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 사19:16~25 여러 설교 정리
*보편적 구원 :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뜻
본문을 보면, 다소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평소에 읽던 구약성경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180도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구절이 정말 있었나?' 하면서, 눈을 씻으면서 다시 보게 되는데요..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사19 :23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말씀인데,
평소에 일반적 개념은, 애굽과 앗수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 보려고 합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모든 구절을 한 번 일목요연하게 살펴보는 거죠.
◑1. '말일에 열방이 시온산으로 모여들 것이라' 사2:2~4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하나님은 유대를 포함,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원하심)'은
이사야서 시작인 2:장부터 나옵니다.
'만방이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것이 이사야가 바라보는 미래였습니다.
만방은 '세계 여러 나라 all nations'를 뜻합니다.
'말일에'는, 예수님의 초림~재림 사이의 종말의 때를 뜻하는데,
세상 (구속)역사의 흐름이 '보편적 세계 구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사야 시대에도 이 말씀은 적용되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가 일어나고, 바벨론이 뒤이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보편적 세계 구원'이란 큰 그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열방이 시온 산으로 모여드는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민족 구원'이란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품는' 그런 비전과 큰 그림을, 이스라엘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저 내 한 몸, 직장생활 잘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복 받는 게 아니라요)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말일에 열방이 여호와의 산(문자적으로 시온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거기서 율법과 말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시온산과 이스라엘이 그냥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고 가르쳐 지는 곳,
그곳이 '여호와의 전의 산, 시온산'이 될 것이요,
열방이 그 산으로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비전과 기도제목을 우리가 품어야 합니다.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열방에 가르쳐지고, 선포되어질 때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고 전쟁이 그칠 것입니다.
위 4절은 다소 후천년설 적인 세계관입니다. (*천년왕국 후 재림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 같은 평화스런 천국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도 일면 맞습니다. 절대 틀린 개념은 아닙니다.
세상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어질 수록, 교육 - 의료 - 사회복지 - 사회 변화가 일어나면서
세상이 보다 더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모하는 것은.. 역사적 증명된 사실이죠.
(다만 아울러 세상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악해지고
죄악이 넘쳐나리라는 개념과 같이, 동전의 양면처럼 둘 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먼 미래를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세계 구원'입니다.
사실 이 '보편적 세계 구원' 사상은 창세기 때부터 나옵니다.
창12 :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된 하나님의 관심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2003~2011년 사이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함이다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테러를 사전 차단하고, 본거지를 없애기 위함이다.. 여러 각도의 분석이 있었지만
-'중동 이슬람 국가에 복음화의 문을 열기 위함이다' .. 이런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라크 지역으로 들어갔고,
아랍어로된 성경이 컨테이너로 보내졌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은 적도 있습니다.
전쟁은 쉽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인류의 비극이지만
하나님은 열방의 구원을 위해서는, 때로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방법도 허락하신다는 거죠.
하나님이 전쟁의 원인자 라는 뜻은 아니고, 전쟁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서,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살펴보는 <이사야서>도 크게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 전쟁'과 맞물린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말일에' 즉 '그 전쟁 끝에'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이 성취되리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이사야 당시에 일부 이루어졌고, (헬라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장차 신약 예수님 시대에 더 크게 이루어졌고,
세상 종말의 때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14:2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에 연합시켜 주실 것입니다. (14:1~2)
이것은 신약교회에서, 다 성취되었습니다.
에스더서에 ‘본토 백성이...유대인 되는 자가 많더라”는 말씀과, (에8:17)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라는 말씀처럼
갈대아인들과 각 나라 사람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슥2:11)
하나님은 유대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만민이 함께하는
거대한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사14:2
그래서 이스라엘은, 연합된 약자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 ‘민족들’로 번역한 단어(아밈)는, 이방인을 뜻하는 단어(고임)와 다르게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여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민족들을 데리고
자신들의 본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약적으로 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고레스 칙령으로,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던 여러 민족들이, 유다와 함께 해방되어서
각자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유다를 해방시키려던 하나님의 섭리에
열방과 민족들이 어부지리로 덕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장차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마귀의 나라에서 해방시키실 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열방이 이스라엘과 함께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을 예언했다..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66장에서 이렇게 예언 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사60:4)
이 말씀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에 성취되었습니다. (에스라1장)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14:2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땅에 돌아와서 생활이 안정되고 번영하게 되므로
함께 데리고 왔던 이방 나그네들을 노비를 삼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에 자신들을 사로잡았던 자를 도리어 사로잡게 되고
전에 자신들을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통치를 말하기보다는
가정적인 다스림(사랑과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 역전의 은총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61:6에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선택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이유와 목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받은 것은 열방을 향한 종교적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제사장’은 시내산 언약에서 제시한 ‘제사장 나라’를 일컫는 말이며, (출19:6)
‘하나님의 봉사자’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잊어버렸던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과 ‘하나님의 봉사자’의 사명을 다시 회복하여
감당하게 하시려고, 다시 선택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모압은 시온 산으로 피신하라 사16 :1~5
모압은 '이방 민족'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시기를 '모압은 시온산으로 피하라' 하십니다.
