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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말하다

LNCK 2021. 10. 19. 10:37

https://www.youtube.com/watch?v=3coMxhY-cW4 

(맨 아래 스크랩 동영상 있음)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말하다                                              출처

 

[2021 글로벌 로드맵 컨퍼런스] Day-1  이규현 목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또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으신 분들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상황이 이제 거의 터널을 벗어나는듯한 즈음에 
[2021 글로벌 로드맵 컨퍼런스]를 
미주와 함께 연합해서 온라인으로 열게 되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말하다>라는 주제인데요. 
이미 '코로나 시대'라는 주제에 관해 많은 책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읽어 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를 이미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시간에도 전체적으로 한번 살펴보면서 
답을 다 찾기는 어렵겠지만 
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도입 / 코로나 19사태로 받은 거대한 충격

 

코로나19가 처음 터졌을 때 우리가 받은 느낌은
1) 첫 번째로 우리는 다 놀랐죠. 
처음 만난 것이니까 놀랐고, 뭐 어떻게 해야 될지 그냥 속수무책이었어요. 
그야말로 '당했다'라는 표현을 해야 될 거에요.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조금 지나면 끝날 것 같았는데 끝나지 않고 계속 연이어져서 
벌써 2년이 경과했잖아요. 

엄청난 팬데믹 이라는 게 우리 지구촌을 덮치면서 
우리는 굉장히 놀라고 당황하고... 

2) 그러면서 두 번째 우리가 받은 느낌은 '무기력'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습니다. 

교회만 당황한 게 아닐 거예요.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영역이 다같이 겪었던 것이기 때문에 
밀려오는 당황함, 거기서 오는 무기력감,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한.. 그런 상황에 대한 절망감, 
올스톱 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교회도 그 상황 가운데서 답을 찾으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노력을 했는데
 
명확한 답은 찾지 못한 채, 
다양한 이슈도 이제 등장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 하면서 
어수선한 가운데 1년이 지나고.. 이제 무려 2년 가까이 된 것이죠. 

그리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코로나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충분한 레슨을 받았는가?' 
또 '코로나 상황에서 부딪혔던 수 없이 많이 떠오른 이슈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했고, 거기에서 레슨을 받았는가?  
또 미래를 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이 시점에서 해야 되겠죠. 

▲저는 요즘 '코로나 이후가 문제다'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거든요. 
코로나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아직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아직 커튼이 안 열려졌기 때문이죠.

그동안 코로나로 참 힘들었죠, 그죠?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이제 코로나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는 더 힘들 수 있다..
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지금 코로나 시국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위기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이지만,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는 위기는 벼랑 끝이잖아요. 

▲근데 사실 우리가 코로나를 당하면서 
한국 교회의 민낯이 다 드러났거든요.

보통 때는 모르는데, 배가 거친 파도를 만나면 
이제 그 배의 실력이 나오는 거잖아요. 

좌초를 당하든지, 아니면 막 휩쓸려 가던지, 
아니면 배의 곳곳에 물이 차든지.. 
위기를 만나면 어디든지 자기 민낯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한국교회의 민낯이 다 드러났거든요.

올해 말고, 작년(2020)에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는 
신천지가 당할 때는 구경하고 있었는데,

근데 이제 나중에는 한국교회로 그냥 언론들이 총공격을 하고 
이럴 때는 너무 당황했어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척 당황했죠. 

자 우리의 모든 실체들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교회의 모습들, 또 우리의 모습들, 우리의 실력들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교회 와 또 목회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기회가 됐죠. 

▲어쨌든 우리는 포스트코로나에 지금 준비된 상태인가? 
많은 경우에는 좀 막연한 경우도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에) 다음 세대를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에) 교회의 가정에 대한 접근들, 
 (즉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선도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사실 없어요. 

여전히 지금도 쇼크상태 있는 교회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읽어내고 있는가?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한 변화를 읽고 있는가? ..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변화는 많은데 
그 변화의 실체, 그 변화를 정확하게 진단을 할 수 있는가? .. 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성찰이 있어야 
답을 찾아 갈 텐데 
'이 변화가 도대체 어떤 거냐?' 하는 거죠.

