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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9:81~120 주의 말씀의 맛을 느끼세요

LNCK 2021. 8. 31. 14:44

 

◈주의 말씀의 맛을 느끼세요             시119:81~120                 여러 설교 정리

 

▲81절,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제(곽선희 목사)가 1963년에 프린스턴에가서 공부할 때

한국 학생이 그때 셋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구박사라고 하는 분이 계세요.

공부하러 왔는데 결혼하고 6개월 만에 왔어요. 그때는 부인을 데리고 가지 못할때예요.

 

신혼생활 중에 6개월 만에 왔으니 얼마나 그 부인이 보고싶겠어요?

그래서 공부하다가 강의가 시원찮으면 부시럭 부시럭 뭘 보고 있더라구요.

보니까 부인에게서 온 편지예요. 그 편지가 다 헤졌더라고요. 얼마나 봤던지...

 

그래서 내가 물어봤더니, 아내가 음악대학 다닌대요.

그런데 그 아내의 편지를 꺼내보면서, 너무너무 행복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거 다 헤져서 글씨도 시원찮은데 뭘 그렇게 웃으면서 보나?’

그랬더니 ‘그게 아니죠!’ 하면서 중요한 말을 해줬어요.

 

편지란 글씨를 보는 게 아니고 얼굴을 보는 거래요.

이 편지를 딱 들면 벌써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보이는 거예요.

이걸 읽어 나가면 귀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어요.

 

여러분 성경은 그렇게 보는 거예요. 너무 따지고 보지 마세요. 그냥 읽으세요.

그냥 읽으면 주님의 얼굴이 다 떠올라요. 그리스도를 만나요.

어려운 신학적 용어로 Contemplation(묵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만나는 그 만나는 거 그 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만나면서 내게 들려지는 거예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서워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사랑해서 종일 묵상합니다.

 

제(곽선희 목사)가 한번 미국의 피츠버그에 갔는데

어느 유대인하고 합작을 해서 큰 음식점을 하는 한국 교포였어요.

그래서 식당에 사장님이 둘이예요.

 

그 집에 초청을 받아서 식사를 하러 갔는데

우리 일행이 이렇게 앉아서 식사하는 동안에도 보니까

바로 옆에 까만 옷을 입은 주인이 있습니다.

유대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온 식당이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관여하지 않고

(구약) 성경을 딱 펴 놓고 묵상하고 있어요.

 

내가 궁금해서 자세히 보았더니요. 눈은 감았어요. 성경은 펴놓았지만 눈은 감았어요.

그리고 중얼 중얼 중얼 중얼 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이게 묵상입니다. 성경은 펴놓고도 눈은 감고 성경을 마음으로 묵상하고 있는 거예요.

이 묵상 Meditation 이 아주 중요한 거예요.

 

오늘의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으나 묵상이 없어요. 그럼 묵상이란 게 뭐냐?

그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이건 사랑하는 마음이요, 자유한 마음입니다.

이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꼭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지식으로 받는 게 아니에요.

intellectual approach가 아닙니다. 성경을 탐구하고, 내가 분석하고,

내가 읽고, 내가 깨닫고, 내가 결심하고,

내가 주체가 되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요새 오해받는 얘기를 좀 하고 다닙니다.

성경 공부에 문제가 있다고 그랬더니

아, 성경 공부 하지 말라고 한다고 또 누가 비난을 하더라구요.

 

공부라는 게 뭡니까? 학술적으로 말하면 이건 헬라적 접근이에요.

이건 지식이고 내 이성이고 내 경험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그 공부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묵상해야 되요.

 

그건 사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 자체를 그 말씀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인격으로 받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여기에 있단 말입니다.

 

말씀은 여기 앞에 있지만 이 성경을 읽는 동안에 이 성경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이게 묵상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지금 내 앞의 이 성경책 속에 계시므로,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98~100절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제가 이 구절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눈을 씻고 다시 봤어요. 
'원수보다 지혜롭게, 스승보다 명철하게, 노인보다 명철하게..' 라는 과감한 고백을 하고 있어요.

