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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8편 구원의 권능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

LNCK 2021. 8. 28. 10:39

 

 

 

◈구원의 권능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               시118:1~29       여러 설교 정리

 

오늘 본문 시편 118편은 113~118편까지 이어지는

‘제1할랄 시편’ 중에 마지막 6번째에 해당합니다.  (제2할랄 시편은 146~150편)

 

지금 수천 수만의 이스라엘이 성전 마당의 번제단을 둘러싸고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옆에는 수백 명의 성가대가 찬양을 드리고 있어요. 그 광경을 생각해 보세요.
수 백 명의 성가대가 같은 복장을 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그 모습!
그 그림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 시가 뜻하는 감흥을 느낄 수 없습니다.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절에 감사로 시작, 끝절 29절에 감사로 마칩니다. 수미쌍관법이죠. 
이 시의 전체 주제가 "감사"라는 뜻입니다

무엇에 대한 감사일까요? 17절에 보면, 죽음에서 건져주신 데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구원의 은혜에 감사'입니다.

 

18절에 '경책'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입니다. 
시인이 (또는 이스라엘이) 잘못 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고
거기에 대한 감사를 시인은, 시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고백을 
1~4절까지 4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그걸 들어서 아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귀로 들어서 알 수도 있지요. 성경을 읽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네 번이나 연속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도다' 그렇게 그가 외치는 것은 
그가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자하심'은 헤세드의 사랑이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이 시편의 주제요, 제목이라 말해도 되겠습니다.

3절,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그는 아무런 조건과 자격도 없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첫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대를 이어서 제사장 직분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론의 집(가문)’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를 집전하는 거룩한 직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성도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세상을 하나님 앞에 중보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 특권을 아무 조건없이 받은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기자는 아주 심각한 고난 속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고난이 있었는지 10~12절에 보면 '죽음의 고난'입니다.

그런데 18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심히 경책'하셨다는 표현으로 봐서
시인이 당하는 죽음의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시편 기자는 사실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이런 상황인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시편 기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대한 찬양은 정말 감격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시편 118편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이 29절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바로 이 6~7절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에는,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하는 확신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내 편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그런 믿음으로만 나가야 됩니다. 

'주님이 내 편이시니, 난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으니, 그런 믿음이 있으십니까? 
'나는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아! 왜냐면 하나님이 내편이시니까!'      

그런데 '주님은 내 편이라'고 이렇게 확신에 차서 고백하는 것이 
아주 위험한 신앙 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그런 믿음을 가진 신자는 
하나님 조차도 내 소유물 쯤으로 생각하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편 이시다, 하나님은 내편이시다'라고 그렇게 말은 하는데 
그 속에는 '자기 중심적 신앙'이 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울 때, 이스라엘 군대가 아주 정말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우리가 전쟁터로 가지고 나가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법궤가 성소에 있어야 되는데 
그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간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블레셋에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법궤는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내 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윗처럼 '자기가 여호와의 편일 때'만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 돌봄 가운데 자랐잖아요. 
부모는 언제나 항상 자식 편입니다. 언제나 부모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시죠. 

그런데 그때 한 번이라도 '내가 아버지 어머니 편에서 생각을 해 보았나?' 
그런 아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커서 자기가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그때 어머니의 심정은 이랬었구나'
우리는 참 너무 늦게서야 깨닫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나의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내 편이 되어주세요!'
라고 이기적으로 간구하는데요.. 그 중심은 '나'예요. 
이제 그게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내 편 이시다!'
 여러분이 그렇게 고백 하려면, 여러분이 전심으로 주님의 편이 되시면 금방 해결됩니다. 

여러분이 항상 주님의 편에 서길 힘쓰면
'주님은 내 편이시라'고 고백하면 고백할 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시편 기자가 '주님은 내 편이시라'고 고백한 것은
그는 철저히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위해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모든 일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10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2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0절에서 12절에 보면 세 번이나 주님의 이름으로 원수를 물리쳤다는 고백을 하고 계세요

13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여호와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는데, 3번이나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높이 들렸고,

권능을 베푸신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이 능력과 찬송,

구원이 되신다고 목소리를 높여 노래합니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그는 더 이상 죽을까 걱정 안 합니다. 
이 구절은 어떻든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소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죽고 안 죽고는 이제는 문제가 안 돼요. 
이 시편 기자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내가 증거하겠다' 딱 그것만 소원이에요. 

주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 하는 것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면 
나는 죽을 일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뜻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진짜 두려운 게 뭡니까? 죽을까 두렵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일을 증거하지 못 하는 사람일까봐 두렵습니까? 

다윗에게, 이 시편 기자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일을 증거하는 것 외에는 
그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철저히 주님 중심인 사람이었어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7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캐리 슉 목사님, 크리스 슉 사모님이 함께 목회하면서 
죽음을 앞둔 많은 교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중에 그가 깨달은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삶의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고 감동도 없고 너무 메마르고 
너무 짜증나고 너무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살 날이 한 달 밖에 없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며 도전했습니다. 

목사님 내외가 보니까 '내가 이제 곧 죽겠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얼마나 삶을 값지게 사는지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제 한 달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한 달 동안 뭐 하고 사시겠습니까? 

그 동안에 이런저런 일 때문에 계속 미루기만 했던 정말 중요한 일들을 
이제는 아마 해 나갈 겁니다. 한달밖에 살 날이 없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루가 감격스럽습니다. 
하루 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뭐 특별한 일이나 감동적인 일, 재미있는 일이 있고 없고 상관 없이 
하루 하루가 너무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전에 멀어진 사람에게는 용서를 빌고, 
용서받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니까 요!

더 이상 '나 나' 할 거 없어요. 
이제는 정말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고 
그리고 그와 더 깊은 인간관계를 갖고, 깊이 사랑하고 그러고 싶어집니다.

