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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판’의 예언 이사야34장 출처1, 출처2
본문은 이사야 28~35장까지의 ‘화와 복의 노래’ 중에서 마지막 부분입니다.
35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35장은 장차 도래할 메시아 나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경고하는 부분으로는 마지막입니다.
이사야 13~23장까지에서 유다와 주변의 10개 나라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했었는데,
오늘 본문은 그것의 종합 요약이기도 하고,
또 에돔을 들어서 말하는 구체적인 예시이기도 합니다.
본문 34장과, 다음 호에서 살펴볼 35장은 이사야서의 1부를 결론짓는 말씀입니다.
두 장의 주제는 34장에서 최종 심판을 말씀하고 있고
35장에서는 최종 구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열국과 민족들을 심판하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종적인 구속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세상 끝 날에도 대적자들을 먼저 심판하시고
택한 자들에게 영원한 구속의 약속을 주시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3장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13:30)
(마13:39~40)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13~23장까지 만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34장 본문은 그 심판에 대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우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지역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심판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의 칼로 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35장은, 위로와 회복의 말씀)
◑1. 하나님의 심판의 칼 (:5) 사34:1~7
▲1절,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들을지어다’라고 3번을 반복합니다.
성경의 3번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강조의 강조를 뜻합니다.
1:2에서 땅과 하늘을 소환했던 것처럼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지상에 거하는 모든 이민족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나 이 소환은 그들을 증인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예비된 심판의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땅에 충만한 것’과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은 시적 표현으로서
둘 다 ‘온 땅에 편만한 인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1)
이사야 선지자는 온 세계를 향해서 외칩니다.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세계에 모든 것들 즉 모든 피조물들은 들을지어다”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마지막의 인생이 비참하다면
그 인생은 비참한 인생을 살려고, 이제껏 살아온 것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마지막 결과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생애에 세상 끝 날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각 개인의 인생이 끝나는 날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끝 날에 대해
모든 민족들이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선지자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임하기 때문에 선지자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
▲2절,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
2절은 ‘대저’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대저’의 사전적인 의미는 ‘대체로 보아서’입니다.
그런데 ‘대저’로 번역된 히브리어단어 ‘키’는 원인과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래서 ‘대저’보다 ‘왜냐하면’이나 ‘그 이유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적절합니다.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 당하게 하셨은즉’
열국과 거기 속한 만군에 대한, 여호와의 격렬한 진노는
마치 옛 가나안 족속들처럼 ‘진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수6:17, 21, 삼상15:3)
“진노하시며” “분내사” “진멸하시며” “살륙케 하셨은즉”
하나님의 진노가 온 천지에 가득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던 이 지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까지 보냈지만
세상은 끝까지 예수를 외면하였고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참으로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제 세상 속에서, 그 어떤 구원도 미련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인류는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3절, 그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여호와의 극심한 진노와 그에 뒤따르는 가공할 장면이 묘사됩니다.
살육 당한 자의 수효가 너무 많기 때문에, 땅에 묻지도 못하고 다만 내어 던지게 됩니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풍기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하고, (겔39:11 이하 참조)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산들마저 녹습니다.
즉, 피가 강물처럼, 산들을 씻어 흘러내립니다.
계시록에서는 여기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14:19~20)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라는 말씀처럼
사람의 피가 말굴레까지 차서 일천 육백 스다디온까지 퍼졌다고 하였습니다.
1600스타디온은 약 320km에 해당합니다.
1600 스타디온은(340km) 팔레스타인의 전체 길이로서
이것은 곧 전국적인 처절한 살육을 의미합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340킬로가 피바다를 이루는 처참한 모습이 상상이 가십니까?
▲4절,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이러한 진노가 여기에서 멈추어 지지 않고 4절에 보면
천재지변까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도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계6:14)
예수님도 이러한 재앙은
창세 이래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마24:21) 하였습니다.
이러한 재앙 속에서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5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6절에서도 ‘여호와의 칼이 피에 만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5절,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에돔’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에서의 후손으로서
끊임없이 남유다를 훼방하고 대적하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B.C. 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협조했으며
이로 인해 에돔은 이스라엘의 제1의 증오 대상이 되었습니다(겔35장 참조).
하여튼 에돔은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해서
‘멸망하기로 정한 백성’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25:9~12에서 ‘모압’이 하나님 백성의 전형적인 원수로 취급된 것과 유사합니다.)
▲6절,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
사람이 번제와 속죄제 등을 드릴 때 짐승을 희생제물삼아 드립니다.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잡음으로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을
짐승을 잡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국이 다 죽어야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에돔을 희생제물로 드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에돔으로 대표되는 열국의 진멸을 ‘희생 제사’에 비교합니다.