시편 기자가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는지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97
'읊조린다'고 했는데, 과거 성경에는 '묵상한다'고 번역했죠.

내가 그 말씀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내 입술에서 떠나지를 않는 것이죠. 그렇게 말씀을 사모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는가요? 
말씀을 통해 하늘의 지혜를 체험했기 때문이에요. 

세상의 지식은 단편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적입니다.
세상에 어떤 학문은.. 마치 이런 것입니다. 
보통 주사위 같은 어떤 사물은 전후좌우상하 6면이 있는데
세상 학문은 오직 그 중에 1~면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좋은 말로 '전문성'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사건과 사물과 존재에 대해서 
어느 각도에서 보든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가 다른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저자가 이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원수보다 지혜롭게, 스승보다 명철하게, 노인보다 명철하게' 해 주신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지혜를 체험하기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녀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통찰하는 놀라운 통찰력을 얻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 했어요. 
제가 그날 아침에 그 뉴스를 보면서 그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내가 만약에 저 버스 안에 있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지품 중에 하나를 건진다면
난 뭘 건질까?' 
그때 제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떠오르는 대답은, 
지갑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소중한 성경책이었어요.

왜 그러냐면, 저는 어렸을 때 그렇게 썩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어주지 않으세요) 
그런데 저는 정말 바보같은 소년이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동화책 조차도 다 읽은 책이 5권이 되지 않았어요. 
그 때는 공부하고 담 쌓고 살았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중학생 때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책이 성경 책이었어요. 
여러분, 이 성경책이 쉽지 않은 책이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이 너무나 제 영혼을 살리게 되었고 
제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어요. 
그리고는 제 인생이 완전히 180도 달라지게 된 거죠. 

성경을 읽으면서 제가 한가지 발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약속을 남발 하셨더라고요' 

근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한번 말씀 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이 변개치 않으시고 말씀한 것을 지키신다고 되어 있는데 
성경에 약속은 너무나 많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성경을 보면서 완전히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었어요. 
'이것도 내가 취하고, 저 약속도 내가 취하고, 
이 약속도 아멘, 저 약속도 아멘!'

그 가운데 하나가 약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뭐 이거는 횡재한 기분이었어요. 그때까지는 제가 공부하고 담 쌓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구하면 지혜를 주시겠데요. 당시 제가 제일 어려워하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수학 정석>책 겉표지 안에 약1:5~8절을 써 놓았어요.

그 다음에 이제 혼자 수학문제를 푸는데.. 쉽게 풀리지 않잖아요.
그러면 다들 그렇게 하듯이, 저도 해답을 보면서 풀어봅니다. 
해답이 약 10줄씩 그렇게 길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해답을 봐도.. 해답이 이해가 안 되고, 여전히 문제가 안 풀리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때 그냥 수학책을 덮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석>책 표지 안쪽에 적어 두었던 약1:5~8절을 읽고서
하나님께 그 약속을 이행해 주실 것을 제가 청구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다시 해답을 펴서 읽는데, 이제는 그 푸는 과정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기적 같은 체험들을 반복하다 보니까 공부 하는 게 재밌어졌어요. 

그러니 성경읽는 것도 재밋어졌어요.
낮에 한두시간씩 성경을 읽고는, 밤에 예배당에 가서 
불이 다 꺼진 컴컴한 예배당에서, 저는 혼자 성경책을 펴 놓고 

하나님께 일대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어요.

'하나님 제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앞뒤 문맥을 봐도, 관주를 봐도 제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당시에 하나님께서 제게 감동주신 말씀이 마23:8절입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에게 선생 master 은 하나다, 즉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제가 그 구절을 읽는데 성령의 감동가운데 주님이 제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부터 내가 너의 스승이 되어 주겠다'
그래서 제가 '사부님 master' 하고 고백하고, 그날부터  제가 문하생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매일 같이 하나님께, 제가 알지 못하는 말씀들을 
한밤 중에, 아무도 없는 그 예배당에 가서 질문했어요. 

