라'고 한다. 그 앞에서 마치 살림하듯이 살아라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시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참새나 제비가 부러워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1~5

 

인생에 환란과 고난과 낭패를 당하면.. 다른데 기웃거리지 말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로 가서.. 거기서 아예 터잡고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피한 결과는 이렇다고 본문에 나온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2~3

 

2. 위 1절과 내용적으로 비슷한 표현이 4절에 이렇게 표현된다.

1절의 반복적 강조이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4

 

앞서 1절에서 '은밀한 곳, 그늘'이 나왔는데,

지금 4절에서는 '날개 아래'이다.  똑같이 '은밀한 곳'이요 '그늘'이다.

 

TV 동물의 왕국에 보면, 오리나 닭이나 새는

위험한 동물이 다가올 때, 어미 새는 자기 새끼들을 자기 날개 그늘 아래로 감춘다.

그러면 감쪽 같이.. 마치 없는 것처럼 새끼들이 맹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광야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목격했던 이스라엘은,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았을 것이다.

 

원수 사탄이 볼 때, 우리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주 하나님만 자기 시야에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날개 아래 감춰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 결과는 어떻는가? 이렇다고 나온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5~6

 

그래서 같은 은총을 받기 바라는 성도들은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라는 찬송을 오늘날에도 즐겨 부른다.

 

룻기에도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2:12 

 

그래서 이 비밀을 깨달은 성도들은 이 찬송을 요즘 즐겨부른다.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Hide me now Under Your wings, Cover me Within Your mighty hand"  *원제목 Still

본문 시91편에서 따온 찬양이다.

 

▲3. 이렇게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뜻의 표현이

본문에 한 번 더 등장하는데.. 바로 "피난처 refuge"이다.

 

1절에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

4절에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

9절에는 '피난처'인데.. 다 같은 뜻의 반복적 강조이다.     :2절에도 나온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9

 

'피난처'란 비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 동굴이나 바위가 움푹 패어들어간 곳을 뜻한다.  *마하세

그러니 그림으로 보면 '그늘 - 날개 아래 - 피난처' 모두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고,

시인은 '주님께 피하라'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세 번이나 표현을 달리한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은 자에게는, 본문에 이런 보상이 따른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0~11

 

 

◑2. 인생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라고 시작되는

본문의 전체 주제는 (다른 시편도 마찬가지) 서두 1~2절에 나와 있다.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 교통하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안전하며,

따라서 항상 거룩한 평온과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는 주제이다.

 

지존자(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것이.. 참된 신자의 특징이다.

그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의 그늘에서 안식을 누린다. 마치 구름기둥의 그늘 아래서 처럼!

 

또는 ‘지존자의 은밀한 그늘’을 성전의 지성소로 볼 때,

이렇게 그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를 좋아하며

그 휘장 안에서 예배하고,

하나님과 단 둘이 있기를 좋아하고, 그런 고독 속에서 주님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성도들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은 특권과 위로이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폭풍우나 햇빛을 막론하고 그들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막아주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 하에 거하는 허락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자기 거주지를 갖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안식과 영원한 피난처가 되어주실 것이다.

 

본 시편은, 모세가 썼을 것이다, 아니면 다윗이 썼을 것이다.. 이렇게 주장이 나뉘는데

다윗이 썼다고 보는 이유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3

 

‘새 사냥꾼의 올무’는 다른 시편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며

‘심한 전염병’은 다윗의 인구조사로 전국에 심한 전염병이 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든지, 다윗이든지 누가 썼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은 언제나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로 나아가기를 즐겨했던 분들이었다.

아니 아예 그곳에 자기 거처를 정하고 살았던 (거주했던, 오래 머물렀던) 분들이었다.

   

▲어떤 분은 시편 91: 편을 1절부터 끝절까지 줄줄 암송한다.

그리고 무슨 문제만 터지면.. 본문을 1절부터 끝절까지 한 구절씩 암송하면서

‘시편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수록, 평안한 날보다는

사고와 사건과 갈등과 공격의 말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곳이.. 목회의 현실이다.

 

그 모든 환란과 풍파를 이겨나가고, 극복해 나가는 비결이 있다면

(각자 자기에게 알맞은 비결이 있겠지만) 그 분은

새벽기도 시간부터 91:편 본문을 줄줄 외우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럼 신기하게도.. 이 시편의 기도가 다 그대로 응답이 되어서

아래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이 이 풍랑을 잠재워 주소서’라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면...

신기하게 또 그대로 응답이 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목격하고 신기해 하게 된다.

  

▲4 절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23 :37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녀들을 ‘날개 아래에 덮어서 피하게 해 주시려는데’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즉 당시 유대인들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께 피하지 않았고, 보호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다가 보면.. 우리는 어리석어서..

주기적으로 위태한 일과,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다.

우는 사자처럼 잡아먹으려는 마귀와 마주 대할 때도 있다.

 

그때는 본문 시91:편을 줄줄이 외면서 기도로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23 장의 유대인들처럼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23: 37

 

재앙의 범위가 1~10까지 있다고 할 때,

전자는 0~1의 강도로 미약하게 당할 것이다.

후자는 9~10의 강도로 아주 세게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라도, 재앙이 닥칠 때면

우리는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 날개 그늘 아래, 전능자의 그늘 아래로 피해 가서, 거기에 거주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거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