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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장 이사야서에 나타난 구원의 과정

LNCK 2021. 9. 8. 08:35

 

◈이사야서에 나타난 구원의 과정       이사야4:1~6        여러 설교 정리

 

▲1절,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그 날에’

‘그 날’은, '여호와의 날' 즉 심판의 날을 뜻합니다.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남자가 다 전쟁에 나가서 죽어버려서 씨가 말랐다는 뜻입니다.

직전의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사3:25~26

 

'일곱'은 완전 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여자'는 '모든 여자'를 뜻합니다.

 

3장에서 허영과 교만으로 뭇 남자들 앞에서 자태를 뽐내던 예루살렘 여인(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 수치를 무릅쓰고 남자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수치를 면하게 해 달라'

오직 당신(남편)의 이름만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요구는 안 할 터이니

주민등록만 당신 이름 아래 올려달라는 뜻입니다. 법적 보호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의 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조치가 필요했나 봅니다.) 

 

당시 여자는, 기업을 물려받을 수도 없었고 법적 권리가 없었으므로

반드시 어느 남자에게 속해야 자신의 기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매달리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것들을 의지하고 사는 자(남자포함)는

그 날(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무서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여인'은 남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이, 마치 남편 즉 신랑되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

(사1~3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신자들의 상태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요즘 말로 하면 주민등록도 되지 않고)

사회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그런 주거불명의 유랑민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하나님께 버림 받는 신자의 상태입니다.

 

(롬8:5~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세상을 의지하고 육을 위해 살면, 2~6절까지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2절,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그 날에’

1절과 2절이 모두 '그 날에'로 시작합니다. 

1절의 '그 날'이 심판의 날이요 수치의 날이며, 서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이라면,

2절의 '그 날'은 회복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며, 새로운 싹이 돋는 날입니다.

 

그런데 언약 백성들에게 신비한 것은, 이 두 '그 날'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즉 '심판의 그 날'이.. 심판 받는 날이면서도, 동시에 '회복의 그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과 구원은 한 날에 임합니다.

하나님이 '그 날에' 심판하신다는 것은, '그 날에'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됨을 뜻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싹’은 다윗 집의 그루터기 속에서 나오실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사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53:2절에는 '연한 순'이라고 했습니다.  렘23:5, 33:15에는 '한 의로운 가지',  슥3:8참조

 

그런데 '여호와의 싹'은

'그 분이 하실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그거죠.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느리게, 느리게' 진행하십니다.

물론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모든 완전한 섭리로 이끌어가십니다만 '느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싹'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갓난아기로 오게 하셨지요.

 

우리는 무슨 일을 추진할 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급속하게 추진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조에 맞춰서

멀리.. 그리고 길게.. 내다보는 사람이,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혹시 가족(남편,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도, 길게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주 기초(싹)부터 시작하시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의 명예와 영광, 그리고 남은 자를 위하여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주1)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2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

이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이며,

2~3장에 묘사된 심판에서 생존한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위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싹이신 '메시야'만 아름답고 영화로울뿐 아니라

'그 땅의 소산' 역시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데, 

그 소산 fruit 은 '여호와의 싹(가지)'에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그 땅의 소산 fruit'은 작은 예수인 '남은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그 땅의 소산'도   '여호와의 싹'처럼 '아름답고 영화롭다'는 수식어가 똑같이 쓰였죠.

 

‘여호와의 싹’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메시아의 신적 기원을 말한다면,

‘그 땅의 열매’는 메시아의 인적 기원(유대인의 후손, 남은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3절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큰 나무를 베어내면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무의 밑동만 남아 초라하고 처량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들은 '남은 자'를 가리킵니다. :3

즉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며, 세상에 타협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을 뜻합니다.

 

즉 그 날에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싹이 나올 것이며,   :3

그들을 거룩한 자들로 칭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은 자'는 수동태입니다.

그러니 '남겨진 자'가 정확한 번역이죠.

 

내가 남은 자가 되겠다고 소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남겨주신다, 남겨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 사상은 이사야서에 매우 중요한 신학입니다. 곳곳에 나옵니다. 

1:8~9절에 처음 나왔고, 본문4 :3에도 나오고, 6:13, 7:3, 10:22절 등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고 칭함을 얻으리니’

'녹명된'이란 표현은 '생명의 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출32:32, 시69:28, 단12:1, 말3:16, 눅10:20, 빌4:3, 계3:5, 13:8, 17:8, 20:12, 15, 21:27).

