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94 편에는 표제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시93편과 연결되는 시편이 아닌가 라고 보기도 합니다.
시93편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라고 한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93:1 '여호와가 다스리신다,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말씀이 과연 무슨 뜻인가?
과연 하나님께는 권위와 능력이 있으시고 그리고 세계를 다스리시고, 예로부터 영원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다스리신다 라는 말씀을 봤는데요..
바다 또는 큰 물도 순종한다, 즉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도 하나님 앞에서는 굴복하고 만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묵상했는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우리는 살짝 오해를 합니다. 그게 뭐냐면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하나님 편이고, 하나님은 통치 하시는 분이니까 나는 이제 앞으로 잘 될 것이다. 나는 평탄할 것이다. 나는 그 하나님이 지켜 줄 거니까,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라고 오해합니다. 근데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는 반드시 빛으로 행하게 되어 있거든요.
근데 자칫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라는 개념 앞에서 '나는 할 것이 없다!' 라고 쉽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94편은 매우 필요한 시편인데 93편과 94편은 연결해서 같은 짝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개념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거예요.
◑본문 시94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94: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라는 말이 두 번 연이어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두 번 연이어 말할 땐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라고 두 번 연거푸 부를 때는 매우 간절하게 부르는 거죠.
그 뿐 아니라 3절에서 또 '여호와여' 라고 불러요.
5절과 12절과 18절에서도 '여호와여' 라고 불러요.
지금 이 94편을 쓰고 있는 시편 기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그 마음 속에 지금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한 문제 임을 드러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시편 94편을 읽을 때, 이 시편을 그냥 편하게 읽어 나갈 수가 없어요. 매우 진지한 문제이고, 매우 신중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94편에서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고 있어요. 오늘 이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93편에서 나타난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94편의 '복수하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될까요?
이것은 매우 흡사한 개념이면서, 또는 정 반대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분이신데, 그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분이시다!
자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은 어찌보면 우리에게 굉장히 위안을 주죠. '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래에서, 우리는 그 그늘아래서 그냥 희희낙락 하면서 살면 된다...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요.
그러나 94편에서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며, 빛을 비춰주소서' 이 말은 뭐냐면 어둠에 빛을 비춰 달라는 이야기예요. 어둠이란 것은,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악한 마음을 점점 키워 가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악된 행위를 해서, 그것으로 자기 유익을 취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 신자들도, 겉으로 보이는 공적인 행위들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우리 어둠의 생각들도 있고요, 어둠의 행위들도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거기에 빛을 비추어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린 계속해서 그 어둠이 커져갑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어둠이 점점 커지고요. 그리고 그 어둠의 결국은 (마귀에게) 삼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라는 말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 어두움을 보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을 보시고, 그 어둠에 반드시 빛을 비춰 주십니다. 그러니까 어두운 곳에서 '이렇게 해도 남이 안 보겠지? 남이 안 보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지? 라고 하면서 자기 마음껏 죄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헤드라이트 같은 빛이 쫙 비춰지는 거죠.
환하게 빛이 비춰오면서, 그 어둠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런 '복수하시는 하나님' 이란 말을 우리가 오해하면 '아 하나님은 나 말고 다른 죄인에게 복수 하시겠지, 하나님은 나 말고 다른 죄인의 그 죄악을 드러내시겠지' 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우리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하시는 하나님이 빛을 비추신다' 이 말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게 뭐죠? 우리는 내 신앙의 성장이 없을까봐 두려워 하고요. 우리 가정과 교회가 부흥이 안 될까봐 두려워 하고요. 남들이 우리 교회를 얏볼까 봐, 우리가 남들만큼 신앙이 성장을 못 할까봐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두려워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내가 기도 하지 않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전혀 지금 성장하지 않았는데 겉으로는 잘 되는 거예요' 그게 무척 두려운 것입니다.
나는 지금 몇 년째 성숙하지 못해요. 내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악한 생각과, 남에 대한 판단과, 정죄하는 마음과, 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겉으로는 잘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겉으로는 천사처럼 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행위로는, 기술적으로는 남들이 보는 내 외형적인 모습은 너무나 그럴듯 할 수 있어요. 그게 더 두려운 거예요.
