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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5장 해석,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 사15:장 출처보기
※모압에 대한 경고는 본문 사15~16장 말고도
아모스 2:1~3 등에도 나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2011년 3월11일에 일본 동북부 앞바다에서 발생한 9.0리히터 규모의 강진과
그 여파로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로 인하여 해안 지대 도시와 마을들이 파괴되었고,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하여 2만7426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일본 지진 피해 원인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차적인 피해는 리히터 9.0에 해당 되는 강진으로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큰 위력의 지진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파괴되고
정전이 일어나고 화재까지 발생하여
수없는 인명 피해와 도시들을 초토화시켜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차적인 피해는 지진으로 인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한 것입니다.
높이 10m~20m, 어느 지역에서는 37.9m의 엄청난 크기의 대형 해일이
초속 700m의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덮치므로
평소 대피소로 사용되던 건물의 꼭대기 층까지 닥쳐와서 건물들을 휩쓸어 주저앉게 하고,
수없는 가옥과 차량들을 형체도 없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해안 마을과 도시를 순식간에 쑥대밭을 만들어 자취도 없이 황폐화시켜버렸고,
손 쓸 틈도 없이 수없는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3차적인 피해는 지진으로 인하여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하므로
인한 것입니다. 요오드, 스트온튬, 세슘 등과 같은 방사선 물질의 누출로 인하여
방사선 오염이 250Km 떨어진 도쿄와 그 인근 지역가지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방사선 누출로 인하여 인체는 물론 해수와 토지,
그리고 농수산물과 식수에까지 오염이 나타나
사람들의 일반생활의 먹거리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 영토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여타 국가에까지 확산 되어
인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지구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이러한 거대한 재난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빨리 일어나 복구되기를 기원했으며, 또 한편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재난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본문 사15장은, 모압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모압 땅에 일어날 거대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 메시지를 주시면서 5절에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르짖다’(자아크)의 원래 뜻은
위기의 때에 도움을 위하여 부르짖는 것이지만
본문에서는 나쁜 소식에 대한 탄식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말이며, (렘47:2)
또는 항의적 부르짖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욥31:38)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위기에 처한 모압의 처참한 상황을 바라보시면서
슬퍼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거대한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경계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절,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주1) 모압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
하룻밤 사이에 망하여 황폐한 모습을 보니, 비참하여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 ‘알’은 아르논강 남쪽에 위치한 모압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기르’는 모압의 수도에서 남쪽으로 약 12마일 떨어진
높고 가파른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큰 도시였습니다.
학자들은 현대의 도시 중에서 ‘게렉’에 해당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모압인들의 삶의 대표적인 중심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들이 ‘하루 밤’ 사이에 망하여 (앗수르에 의해)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루 밤에' 라는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았던 시간에.. 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교만’ ‘거만’ ‘과장’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16:6, 렘48:29)
성경은 여러 곳에서 모압의 교만한 행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교만하였습니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렘48:26
-모압은, 풍부한 농작물로 해외까지 수출이 잘 되어 부유해지자 교만해졌습니다.
(사16:9, 렘48:32)
여름 과일과 포도나무 제배가 유명했고, 그리고 많은 농작물들의 수확으로 인하여
무역업이 활성화 되자 경제적으로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지자 온갖 교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조롱하며 교만을 부렸습니다. (렘48:27, 습2:10)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무척 조롱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요해지니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심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롱하기도 하고, 말할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건방진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잔인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암2:1)
하나님께서 모압의 서너 가지 죄악을 고발하는 가운데,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든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잔인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모압에서 가장 핵심 도시, 가장 번영한 두 도시가
하룻밤 사이에 패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라 전체가 망한다는 비극입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인간의 비참함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면서
잔인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더니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비극적인 불행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상시에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사랑과 긍휼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거대한 도시, 핵심적인 삶의 거점이 황폐하게 되자
통곡소리가 전 모압 땅에 메아리쳤습니다.
그들의 통곡하는 모습을 2~8절까지 상세하게 상술하고 있습니다.
▲2절,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털을 없이 하였고 수염을 깎았으며
바잇과 디본은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거기에 그모스 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의 산당을 찾아 올라가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재난의 때에 신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모압 사람들도 갑자기 엄청난 재난이 밀려오자, 자신들이 믿는 신(神)들을 찾아
산당이 있는 곳을 향하여 울면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각각 머리 털을 없이 하였고...각기 애통하여’
각기 자기의 머리털을 베고 수염을 깎으며 맨몸에 굵은 베를 두르고
지붕 위에서 오열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애도 방식으로써
(3:24, 22:12, 창37:34, 삼하3:31, 15:30, 왕상21:27, 스9:3, 렘41:5, 애2:10, 미1:16)
앗수르(욘3:5), 아람(왕상20:31), 바사(에4:1,2), 이스라엘(느9:1) 등에도
이런 관습이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사15장이 9절로 된 비교적 짧은 장인데, 모압의 도시가 모두 18개나 나옵니다.