'열방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관심'입니다 .
모압은 유다나라의 동편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난 파도와 같이 밀려오는 앗수르의 공격을 받으면
지리적으로, 유다보다 먼저 파멸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앗수르가 유다 땅 예루살렘에 와서 패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14:25
그러므로 모압이 살 길은, 안전한 피난처인 시온을 향하여 떠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심판의 대상자인 모압이지만,
그들이 재앙을 피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15: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하나님이 모압을 위해 슬퍼 탄식하도다)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으니
패망으로 인하여 모압 나라 전체에 피난민들이 울면서 떠돌아다녔습니다.
'내 마음이'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을 뜻한다고 보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대변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봐도 됩니다.
하나님은 모압을 이방이라고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압도 사랑하십니다.
물론 모압의 교만과 저들의 범죄를 심판하시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16 :1절,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산으로 보낼지니라.
모압은, 방황하여 다니지 말고, 시온 산으로 가서 피신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 왕과 그 군대를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라고 표현하여
그 거대한 물결의 위력이 온 천지를 덮어서 초토화시킬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8:7)
'어린 양들을 드리되'
시온산으로 어린 양들을 보내라는 말은,
앗수르의 침입에 도주하는 입장이 된 모압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드려서 도움을 청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선물 중에 왜 하필 '어린 양들'을 드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하는가요?
또한 '시온 산'이라고 언급하는가? '유다'라고 하면 될 것을!
이것은 성전이 있는 시온산에, 제물이 되는 '어린 양들'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즉 모압은 시온 산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지금 국가적 재난을 당한 모압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이 땅 통치자’는 당시 유다를 통치하던 히스기야 왕을 가리킵니다.
통치자에게 어린양을 드리라는 것은 예물을 드려서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3절, 너(시온, 또는 남유다 왕)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야가 모압을 위해 예언했다고 보기도 하는데요..
후자로 해석하면,
모압이 시온의 왕에게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히브리어로 5개의 명령 동사가 나옵니다.
이것은 모압이 떠돌아만 다니지 말고
시온 왕에게 가서 구원을 요청하라는 하나님의 조언의 말씀입니다.
우리 정치권은 폭력정치를 일삼는 북한 정권에게 잘 보이려는 아부의 정책보다는
탈북자가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구출할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엉뚱한 정치적 계획보다, 북한의 전체 국민을 포용하고 구출할 계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뜨거운 대낮의 태양에서 밤처럼 그늘을 만들어 주소서.
불쌍하게 피난온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인권적 차원에서 마땅한 일입니다.
‘쫓겨난 자를 숨기며’
모압의 피난민들을, 남유다가 받아달라는 요청입니다.
미국 국가가 세계에서 좋게 평가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래도 어떤 나라보다는 인권을 존중히 여기고,
세계적 난민들을 수용하여 공부시켜주고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준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사상이, 본문의 주제인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관심"에서 나온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때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한 일입니다.
여러분, 3절을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말세에는 모압으로 대표되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찾아 교회로 나아오게 될 것인데,
진정 그들을 숨겨주고, 그늘이 되어줄
진정한 참 교회(본문의 시온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정말 세상 사람들에게 피난처요, 안식처요, 산성과 방패가 되어주는 것이..
신약 교회의 사명입니다.
▲16:4절, (이 구절 개역성경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을 선택했습니다.)
모압에서 쫓겨난 자들을 너와 함께 살게 하고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 침략자를 피하게 하여라.
억누르던 자가 없어져 침략이 멎고 마구 짓밟던 자들이 이 땅에서 사라질 때, (공동번역)
유다는 모압의 피난처가 되어, 정의를 구하고 공의를 베풀라는 것입니다(4~5절).
