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출6:1~11 어떤 응답을 기다리는가?

LNCK 2021. 9. 27. 17:47

https://www.youtube.com/watch?v=i7aKsW97HSc

◈어떤 응답을 기다리는가?            출6:1~11                  2021.09.24.출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구원사적인 관점>에서 읽을 거야 되죠.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쭈욱 나오고 있는데 
그 모든 것 중요한 핵심적인 맥락이 뭐냐면 구원의 역사, 또는 구원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해 주셨죠. 

근데 구원사적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이에요. 
한 사람을 불러내시고, 그를 통해서 이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른 사건과 함께, 또 중요한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애굽과 바로로 표현되는 마귀의 세력에서 한 민족을 이끌어 내신 사건은
우리의 '구원'을 다루고 있으므로, 구원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 다음에 또 나타나는 구원사(구속사)적으로 중요한 큰 사건은
다윗 왕조를 세우신 일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구원史, 구속史'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압제 아래서 고통 하는 모습, 절망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바로 구원 받기 직전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게 본문에는 바로의 압제가 극에 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끌어 내기 직전에 모습이 
얼마나 정말 지옥 같은 가를 보여 주고 있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려고 하니까 
바로가 격렬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학대하는 거죠.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구원의 역사가 한번 일어나려고 하면요 
야단법석,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마귀도 자기 소유를 쉽게 안 내어줍니다.
자기가 지배하고 압제하고 있던 백성들을 내보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전에 없던 별 일들이 막 다 일어나는 겁니다.

마치 지금 이제 히브리 민족들 안에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일들이 난 것입니다. 
출애굽(구원)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즉 바로가 이제 더 심각한 압제를 하니까 백성들이 원망하는 거죠.
지도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의 위기 상황입니다. 

▲이때 모세가 할 일은 뭘까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백성들은 힘들어지면, 지도자를 향해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도자는 마음을 쏟아 놓은 데가 없어요. 외로운 자리입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지? 내가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한 일인데, 왜 이렇게 지금 모든 게 뒤엉켜버렸지?'

그래서 출5장 후반부에 보면, 이제 모세가 위급한 상황 속에서 기도를 합니다. 

출5:22~23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나는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순종한 것 뿐인데,
왜 제게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주십니까?'

우리들도 이렇게 학대를 받도록 내버려질 때가 있죠. 
하나님 말씀대로 하라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는데 
상황은 더 악화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참 난처한 거죠.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현실 상황이 지금 더 악화된 거잖아요. 
바로가 그냥 화가 나고 분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이전보다 더 학대하는 거죠.

▲모세의 출5장 마지막 절의 하소연적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출6: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출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응답이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죠. 
모세의 기도에 연이어 응답이 일어났으니까요. (5장끝절~6:1절)

그런데 어떻게 응답이 된 것입니까?
그게 오늘 우리가 보아야 될 관점 인데요. 
당면한 문제가 즉시 해결된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떤 응답을 기다릴 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어떤 응답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의 방식과는 다르게 응답하실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문제의 해결을 지금 당장 해 주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응답은 말씀을 통해서 먼저 응답하십니다  *설교 주제

 

하나님의 응답이 말씀으로 오는데

이 말씀이 앞서 하셨던 말씀,

출애굽에 대한 약속을 앞에 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재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을 지금 6:1절에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를 우리가 만나면, 한 시간이 좀 급하죠.

우리는 빨리 응답이 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빨리 해결 되기를 원해요.

 

오늘도 금요철야로 기도하러 왔는데요,

'하나님, 빨리 해결해 주십시오!' 이렇게 항상 우리는 좀 다급합니다.

 

근데 하나님은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시기 보다는

그냥 말씀만 해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응답'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만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주시면.. 응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여러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오셨을 터인데

그 기도를 할 때, 그 기도를 통해서만 응답해 주시는 게 아니고

'말씀을 통하여' 기도가 응답 될 때가 종종 있어요.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 거죠. 말씀에 확신이 생기는 식의 응답입니다. (아멘을 크게 하셔야 됩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음이 오면서 응답이 돼 버립니다.

희한한 역사입니다.

 

▲본문도 이런 상황입니다.

화끈한 걸 보여 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뭘 하시는가 하면,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자 말씀으로 어떻게 응답 하시는가요?

