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0편은 굉장히 유명한 시편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시편 1편, 23편, 119편이 유명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이지만
그런데 근데 시편 110편은 언제 유명했던 시편인가 하면, 신약시대 때 가장 유명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 및 사도들이 가장 자주 인용하신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본문 시110편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에요.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다윗이 분명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0편은 7절 밖에 되지 않아요. 짧은데 신약성경에서는 약 17~18차례 정도나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 가운데 하나가 시편 110편 입니다. 왜 그런가 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런데 여러분 본문이 다윗의 시입니다. 표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 주>는 다윗이 누구를 지칭한 말입니까? 1절 문맥에 의하면, '여호와'도 일단 아니고, '다윗'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주'라고 부를만한 대상이 누구였을까요? 다윗이 누구를 지칭해서 '내 주'라고 불렀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당시에는 '메시야'에 대해서 아주 흐릿한 개념만 갖고 있던 때라서 '주'는 바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메시아'가 누구냐? 라는 거예요.
본문 시110:1절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풀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이 구절이 인용되었는데, 우리는 마22:41절을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사이에 논쟁이 붙어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저 뜨내기 랍비 정도로만 알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 잘 몰랐어요.
마22: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는 누구냐면 단순하게 '다윗의 자손'입니다.
'다윗의 자손' 이란 말은, 다윗의 혈통 가운데 한 명일 뿐이지 그 다윗의 자손은 '다윗의 주' 일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은 아직 모릅니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바로 44절이 본문 시110:1절 말씀이죠.)
45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이 말이 중요한데,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뭐라고 주장했냐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뿐이다. 단순히 그 혈통 이라는 것 외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주이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혈통에서 났기 때문에, 즉 다윗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다윗이 '내 주여'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따지면, 다윗이 그리스도의 선조입니다. 다윗이 더 위대해 보여요.
근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출생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윗이 성령의 감동가운데,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내 주여'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다윗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존귀한 분이었다는 거죠.
당시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 가장 다윗을 사랑했거든요. 다윗만큼 존경할만한 위인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되면 자기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거예요. 자기들 중에도 혈통상 다윗의 후손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너(그리스도)나 나나 별 차이 없네!' 이런 식으로 바리새인들이 생각한 거예요.
근데 예수님은,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시다!' 라고 완전히 상황을 역전시키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시편을 봐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 *시100:1 이것은 단순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 바로 하나님이시다.. 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바로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자기의 하나님 되심, 그리스도 되심을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그 증명한 본문이 바로 시편 110편 1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항상 마태복음 1:1절을 언급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자손, 바로 족장의 대를 잇는, 또 다윗의 자손, 즉 왕족의 대를 잇는.. 굉장히 중요하게 우리는 강조해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더 그렇고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즉 다윗이 '주'로 고백했던 예수님, 출생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시간을 초월해서 주님으로 고백했던 그 예수님이 지금 너희 앞에 있는 나다.. 라고 가르치신 거예요.
▲요한복음을 보겠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그래서 예수님은 어쩌다가 팔레스틴에서 태어나서 어쩌다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분이 아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신데, 태초부터 계셨다'는 거예요.
2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같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런데 그 빛이 어떤 빛인가요?
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 말씀은 곧 빛인데 그 말씀이 누구냐? 바로 14절에 정확하게 나와 있지요.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태초부터 있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는 영광이 있는데, 그 영광이 뭐냐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이 말은, 구체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혈통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유일한 하나님의 그리스도, 구세주! 우리를 구원할 그분의 영광인데, 그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다!
일반적인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독생자만의.. 그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거예요.
정리하면, 그래서 이렇게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단순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이 주로 고백했던 바로 그분! 그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는 구약성경이 제가 바로 오늘 본문 시편 110:1절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하셨도다 :1
자 그렇다면, '원수들이 발판이 되는 날'이 언제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날입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적의 왕을 자기 발밑에 깔아 뭉갰습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승리를 알렸습니다.
바로 그처럼, '내가 네 원수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을 옭아매고, 구원받지 못 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마귀 권세입니다.