그 변화를 읽지 못하면 결국은 큰 코 다치는 거거든요. 
그 변화를 읽지 못하면, 그 변화에 대한 마땅한 대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거대한 변화 앞에 교회가 준비 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휩쓸려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역사를 보면, 교회가 언제나 변화에 대해 대처가 가장 늦었어요. 

변화에 대한 둔감성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다 변했는데 교회는 맨 마지막에 변하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를 보니까 그렇다는 거죠.

'위기는 반복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전문가들에 의하면 '바이러스 사태도 앞으로 3~5년마다 계속 창궐할 것이다'
이런 영역의 전문가들의 얘기잖아요. 

그러면 이런 팬데믹이 앞으로 또다시 3년~5년 사이에 덮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건가요? 만만치 않은 주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우리의 성찰 또 진단" 
이런 것들이 이 시점에 꼭 필요하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들이 많죠. 

거대한 변화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패닉 상태입니다. 즉 충격 그 자체란 말입니다.
그래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굉장히 두려워하고 또 당황하고 
심리적으로 위축을 당하고... 

그래서 우리의 문화 전체를 다 바꿔놓았습니다.
즉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 놓고, 삶의 패턴을 바꿔 놓고, 
심리적 구조를 바꿔 놓고...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도들이 스스로의 신앙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예배의 변화가 일어났고
공동체 안에 모든 거리두기와 마스크.. 
이게 친밀한 관계를 다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여야 하는 교회의 속성에 
이 바이러스가 치명타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자들의 의식의 변화, 
어쩌면 코로나 이후에 우리가 맞이할 교인들은 
코로나 이전의 교인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개인주의의 심화는 두드러졌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영적으로도 굉장히 약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할 때, 성도들 중에 
-상위 20%는 코로나 같은 상황에도 변치 않는 사람들, 소위 부동층 
-코로나 상황에 흔들리는 유동층 60% 
-평소에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신자 20% 

그래서 중간에 60% 가 영적으로 굉장히 약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주 모이지 못하고 우리 모임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들이 드러나는 거죠.

이런 변화들, 그야말로 전 영역에서
내면적과 / 외면적으로
(무)의식과/ 심리적으로 
삶의 패턴과, 사고방식과, 가치관까지 
다 흔들어 놓는 팬데믹이었다... 는 것을 봅니다.

이런 변화들을 디테일하게 우리가 다 살펴 볼 수는 없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목회현장의 변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어제와 전혀 다른 내일! 

이제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지요. 
어제의 세상도 아니고 
또 우리가 포스트코로나에 맞이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상황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 것이고, 
전혀 다른 환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도전입니다. 
굉장한 도전임과 동시에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변화가 나타나는지, 먼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진단 속에서 우리는 길을 찾아야 되는데 
이게 모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정확하게 이 지점을 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길을 어떻게 선택해서 갈 것인가? 

좌우지간 우리는 앞으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돼요. 
그 선택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도전이 되는 겁니다. 
안 가본 길을 우리가 가게 되기 때문에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선택해야 되고, 

그 길을 걸어 가야 되는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오늘 교회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런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어진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근데 그 답이,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답입니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대 담론들, 
이 코로나 시기에 만들어졌던 거대 담론들을 우리가 붙잡아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이제 코로나가 터지면서 초기에 나온 책들은, 
톰 라이트 와 존 파이프의 책이 아주 대조적으로 이 이슈를 다루었어요.

그 다음에 월트 브루그만의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책도
성경을 근거해서 이 시대의 소망을 다루었습니다. 

존 H. 이워트의 <뉴노멀>           *새로운 일상 new nomal

이런 기본적인 책들이 우리에게 좀 인사이트를 주면서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한 성경적 고찰과 함께 
대안을 찾아가는 책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우리가 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가 잃은 게 뭐냐?
많이 있어요. 근데 두 가지만 제가 정리를 하면, 

▲1. 첫 번째는 교회의 대외적 신뢰의 (하락) 문제로 생각됩니다. 
교회의 공적 지위가 현저하게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뭐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많이 떨어졌어요. 
가톨릭, 불교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더 떨어진 거죠. 

 

특별히 또 모이기를 힘쓰는 게 개신교회의 특징인데... 
가톨릭은 원래 잘 안 모였고, 
절은 평소에 더 잘 안 모였고...

