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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세 권이 아니라 한 권으로 읽는다면 -출처보기-
박경철 목사 전주갈릴리교회 / 전주대학교
◑이사야서 전체 구성
이사야서 전체 한 권의 현 최종형태의 구성에 대해서 묻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의 순서대로 읽어 가는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첫 부분이 무엇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지를 주의해 읽어야 한다는 점이고,
아울러 마지막이 무엇으로 끝나는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이는 전체 이사야서의 현 최종형태는 우연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이를 구성이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비교하곤 한다.
영화 필름은 수많은 장면들을 하나로 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단순히 찍은 순서대로 이어놓은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대로 편집해서 이어놓은 것이다.
또한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각 장면들을 찍었던 순서를 논하지 않는다.
완성된 영화의 순서대로 본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흔히 영화의 첫 장면을 놓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때론 첫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마지막 까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첫 장면이 비로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성이 잘 짜여진 영화일수록 영화 전편에 걸친 복선과 그에 대한 해답들을
영화가 전개되면서 알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이사야서의 첫 단락인 1:2-2:4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제의가
그들의 사회 불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어서 심판 선언이 나오고
다시 시온과 예루살렘을 정의와 공의로 회복하는 구원의 언어로 이어진다.
그리고 2장으로 넘어가면 온 민족들이 시온으로 몰려오는 종말론적 표상을 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온에 평화(“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이사야서는 이와 같은 주제들(제의, 사회정의, 종말론)을
책의 첫 장면에서 이야기 하는 것일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모든 주제들은 이사야서 전체에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이상의 주제들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그 순서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이사야서 전체 구성이 서론부에서 밝힌 중요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엿보게 한다.
특히 서론부에 나타난 이상의 주제들이
전체 이사야서의 결말부(사 65:17-66:24)에 가서 모두 함께 다시 나타난다.
물론 그 순서 역시 동일하다.
이상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사야서 서론부와 결론부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이한 여러 주제들이
결코 개별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들이며,
이는 전체 이사야서의 구성이 매우 의도적으로 만들어 졌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이한 여러 신학적 주제들은 단순히 섞여 있는 게 아니다.
현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의 모습에 대한 신학적인 질문은 현재 모습의 그 순서에 있다.
즉 이스라엘의 불의와 부정한 모습이
공의와 정의에 의해 정화되고 시온/예루살렘이 정의로 회복된 후,
그곳에 평화가 이루어지면 온 민족들이 그곳으로 몰려온다는 구도이다.
이사야서의 구도는 철저하게 이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
시온/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의의 회복과 실현 이후
온 민족들의 구원의 장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구원의 장소는 정의가 실현된 장소여야 한다는 말이며,
정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그곳에 평화가 정착된다는 말이다. 그 뒤에 구원이 있게된다.
이런 구성은 이사야서 첫 번째 큰 단락의 결론부(사 11-12장),
열방신탁의 단락들(13-23장),
이사야 묵시록(24-27장),
야훼의 종의 노래들(42장, 49장)과
예언자 소명기사 단락 (61-62장)에서도 마찬가지다.
▲ 사 11장은 흔히 메시야 예언 장으로 알려져 있다.
메시야 예언에 대한 종말론적인 표상이 무엇일까?
지금의 순서대로 되어 있는 그림을 잠시 살펴보자.
11장 1절은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날 것을 말한다.
3절 이하는 메시야가 와서 이 땅에 정의를 행사하는 일이다.
6절 이하는 우리가 잘 아는 “평화의 노래”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소’가 함께 풀을 뜯는 종말론적인 평화의 모습을 노래한다.
이는 강자들의 폭력(불의)이 사라지는 세상을 전제하는 것이다.
곧 진정한 평화는 이 땅에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0절에 다시 한 번,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날 것을 말하고,
곧이어 온 민족이 그곳으로 몰려들 것임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정의 실현과 그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면,
그곳으로 온 민족의 구원의 상징인 시온 순례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동물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이사야서 결론부(65:17-66:24)의 첫 단락인 65장 24절 이하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그런데 결론부의 시작인 사 65:17절 이하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모습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데,
그 모습은 예루살렘에 정의(쩨데카) 대신에 있었던 울부짖음(쩨아카, 참고 사 5:7)이 사라지고,
착취와 소외가 사라지는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정의가 실현된 땅이 앞서고 그 다음에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사 66장의 마지막은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진 그 땅으로 온 민족이 몰려온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 하늘 과 새 땅’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마지막인 66장 22절에 다시 한 번 ‘새 하늘 새 땅’을 언급한다.
이 말은 구약성서에서 오직 이 두 곳 밖에 없다.
▲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는 예수의 공생에 첫 장면을 예수가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를 읽는 장면으로 소개한다.
그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바로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위한 것임을 말하는 것인데,
그 본문이 바로 사 61장이다.
사 61장은 앞서 언급한 사 11장의 메시야 예언과 평행본문을 갖고 있다.