즉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아진 모든 권세를 다 밟아뭉개서 그 패배를 선언하시는 그날까지 어떻게 한다고요? '너(그리스도)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오른쪽이란, 능력, 하나님과 (아들로서) 동등한 자격이예요.
자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요? '온전한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분' 으로 말씀하고 있어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근데 이렇게 확연히 분명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시편 110편, 그것도 다윗의 시 가운데 있다.. 라는 것은 뭘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확실한 하나님의 구세주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110편이 가장 많이 신약성경에서 인용된 시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그럼 오늘 우리에게, 시110편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냥 신약시대에 몇몇 제자들이, '아이고 우리 스승님이 대단한 분 같아! 우리 스승님을 한번 세상에 전해 보자!' 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추대한 그런 일개 종교지도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그 옛날,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옛날부터 그 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영광이요, 다윗이 그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시110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뭔가요? 다시 한번 그리스도께로 Lord of lords 우리의 믿음을 돌아가게 하는, 우리의 마음의 예수님을 모시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설교할 때 시110편을 인용했었어요.
행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베드로도 설교할 때 이 본문을 들어서 다윗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렇게 해석합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유대인들이 무지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던 예수님, 그들이 질투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예수님이 누구냐면 바로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바로 그 분이시다'
다윗도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내 주'라고 고백했던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을 이제 너희 마음에 영접해야 한다.. 라고 말했던 거죠.
그랬더니 어떤 반응이 나타나나요?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바로 이 시편 110편에서 말씀하신 그 분이 이 예수님이야! 라는 것을 말해 주는 순간 그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거예요.
'아 그렇구나!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암송하고 외우고 따랐던 시편 110편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었는데 우리가 왜 몰랐을까?' 그때부터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했어요?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는 뜻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분이 너희 구원자라고 인정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그리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 성령의 선물이 뭐냐면...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자 이 약속,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얻는 약속,
예수님을 믿으면, 회개하고 죄 사함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 이 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졌다고요?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즉 이방인들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확증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 세상의 논리와 과학적인 증거들로 예수님을 확인하려고 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당시 뭘로 확인 했는가요?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약의 말씀으로써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확증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말씀이 뭐냐면, 바로 오늘 본문, 다윗이 고백했던 시편 110:1절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자기 마음에 찔림을 얻고 '아 그렇구나 우리가 몰랐구나, 우리가 잘못 알았구나!'
'예수님은 다윗도 주로 고백한 분인데 우리가 그 분을 잘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구나..' 하는 찔림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찔림을 받은 자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영접하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렇다면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즉 이방인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 시110편을 우리가 차분하게 읽어보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하기까지' 이것은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초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르치시고 고쳤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을 몰라 봤죠.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서 죄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제는 온전한 승리를 보여주셨죠.
그러나 그 승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죠.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다시 재림하셔야 되죠.
그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온전히 승리하시는 그날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즉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까 이 시편 110:1절은, 그 한 절 안에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이 거두실 최후 승리까지가 다 들어 있어요.
어쩌면 이렇게 이 한 절의 말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요?
여러분 다윗이 천재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다윗이 참 부럽습니다. 근데 우리가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우리도 깨달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적용
우리도 평소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라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주인 것과, 오늘 내가 먹고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신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큰 명제이고요,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요, 우리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정립할 수 있는 우리 삶에 가장 큰 원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주시는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 너의 삶을 최후 승리로 인도해 가시는 너희 삶의 주인이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 인생의 방향을, 우리 인생의 근간을 다시 한번 재확인 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요즘 사업이 잘 되고/ 안 되고 우리 자녀가 말을 잘 듣고/ 안 듣고 ..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믿는 분이 누구신가? 나를 인도해 가시는 분이 누구신가? 내 삶이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보호하고, 인도하고, 동행해 주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 분은 바로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 이 세상에 최후승리를 가져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자, 나를 구원하실 독생자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오늘 조금 더 잘 되게 도와주는 분이 아니라,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실 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독생자 영광을 가지신 바로 그 분! 태초부터 계셨던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나의 주님이시고, 오늘 나를 구원하시고, 오늘 나와 동행하신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하나님이 아닌데 우리에게 높아진 것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발 아래 깔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승리를 거두실 것입니다.