그런데 개신교는 열심히 모이는 게 특징인데
모임이 코로나 상황에서, 국가방역, 또 국가의 지나친 간섭 
뭐 이런 것과 갈등을 유발하면서 

일각에서는 마치 정부와 대치하는 듯한 이런 모습들도 보이고.. 
하여튼 여러 가지로 (또 뒤에 다루겠습니다마는)
교회의 공적/사회적 지위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질문하는 거죠.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 

우리도 해야 되는 질문인데 
세상도 이제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교회가 왜 존재하지? (혹 전염병을 퍼트리는 사회악 아냐?)' 
교회가 전염병 상황에서 굉장히 위험적인 존재로 (언론에 의해 부풀려져서) 
비춰진 것입니다.

뭐 사실성 유무나, 객관성을 따지기 전에 
이제 공론화 되어 있는 사회적 이슈가 되어 버렸어요. 

그게 한참 고조될 때는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어떤 분은 식당에 가서 식사 전에 기도를 하는데 
딱 주인이 오더니 '교회 다니느냐고, 그럼 나가라'고
그러면서 교회를 향해서 막 쌍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잘 모르는데 
교회 바깥으로 나갔을 때, 
직장에서도 교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생각보다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교회가 명확한 답을 주어야 돼죠.

근데 우리는 그 당시, 우리가 모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으로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어찌 됐든 우리가 비춰지는 모습은 
세상과 거리가 있는, 거리를 둔 교회... 

세상 안에서 교회가 있는, 즉 어울려 있는 모습이 아니고 
뭔가 게토화 되어 있는 교회,    *ghetto : 구획으로 분리된

세상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는 교회, 고립된 isolated 된 교회,
세상을 품는 교회의 모습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걸 '공공성의 부재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코로나 상황에서 굉장히 많이 이제 이슈가 된 것입니다. 
'그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대한 모습으로만 (세상에) 비춰지는 교회' 
그 이상의 그 무엇이 드러나지 않는 것 

즉 교회의 희생, 교회의 사랑 (적극적인 교회의 사회적 책임 감당)
이런 이미지를 전혀 세상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위기속에 보여준 교회는 

매우 허약했고 
'성장중심의 교회', 

개교회주의, 

신학의 부재.. 
이런 것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라고 봅니다.

한 마디로 '공적 지위의 약화' 
이것은 앞으로 이제 선교와 전도의 많은 부분에 
제약을 가져오게 되는 부정적 요인이 될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교회 내부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성도의 20% ~ 30% 유실을 지금 얘기해요. 

개 교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도시의 교회가 더 현저하게 감소를 느낄 겁니다. 

이것은 코로나 상황이 호전 돼도 꼼짝하지 않을 로스트 피플 lost people 이 생긴 거죠. 
한국 교회의 전체가 그렇게 떨어진다는 거죠.

저희 교단도 최근에 조사한 금년 통계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나왔습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코로나 사태로 통하여 <교회 공동체 의식의 약화>가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 그러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얻은 것은 뭔가요?

▲1. 첫 번째는 멈춤을 통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것은 유익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경험 했을 것이고,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달려 왔는가?' 
뭐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할 일이 대거 없어졌잖아요. 
모일 수가 없으니까요. 

뭐 심방을 갈 수 있나요? 
뭐 소그룹 모임을 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교회가 멈춰 버렸어요. 

그 동안 한국교회가 활동중심, 프로그램 중심, 
뭔가 의샤의샤 하는 모임 중심의, 활동 중심의 한국 교회로서는 
이 코로나가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던 거죠.

한국사회 자체가 분주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도, 목회도.. 계속 그 동안 분주함 가운데 달려 왔습니다.

계속 우리는 달려가야 하고, 무엇인가 쉬지 말고 해야 되고, 
그러니까 한국사회와 꼭 닮았죠. 
그 결과 탈진하고 소진되어져 가던 사회상과 많이 유사했습니다.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냥 뭔가 앞으로 막 달려가고 열심히 했는데 
멈춤을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었는데, 이제 멈추게 되어진 것이죠! 

그래서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성찰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사유의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게 큰 유익이라고 생각됩니다. 굉장히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유의 부재는 무엇입니까? 
경박성을 가져오죠. 그리고 피상적 사역이 되고 맙니다. 