놀랍게도 하나님이 관주에도 없는 관련 구절들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 머리속에 띄워 주시기 시작했어요. 마치 팝업 창이 열리듯이요.
나중에는 암실에서 슬라이드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셨어요. 

그러니 너무너무 성경공부가 재밌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기도로 옮겨 갔어요. 

예전에는 그냥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만 얘기했는데, 
이제는 내가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는.. '듣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삶의 현장에서도 '듣는 기도'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지혜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정말 머리도 안 좋고, 건강도 안 좋고, 성격도 안 좋아서 
거의 포기했던 한 소년의 인생을 건져주신 이 생명의 말씀! 

'하나님, 제 평생에 이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며 살고 싶습니다!' 고백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성경은 인생과 세상에 매뉴얼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보물로 가득 차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어요. 

사람에게 질문하면 사람의 대답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 질문하면 하나님의 대답을 듣게 되어 있어요.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말씀에 맛이 있다는 거예요! 그 맛을 아세요? 
이 맛을 느낄 때부터, 여러분의 신앙은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맛이 느껴질 때부터, 즉 말씀의 은혜를 알게 될 때 부터 
그때부터 그의 인생과 신앙은 굉장히 깊이가 달라집니다. 

남이 해준 밥이 아니고, 내가 지어 먹는 밥입니다.
남이 해 주는 요리가 아니라, 내가 그 요리를 만드는 그 재미와 맛이 있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설교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얘들아 너희는 치사하지 않냐? 
목사님이 너희들을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타는 티켓이 생겼는데 
내가 혼자 가서 자이로드롭 다 타고 나서, 
너희한테 그게 어떤 재미가 있는지, 어떤 스릴이 있는지 설교해주면 좋겠냐? 

아니면 너희가 롯데월드 가서 자이로드롭 직접 타보고, 
그 재미와 스릴을 직접 느끼는게 좋겠냐?'

그러면 대답은 뻔합니다. 청소년들은 그걸 직접 타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죠.

그렇다면 왜 하나님 말씀은, 목회자가 혼자 다 읽고, 경험하고 
그 말씀의 깊이를 설교해 주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직접 그것을 읽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 깊이를 체험하면 더 좋을텐데요...

여러분은, 제가 새로나온 피자 한 판, 토핑 가득한 슈프림 피자를 사서 
일단 제가 혼자 다 먹어보고 나서, 그 피자가 어떤 맛인지 설명 듣기 원하세요?
아니면 여러분이 직접 그 피자를 드시고 나서, 그 맛을 느끼기를 원하세요?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은 정말 끝이 없어요. 씹을 때마다 맛이 달라지고 바뀌어요. 
마치 밥을 오래 씹으면 처음엔 구수한 맛도 나구요, 단맛도 나지만 
나중에는 희한한 맛이 납니다. 오래 씹을수록 맛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또 밥맛이 달라지는 이유가, 반찬 맛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기 반찬, 나물 반찬, 생선 반찬에 따라서.. 밥맛도 약간씩 달라집니다. 

마찬가지예요. 이 말씀도 우리의 인생의 여러 모습과 만날 때.. 맛이 약간씩 달라져요. 

내가 기쁠 때, 슬플 때, 갈등할 때 다르고.. 눈물날 때 다르고.. 

그때그때마다 말씀의 맛이 달라져요. 

여러분 중에는 주일설교말씀에 매주 은혜 받는 분도 있겠지만 
때로는 매주 은혜를 못 받는 분도 계실 겁니다. 

교회에 너무 다양한 각계각층의 사람이 함께 모이다 보니, 
똑같이 은혜 받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하셨어요.
내가 스스로 말씀을 읽고, 스스로 말씀을 관찰하고,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과거에 가톨릭 교회는, 신자 각자가 성경을 해석하다가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이런 방식을 허락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런 위험성이 있지만
대체로 신자 각자가 성경을 읽으면.. 자기 신앙성숙에 유익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대할 때, 반드시 꼭 해야 될 일이 있는데 
이 성경이란 나무를 흔들어라. 발로 차든지 손으로 막 흔들면 
그 나무에서 열매가 한두 개는 반드시 떨어진다'라고 했어요. 

