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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다스리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 시97:1~12 2018.10.09. 출처, 정리
오늘날 사람들이 주말이나 휴일마다 가족들과 함께
여기저기 찾아 다니는 이유는, 그것이 인생의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레저의 삶을 추구하는 현대의 트렌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쁨은
때로는 즉흥적이고, 때로는 일시적인 기쁨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잠깐의 기쁨이 금방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육신의 욕심은,
더 강한 자극 앞에서 금방 무너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참된 기쁨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짧은 본문에 <기쁨>이란 말이 네 번 나옵니다. :1, 8, 11, 12
기쁨이 본문의 키워드 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기쁨'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7:편은, 우리에게 기쁨이 무엇이고
그리고 기쁨의 근원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 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편 97:편은 뭐라고 얘기 합니까?
그분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나의 기쁨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이,
마지막 12절에 '의인이다' 라고 표현되어 있는 겁니다.
◑1. 여호와의 다스림이 내 기쁨의 근거 :1~9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1
여기에서 '땅'은, 당시 의미로는 이스라엘을 뜻하며,
오늘날의 의미로는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허다한 섬'은, 지중해 연안의 많은 섬들을 의미하는데
당시 의미로는 '온 세상'을 의미했고,
오늘날의 의미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절을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니, 우리의 삶의 터전은 기쁘고, 그리고 온 열방도 즐거워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통치를 받아들일 때)
그래서 온 세계가 기뻐해야 될 이유가, 1절에 딱 나와요. -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 온 세상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기쁨의 근원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이 팔리는 책 중에 하나가 <소확행> 이라는 책입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소확행이라고 하는데요,
인생의 기쁨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현실의 삶은, 힘들고 어렵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행복, 나의 기쁨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기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기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뉴스를 틀면 막 하하하 웃을 정도로 기쁜 일들이 매일 쏟아져 나옵니까?
진심으로 뿌듯해 할 수 있는 기쁜 소식들이 들려 오는지요?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기쁨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바로 1절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노른자 없는 계란'을 자꾸 만들려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인생의 기쁨에 어떤 핵심 요소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없는 기쁨, 하나님없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려고는 하지만
그러나 노른자 없는 계란처럼, 기쁨과 행복이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이 감정의 극대, 쾌감의 절정을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본질 없는 기쁨, 싸구려 기쁨.. 즉 세상 쾌락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쁨의 주체(하나님)가 상실된 거예요.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진정 기쁠 수가 없습니다.
왜냐고 물으시면 제가 할 말이 없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라고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기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럼 우린 여기서 한 가지 답을 얻습니다.
기쁨을 추구하지만, 기쁨이 없는 시대,
그리고 정말 사람들의 삶에 기쁨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1절을 거부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거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왕이 되고자 하는 그런 시대,
내 삶을 내가 다스리고 경영하려 하기 때문에
내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 해 줍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한테 '스스로 왕이 되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우리는 또 그렇게 하라고 교육 받았습니다.
▲오늘 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교회도 왕이 되려고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세상 권력의 정점에 같이 서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그동안 역사를 쭈욱 보면
각 정권마다 그리스인들이 요직에 없었던 시기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안에 있었는지 몰라요.
오죽하면 우리가 처음 나라를 세울 때, 같이 기도하고 나라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오늘 날 복음은 전해지지 않고, 이토록 욕을 먹고 있습니까?
그 답을 바울이 우리에게 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4장 8절입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전4:8
(새번역)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역사 속에 정말 복음을 들었음에도, 십자가를 전하기 보다는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교회가, 고린도 교회 말고도 시대마다 계속 있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대로 살아 내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바울이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풍성하고.. 스스로 마치 왕이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바울이 그렇게 말씀했어요.
이것이 무엇을 말해 주냐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왕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생각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게 뭐냐면 '배부르며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삶,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
내 탐욕 대로 살아가는 것이 왕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삶의 생각'들을
바울이 그대로 지적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들은 배 불렀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들이 진짜 왕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왕과 함께 나도 당신들과 함께 왕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울의 고백 입니다.
하나님 없이 내 욕망을 채우고자 하니, 그러니 당연히 기쁨은 없고
채우면 채우려고 할수록 우리 가운데 고통만 더해집니다.
채울수록 만족감과 기쁨이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고통만 커집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중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공허를 채우려는 겁니다.
그런데 채워지지는 않고, 거기에 그냥 중독되어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2절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구름과 흑암이 하나님을 왜 둘렀을까요?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세요. 왜 그러느냐면
하나님이 너무 크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직접 바라보면 죽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광야생활 할 때, 회막에 모세가 들어갑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들어가시는데, 구름이 그 회막 위에 임재하면
‘아,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셨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두 자기 장막 앞에 서서, 그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이 구름이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나타났습니다. 떠나지 않았습니다.
‘구름기둥’의 하나님의 임재가 매일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건조한 땅이기 때문에, 하늘에 구름도 거의 없습니다.
그때 구름이 나타나면, 땅에 구름의 그늘이 시커멓게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그 그늘이 시원하게 되죠. 광야가 얼마나 땡볕인데 말입니다.
작렬하는 태양을 그 그늘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righteousness and judgment :2
여러분, 다스리는 통치자 또는 하나님께 제일 중요한 것은
의와 공평입니다. 또는 공의와 정의!