출6:2절에 '나는 여호와이니라'

6절에도 '나는 여호와라'

7절에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는 알지라'

8절 '나는 여호와라 하셨더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하게 다루시는 것은

'나는 여호와라, 나는 여호와라..'

 

모세의 탄원,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나는 여호와라'로 반복되고 있어요.

 

모세의 입장은 뭡니까?

'제가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겠는데요, 일단 제가 좀 급해요..'

근데 하나님의 응답은 '나는 여호와라!'

 

모세는 '아니, 급하다니까요'

근데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 이름을 계속 강조하고 계시는가요?

이미 창세기부터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알려주셨어요.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로 '엘샤다이' 혹은 '엘로힘'으로 알려주셨어요.

이런 이름들은 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이름들입니다.

'전능자' 혹은 '창조주 하나님'

 

근데 본문에서는 달라요.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강조하십니다.

근데 이것을 지금까지 전혀 만나 보지 못했던 이름입니다.

 

'여호와'는 애굽의 신들과 다른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해와 달 같은 자연신, 동물신(애니미즘)이었죠.

 

또한 성적인 신입니다.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도 둘의 성관계를 통해서 힘을 발휘하는

매우 비윤리적이며 성적인 특징이 이방 신들의 특징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저 애굽의 압박에서의 탈출만이 아니에요.

애굽의 신들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믿는 순간부터

우리의 과거의 모든 섬기던 신들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게 전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까? 온갖 잡신을 다 섬겼어요.

 

애굽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출애굽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시는 (즉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제 그걸 드러내시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다'

 

여호와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초월자 이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가운데 찾아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소개 받는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되는 일이지요.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 뭔가 하면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다 합쳐도

'여호와'를 아는 것과 비교가 안 돼요.

 

그동안 불렀던 하나님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부르는 통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그 이름은 달라요.

 

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는, 그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사용하시는데,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이란 뜻이 담겨 있어요. '여호와' 라는 이름에.

나는 여호와다.. 나는 너희와 언약을 하고, 그 언약을 절대 지키는 자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그 백성들을 이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엘샤다이' 능력의 하나님은 알았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 했어요.

 

근데 본문의 출애굽에 과정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이제 소개하시는데

'여호와'로서, 언약을 성실히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뭐냐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여호와'란 이름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담고 있습니다. 엘샤다이는 <능력>을 담고 있지만요.

성실히 언약을 지키시는 그 성품!

 

여러분, 능력은 대단한데, 성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를 믿을 수가 없죠.

 

이교도의 신들 가운데는 능력이 있는 신들이 있었어요.

막 능력을 행하는데, 때로는 폭군처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해를 끼칩니다.

인격이 동반되지 않은 신들이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가장은 능력이 많아요. 돈도 엄청 많아요.

근데 성품이 만약 개떡 같으면, 갑자기 막 폭군으로 돌변하면서 아주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 주면 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만약에 몇 번 능력을 베푸시는 것으로, 퍼포먼스 보여주시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기는 어렵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출애굽 한 것으로 끝나버리면.. 여러분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 백성들이 구원의 도구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약속이 성취되게 하려면

'능력'만으로 안 됩니다. '성품'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품보다 능력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성품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 능력은 위험한 거지요.

 

하나님은 능력과 성품을 함께 가지고 계십니다.

이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서 자라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실을 베푸시는 분 임을 믿을 때, 우리에게 큰 힘이 되죠.

 

모세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 성품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출6:3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이삭에게 동일하게, 야곱에게 변함없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처음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소개받은 이름이죠.

 

'내가 나다 I Am Who I Am'  하시면서,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출3:14

출애굽기에서 출3:15~16절에 처음 나오고, 그 다음에 본문 6장에서 비로소 나오고,

그 뒤로 아주 백 회 이상 자주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4:2, 4:26에도 '여호와'가 나오지만

본문 6장부터,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로 이제 <본격적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려 주시는 첫 번째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희를 이끌어 내는 그분은 여호와 이시다!

 

▲여러분, 우리 신앙이 어디 위에 세워져 있는 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번지 점프를 혹시 해보신 분이 계십니까?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리는 용기는 어디서 나옵니까?

그 용기의 근거는, 단단히 자기를 감싸고 있는 안전띠와 로프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까, 높은 데서 뛰어내리며 스릴을 즐기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는 안전띠가 뭐냐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별의별 어려움들을 다 겪고 갑니다. 삶을 아찔하게 하는 경험들이 많아요.