이 말은, 모압의 모든 도시가 다 파괴되며, 즉 모압이 전국적으로 패망하게 되리라는
다소 끔찍한 예언인 것입니다.
▲3절,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그들은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고, 굵은 베로 몸을 동여맸습니다. (2~3절)
머리털을 밀고 수염을 깎았다는 것은 큰 슬픔의 표현입니다.
자신들이 당한 절망적 상황을 머리카락과 털을 깎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표현했고,
장례를 치루는 것을 뜻하여 굵은 베로 몸을 동여매고 통곡한 것입니다.
▲4절,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으며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이는 통곡소리가 너무 커서, 모압 북편 지방의 도시까지 들린다는 뜻입니다.
모압에 슬픔이 온 천지를 진동했고 군인들까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재난 앞에서, 모압의 군사들은,
대항할 힘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들 자신들도 영혼으로부터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풍비박산이 난 것입니다.
▲5절,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하나님이 모압을 위해 슬퍼 탄식하도다)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으니
패망으로 인하여 나라 전체에 피난민들이 울면서 떠돌아다녔습니다.
나라 전체가 피비린내가 나고 패망하게 되자
사람들은 보따리를 싸고 안전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피난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그들은 울면서 온 천지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내 마음이'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을 뜻한다고 보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대변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봐도 됩니다.
모압에게 심판을 선고한 선지자마저도 모압의 통곡에 동참한다는 말에서
모압의 비참이 최고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주2)
여기는 모압의 남쪽 지방의 도시들입니다. 4절은 북쪽 지방이고, 5절은 남쪽 지방..
곧 전국적 패망이 올 것입니다.
▲6절,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여러분, 모압은 물이 절대로 마르지 않는 나라입니다.
왜냐면 모압은 요단강 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거기에는 유명한 아르논 강이 있습니다.
그런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마른다는 것은..
곧 이 재앙이 그저 자연재해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을 암시합니다.
자연도 비를 내리지 않아 국토가 메말라 푸른 것이 보이지 않도록 황폐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지 않아 땅들은 메말라 갔고, 풀들은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푸른 것이란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한마디로 황폐함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니므림 물이 마른 것은 모압을 침공한 군사들이 전략적 목적으로
수원(水源)을 차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7절,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그들이 건너야만 하는 '버드나무 시내'는 아마도 모압과 에돔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세렛 강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재물들을 가지고 아라비아 골짜기로 도망갔습니다.
거대한 재난이 생기자 부자들과 보물을 쌓아두었던 사람들은
아라비아 골짜기에 있는 요새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적군들이 쳐들어와서 피바다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8절,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에글라임'은 사해 남단에 있으며
'브엘엘림'은 - 위치상 에글라임의 정반대인 모압의 북동쪽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압 땅 방방곡곡에서
통곡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렇게 비참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극입니다.
나라 전체, 백성 전체가 비극에 빠진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온전하게 보존 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라 전체가 통곡함으로 천지가 메아리를 치니,
참으로 볼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이런 비극의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통곡하며 방황하고 돌아다니는 날이 오기 전에 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습2:1~3)
▲9절,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그럴지라도 재앙을 더 내려야 하고 사자를 보내야만 하는 처지를 생각하니,
이사야 선지자가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5
‘그럴지라도...더 내리되’ 라는 표현은
앞서 이사야 9:12, 17, 21, 10:4 등에서 먼저 나왔던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극심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역사학자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디몬은 아르논 강 북편에 건설 된 거대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 전체가 살육으로 인하여 모든 개천과
아르논 강까지 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갈대아인의 부대가 그곳에 주둔하여
그 도시에서 더욱 살육을 자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럴지라도”라는 말에 있습니다.
온 천지가 피 바다가 되었으면 될 것이지,
모든 백성들이 통곡하며 피난하고 방황하고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면 되었을 것인데,
아직도 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더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온 도시의 물이 피로 가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더 많은 재앙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정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입니다.
심지어 모압 땅의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까지
사자(lion)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꽁꽁 숨은 자들까지 다 찾아내어
그들에게 사자처럼 무서운 재난을 보내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천지의 경영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한다면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방비하고, 사회적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국방을 든든히 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엎으시면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재난을 대비하는 것은 물리적, 또한 환경적 대비책만이 아닙니다.