그 날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도우시고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이 주님을 견고히 믿자는 것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그 당시에 왕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그 왕권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그 권위의 문제였어요.
'그 왕을 누가 인정 했는가? 누가 임명 했는가? 애굽 왕이 인정한 왕인가? 우와 대단하다! 바벨론 왕이 인정해서 왕이 되었다. 와우 대단하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서부터, 그 왕의 권위가 어디서부터 나왔습니까? '시온에서부터 나왔다'는 겁니다. :2
시온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이에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에요.
즉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예수님은 어쩌다 보니까 주님이 되신 분이 아니에요.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2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들, 힘든 원수 마귀들, 이 마귀들을 능히 다스리는 분이 누구냐? 시온에서부터 권위를 인정받은 왕,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질병과 아픔과 고통과 고독과 단절과
나아가서 인생 최대의 문제라는 '죽음'까지도 온전히 다스리는 분이 누구신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으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질병을 극복하는 힘이 생깁니다. 문제를 이기는 힘이 생깁니다.
인간관계의 단절, 여러분 이거 어떻게 해결 하시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와 그 사람과 공동체를 함께 인도해 가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으면 그 가운데, 주님의 다스림 가운데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히 보여 주는 거죠.
그래서 그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통치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3절입니다.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권능의 날'은 언제입니까? 작게 보면, 최후 승리의 날, 재림의 날입니다. 작게 보면, 그것은 세상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데 크게 보면, 주의 권능의 날은, 모든 날입니다. 주님의 권능이 살아서 역사하는 모든 날입니다.
그 권능을 우리가 느끼고 알고 믿고 경험하며 사는 모든 날이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권능을 믿지 않거나,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거나, 느끼는 못하면 최후승리의 날에만, 우리가 주의 권능을 보게 될 것이에요.
그러나 주의 권능을 오늘도 내가 붙잡으면 오늘이 바로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주님 내가 오늘 주의 권능으로 질병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권능으로 문제를 뛰어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권능으로 오늘도 불신을 이기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는 바로 오늘이, 주의 권능의 날이에요.
이 주의 권능을 붙잡는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3 오늘 우리가 주님의 권능을 붙잡는다면 우리가 거룩한 옷을 입게 됩니다.
거룩한 옷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 확실한 믿음은, 주님과 동행하게 되고, 동행하면 기뻐지고, 헌신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계속적인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3
'새벽이슬 같다' 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별 거 아닙니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새벽이슬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내리니까 이슬을 귀하게 여기지 않죠.
근데 이스라엘은 비가 안 와요. 건기(4~9월)에는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립니다. 그러니까 건기에 식물이 살려면, 새벽이슬이 필요해요. 새벽이슬이 생물을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이에요.
그래서 이 새벽이슬은 편만하게 모든 곳을 다 덮습니다. 어느 한 곳에만 내리는 게 아니라, 모든 곳을 덮는 것이 새벽이슬입니다.
이 새벽이슬이 건기에도, 모든 생물을 살게 하고 그 새벽에 술 먹고 작은 곤충들도 삽니다. 그러면 먹이사슬로 인해서 큰 동물까지 다 살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새벽이슬은, 팔레스틴 땅에서 너무나 귀한 생명의 근원입니다.
게다가 이 새벽이슬을 사람이 구할 수 있는게 아니죠. 사람이 땅을 판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래서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만하신 은혜가 새벽이슬입니다.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자들, 그 은혜를 머금은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기서 '청년' 이란 말이, 굳이 나이 때를 말하는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이를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나이들었다고 배제 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모든 이들이 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인 줄 믿습니다.
이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삶이 변화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하는 사람들! 오늘도 주님의 권능을 믿고, 오늘을 '주의 권능의 날'로 삼아 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는' 그 아름다운 환상과 비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권능의 날'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 즉 주의 권능으로 내가 힘 입어 오늘 나의 문제가 해결될 줄 믿고, 나의 모든 꼬여버린 것들, 나의 모든 부족하고 연약한 것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