 

고대의 도성들은 그 도성의 시민으로 인정된 자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한 시민 인명록을 기록해서 보존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름이 기록되고 혹은 지워지는 것은

공동체의 삶과 관련하여 개인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종말론적으로 표상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구원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의 문제로까지 부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왜 거룩한 남은 자들을 보기 힘듭니까?

교회 다니는 자들은 많은데 왜 그렇습니까? 성전 뜰만 밟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중에 “나는 교회 열심히 다니고 있으니깐 걱정 없어” 라고 안심하는 자들 많습니다.

'남은 자'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예수 믿는 자는 많은데 거룩한 자를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해서 그럽니다.

 

계8: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쑥물'은 타락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홍수 시대에 먹을 물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 때 그 날에 사람들은 영적인 생수의 말씀을 먹지 못해서

산으로 들로 헤메일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거룩한 자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내용이 확 와 닿지 않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씻으신다, 청결케 하신다'

즉 '거룩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시온의 딸들'을!

 

즉 '여호와의 싹(가지), 메시야'께서 오셔서 하실 일은

남은 자들을, 자기 백성들을, 자기 열매들을 '씻고, 청결케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앞서 1~2절에서, '그 날'은 심판하시는 날이요, 동시에 '그 날'은 구원하시는 날인데, 

그 구원의 내용이 뭐냐? 그 구원의 결과가 뭐냐?

'씻고, 청결케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쉽고 간편하게 '씻으시고 깨끗케' 하시지 않고요,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씻으시고 깨끗케 하십니다.

'소멸'이란 불로 태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하게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그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씻어지고, 깨끗케 됩니다.' 

  

5절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6절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4절에서 깨끗이 정결케 된 그 '열매들, 남은 자들'은

밤낮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장막을 치셔서 그들을 안전히 거하게 하십니다.

 

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라고 하는데, 본문 1~6절은 정말 복음의 과정이요,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는 듯 합니다.

 

우리는 그저 쉽게 영접기도 한 번 따라하는 것으로 구원 받았다고 여기지만

본문 1~6절을 보면, 구원의 과정이 이렇게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이 과정을 거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심판의 그 날 (1절)

-구세주와의 만남 (2절)

-남은 자 반열에 들어옴 (3절)

-불로 씻어지고 깨끗케 됨(4절)

-하나님의 보호의 장막 안에 거하게 됨(5~6절)

 

모세 오경도, 우리 구원의 과정과 얼추 비슷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서)

출애굽기 (세상에서 빠져나와 구원을 받고서)

레위기 (정결케 되며, 씻어지며)

민수기 (그 과정에 훈련과 광야 연단을 받으며 성화되고)

신명기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더욱 잘 지키게 됨, 구원의 완성으로 나아감)

 

◑적용

 

1. 하나님의 구원은 '느리게.. 싹으로부터' 시작한다. (위 2절)

 

2. 하나님의 구원은 '남은 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위 3절)

복음적으로 말한다면 마지막 날 그 날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남아 있는 자를 통해

그들을 거룩한 자들로 칭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 거룩한 칭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피 값으로 산 교회에 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속에는 '남은 자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신 것은

메시야의 싹인 아벨을 죽인 가인 시대 이후 약 천 년 동안 사람들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천 년 동안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에녹과 므두셀라와 라멕과 노아까지   심판의 예언은 천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홍수 이후에도 남은 자손 셈 족속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었고

그 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야곱과 요셉을 택하시고 모세를 택하시고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하여 자신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맨 처음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것이었는데

이것은 곧 거룩한 자들이 되라는 의미도 되기도 합니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여 120명의 무리들이 성령 충만하게 된 것도

120명을 거룩한 무리들로 만들어 남은 자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남은 자의 사상은 예수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는 반드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남은 자 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3. 이사야서는 복음 - 구원의 과정을 보여준다. (위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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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여호와의 싹'

이 대목을 영어성경들은 대부분 branch of the Lord 로 번역했습니다.  KJV, NIV, NASB

싹은 bud 나 sprout 인데, '가지 branch' 로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째마흐'는 둘 다 됨.

 

이렇게 '가지'로 번역할 경우,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15:5절과 연결됩니다.

둘 다 '가지'이니까요.

즉 이 구절을, 꼭 예수님께만 적용할 게 아니라, 확장하면 그 예수님 속에 포함된

장차 이 세상에 나타날 모든 '작은 예수들', 그 가지들에게도 다 적용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