이는 동물들이 하나님의 예배와 영광을 위해 살육되는 것처럼,
에돔의 멸망..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작은 ‘어린 양’과 ‘염소’와 ‘수양’은 에돔의 평민들을 지칭하며,
몸집이 큰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는 에돔의 영주들을 상징합니다.
‘들소’는 다른 곳에서 희생 동물로서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서,
이마에 뿔이 달려 있으며 ‘힘’의 상징으로 자주 나옵니다.
아마도 이는, 다른 곳에서 드려진 것보다도 더 큰 대규모의 희생 제사가
‘보스라’와 ‘에돔 땅’에서 드려질 것과
또 이 살육에서 제외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을 암시합니다.
▲7절,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함께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특이한 점은, 본 34장에서 에돔 족속을 5번이나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돔이 누구의 후손들입니까?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쌍둥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에서와 야곱이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직분을 가볍게 여겨,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직분을
동생 야곱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자의 직분을 가볍게 여긴 에서를 미워하셨습니다.
(말1: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왜 만국의 심판에, ‘에돔’을 대표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까?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긴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기는 잘 하는데 간직하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노아가, 세상이 홍수로 심판받는 가운데서 특별히 택함 받은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창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피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날마다 하나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 사34:8~15
▲8절,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
본문은 ‘왜냐하면’(히. 키)이라는 접속사로 시작됩니다.
즉, 여호와께서 에돔을 이토록 잔혹하게 진멸하시는 이유가 제시됩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왜냐하면) 여호와의 복수’라고 말합니다.
그 복수는, 에돔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고 핍박을 받아온
시온을 위한 것입니다.
에돔은 시온에 대한 그들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복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감정적인 응징이 아닙니다.
‘복수’(나캄)는 어느 한 쪽의 폭압적인 범죄로 인해
어그러지고 뒤틀린 상태를 바로 잡고 균등케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는 평행하는 단어 ‘신원함’(쉴루밈)이라는 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9절,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
에돔이 불타는 역청과 유황으로 황폐해 질 것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나님께 불로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9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어떻게 보수(보복)하십니까?
불로써 보수할 것입니다.
‘불붙은 역청’
화산이 폭발하여 유황이 흘러내리고 지진이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노아 때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마지막 때는 불로 세상을 태워 심판하시고 보복하실 것입니다.
불 심판으로, 세상의 모든 더러운 죄악을 도말하시고
모든 악의 세력들에게 철저한 원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10절,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에돔(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이 묘사는 파괴된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서 범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표상입니다. (유1:7).
‘역청’과 ‘유황’은 모두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어서
한번 점화되면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타오릅니다.
본문의 표현은 특히 에돔이 사해에 근접해 있고
그곳에 화산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했을 것입니다.
한편, 꺼지지 않는 불과 끊임없이 떠오르는 연기는, 세상의 종말을 암시합니다. (계19:3)
▲11절,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당아, 고슴도치, 부엉이, 까마귀 중에서
까마귀만이 분명하게 확인될 뿐,
그 나머지는 무슨 짐승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주2)
비슷하게 당아, 고슴도치, 부엉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줄’과 ‘추’는 건축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에돔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파괴하는 일에 이것들을 사용하십니다.
그 작업의 결과, 여호와께서는 ‘혼란’(토후)과 ‘공허’(보후)라는 말에서 암시된 것처럼,
창조 때의 무질서(창1:2, 혼돈, 공허와 같은 단어)하고 혼돈스러운 상태 속으로
에돔을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말1:4, 5 참조)
11~15절에서, 12종류의 짐승들을 언급하면서 에돔이 황폐한 곳이 될 것처럼
마지막 때에 세상도 황폐화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짐승들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이시므로,
마지막 때 인간들은, 단 한사람도 살아남은 자가 없을 것이지만,
짐승들은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본 단락의 주제는, ‘동물 보호’가 그 주제가 아니라,
에돔(세상)은, 동물들이 거하는, 황량한 벌판으로 망한다는 뜻입니다.
▲12절,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이는 세속 귀족들이 모여 새로운 왕을 선출하는 군주국이었던 에돔에
이러한 일이 끊어질 것을 말하니
곧 왕국으로서의 에돔의 운명이 끝장날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세상 나라들도 이렇게 망할 것입니다.
▲13절,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시랑’(타님)은 사막에 사는 야수의 일종을 가리키는데, (13:22, 렘9:11),
‘재칼’ 혹은 ‘이리’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욥30:29에도 ‘시랑’과 ‘타조’가 함께 나옵니다.
▲14절,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들짐승’(치임)은 광야에서 거주하는 동물들을 가리키며,
‘이리’(이임)는 ‘울부짖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치임’과 ‘이임’은 형태와 소리가 비슷한 두 개의 다른 낱말이 어우러져서
언어유희 word play의 효과를 가져 옵니다.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수염소’와 ‘올빼미’는 마귀적 속성의 동물들의 상징입니다.
