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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7편 짧아서 더 엑기스인 시

LNCK 2021. 8. 27. 16:59


◈짧아서 더 엑기스인 시             시편117:1~2, 출19:4~6                    출처, 여러설교 정리


시편 117편은 외모로 판단하면 굉장히 외소합니다. 딱 2절이니까요.
그런데 가장 짧은 시편인데,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정말 심오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시편 127편의 가치를, '시편의 압축판이다' 라고 말합니다.
즉 시편의 모든 내용을,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핵심, 엑기스만 따로 남기면

시117편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1절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구약은 이스라엘을 향한 이야기로만 읽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계획.. 이 구약의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도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나라, 그 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만 읽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시117편에서는 확 넓어져요. 확장이 돼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본래 뜻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나라를 다 구원하고자 하시는데 
그것을 한꺼번에 역사해서 모든 나라를 다 구원하는 대신에, 
한 나라, 이스라엘 구원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나라를 향하신 그 마음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의 샘플, 모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섭리를 착각을 했어요. 
즉 '하나님이 다른 모든 나라를 다 버리시고 이스라엘만 구원하셨다' 라고 착각했어요.

근데 본문 시117편은 '너희 모든 나라들아, 너희 모든 백성들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111편부터 쭉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해 온 것이 
출애굽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것인데, 

그 출애굽의 구원 역사도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 나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경험하게 되는 '죄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원된, 그야말로 도구인 셈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나라들, 모든 백성을 향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 우리 한국 성도들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오늘 본문 시117편 말씀은, 모든 방심하고 있는 자들, 
'그래,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에 대한 얘기고, 
아브라함과 다윗 엘리야 얘기도 다 유대인에 관한 얘기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다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은 정말 우리 모두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한번 확인해 볼까요? 

▲출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이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셨는데요,

즉 출애굽 사건만 놓고 보면,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5절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즉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킴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 너희는 내 소유가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샘플, 하나님의 세계 구원사역을 위해 선택된 도구라는 뜻입니다.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된다'는
그런 샘플, 본보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제사장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제사장은 제사를 혼자 지내지 않아요. 
제사장은 '모든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제사장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입니다. 위 :6절 

즉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에 불과한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주인공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나라'가 되면, 거룩한 백성, 구별된 백성이 되어서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중간 매개체로,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장인 출20장에서 십계명을 주시는 거예요. 
언약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언약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씀이 있죠. 요4 :22

롬3 :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즉 유대인들은 아파트 분양할 때 잠시 쓰여지는 모델하우스 같은 역할인 거죠. 
그러면 모델 하우스가 영원히 서 있어요? 
아니요, 분양이 끝나면 다 사라집니다.

근데 모델 하우스가 만약에, '야~ 우리만 집이고, 
앞으로 저 허허벌판에는 아무 집도 생기지 않을 거야' 라고 여긴다면, 큰 착각인거죠.
얼마 지나면 저 허허벌판에는, 모델 하우스와 똑같은 집들이 수없이 많이 지어질 거에요.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처럼 구원을 받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모든 인류의 구원이 중요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세상구원 계획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후손 가운데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구원받는 드라마를, 하나님은 이끌어가고 계시죠.

그래서 시편 117편 1절은 로마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인용하기도 했어요. 
왜 인용했냐면, 예수님을 통하여 얻는 구원이 
이스라엘에게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다 필요한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바로 본문 시편 117편 1절 인용합니다. 

그래서 본문 시편 117편 1~2절은 매우 짧은 것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출애굽기의 구약에서부터 신약의 로마서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온 세계 구원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세상 모든 민족들을 대할 때에
특별히 아프간 난민 등과 같은 불쌍한 민족들을 대할 때에
너무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자세로만 대하지 말고, 
'저들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월드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2절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2절 서두에 접속사 '키' (왜냐면) 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유가 뭐냐면 
'왜냐하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인자하심은 '헤세드'..  언약적인 사랑,
그 언약을 우리는 제대로 지킬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인자를 부어 주시면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이 헤세드 입니다. 신약적으로 '아가페'이죠.

또 하나는 '진실하심'.. 에메트 입니다.
에메트의 어근은 아만 (견고하다)입니다.     *아멘이란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진실하심'이란, 
너무나 견고해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인간이 어떤 걸로도 흔들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 어느 누구의 실수나 실패나 잘못으로 변개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다. 
그 하나님의 진실하심(견고하심)으로 끝까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뜻이죠.

▲한 가지 더 주목해 볼 것은 
왜 그럼 시편은 계속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계속 말씀하는 걸까요?
이게 한두 번 본 게 아니고 시편에 계속 나와요.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의 원조는 바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어디 나오냐면 출애굽기 34:장에 나오는데 
출34장의 분위기가 뭐냐면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잖아요. 