'복수 하시는 하나님' 이란 말은 뭐냐면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우리를 하나님이 참지 않으신다는 말이에요. 반드시 우리의 어두움 가운데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금 분명히 살아 계신다 라는 것을.. 지금 시94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외칠 때에는, 내 자신을 돌아 봐야 되는 거예요. 내 자신을 돌아보고, '과연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 가를 반드시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수'라는 말 속에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복수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한번 보기를 원하는 데요.
신명기 32:41절 에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가 이렇게 나와 있어요. 모세가 자기 인생의 마지막에 시를 지어 노래하는 내용인데요.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아멘!
여기서 '복수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나왔어요. 본문 시94:1절에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우리가 자세히 알려면, 그 어귀의 출처인 신32:41절을 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번쩍이는 칼을 가시는 분인데 왜 칼을 가십니까? 내 (하나님의) 손이 정의를 붙들기 때문이다.. 라고 신32:41절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정의 때문에 대적들에게 복수도 하시고 나God를 미워하시는 자에게 보응도 하신다는 것이죠.
복수, 보응이라고 할 때, 우리는 감정을 먼저 떠올려요. 감정! 원망, 분노, 이런 개념을 떠올리지만 하나님은 감정 때문에 복수하는 분이 아니라 뭐 때문에 합니까? 정의 때문에 복수하십니다.
정의 때문에 복수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빛을 비추시고, 어둠가운데 빛을, 죄 가운데 하나님의 복수와 보응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이 개념은 정확하게 대적들에게 대한 것이 아니에요. 바로 우리 신자들에 관한 것이에요.
▲그럼 하나님은 그 정의를 어떻게 세워 가시는가요?
신명기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너외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자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이미 우리 앞에 다 베풀어 두셨어요. 우리가 마땅히 갈 길을 다 지금 정해 놓으셨어요. 그리고는 선택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의를 갚으신다는 것은 무슨 개념이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는데,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저주냐?
그걸 우리 앞에 두시고 그리고는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택하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명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사망을 택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저주를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정의, 그리고 그 정의에 앞서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이미 선택권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 다음절 신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자 이것이 하나님의 허락해 주신, 우리 앞에 이미 준비해두신 길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무슨 길이에요? 생명의 길, 복된 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또 그를 의지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의 길이요, 장수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길을 안 따라갑니다. 이 길대로 가지 않습니다.
이 길대로 우리가 안 가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돼요? '할 수 없지뭐, 그래, 알아서 네 길을 가라' 이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분명히 생명과 사망을 우리 앞에 두셨고 복과 화를 우리 앞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상응하는 대가를 주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복수하시는 하나님, 보응하시는 하나님' 이란 뜻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냥 마냥 좋은 분, 마냥 마음씨 넓으셔서 언제나 나에게 잘 해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착각과 오해를 버려야 됩니다. 그것은 매우 미숙한 신앙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복의 근원 아닙니까, 사랑의 하나님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기만 하면 다 망칩니다. 다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택권을 주셨어요. 생명이냐/ 사명이냐 복이냐/ 저주냐 너희가 선택해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응하시는 원칙이 하니 있습니다.
롬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이게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원칙이에요. 복수하시는 원칙입니다.
자기 감정대로 하는 복수가 아니라, 정의를 세우는 복수를 하실 때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즉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 하신다!'
이것은 한 가문도 아니고요, 한 집안도 아니고요, '각 사람에게' 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우리가 바르게 알면, 여러분, 우리 신앙이 믿는다고 하면서 엉뚱한 길로 가는 신앙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행위를 어둠에 내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대로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이 빛의 자녀예요. 우리는 빛 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마음은 항상 내 맘대로 하잖아요.
그야말로 내 뜻대로 하고, 내 편한 대로 살아요. 그러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대요. 하나님은 그것이 가증스러운 거예요. '그렇지 않다. 너희가 나를 믿는다면, 너희의 삶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 하신다' 우리의 행함, 우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원칙을 보여주는 구절을 한 군데만 더 보겠습니다. 민수기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들린 대로' 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너희에게 행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이에요.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원칙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보응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원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그냥 언젠가는 따르고 싶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고, 또 귀에 들린 대로 보응하십니다. 즉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말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신다는 거예요.