한국교회 안을 들여다 보면, 이게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피상성이 주류 입니다.
뭘 많이는 하는데, 깊이가 깊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열심히는 하는데, 열매는 적고, 피곤하고 지치고 쓰러집니다.
목회자들은 탈진하고.. 한 5년만 하면 다 탈진하고 나가 떨어져버립니다.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멈추면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코로나로 멈출 때.. 불안 했잖아요. 

근데 이제 나중에 유익한 시간으로 바뀌어진 면도 있습니다.
평소보다도 많은 독서를 하게 되고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더 많이 이렇게 자기의 내적 충전을 위해서 시간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성찰이 안 되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또 어디론가 우리는 달려갈 텐데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도 목회자도 그냥 무조건 달려가기만 한다면.. 그럼 불보듯 뻔하다는 거죠. 

▲저는 아마 이제 포스트코로나에는 이제 갈라질(나눠질) 거라고 봅니다. 
코로나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목회자가, 또 교회가 뭘 준비했느냐에 따라 갈라진다고 봅니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거죠. 
교회에 대한 고민이 남달라야 된다는 거죠.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디로 갈 거냐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목회자로 다시 거듭나야 될 것인가? 

이런 거대 담론을 가지고 
좀 수준 있는, 깊이 있는 그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소화해내면서 
자기 내적인 힘을, 내공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성찰을 통한 채움이 없으면, 피상성으로 또 가야 되는 거거든요.
한국교회가 가볍다는 거잖아요.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가볍고 
목회자들이 교회를 대하는 태도도 가볍고 
교회도 너무 나이브(순진 미숙)한 프로그램으로 해 왔던 것..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존속할 수 없는 교회가 되기 때문에 
내적 채움, 깊은 성찰.. 
우리 시대에 대한 고민, 
열심히 하는 걸로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 하면, 한국교회 잖아요.
근데 이제는 열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목회자는 어디에 서 있는지, 
위기의 시대에 목회자는 어디에 서 있는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성찰의 시간을 우리에게 코로나가 가져다 주었다는 것은

이 팬데믹 시대에 굉장히 큰 유익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특별히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본질, 본질'이란 말을 자주 말하는데,
여러분, 역사를 보면 뭐가 보여요?
언제나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얘기예요. 

역사를 돌이켜서 보니까, 본질에서 언제나 벗어나 있었다는 거죠.
그 시대가 본질을 못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뒤늦게 깨닫는 거죠. 
우리는 본질을 말하지만, 본질에 비껴난 방향으로 갈 때가 많아요. 

근데 코로나19는,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의 본질을 묻게 되었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본질을 묻게 된 거죠.

즉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는 무엇인가, 지금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한국 교회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질문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본질을 확인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교회론적 질문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본질에 대한 강조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로 들어가면, 그저 담론에 그칠 뿐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본질은, 그저 이론적/담론적 이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의 문제는 현실과 치열하게 맞닿아 있게 되었습니다. 

본질을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절박하게 되는 것이죠. 

저도 사실 교회에 대한 고민을 평소에 많이 해 왔고 
이번에 책을 한 권 내기도 했지만
만족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교회에 대한 고민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긴 해요. 

교회론에 대한 고민,
목회 초년생 때부터 저는 그 고민이 진짜 많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고민을 했겠지만요. 

이런 본질에 대한 고민은, 결국은 오늘 교회의 생사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론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느긋한 태도로 본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교회론에 대한, 그 본질에 대한 접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보니까 이제 교회론 에 관한... 
'교회' 라는 단어는 없지만      *대신에 '공동체 community, 교제권 fellowship' 이런 말들을 쓰죠
사실 많은 신학적인 배경, 아주 탄탄한 배경을 한 책들, 
오늘 시대적 이슈를 담은 그런 <교회론적 책들>이 많이 나왔어요. 

읽어보면 감사한 책들이 참 많아요. 
그런 책들을 좀 더 읽고, 우리가 같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자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에 미친 영향이 
첫 번째는 역시 교회죠. 교회를 흔들어 놨습니다. 

교회의 기본들을 흔들어 놓았죠. 
교회론에 혼란이 일어났어요. 

'모이는 교회 - 흩어지는 교회'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예배의 대두! 

팬데믹이 교회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문제는
-교회론에 관한 성찰, 즉 교회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또 하나는 예배에 관한 성찰입니다.