아주 동감되는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건 또 무슨 얘기야? 모르겠어. 아 귀찮아!' 가 아니라 
그 한 절을 가지고 한번 깊이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라는 거예요. 

'왜 이 말씀이 여기 있을까? 왜 이 말씀이 내게 다가올까?' 하면서
(성경)나무를 한 번씩 신나게 흔들어도 보고, 발로 차 보고, 몸으로 부딪혀 보면 
분명히 뭔가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 열매는 이전에 내가 만나보지 못한 놀라운 은혜가 됩니다.
그 말씀의 맛이 느껴지면, 그때부터 말씀을 읽는 굉장한 동기가 부여되고요, 
그때부터 우리는, 말씀이 참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관련설교 "네 길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기 ☞. https://blog.daum.net/rfcdrfcd/15975240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이 빛인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주의 말씀이 빛인 줄 모르는 사람은

일단 성경을 안 읽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안 읽는 사람은

시119편만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해도

다시 성경을 붙잡고 읽게 될 것입니다.

 

 

▲107절,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 119편에는 ‘살아났다’는 말이 10여 차례 나옵니다.

병이든지, 대적으로 인한 위기든지.. 죽음의 위험에 처한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다는 얘기를.. 계속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말씀을 읽으면, 죽은 내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말씀)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공의(말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93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법도)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44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말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아래는 주의 말씀을 따라, 장차 내가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자가기 살아나면, 말씀을 잘 지키겠다는 서약입니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49 주의 인자히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라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08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 .. 감사와 찬송과 기도죠.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들은 늘 주위에 들끓습니다. 그들에 둘러쌓여 사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휘둘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신앙의 길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은 악인들에게 영향 받지 않기 위하여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죠.

 

그들이 얼마나 불화살을 쏘아대는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날아오더라도, 그게 내 몸에 붙지 말게 해야 됩니다.

 

성경말씀은 한 절도 못 외우면서

남이 내게 상처준 말은 평생 기억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습니다.

 

‘너는 어쩌자고 인생을 그 따위로 사느냐’

이런 말을 한 번 들으면, 마음 판에 새겨서 평생 기억하며

머리에 이고 사는데요..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은, 그게 칭찬이라도, 내게 ‘올무’요 덫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110

세상 사람들의 말은 딱 두 가지입니다.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욕’입니다.

그 말을 그리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종일 말씀을 묵상하는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살리지만, 사람의 말은 대부분 나를 죽이고 올무가 되기 때문이죠.

 

나한테 잘해 준다고 하는 말도 올무가 되는 말이 많습니다.

성경에 귀기울이지 않고, 인간의 지혜, 인간의 말은 다 독이 묻어서

그 말을 많이 들어봐야 하나도 도움 되지 않습니다.

 

중국고사에 누가 당신은 왜 재상이 될 인물이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그 말을 들었다고 이 사람은 시냇가에 가서 자기 귀를 씻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독이라고 자기 귀를 씻었던 것입니다. *허유괘표 許由掛瓢

 

‘너는 큰 인물이다. 너는 재상감이다’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게 나를 위하는 말이 아니라

이건 나를 올무에 빠뜨리는 말이다’ 그래서 가서 귀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길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제가 단독목회한다고 나갔는데 그저 사람들마다 저보고

‘큰 목회 하세요, 큰 인물 되세요!’ 하는 덕담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큰 인물이 되려면 세상에 있어야지 교회에 오면 안 됩니다.

교회는 작은 인물 되러 오는 곳입니다.

 

그러니 무슨 목회자가 되어서도, 자기 성공과 큰 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세상 길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쓰시면 마지 못해 가는 것이지,

그게 자기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