여기 눈여겨 볼 것은 “나의 쫓겨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모압 사람들이 비록 이스라엘의 원수노릇을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며 업신여겼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나의 쫓겨난 자들”(My outcasts)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영원히 버리신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탄식하셨으며, (사15:5)
그들의 구원을 위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북이스라엘도 전쟁을 통해서 구원을 받으리라 사17 :7~8
북왕국은 르호보암 때 쪼개져서 10지파가 독립한 이후로
2백년 동안 19명의 왕에 의해 다스려졌는데, *주전922~722
그 중에 선한 왕이 한 명도 없었고,
초대 여로보암 때부터 유월절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같은 선지자가 있어서 북이스라엘의 타락을 막아보려고 안간 힘을 썼으나
대체로 거의 '이방'과 다름 없는 나라였습니다.
이사야는 놀랍게도,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7:7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8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너무나 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란 앗수르를 통한 심판의 날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깨닫고 돌이키지만
그 날은, 다 망하고 난 날입니다.
그들이 엄청난 실패와 환난을 겪게 되자 그때서야 자신들이 열심히 찾아다니던 우상,
제단은 찾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도움을 받겠다고 찾아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북이스라엘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히스기야 때, 극소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대하30:1~12
그들은 히스기야의 초대에 응하여,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대하30:11
다만 이 때는 북왕국이 앗수르에 패망하여, 나라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러니 국경선도 무너져서, 남북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였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무너뜨리도록.. 방치, 방관,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중에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선지자 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만 예언한 게 아닙니다.
'온 세상 열방'을 향하여 예언했고, '열방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선포했습니다.
그 중에는 '북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4. 구스인도 여호와 앞에 나아오리라 사18:7
사18 :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에티오피아)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그 때에’
앗수르의 패망이 있은 직후
구스 (에티오피아)가 시온 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예물드릴 것을 미리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이것을 통하여 먼 미래에 세계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할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을 내다보는
이중적인 전망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2:2~4, 습3:10, 행8:26-39).
이는 시편 기자가 노래한 바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시68:31)
하나님께서 침략자 앗수르 군대를 때려 부수고 패퇴케 하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시온 산에 이르러, 예물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왕 히스기야 때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후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보물을 히스기야 왕에게 드렸다고 했습니다. (대하32:22~23)
물론 신약에 구스의 대신 간다게가 예루살렘에 와서 구원 받은 적도 있으며, 행8:27~
구스를 포함한 아프리카인들이 구원 받는 일이 종말에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5. 애굽인도 앗수르와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오리라 사19 :18~25
▲18절,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멸망의 성읍'은 ‘태양의 도성’(Heliopolis)을 가리킵니다.
선지자는 두려움의 정점에서 애굽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하는 다섯 성읍을 세울 것입니다.
장차 애굽 땅에는 가나안 방언, 즉 히브리 언어를 사용하는 도성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맹세하게 될 것입니다.
태양신을 섬기고 황제 숭배사상으로 물들어 있던 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거역적인 행동만 하던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도성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곳은 예레미야44:1에 나와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믹돌,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장망성(Heliopolis)라고 했습니다.
▲19절,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처럼 애굽도 장차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헌신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단과 기둥을 세울 것입니다.
애굽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질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 예배의 제단을 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기를 원하시며, (사66:23)
이방 사람들을 택하여 예배를 돕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우실 것입니다. (사66:21)
▲20절,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애굽을 이스라엘과 똑같이 대우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를 계획하셨는데, (사2:1~3)
마침내 애굽 땅에 우상숭배의 제단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참 하나님의 예배 중심의 도시가 형성되고, 예배의 제단이 세워지며,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들이 세우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의 성취의 증거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이런 표적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적 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중심, 하나님의 계획,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참여할 선택된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땅의 있는 모든 족속이 신령한 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기 구원자, 보호자는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애굽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신앙을 좋게 보아서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애굽에 편만해질 것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전절의 구원의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킵니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예물을 드려 경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은
엄청난 은총인 것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바로왕과 애굽 사람들을 향하여 바라셨던 것입니다(출5:2, 8:10, 22, 11:7).
또한 미래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날
애굽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배하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신앙적 자격과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작정만 한다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녀보다 더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56:4~7)
▲22절,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자격과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라고 가려내시고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롬3:29).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격을 주시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고통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동일하게 적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이 그의 우주적(=보편적) 계획이십니다.
*universal이란 말을 ‘우주적’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보편적’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둘은 같은 말입니다.
▲23절,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애굽과 관련하여 보다 확대된 전 세계적인 전망이 펼쳐집니다.