근데 모세가 그걸 들고 내려오는데 보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놨어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론과 그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막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모세가 화가 나서 그 돌판을 던져도 깨버립니다.
'이런 백성을 위해 십계명이 뭐가 필요해? 하나님의 사랑이 뭐가 필요해?' 

하며 다 깨버립니다. 

그때 하나님이 명령하시죠. 십계명 돌판을 다시 만들어 주시고..
즉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 
인간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말씀해 주시면서 

출34:5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직접 모세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선포하셨어요.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즉 인자와 진실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 보여주신 자기 계시입니다.
나는 헤세드(인자)의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고, 에메트(진실)로 끝까지 붙잡아 줄 거야.
'너희에 대한 내 사랑은 흔들리지 않을 거야!' 라고 하나님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시편 기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인자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가장 큰 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붙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고, 
그 약속을 확실하게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는 것.. 굉장히 중요하죠. 

오늘도 여러분 실패 하셨습니까? 오늘도 여러분은 흔들리십니까, 좌절하십니까? 
다시 이 말씀을 붙드십시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오늘도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우리가 암송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때때로 내 결정이 흔들리고, 내 선택이 불안하고 
내 존재가 영 시원치 않을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바로 그 하나님,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라고 
오늘도 다시 한번 그분을 붙잡으시고, 믿으시고, 

주님 안에 우리 모든 삶이 새로워지는.. 하나님 안에 참 평강이 있고, 참 자유가 있고, 

참 기쁨이 있기 바랍니다.


◑짧아서 더 엑기스가 농축된 시

 

저는 청년 때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시를 읽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시를 왜 좋아하는가 하면, 
길지 않은 아주 짧은 문장 속에
깊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문장, 짧은 표현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면
마치 큰 보물을 얻는 것처럼 제 마음이 행복해 집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면, 단어 (시어 라고 그러죠) 시어 하나 하나,
거기에 담겨져 있는 깊은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습니다.

시를 좋아하다 보니, '나도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머리구조와 글 쓰는 구조는, 시 작문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저는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구조로 글을 쓰는데..
그런 제가 시를 짓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렇제만 제가 세 편 정도의 시를 썼습니다.
(어떤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 중에 한 편의 제목이 '세례 요한'입니다. 아주 짧은 시인데 이렇습니다. 
'그에게서는 소리가 났다' (이것으로 시가 끝입니다)

이 문장 하나가 제 삶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한 줄의 시를 짓고 나서 참 기뻤습니다. 

근데 너무 짧은 것 같아서, 뒤에 덧붙여 좀 더 길게 쓰려고 몇 년을 시도해 보았는데
더 이상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스로 자작시를 논하는 것은 참 겸연쩍지만
'세례 요한, 그에게서는 소리가 났다'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나로서는 이 한줄 표현으로서 충분하구나!

그리고 저는 이 시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게 제 소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게서도 소리가 나면 좋겠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말씀은 스피커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그런데 우리같은 목사, 선지자들은 스피커 입니다. 
설교자들도 스피커 speaker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제가 알게 되었어요. '나는 스피커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울려내는 울림통(스피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좋은 스피커를 찾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음악애호가나 연주가들은, 좋은 스피커 구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고
아주 고액의 돈을 선뜻 지불합니다. 좋은 스피커에서 만족스런 소리가 나니까요.

예수님께 세례요한은 너무 좋은 스피커였습니다. 
세례요한이라는 스피커는, 예수님의 소리를 완벽하게 담아 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울려퍼지는 당신의 말씀이, 주님은 그렇게 만족스러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아~ 소름이 쫙 끼치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저런 표현을 쓰셨을까요!
세례요한은, 정말 고성능의 스피커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청명하고 맑은 소리로 광야에 크게 울려퍼뜨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소리는 입에서 나는 게 아닙니다. 머리에서 나는 게 아닙니다. 
그의 몸에서, 그의 삶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저도 세례요한과 같은 칭찬을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OOO에게서도 소리가 났다, 좋은 소리가 났어!'

예수님만 소리를 마음으로 들으시는 줄 아십니까?
사실은 교인들도 다 그런 소리를 듣기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입으로만, 말로만 설교하지 않고
삶에서 좋은 소리가 나기를.. 기대하는데
아~ 그런 세례 요한같은 사람이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편이 단 두절 밖에 안 되니까, 제가 조금 황당했습니다. 
'단 두 구절, 이거 갖고 오늘 어떻게 설교하지?'

그런데 제가 '세례 요한'이란 시를 쓰고나서
완전한 문장에는 덧말이 필요없구나.. 라고 생각했듯이

본문 시117편이 단 두 구절이지만, 이 시편의 기자에게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필요가 없었나 봅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찬양이 중요하며,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너무 영원히 좋으므로
더 이상 길게 말할 게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표현할 게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시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각자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끝까지 나를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고통 중에, 암 같은 중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오락가락 하며 흐릿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시므로 (변치 않으시므로)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내 생명을 포기치 않으시고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