교회의 이런 큰 주제, 큰 기둥들이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에클레시아에만 집중되어 왔습니다.
'흩어지는 교회'에 관해서는, 우리가 말은 많이 했고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모호한 개념으로만 남아있었죠.

그러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론이 재정립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론의 탄탄한 정립이 되지 않으면 
교인들을 이끌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답은 세상에서 찾을 게 아니고, 성경 안에서 찾아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세미나 시간들을 통해서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예배가 예배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도대체 뭐냐는 거죠. 

우리가 모이지 못할 때, 굉장히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또 많은 시시비비들이 있었습니다.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받은 충격이 컸죠. 
그래서 온라인 예배를 열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하기도 전에 
온라인 예배가 열려 버렸어요. 

이제 이미 온라인 예배는 
우리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어요. 

앞으로 어떤 형식의 예배를 드려야 되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온라인 예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인가?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설득력 있게 말해 줘야 돼요. 
온라인/ 오프라인 상관없이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는 어떠했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드려왔던 예배는, 본질적인 예배였는가?
또 온라인이 열렸다면, 이 온라인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 게 가장 좋은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2.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에 미친 영향은
<온라인 사역의 진전>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디지털 세계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제 거의 대부분의 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로 갔고,
이제 "온라인 교회"로 까지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
'온라인 교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디지털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세계가 앞당겨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도, 초기에는 서툴던 분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줌zoom으로 기도회를 하고, 줌으로 선교의 여러가지 보고도 받고 
기도회를 하는 것도 이제 익숙해지고, 굉장히 깊숙히 들어왔어요. 

어제도 우리는 이번에 가을 전도집회 하는데 
전도 대상자를 기록하는 것도, '수영로' 앱을 통해서 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IT가 중요한 목회의 틀이 되었습니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을 영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감을
이제 어느정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들은 그런 장비 구축에 또 많은 예산을 투자했습니다. 

역사 속에 우리는 문명의 새로운 이기들이 출현할 때마다
우리의 신앙과 삶과 또한 선교의 방향도 바꿔 놨습니다. 

이것이 우리 소통의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툴(도구)을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런 디지털의 유용성을 통해서 복음을 지구촌 전체로 실어 보내는 
굉장히 강력한 도구로, 또한 선교의 도구로도 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디지털은 이제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습니다. 

현실이 그렇다면, 소극적인 접근보다 적극적인 접근을 선택해야 됩니다. 

개 교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뉴노멀(새로운 일상) 시대에 핵심으로 떠오른 온라인, 
이것을 어떻게 열어가느냐에 따라
미래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다음세대로 내려갈수록, 이 부분은 더 비중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메타버스 라는 단어가 나온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으면서도 
급속하게 이미 우리의 문화에 그 단어가 대중화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이 세계에는 굉장히 깊숙하게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고 현실인 거죠. 

*메타버스 : 가상이나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이 지구에 우리가 매일 부대끼며 사는 현실의 세계가 있고,
디지털 미디어들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 즉 메타버스의 세계가 있다는 것

저는 요즘 목회를 하면서, 변화가 모든 게 너무 빨라요. 
너무 빠르게 디지털 사회가 진전이 되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오늘 젊은이들이나, 우리 다음 세대들이 겪고 있는 그 문화적 생태를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빨리 적응하고, 이미 대중화 되어 있는데
어른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될 것인가?
복음을 들어야할 새로운 대상에 대한 이해, 
그들에게 합당한 또 적절한 툴을 가지고 가야 된다면
인터넷은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사역의 공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디지털을 통한 접촉이, 성도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두려움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공동체성' 즉 함께 만나고, 스킨십을 하고, 펠로우십을 하는
과거 코이노니아 중심의 교회에서 
디지털 교회로의 변화는, 어떤 양날의 칼이 될 것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뜨거운 감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온라인예배,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주도권을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무시 못하는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설교를 
자기가 마음껏 컨트롤하며 들을 수 있는 환경,

예배의 모든 결정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그들이 
이제는 선택권을 각자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자가 예배의 시공간의 자유를 누리면서.. 
그로 인한 공교회의 모여서 드리는 공예배에 중요성이 
얼마나 또한 약화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우리에게 큰 난제 들이고 
이런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가다 보면 
자칫하면 우리가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전체적이며 통합적인 이해를 하면서 
우리가 굉장히 민감하게 접근해 가야 되겠죠. 

