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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0편 왕 위에 왕이 계십니다

LNCK 2021. 8. 19. 16:04

 

◈왕 위에 왕이 계십니다             시110:1~7          여러 설교 정리, 출처

(다윗 왕이, 또한 영적으로 왕인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뜻)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예언하는, ‘메시아 예언시’라고 불립니다.

 

이런 종류의 시가 시편에 모두 7편 (2, 16, 22, 24, 45, 72, 110편)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마지막입니다.

 

시편 22편이 고난 받으실 메시아에 대해 가장 잘 노래했다면,

오늘 본문(110편)은 영원한 제사장이 되시는 메시아에 대해서

가장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전체에서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이 110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왕직과 제사장직이 결합되어

장차 올 메시아는 왕일뿐만 아니라제사장이 됩니다.

 

<내용 분해>

이신 메시아(1~3절)

제사장과 승리자이신 메시아(4~7절)

 

 

1~3절은 왕이신 메시아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주1), 주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규’는 왕이 들고 다니는 ‘지휘봉’으로 통치권, 왕권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하심으로,

메시아는 왕으로 이 땅에 장차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8:18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고 하셨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메시아의 왕 되심을 노래한 것은,

자기 위에 영원한 왕이 계심을 잊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은 부족하고 연약하며, 자신의 다스림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지만,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는 부족함이 없으시고, 강하시며,

그분의 다스림은 완전하며 한계가 없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왕이 아니라

진짜 왕은 따로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왕처럼 살아갑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타는 차도 .. 모두가 왕입니다.

그러나 진정 다윗처럼 승리하는 사람은, 왕(자기) 위에 영원한 왕(예수님)이 계심을

늘 가슴에 깊이 새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도 늘 우리 위에 우리를 다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매일 의식하며 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과는

삶의 내용과 질, 목표점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윗처럼 ‘다스리는 자리’에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권능의 날’은 2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보내시고,

그것을 통해 원수 마귀들을 통치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 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주의 백성들, 주의 군대가 갑옷을 입고 일제히 나아올 때,

그 모습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것이

마치 '새벽 이슬'이 빛을 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벽 이슬 같다'는 것을 상징적, 영적으로 해석하면,

한 낮에는 풀들이 다 말라 있는 것 같아도,

새벽이 되면 풀잎에 맺힌 이슬을 통해서 생명이 만들어 내듯이,

영적인 싱싱한 생명력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청년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새벽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은 풀잎이 없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3절을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임금님(메시아)께서 전쟁터로 나가시는 날에,

임금님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고, 아침 동이 틀 때에 새벽 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임금님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즉 새벽이슬은, 메시아가 이끄시는 영적전쟁에 참여한 모든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에는 반드시 소명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창조의 목적을 방해하기에

이 땅에서의 영적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충성스런 하늘나라 군대의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즉 사명을 발견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위 본문의 묘사를 보면, 사명을 깨달은 하나님의 용사된 자녀들이

구름떼 (편만한 새벽 이슬) 같이 나와 헌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남들이 보기에 하찮아 보일지라도,

또한 그 자리가 어디든지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임을 알고

자기를 다 드려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그가 여호와의 전쟁의 날에 보탬이 되는 사람입니다.

 

 

4~7절은 제사장과 승리자이신 메시아를 노래합니다.

 

▲4절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3)

 

멜기세덱은 살렘 으로서 또한 제사장 역할까지 겸직한 사람입니다. 창14:18

이를 통해 시인은, 그리스도가 왕이자 제사장이 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왕과 제사장직을 다 가지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사람은 두 개를 다 가질 수 없습니다. 두 직분을 다 가지려고 욕심내면 탈이 날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나) 한 직분만 감당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저계발국에 가면,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이 종교 권력까지 가진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정치, 경제, 사회에서 기관장이 되어서 출세한 자들이

주일날에는 교회에서 목사로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혹시 '목사'도, 신학교 1~2년 다니고 쉽게 딸 수 있는 스펙의 일종으로 판단한 것 같아요.

 

본문 2절에는 메시아가 '왕'의 규를 받으셨고,

4절에서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메시아라서 겸직하신 것입니다.

 

구약이긴 하지만, 웃시야 왕은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분향을 성전에서 시도했다가

이마에 나병이 나서, 그 이후로 왕직도 수행할 수 없이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대하26:19

성경은 그가 '강성하여 지매 교만해져서 악을 행했다'고 평가내리고 있습니다. 대하26:16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세상 권력을 쥐게 된 사람들은

종교권력까지 쉽게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유혹이 들기 쉽겠지만,

그러한 시도는, 자기가 그리스도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임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세상 직분 다 내려놓고, 명퇴하고.. 되는 것은 괜찮습니다.)

 

▲5~7절,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신다’는 의미는   :7

‘모든 싸움을 끝내고 승리한 후에, 타는 목을 축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따라 가면 승리한다" 입니다.

진정한 왕을 따라가는 백성은..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귀나 세상이나 자기 육신이나 우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패배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귀 - 세상 - 자기 육신 - 우상을 따라가는 것은

'미혹'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 길로 가야 승리할 것 같은, 부자 될 것 같은.. 미혹입니다.

 

다윗 왕 때도.. 다윗과 솔로몬을 따랐던 사람들은, 결국 다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역전의 용사요, 과거에 개국공신이었던 자들도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를 따라갔다가.. 결국은 다 망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 입니다.

 

오늘도 내게 눈짓하고, 손 내밀고, 나를 초청하고 자기를 따르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그 초청이 예수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 - 마귀 - 내 육신 - 우상입니까?

 

5절에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말씀했는데,

그렇게 세상과 내 육신을 따라가다보면,

주님이 진노하시는 날이 되면

나는 주님으로부터 '쳐서 깨뜨려짐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다시 회복되는데 3~10년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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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시편을 기록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내 주’는 ‘다윗의 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럼 ‘내 주’는 누구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시편이 쓰여질 당시 사람들에게 ‘주’는 거의 수수께끼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주’는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제자가 스승을 부를 때 쓰는 호칭입니다.

혹은 신하가 임금을 부를 때도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쓴 다윗은 임금이었습니다. 
‘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아도나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해 놓고서도,

그 이름을 너무 거룩하게 여겨서 입으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주-아도나이’는 종이나 제자나 신하가 자신의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다윗이 ‘내 주’라고 말함은 ‘내 하나님’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였으니,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내 주’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1)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1

고대 전쟁에서 승전국의 왕은 패전국의 왕의 목을 발로 밟는 관습이 있었는데,거기서 나온 표현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온을 대신하여

가나안 남쪽에 위치했던 다섯 왕과 전쟁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전쟁에서 태양과 달이 중천에 머물러 있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패전한 다섯 왕의 목을 발로 밟았습니다. 수10:24

 

 

주3)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은 창14장과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이‘살렘(평강) 왕’이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생명의 끝도 없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분’이라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