민수기 14장 28절에서 말씀하신 '내 귀에 들린 대로' 라는 말의 배경이 뭐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가나안 땅에는 거인들이 있다.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 같다. 우린 절대 거기에 못 들어간다' 라는 그 말을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한 너희는 그 땅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믿음없이 말하는 자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도우심을 무시하는 자들은.. 내가 그대로 갚아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에게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정말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고백을 들으신다' 우리가 과연 믿음의 고백을 하는지/ 아니면 불신앙의 말을 하는지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믿음의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불신앙의 행동을 하는지.. 하나님은 다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한 대로, 우리의 말이 하나님께 들린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아주 중요한 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4:2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러분, 이 말씀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그러면 하나님이 마치 우리 외에 열방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저 멀리 있는 이방 나라들, 나의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 '세계' 속에는, 나도, 우리도 다 같이 들어갑니다. 이것을 깨닫는 게 성숙한 신앙이에요.
우리가 시편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나는 의인이고, 남들은 악한 놈들이고 하나님은 '저 악인들에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고... 아닙니다! 성경에는 절대적으로 '내가 하나님 편'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시죠!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분이시지, '나와 나 외에 다른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가를 계속해서 돌아보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라는 말은, 거기 심판의 대상에 나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나도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다는 거죠.
'주여 일어나서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2b
그러면 이 말은 매우 조심스러운 말씀이죠. 매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정말 나는 교만하지는 않는가, 나는 내가 하나님 편에서 서 있다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내가 착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나의 삶은 내가 믿는 대로 사는 삶인가?'
내가 머리로 아는 만큼 나는 행동하며 살고 있는가요? 과연 내 입에 말은 어떤 말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남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에요. 내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과연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내 말은 어떤가, 내 삶은 어떤가?'를 돌아보게 하시는 거죠.
◑94: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여호와여!' 라고 한 번 더 부릅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이 말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여기서 악인은 남이 아니에요. 내가 악인일 수 있다는 말씀이죠.
내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내가 겉으로는 새벽기도도 나오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 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가 과연 스스로 내 마음 속으로 (3저의 악인처럼) 개가를 부르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내 유익과 내 욕심을 채우면서 그러면서 그 욕심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신앙을 지금 걸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내 자신을 돌아 봐야 한다는 거예요.
과연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 때문인가? 아니면 나 때문인가?
여러분, 이 기준이, 이 동기가 분명 하지 않으면 우리의 열심은 오히려 우리를 망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래서 만약에 지금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우리의 목적이, 우리의 계획이 더 크다면 우리가 부르는 개가는 멈추게 될 것입니다.
◑94: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저도 오늘 본문 말씀을 쭈욱 읽으면서 '그동안에 내가 봐 왔던 시각과는 좀 다르게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은 여기 나오는 '그들이'란, 마치 나 외에 누군가인 것처럼, 그렇게 성경을 읽었어요. 즉 나의 원수들! '그렇지, 그 나쁜 놈들!' 내가 탐탁치 않게 여기는 그 누구들!
'그래 그렇게 지껄이다가.. 오만하게 떠들다가.. 그렇게 자만하게 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이 정말 치실 거야, 하나님이 그들을 정말 해결하실 거야!' 하고 늘 성경을 봤었어요.
근데 오늘 말씀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아요. 이게 저 같은 거예요. 마구 지껄이는 모습이 제 모습과 같고, 오만하게 떠드는 모습이 이게 제 모습이고, 죄악을 행하는 자만하는 모습이 바로 제 모습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정말 오해하고, 착각하고, 내 맘대로 읽고 있었구나.. 라는 모습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본문 말씀을, 차분하게 다시 한번 우리 마음에 새겨보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확실하게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되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의 유리/불리를 떠나서 제 이익/ 손해를 떠나서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로, 하나님, 저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소서.
주님 제게 빛을 비추사, 나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을 제가 앞으로도 영원히 붙잡고 살게 해 주옵소서.'
갚으시는 하나님!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그 하나님! 정의대로 행하시는 그 하나님! 우리 앞의 복과 저주와, 생명과 사망을 두시는 그 하나님!
그리고 선택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저희가 매일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고,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내 생명으로 삼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