아무튼 온라인은 교회에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 온라인으로 인한 설교의 시장이 활발해졌어요. 

설교 유통이 굉장히 활발해지고, 
이제 설교가 온라인상에서 또 다른 하나의 영적 각축장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자기 교회를 다니면서,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 보다는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 더 깊이 감명을 받고 영향을 받고 있는.. 
그런 상황 속에 앉아 있는 대중을 어떻게 리딩해 갈 것인가? 
보통 주제가 아니지요!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교회에 도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아마 이제 포스트 코로나 상황이 되면 
그동안 눌러왔던 것들이 이제 폭발하는, 표출되는 
억눌려 왔던 게 팡 터지는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묻어두었던 다양한 이슈들이 그냥 봇물처럼 터져나오게 될 거에요. 
지금도 코로나 상황에서 굉장히 많은 자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엄청나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 블루' 라고 하는 어떤 우울증,
또한 자기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그래서 자살, 이혼, 젠드 이슈, 동성애, 실업, 폭력,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인한 
여러가지 사회적 갈등들이 마치 봇물처럼 터질 거예요. 

억눌려져있던 욕구의 분출들, 그로 인한 도덕적 해저드 (도덕성의 해이)
뭐 이게 불보듯 뻔합니다.

양극화의 문제, 세대 갈등의 증폭, 탈 교회적 현상의 심화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교회가 맞아야할 다양한 사역들, 현상들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의 목회적 과제

▲1. 첫 번째는 제도적 교회에서 영성의 교회로, 목회로 
전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것은 이전에도 제가 많이 강조했습니다.
제도적 교회, 전통적 모델로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건물이 있고, 조직이 있고, 직분이 있고...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는 기존의 모든 것들이 다 흔들려 버렸어요. 
우리는 조직의 강화가 아니라, 유기적 관계가 더 중요시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직분과 외적 활동이 중심이었던 조직적 교회로서는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제대로 깊이있게 채워줄 수 없다는 거죠. 

단순한 (교회)성장 중심의 모델도, 앞으로는 더 희망이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 미국에 있는 분으로부터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미국의 유진 피터슨의 '제자들의 교회'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사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미국의 주류가 아니잖아요. *1932~2018
사실은 주류교회, 제도적 교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취급되었던 분입니다. 
칼라가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영성 spirituality 를 주로 추구했음

근데 요즘 펜데믹으로, 그 분의 목회 방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제자들의 교회들이 지금 막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로 막 몰리고 있습니다.
영성(더 내면적인 신앙)에 관심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교회들은 형식화 되고 경직되었고, 
그런 것들은 현대의 오늘날 고통하는 세상 사람들을 품을 수가 없는 거죠. 

아마도 제도적 교회들은 앞으로 많이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건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교회들은 
인디펜던트 독립교회 들이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교단에 속하지 않은 교회들... 

이런 현상은, 지금은 영성이 필요한 시대다.. 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영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영성을 추구할 필요가 대두됩니다.

제도적 시스템에 갇혀 있는 전통적 교회가 
이제 좀 더 부드럽고, 복음을 수용한 가운데 복음을 풀어내는 

유기적 공동체로 전환되지 않으면 
미래에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문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장 현격한 변화는 사람들의 개인주의 입니다.

개인주의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심화되었지만 
코로나는 더 강력한 개인주의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어요.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이게 더 무서운 거죠. 
고립되어져 가는 사회! 
점점 사람들이 관계를 두려워하고, 관계 하는 것도 미숙해 하고요.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니까 
아이들이 관계를 통하여 경험해야 되는 것들이 중요한데
서로에게 교제가 없는 거죠. 관계가 미숙한 것입니다. 
관계가 두려워지고, 관계를 멀리하게 되고, 점점 고립되어져 가는 거죠.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조금 경험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 없는 모임은 안 됩니다. 이벤트 목회도 안 됩니다.
세상이 더 재밌으니까.. 무슨 재주로 교회를 세상보다 더 재밌게 할 방법이 있습니까? 