선지자의 시대에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두 나라,
즉 유다를 중심하여 각각 남과 북에 위치하고 있던 애굽과 앗수르가
이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마치 친구처럼 서로 왕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유다는 이 두 나라를 잇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선지자의 세계주의적, 평화주의적 비전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1) 그날에 유다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끊어진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2) 유다를 교량으로 하여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가로놓인 전쟁의 통로가
그날에 복음의 통로, 평화의 대로로 바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시고 이 둘을 화목하게 하심같이,
신자들은 분열되고 갈라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며, (마5:9, 엡2:14-18)
둘째, 애굽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관계의 우선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며,
그럴 때에 적대적인 관계들도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엡 2:13)
하나님께서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23~25절)
이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스라엘이나 애굽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로 확산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주적인 것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대로가 생겨 구원의 은총이 확산 될 것입니다. (23절)
이 말씀은 알렉산더 대왕 때에 성취된 말씀입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팔레스틴과 페르시아가 있던 동방 지역,
애굽을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면서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정치뿐만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통일 정책을 펼치므로
세계가 아테네로 대로가 생겼고
헬라가 망해 로마 제국이 세워진 후에도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도로는 로마로'라는 말이 생겨나서
초대교회 시대까지 교통이 원활하게 만든 것입니다.
앗수르 사람이 애굽으로 가기가 쉬워졌고,
애굽 사람들도 앗수르로 가기가 쉽게 대로(大路)가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복음이 온 세계로 쉽게 확산되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하신 계획’대로 앗수르 사람과 애굽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24절,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그날에 이스라엘이...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온 세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초강대국,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이스라엘이 셋 중의 하나로서 참가하게 될 것인데,
이를 통해서 이전에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중재해 주는 나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의 말씀의 실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창12:3)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애굽과 앗수르까지도 함께 ‘하나님의 복’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를 대표로 말씀한 것일 뿐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되는 것이 ‘우주적 계획’인 것입니다.
▲25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영적으로 연합된 세 나라에 대한 축복 선언으로 본장은 마감됩니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배타적으로 허락되었던 권리와 영예로운 이름이
애굽과 앗수르에게까지 확대 적용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먼저, 애굽은 ‘나의 백성’(아미)이라 불리웁니다. :25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10:24, 렘11:4, 호1:10, 2:23).
그리고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이라 불리웁니다. :25
이는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수고로운 작품이란 말입니다. (60:21, 64:8, 시119:73, 138:8).
이전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 받았던 앗수르가, (10:5)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탈바꿈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나의 산업’이란 이름이 그대로 주어집니다.
(신4:20, 32:9, 시28:9, 47:4, 94:5, 미가7:14).
이 놀라운 예언은 16~25절에서 무려 6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날’, 곧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어질 신약 시대에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애신 것에 대한
성취의 말씀인 것입니다(롬10:12).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향하여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인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열고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어떤 사람도, 어떤 민족도 멸망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모두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착각하지 마십시다.
좁은 소견을 갖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십시다..
◑6. 두로의 회복에 드러난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 사23:15~18
▲15절,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70년이란 기간은 남유다의 바벨론 포로의 시한과 일치합니다.
70년 후에, 유다가 회복될 때,
그 즈음에, 70년 후에 두로도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두로가 패망하고 70년 후에 다시 회복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두로의 회복을.. 먼 세상 종말의 회복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1)
종말에 범이슬람 상권이 회복될 것이며, 그 대표주자가 ‘두바이’라는 설입니다.
그런데 회복된 두로의 모습 속에는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가 있는가 하면, (:18)
깨닫지 못하고 옛 습관을 따라 사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7)
▲17절,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니' 입니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기인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70년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었지만 옛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방을 향해 음란을 행했다”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물질 추구를 위해서 부지런히 무역을 할 때,
물질의 우상을 추구했든지,
두로의 우상(바알, 성공주의)을 널리 전파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물질적 부요로 인한, 육체적 음란도 포함됩니다.
▲18절,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악한 시대라 할지라도 반드시 믿음을 가진 의인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70년의 고통을 보내고, 두로 중 일부는,
무역을 하면서 거기에서 나온 이익을 하나님께 거룩히 돌렸습니다.
이는 두로가 취한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일 자원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면
무역업의 발달로, 부유하게 되고,
그 부유함으로 인해서 교만했던 <두로>는,
그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중에, 두로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15
그때 두로는, 일부가 돌아올 것이지만, :18
일부는 여전히 과거의 음행과 미혹을 계속할 것입니다. :17
◑7. 야곱이 결실하여 온 지면을 채우리로다
▲27:4절,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질려와 형극이 ... 불사르리라’
'질려와 형극'은 이스라엘의 적들인 이방에 대한 묘사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대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불에 던져 버리신다는 말입니다.