이것이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제일 훌륭한 선생님은 누구셨나요?
잘 가르치는 분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를 사랑해주는 분,
나를 알아주는 분이 제일 중요한 선생님이었어요.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서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해주시는 분이,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세요!
공부 못 한다고 무시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막 대하지 않고
의와 공평으로 학생들을 대해주시는 선생님이,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데, 무엇으로 다스리십니까?
하나님은 의와 공평으로 righteousness and judgment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다른 말로 공의와 정의입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 백성들이, 그분께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불만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게 사실 우리에게는 별로 기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 - 이게 기쁘지 않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쁠 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내 마음에 부담스럽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만 기쁘다면.. 아직 유치원생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 나를 사랑만 해주세요!’ .. 사실은 미숙한 기도입니다.
좀 더 성숙해지면 ‘공의로운 하나님, 의와 공평으로 저를 판단해 주소서’.. 이게 성숙한
기도입니다.
자기가 잘못하면 빨리 혼내 주시고, 징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야 더 큰 잘못과 더 큰 징계를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미성숙한 신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항상 자기를 감싸주시고 사랑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사실 그러한 하나님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납니다.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의와 공평’이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설교하면서 항상 갈등을 느낍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전할 것인가, 공의의 하나님을 전할 것인가?
왜냐면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면, 회중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할렐루야! 합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을 설교하면, 회중들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자기가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서면
두렵다는 것을, 부끄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 기대하는데, 그런데 그건 성숙한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 받는 게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 걷게 되는 성화의 과정에서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만나서
성화와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메시지도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도 전해야 됩니다.
성경은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전능자의 구름 그늘 아래에 거하며 (시91:1)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삶이.. 정녕 기쁘고 찬양이 나오는 삶인 것입니다.
▲3절,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
2절에는 ‘구름’이 나왔는데, 3절에는 ‘불’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주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자연의 현상을 통해서 자신의 임재를 보여주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보여주셨습니다.
▲4절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4절의 번개는, 3절의 ‘구름’안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보면 아주 무서운 장면입니다.
구름사이에서 막 번개가 번쩍번쩍 치면서.. 그 모습이 매일같이 계속 된다?
주변 나라들은 ‘와~ 엄청나게 두렵다’ 하면서, 절대로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밤에는 불기둥이 서 있으니.. 이방이 그걸 쳐다보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성도와 교회에 임할 때,
그것을 보는 이방인들은 몹시 두려워하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이렇게 불과 번개로 보호하심을 받는.. 보호받음의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5절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도다'
‘산’은 그 당시에 전혀 변함이 없는 물체로서, 거의 신처럼 숭상을 받았습니다.
산은 거의 움직임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산도 여호와 앞에서 밀랍(양초)처럼 녹았다는 것입니다.
지진이나 산사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구절도 하나님의 통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산’은 각 이방 나라의 신을 의미합니다.
고대 나라들은, 각 나라가 다 자기들의 산을 신으로 여기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땅의 주’로서, ‘산’들도 그 앞에 복종시키시는 분입니다. :5
즉 모든 나라, 강대국들이 여호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의와 공평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백성들이 기쁘게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6절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5절에 산이 나왔는데, 6절에는 하늘이 나옵니다.
산과 더불어 모든 나라가 숭배하는 ‘하늘’도.. 하나님의 뜻, 그 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민족들이 숭배하는 모든 자연도.. 그 자체가 신이 아니고,
오히려 그 자연이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고, 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대자연 가운데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7절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7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자연을 우상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무나 돌같은 ‘조각한 우상’으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시97편의 키워드는 ‘기쁨’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반면,
세상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고, 우상으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8절,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여기서 '심판'은 1절의 '다스림'과 같은 의미입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심판, 통치를.. 받고 기뻐하며 즐거워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내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 비밀을 깨달았던 욥은,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욥1:21
▲9절,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함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2. 여호와를 기뻐하는 성도가 받는 복 :10~12
▲10절,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도, 자기도 하나님처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입니다. 성화의 복, 거룩의 복, 진정한 만족의 복입니다.
▲11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분과 함께 동행하는 그 삶 가운데.. 그 분의 다스림을 받는 가운데
진정한 기쁨이 있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 신령한 기쁨이 있음을..
본문은 우리한테 말씀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분을 아는 기쁨!' 그래서 호세아는 우리한테 계속해서 외치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6:3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지 않고는
우리 가운데 기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자!' 라고 외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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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7편도 표제어가 없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이나, 벌게이트 역에 보면, 97편에도 제목이 있습니다.
"포로 이후 그 땅이 회복될 때, 다윗이 그 땅을 회복할 때"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있을까요?
시편 4권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4권 : 시90~106편
그 포로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읽을 때,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하냐면
역대기서를 기록했던 시대의 관점을 가지고 이 성경을 봐야 됩니다.
역대기를 기록할 때, 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왔습니까?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몰라 봤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들의 삶에서 제거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는 그 핵심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역대기 입니다.
그러면 그 관점을 가지고 시97편을 보면, 동일하게 그 마음, 성격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비록 귀환 후 지금 현실을 어렵지만,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이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킬 것이고
이게 시편 4권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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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글시97편 여호와의 다스리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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