마치 번지 점프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벼랑 끝에 쓰는 때가 종종 있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데 불안한 거죠.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는 거죠.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능력과 재주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의 언약 안으로 들어갈 때

그  여호와(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란 뜻)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에

내 삶이 붙들려 있습니다. 그러니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가 없어요.

 

그 신실하심, 언약을 깨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그 성품,

그것이 우리를 꽁꽁 묶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수 없는 위기와 어려움들이 있어서 그냥 절망적인 상황에서

번지점프처럼 뛰어 내리지만.. 우리는 죽지 않아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때로는 고통이 있어요.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실패가 오지만..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언약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거죠.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겠다는 말씀을 출6: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나의 언약을 기억하겠다'

이 말씀은, 내가 잠시 깜빡 잊어버렸다가 다시 기억하겠다는 .. 말씀이 아니에요.

 

이제 때가 되어서, 조상들과 맺었던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성을 재차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실을 다 하시는 분이에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랑이 그 성실의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성실 : 변치 않으심

 

우리의 능력이 아니에요. 우리 자꾸 흔들리고 수도 없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을 의심할 때도 있고, 신앙도 오락가락하고

좋았다가 안좋았다가.. 합니다. (성실, 신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지만, 만약 우리의 믿음이 안전띠 역할을 하면, 아찔 아찔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오늘까지 지켜진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 때문입니다.

그게 내 신앙의 안전띠 라는 것입니다. 번지점프에 비유하자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는 여호와라 여호와라' 소개하시는 것은

고통받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이 됩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을 여호와로 아는 것이

문제에 대한 응답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문제가 빨리 응답 되는 것만이 좋은 응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누구인가를 알리시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러 분 보십시오, 내가 어떤 문제가 해결 됐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근데 만약에 내가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다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면,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면, 그 다음 또 내게 닥치는 문제는.. 해결이 쉬워져요.

 

우리가 문제 앞에서 답답해 하고 두려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가를 얘기하시는데,

영어성경으로 본문을 보면 참 재밌는 대목이 나오는데 'I will' 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를 표현하는 겁니다. '아이 윌, 아이 윌, 아이 윌'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의 손으로부터 건져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게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6:1절에 보면, 하나님의 손을 '강한 손'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인간의 의지와 완전히 구별됩니다.

그분의 의지는 아무도 꺾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성실함만 가지고 계시지 않고, 성실함과 함께

일을 이루어 내시는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실 거라는 의지를, I will 로 계속 표현하시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할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수동태 입니다.

 

여러분, 돌아보세요. 우리 인생의 중대한 고비고비마다

정말 중요한 일은 그 분이 하셨지, 우리가 한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의지 I will 로 이루어내신 일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했어요.

그렇지만 백성들이 반응은 9절에 보니까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출6:9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가 2가지 나옵니다.

 

-첫 번째 마음이 상해 있었기 때문이고   :9

-두 번째는 과도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그랬죠.  :9

 

1)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고 따랐지만,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니까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이지요. 그걸 마음이 상했다고.. 본문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니까 낙심한 거죠.

마음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도, 마음과 기분이 상해 버리면,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멘! 해도, 자기는 냉담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것인데, 우리의 힘든 현실보다 더 큰 어려움이 뭔가하면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이 아픈 (암)환자들도 그런 거 있잖아요.

몸이 너무 아프면요 밥이 안 먹혀요. 식욕이 없어요.

밥을 먹어도 영양으로 흡수되지 않고 그냥 배출해 버립니다.

심지어 음식 냄새만 맡아도 막 구토가 납니다.

 

2) 두 번째는, 모여 생활에 어려움이 너무 가중되니까,

즉 가혹한 노역으로 인하여, 환경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모세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거죠.

 

오늘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고에 짓눌려 있으면 말씀이 귀에 안 들려요.

눅8:14절에도 이런 사람이 나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 중에 '이생의 염려'가 있죠.

이게 싹의 기운을 막아 버리는 거죠.

 

이렇게 내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은혜 받는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거죠.

 

여러분, 내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야 됩니다.

 

문제가 골치 아프면 아플수록, 말씀에 더 매달려야 해결점이 나옵니다.

말씀의 응답을 받으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나를 칭칭 감고 있는 족쇄를 푸는 능력이 있는 것이죠.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 하면,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노예가 되어서 묶여 있는 자들처럼,

오늘 우리는 어디에 묶여 있습니까? 죄에 속박에 묶여 있잖아요.