“주의 영”이 임하신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 61장의 예언자 소명기사가 갖고 있는 그 구성에 있다.
61장은 이 땅에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 예언자의 소명이라면,
그 다음 장인 62장의 첫 장면은 시온/예루살렘이 공의의 빛이 되고
그 빛으로 온 민족들이 몰려와 그들이 그 땅에 공의가 이루어지는 영광을 볼 것이라고 적고 있다.
흔히 ‘종의 노래’(42:1-4; 49:1-6; 50:4-9; 52:13-53,12)라고 알려진 사
42장과 49장에서도 위와 같은 동일한 구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자신의 종을 부른 이유는 뭇 민족들에게 자신의 의를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의 종으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신다(42:6; 49:6,9).
야훼의 의를 이루는 일이 민족들에게는 빛이 되기에,
야훼의 종은 눈먼 이들을 눈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이끌어내는 사명을 받는다.
누가복음에서의 예수의 소명과 동일하고, 사 61장의 것과도 같다.
▲ 이사야서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구원’이라는 말이
마치 한 단어처럼 붙어 다니면서 매우 자주 나타난다.
전체 구성에서 보면 이사야서의 제1부로서 1-39장에는 “공의와 정의(미쉬파트-쩨데카)”만이,
제2부인 40-55장에는 “공의와 구원(미쉬파트-예수아)”만이 나온다.
그런데 제3이사야로 구분했던 첫 장 첫 절인 사 56장 1절엔 이상의 것들이 모두 다 나온다
(공의-정의-구원: 미쉬파트-쩨데카-예수아).
이는 이사야서를 세 권으로 구분했던 것으로부터 전체 한 권으로 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시해 줄 뿐 아니라,
이사야서 전체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온 민족의 구원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이사야서 전체 구성을 따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 56장 역시, 앞에서 말했던 제의-정의-는 민족의 구원이라는 주제들을 그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제의냐 사회 정의냐?’ 하는 문제를 구약성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사 58장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 56장과 마찬가지로 사 58장의 구성은 제의, 사회정의, 종말론 그리고 안식일의 주제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안식일’ 단어가 나오는 곳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첫 부분인 사 1장과 마지막인 사 66장,
그리고 사 56장과 58장에만 나온다. 이 모든 장들은 동일한 주제들이 동일한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 무엇보다도 사 58장은 자체의 의도적 구성
A 야곱의 집에 대한 고발(V.1b)
B 야훼를 떠난 백성들의 스스로의 즐김(V.2)
C 백성들의 고행(V.3a)
D 금식과 함께 불의한 폭력(V.4a)
E 질문: 이것이 금식인가?(V.5a)
F 질문: 이것 야훼가 좋아하는 금식이란 말인가?(V.5b)
E‘ 질문: 이것이 금식이 아니겠는가?(V.5aα)
D‘ 불의한 사슬을 풀어라(V.6aβ)
C‘ 너희들의 고행을 가난한 자에게로(V.10a)
B‘ 안식일에 스스로의 즐김을 금하라(V.13)
A‘ 야곱의 유산 언약(V.14)
뿐만 아니라 현 본문의 순서가 전체 이사야 구성의 핵심이 되고 있는
서론부(1:2-2:4), 결론부(65:17-66:24)와 56:1-8의 공통의 주제들과 함께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이사야서의 순서와 일치한다.
사 58:2-5의 이스라엘의 제의 행위의 거짓된 모습에 대한 고발은 사 1:11-14/66:3-4,
58:6-10의 사회정의 실천의 요구는 1:16-17/56:1-2a/65:21f.,
58:8-12의 회복과 구원의 표상은 1:26-27/65:17-25/66:7-14,
58:13의 구원의 조건인 안식일 준수는 56:2b-7/66:20-23
58:14의, 구원 약속은 2:2-4/56:7f/66:18-22 온 민족들의 시온 순례의 주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사 58장의 현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그 구성은
전체 이사야서 구성의 핵심 장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모든 주제들이
결코 별개의 주제들로 구분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해 줄 뿐 아니라
이상의 주제들은 이사야서 전체가 이스라엘의 정의 실현이
곧 온 민족들의 구원의 표상이 된다는 구도를 동일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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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철 목사는 호서대학 신학과(1987)와 한신대학 신학대학원(1991)을 졸업하고 그해 독일로 유학을 가서 독일 괴팅엔 대학(Uni. Gottingen)과 프랑크푸르트 대학(Uni. Frankfurt)에서 수학하고 독일 빌레펠트 베텔 신학대학(Kirchliche Hochschule Bethel)에서 프랑크 크뤼제만 (Prof. Dr. Frank Crusemann)교수의 지도하에 이사야서 연구(“이스라엘의 정의와 열방의 구원” Die Gerechtigkeit und das Heil der Volker)로 2001년 7월에 박사학위 (Dr. theol.)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신대학교와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출강중이며 전주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
현재글 이사야서 세 권이 아니라 한 권으로 읽는다면
냉수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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