신앙적, 정신적, 도덕적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그 실례를 보십시오. 일본 이와테 현의 미야코 시는
여러 차례 쓰나미의 피해를 본 경험이 있었기에
해안가에다 10m 높이의 제방을 쌓았습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환경이었지만, 그 도시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금번 쓰나미는 10미터 높이로 쌓아놓은 둑을 허물어뜨리고
대피소였던 빌딩까지 덮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환경적 대비책도 중요하지만
더욱 우리의 신앙적, 정신적 삶의 제방을 점검하고 쌓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에
다른 피조물보다 더욱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어 인간을 위해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눈에 거스르고 정도에 지나칠 때에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창6:6)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재앙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인 것입니다. (1절은, 하나님의 탄식)
가장 사랑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심판으로 멸해야 하는 슬픔인 것입니다.
모압을 비참하도록 심판하셨다고 하나님이 즐거워하시고
기분 좋아 만족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사랑받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탄식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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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모압’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로(창11:31, 19:37)
요단 동편 사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요단강만 건너가면 만나게 되는 나라이니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그러니 조상끼리는 서로 친척관계였다. *아브라함-롯
그래서 모압과 이스라엘이 혈연적으로 가까운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나라 사이의 상호 관계는 우호적이 아니었다.
민수기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이란 거짓 선지자를 고용해서,
이스라엘을 저주케 한 사건이 나온다. 그 시도가 실패하자
결국은 '바알브올 우상숭배 사건'에 빠지게 해서, 이스라엘을 크게 시험들게 했던 나라였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하사 염병을 보내서, 이스라엘 2만4천명을 죽게 하셨다. 민25:9
사사 시대에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18년간이나 정복하였다(삿3:12-14).
사울은 모압과 싸웠으며(삼상14:47),
다윗은 모압을 완전히 장악하였다(삼하8:2, 대상18:2).
그런가 하면, 룻기에 나오는 룻은 모압 여인 출신이다.
그가 다윗 왕가의 증조모가 되었으니, 이스라엘과 모압은 그래서 '멀고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인연으로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다닐 때,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긴 적이 있었다.
그럴 정도로 가까운 나라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핏줄로도 가까운데..
이스라엘과 모압이 그 후 점점 더 멀어지게 된 이유는, 바로 신앙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반면, 모압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둘은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솔로몬은 그의 아내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모압의 신(神) 그모스를 섬기는
산당을 지었다(왕상11:7, 8).
남북으로 나라가 나뉜 후 모압 왕 메사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조공을 바쳤다(왕하3:4).
아합이 죽은 후 메사는 이스라엘을 배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 유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왕하3:6-27)
그러나 예후 시대에 이스라엘이 트랜스 - 요르단 지배권을 상실한 이후(왕하 10:32)
모압은 빈번히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혔다.
앗수르에 관한 한,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모압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B.C. 712년 모압이 반앗수르 동맹인 아스돗 동맹에 가입한 일로
앗수르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선지자의 기록은 아마도 이때를 전후해서 작성된 듯하다.
모압에 관한 그 밖의 기록으로는 렘9:26, 40:11, 특히 렘48장을 참조하라.
주2) 이사야 15장에 <모압의 도시> 지명들이 18개나 많이 나오는 이유
이사야 15장에 나타난 특징이 있습니다.
앞 장에서 나타난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에 대한 경고와는 달리 고유명사 지명들이 많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모압에 대한 경고시 지명을 많이 언급하셨겠습니까?
9개 구절에 약 18곳이나 언급된 많은 지명들은
당시 예언을 듣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 예언서를 듣거나 읽게 될 사람들에게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실성을 강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지명들에 대한 언급은 미래에 있을 법한 한 예언가의 막연한 예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록 모압에 대한 지리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열거된 지명들로 인해
경고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곳 지리에 익숙한 사람이 듣는다면 그 예언의 사실적(寫實的) 묘사로 인해
경고의 말씀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 닿을 것입니다.
만약에 예언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지역들의 명칭들로 열거되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서울의 무슨 구가 황폐할 것이며,
그래서 그 구 주민들이 북한산에 올라가서 통곡할 것이며’라는 식의 예언을 듣는다면
그 느낌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막연한 예언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무심코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의 사실적 표현에 마음을 졸이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15장에 지명들을 언급한 또 다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일부 지역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이후 요단강 동편에 차지해서 살았던 지역임을 알리고,
그것을 모압이 빼앗았고
또한 그 강탈이 모압에 대한 경고와 무관하지 않음도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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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글이사야 15장 해석,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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