오랜 죄의 습관이란 사슬에 칭칭 감겨 있습니다.

또 중독이란 체인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모든 속박, 결박에서 푸는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 속에 소망이 있고, 우리 인생의 열쇠가 있어요.

 

우리 오늘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거죠.

 

복음이 우리를 모든 속박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닥치고 생활이 안정이 안 될 때는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면서, 그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막 동분서주 합니다.

그래요 사람들이 막 분주하고 막 동분서주하는 이유는 불안하다는 거예요. 안정감이 없어요.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말씀이 나에게 들려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 펼쳐져도, 말씀이 들리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시는데도.. 안 듣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씀은요 엄청난 위력이 있어요.

여러분이 오늘 금요철야에 갖고 오신 기도 제목들도

말씀으로부터 먼저 해결이 되어야 됩니다. 말씀으로부터 응답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 속에서 소망이 막 일어납니다.

염려로 부터 자유함을 경험하는 거죠.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지는 역사가.. 말씀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다른 응답도 좋지만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진짜 응답이라는 거죠.

 

이스라엘에게 가장 지금 눈에 보이는 응답이,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씀이 들려지고 있다면, 그 말씀이 그들을 현실에서 인도할 텐데

그들은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현실의 어려운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중요한 것은, 당장 이 문제가 해결 되는데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제대로 들려지고 있는 가를 점검하셔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사무엘상에서 나타난 엘리 시대를 우리가 잘 압니다.

엘리 시대의 특징은 '말씀이 희귀한 시대' 였어요. 말씀이 잘 들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사 시대가 왜 어두운 시대였나요?

말씀이 들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은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이 듣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어요.

그 백성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안 하시면 거죠.

들을 자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어두운 시대에 특징은, 백성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갈급해야 합니다.

그저 듣는다고 다 듣는 게 아니에요.

 

▲예레미야서를 보면, 위기의 시대에 시드기야 왕 의 모습이 나오는데 인상적이에요.

렘37:17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그게 모든 걸 결정하니까요.

 

위기의 순간에 왕의 관심은 딴 게 아닙니다.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봉착하면 불안해요. 왜 불안한 거죠?

말씀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셨으면.. 위기의 순간에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보내고 계시는가요?

 

지금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지나가고 또 새로운 환경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인류 전체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거고

이 시대에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거고

우리 가정에 얘기 해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거고

우리 교회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거고, 한국교회에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거고,

우리 개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들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구하셔야 돼요.

 

이 코로나 사태가 지금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사태는 언젠가는 지나갈 거예요. 중요한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이 사태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이 하기 원하시는지..

우리가 잠잠히 주의 말씀을 기다리며, 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의 말, 전문가들의 말..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고는 하지만 그게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정보가 중요하지 않고

SNS에 떠도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뒤틀린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순서가 뒤집혀진 거예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면, 모든 게 어수선해져요. 당황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그 다음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난 다음!  

 

▲하나님은 말씀하시죠. 그리고 그 말씀은 말씀으로 끝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응답은 한순간에 이루어지기보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살면, 그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과 더불어 사는 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나에게 하나님이 계속 계속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물론 어떤 분에게는 어떤 용기를 계속 주실 수 있어요. 너무 낙심해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말씀을 가지고 계속 마귀를 공격하도록 하는 말씀을 주실 거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유혹으로부터 승리하게 하는 말씀을 주실 거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시는 말씀,

우리 안에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는 말씀... 이렇게 자기 입장에 꼭 맞는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그가 깨어 있어서 말씀을 사모할 때요!

 

그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기도하는 거죠.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는 붙들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확실히 붙들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흔들리지 않는 것을 붙들어야 되는데, 

흔들리지 않는 게 뭘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 성품은 성실하심, 즉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실 것이기에, 우리는 그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 어떤 위기,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약속을 더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 열심히 뛰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혼자 아무리 몸부림을 쳐봤자, 우리는 진정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그 약속에

우리가 붙들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지금 팬데믹으로 다들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말씀만이 우리를 살린다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기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있다는 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계속 작동되고 있다는 표입니다.

하나님이 '네게는 아직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출6:10~11절에, 드디어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모세에게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방식과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다!'

즉 '나는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100% 지키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 하시길 바랍니다. 찬양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앞으로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겠지만

결코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고, 그 언약의 말씀을 굳게 지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