주변에 있는 자연 환경들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너무나 황홀해요.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소중해요. 

하나님 앞에 갈 때, 전에는 천국을 생각도 못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곧 가서 뵐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너무너무 기다려져요.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가장 성숙한 삶을 언제 살게 되는지 아십니까?
내가 죽을 때가 언제인지를 알게 됐을 때입니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19절은 성전에 예배하러 들어가는 것을 영광과 감격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 가운데 있었고, 모든 나라에 둘러싸인 것 같은 상황에 처했었고,

대적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위경에 처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고, 그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하나님의 전의 문을 열어라’고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것입니다.

 

‘의의 문들아 열릴지어다’

‘의의 문’이란, 궁극적으로 성전의 문,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의의 문’은 주님과 바른 관계가 세워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 문입니다.

우리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그리스도의 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당신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요10:7~9

‘양의 문’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너무 친숙한 말입니다.

 

중근동 지방에서는 양들을 방목하거나 목동이 양들을 데리고 다닐 때

밤에 들판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데, 멀어서 마을까지 돌아가기는 먼 거리일 때

그 다음 날 또 거기서 양떼들에게 풀을 먹여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내리면, 목자들은 양우리를 만듭니다.

주위에 있는 돌을 주워와서 쌓아서 둥그런 우리를 만들고

양을 그 속에 가두고, 문은 목자가 본인 자신이 문이 됩니다.

 

즉 목자는 자기 키만큼의 문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드러누워서 잠을 잡니다.

 

그러면 양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이리 같은 양을 노리는 맹수들도, 그 우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

왜냐면 누워있는 목자를 넘어가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주님의 양된 우리도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구약 때, 성전 문으로 들어갈 때, 비록 ‘(신약의) 그림자’이긴 하지만

백성들도 그런 안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안으로, 하나님의 보호안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기쁨과 행복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0

하나님의 성전의 문은 아무나 들락 날락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에 들어간 사람들만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의의 문이 열렸어도 (영적으로) 거기에 못 들어갑니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이전에, 문자적으론 시인의 자기 고백입니다.

이전에는 멸시받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반전이 일어나 이제는 귀중하게 여김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기에

‘기이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였던 것입니다.

오늘 나도 이러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는요!

 

여러분, ,지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이런 신기한 일들이, 제1할랄 시편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입니다.   *시113~118

 

사실 스룹바벨 성전을 세울 때, 즉 성전을 재건축할 때

백성들이 과거에 훼파된 돌들을 가지고 다시 성전 기초를 세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이 말씀은, 성령에 감동된 시편입니다.

즉 메시야의 속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여기서 잠시 구약 시대 때 제단을 쌓을 때 일을 생각해 봅시다.

(번)제단을 쌓을 때는 반드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집을 짓거나 성을 축조할 때는 반드시 돌을 다듬어야 됩니다.

그래야 높은 구조물을 아구가 맞게 쌓아올릴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제단을 쌓을 때는, 돌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그냥 돌무더기 쌓듯이 쌓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냥 돌무더기에 불과합니다.

아무 모양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돌도, 특별한 돌이 아니라, 주위에서 발견되는 흔한 돌들입니다.

 

왜냐면 제단을 멋있게 높이 쌓는다고, 그게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는게 아니거든요.

그렇습니다. 성전을 크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짓는다고

꼭 예배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제단을 높이 쌓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제단을 높이 쌓으면, 계단을 만들어서 제사장이 올라가게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제사장의 하체를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막을 주신 것도 그렇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전을 짓기는 했지만

이방 신전들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 아주 작은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화려한 성전을 짓기는 했지만,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은 ‘어찌 여기 계시겠습니까?’ 하고 봉헌 기도를 올렸듯이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 건물 자체에 영향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크고 화려한 성전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신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상한 심령, 우리의 중심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그렇게 제단을 쌓는 것, 외형적 건축이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오셔서는 그렇게 46년간 지은 예루살렘 성전 마저도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허물어지리라고 예언하셨고,

당신 자신이 성전 되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성전인줄로 믿으십시오.

 

이 성전에 더러운 생각, 불결한 것도 넣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담배도 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거기에다 알코올도 들이 붓지 않는 것입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하니까요.

 

여러분, 신부의 자격은 순결함에 있지, 아름다움에 있지 않습니다.

순결함을 지키는 것, 그것이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우리, 예수님을 생명이고 주님으로 영접한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

예수님과 똑같아요 집 짓는 사람이 버린 그런 쓸모없는 돌 같은 내가

집 모퉁이에 머릿돌이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쓰세요.

 

여러분 자신이 아주 보잘것 없어도 괜찮아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지금 제가 여러분들이 이렇게 쭉 보니까 다 깨어지기 쉬운 유리로 된 찬장 같아요.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깨질 것 같아요. 우리는 그렇게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서로 정말 조심스럽게 돼야 될 이유가 있어요.

나는 질그릇 같지만, 내 안에는 존귀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도 실족케 하지 말라'고 하신 거죠. 마18:6~7

그건 곧 그 속에 계신 주님께 대한 무시와 천대가 되는 것이니까요!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번 주부터 다시「감사 노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계속 써 오던 것을,         

금년은 수첩을 두 번 잃어버린 이후로 쓰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지나고 보니, 감사노트, 또는 기도수첩을 쓴 것이          

쓰지 않고 지낸 세월보다, 더 많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5분, 10분 틈나는 대로                       

내 삶의 구석구석을 가만히 살펴보면                                

감사할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적어도 이틀에 세 개 정도는 기도의 응답으로 참 감사합니다.

금년에, 우리가 꾸준히 지원하던 사람들에게서                  

아직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마음은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표현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표현도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시리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