이런 못된 짐승들이
이전에 왕과 방백들이 잠자던 궁궐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그 정도로, 세상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15절,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또한 솔개들이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일 것이라고 합니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 보면 사자들이 들소를 잡아서 먹고 나면,
독수리들이 여러 마리가 날아와 남은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날개를 퍼덕여 싸우곤 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얼마나 황폐하여 죽은 사체가 많은지, 솔개들이 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 짝과 함께 천천히 먹어도 먹이가 남아도는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사람이 살던 곳에, 광야의 야수들이 깃들어 살 뿐 아니라
그곳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계속적으로 번식하니,
이는 에돔의 파멸이 영구할 것을 말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사34:16~17
▲16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 말씀은 한국 교회에서 굉장히 오해가 되었던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서 읽어보라(자세히 읽어보라)
구약과 신약이 짝이 맞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모으셨기 때문이다”로 받아들였었습니다.
그것이 바르지 못한 해석인 결정적인 이유는 ‘여호와의 책’을 ‘성경’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까지는 글로 쓰여진 성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후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지금까지 황폐화된 에돔에 짐승들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성경이 짝이 맞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제 짝이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17절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17)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
하나님께서 제비를 던져서 에돔에 살 짐승들을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짐승들 중에서 암수 짝이 없는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뽑힌 짐승들이 대대로 거기에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다시는 에돔이 재건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14절도 그 말씀을 하고 있죠.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 (:14)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15)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17)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라고 한 말씀에서
"이것들이"라는 지시대명사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14~15절에 나오는 짐승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성경이 짝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다 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3)
'여호와의 책'은 66권 성경이 아니라, 어떤 여호와의 문서 또는 기록입니다.
(공동번역) '야훼의 기록을 찾아내어 읽어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그것들은 직접 야훼의 입에서 떨어진 분부를 받아 그의 입김으로 몰려온 것들이다.'
에돔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멸망하여,
그때부터 지금 21세기까지, 에돔은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놀랍게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12 종류의 짐승들의 서식지가
에돔 땅이 되어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불로 심판을 당한 세상은, 황폐한 땅이 될 것입니다.
▲17절,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
그 옛날 여호와께서 제비를 뽑고 줄로 재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처럼 (민26:55, 수18:4~10).
그와 동일한 방법과 그 세심함으로 에돔 땅을 나누어
혐오스러운 동물들에게 분배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7절의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하게 강조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 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가나안 땅을 제비 뽑고
그 땅을 줄로 재어 골고루 분배해 주셨듯이
에돔 땅은 반드시 폐허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천국의 가나안 땅이 예비 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세상은, 황폐한 곳이 되어
단 한 사람도, 그 땅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세상 종말을 전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모두 종말론을 전하기 때문에
정작 바른 종말론을 전하는 자들까지도 이단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세상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전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 일지는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지만
반드시 그 날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신앙생활 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날을 믿지 못하고 부인하고 외면한다면
그 날에 하나님의 말씀의 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 초림보다 예수님 재림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림이 약360번 정도 기록하고 있다면
재림은 5배나 더 많이 약1560번 정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시대가 오면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세 가지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세상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근신하라는 것인데 말과 행동을 조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마지막 때에
혼탁한 영적 시대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여 성령 충만 받아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언제 어느 때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임할지 모르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면 날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비추어보고
내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를 내 안에 이루어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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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노벨 Knobel은 ‘땅에 충만한 것’을 짐승들로,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을 식물들로 규정하고
선지자가 그 대상을 부르고 있는 순서에서
‘열국들→ 백성들→ 짐승들→ 식물들’의 점강법적 구조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는 임의적인 해석의 한 예일 뿐입니다
주2)
‘당아’(혹은 펠리칸)라고 번역된 ‘카아트’는
‘토하다’란 뜻의 ‘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아마도 그 새의 울음소리를 본따서 만든 말인 듯하다. (레11:18, 시102:6, 습2:14)
‘고슴도치’라고 번역된 ‘키포트’는
‘움츠리다’, ‘둥글게 굽다’는 뜻의 ‘카파드’ 동사에서 파생된 명칭이며,
‘부엉이’라고 번역된 ‘얀소프’는 탈무드에서 종종 나쁜 징조를 나타내는 새로 언급되는데
아마도 으스스한 소리를 내는 그 새의 울음소리에서 따온 말인 듯하다.
주3)
또한 본문 16절의 "여호와의 책"은 히브리어의 “쎄페르”로서 남성 단수 명사이다.
16절의 "이것들이(헤나)"가 여호와의 책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라면
"이것들" 역시 남성 단수 명사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16절의 "이것들이"는 히브리어의 [헤나]로서 여성 복수 지시 대명사로 되어 있다.
이렇게 원어의 용법으로 보아도 본문 16절의 짝은 짐승들의 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