찔레와 가시(앗수르, 또는 바벨론 등)가
포도원을 대적하여 싸운다 해도,
그들을 밟고 불사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포도원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열방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5절,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앞 절의 연속입니다.
질려와 형극 곧 교회의 대적에게는 양자택일,
즉, 하나님께 대적하여 멸절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와 화평을 누리든가.. 둘 중 하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4~5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열방을 향한 말씀으로 보입니다.
찔레와 가시가 되어서, 밟힘과 불사름을 당하지 않으려면,
<열방이> 하나님과 화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27:6절,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온 땅)을 채우리로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야곱의 뿌리’란 명백한 이스라엘 12부족의 나라, 곧 이스라엘의 회복을 뜻합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초괄하는 명칭이며
'지면에 채운다'는 말은 복음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3,19:24).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쉬운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세계가 그들(이스라엘)의 자녀로 가득 찰 것이다.’
사2:2에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일에, 세상 끝에,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을 위해,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물론 대적하는 자들이 더 많겠지만요)
그래서 사16:1~4에는, 모압은 시온산으로 피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을 받으라고 하셨고,
사18:7에는, 말일에 애굽이 시온산으로, 주께로 돌아올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사23:15~18에는, 두로 가운데, 일부가 회복되어, 돌아올 자들이 있을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11:9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은, <이스라엘만 상징하는 포도원>이었지만,
본문 사27장의 포도원은, <온 열방이 함께 들어올 수 있는 포도원>입니다.
열방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4절을 선택해서, 하나님과 전쟁할 것인가, 아니면 5절을 선택해서 화친할 것인가!
4절,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5절,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
주1) <두로의 회복은, 종말의 때에 범 이슬람권의 회복>이라는 설
사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과거에 두로는, 바벨론 땅의 멸망과 함께 두로의 찬란한 영광은 막을 내렸고
세계의 패권은 로마제국(다시스,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두로는 깃딤 곧 구부로의 작은 섬에서도 평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12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이중적 장치가 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의 그날이란 오직 주께서 정하신 그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그 날부터’란, 즉, ‘말세’입니다.
두로에게도 ‘70년’은 긴 휴식의 기간입니다.
그들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찬란한 영광과 함께 한 것이라면
이들의 중흥의 역사도 이스라엘의 칠십년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 기간이 차기까지는 그들은 더 이상 세상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제국을 재창출한 로마제국의 연한이 마칠 때까지
그 모든 패권을 다시스 곧 서방에 넘겨주고 쉼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함께 두로의 영광은 다시 재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로는 기생의 노래 뜻같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는 기생과 같이 뭇 사내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하는 정신적 주체를 뜻합니다.
말세에, 중동의 나라들은, 과거 당대 최고의 상술의 두로의 후예답게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혹시 사23:15절 이후에 예언된, 두로의 회복은 아닐까요?
두로(이슬람 상권)은, 단지 석유만을 팔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이슬람사원을 짓고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기묘한 노래가 불러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의 종주국이던 미국에 911 테러가 발생되었고
이슬람의 확산은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겉잡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 <두로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칠십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17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두시고, 두로를 다시 중흥케 하실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두로는 기생과 같이 세계 모든 나라들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며, 이 일들은 이미 우리가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18)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두로의 회복이, 하나님 나라에, 일부 기여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사야는, 사23장에서, 두로의 패망과 회복을 통해
갈대아 땅을 중심으로 패권을 이루던 나라들
곧 앗수르 제국, 바벨론 제국, 메대와 바사의 시대가 저물어 갈 것을 예고합니다.
이는 2천4백년 년 전, 아시아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행16장에,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간 것을
‘기독교의 아시아 시대의 종말, 유럽 시대의 도래’라고 말하는데,
역사의 패권을 놓고 볼 때,
아시아 시대의 종말과 유럽 시대의 도래는,
벌써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더의 등장으로, 헬라시대가 도래했고,
그것은 로마제국으로 이어졌습니다. (바울보다 4세기 앞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럽시대(대서양시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는 태평양시대(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또한 이슬람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중동은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였습니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서방의 부호들과 손을 잡고 세계경제를 쥐락펴락 하였습니다.
그들이 작은 기침 소리에도 세계의 증시는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시대를 구축하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였습니다.
중동의 화려함은 두바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부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모래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두로의 존재가 일절 언급되지 않습니다.
계시록에는 오직 '바벨론'만 나오는데, 바벨론은 초대교회 당시에 '로마제국'을 가리켰습니다.
그 로마제국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21세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3~6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은 계속 작성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