의미 있고 친밀한 성경적 코이노니아를 회복해야 됩니다.
조직상의 만남, 조직상의 관리.. 이제는 그거가 다 안 된다는 거지요. 
유기체적인 공동체로 나아야 됩니다. 

제일 큰 이슈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다음 세대입니다.
수도권은 더 심각해요. 왜냐면 더 오랫동안 문 닫았거든요.

그렇지만 비수도권은 그래도 어느 정도 소그룹 단위로 모였었거든요.
그러니까 모이지 못한 만큼 피해가 컸다고 볼 수 있고,
피해가 큰 만큼 복구가 어려운 것입니다.

아이들이 평소에도 교회 오기를 힘들어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예 발길을 끊어 버렸잖아요. 
여전히 온라인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 세대는, 부모세대와의 연결이 과제입니다. 

다양한 컨텐츠 개발은 물론이지만 
가정 안에서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가정과 함께 공조 사역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교회가 할 일은, 부모를 교육하는..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 
부모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일을 선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부모의 가정에서의 역할, 
가정이 영적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나 많은 프로그램들도 
전반적으로 전환을 해야 됩니다.

'가정 중심의 사역'을 교회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혜택 가운데 하나는 
'교회'라는 고정된 공간을 넘어서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교회당 안에서 해야한다'라는 이 기본적인 틀을 
코로나가 깰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당을 넘어서, 
교회 바깥에서, 어디에서든지 
즉 우리 일상에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가 영적 경험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외부로 확장성' 이게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혜택가운데 하나입니다.

'전통적 교회당' 이라는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어떤 전통적 시스템을 뛰어넘게 만드는 교회의 확장성! 
이게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큰 유익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란 개념도 우리가 많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가정을 영적 공간으로 만들어
가정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이 부분은 
한국교회에서 이제까지는 낯선 과제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회복하게 된 것이죠.

▲3. 교회의 치유와 회복의 기능을 회복해야 됩니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코로나 이후를 보십시오. 

(장기적 비대면 사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정신적 붕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우울증 환자들이
급증할 것입니다. 지금도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어요.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교회 조차 나오지 못하고 
은혜 받을 기회가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휴유증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교회가 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런 아픔, 고통,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 
가정적으로 그 파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품어내고, 녹여내고, 은혜로 회복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지난 여름 전에 이제 철야기도회를 좀 강력하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제게 들더라고요. 

왜냐면  상황을 보니까 막 다들 축축 처지니까..
목회자들도 처져 가고요..
그래서 '철야기도를 더 강력하게 해서, 이 처지는 분위기를 돌려놔야 되겠다'

그래서 좀 강력하게 철야기도회를 인도해 나갔는데
그때 교인들이 강력하게 반응하더라고요.

뭐 기도가 얼마나 뜨거운지.. 
'저분들이 그동안 힘들었는데, 불을 좀 붙이니까, 이제는 살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느껴졌어요.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좀 숨을 좀 쉴 것 같아요.' 
그런 반응이 오더라고요. 지금도 이제 그런 필요가 마찬가지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어느 날 새벽기도 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 철야기도를 한국교회 전체에 좀 불을 붙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비밀이 있는데, 금요철야가 비밀이 있습니다.(은혜가 풍성하다는 뜻)
그래서 제가 '금요철야에 대해서 책을 써야 되겠다'
그리고 '금요철야 컨퍼런스를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해야 되겠다. 
이 비밀을 한국교회 하고 좀 나누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알려 드려야 되겠죠, 좋은 것은 함께 나누어야 되겠죠.. 

책을 쓰든지, 컨퍼런스를 하든지 해서
우리가 가진 금요철야의 비밀을 외부로 공개하고,
여러 분들과 함께 나누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최근 이단들이 다시 기승을 부립니다. 
그리고 불건전한 신비주의적인 인터넷 사이트가 많아졌어요. 
우리 교회들이 거기에 다 노출되어 있어요. 

교회가 선제적으로 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성도들의 영적인 기갈을 회복시키고 채워 주고 
그 상처나고, 억눌려 있고, 그냥 시름시름 앓는 성도들을 향한 
강력한 성령의 불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對사회적인 치유와 회복의 기능을 교회가 해줘야 됩니다.

연약한 이웃, 방치된 우리의 이웃들이 많아요. 

여러분, 코로나 같은 재난이 일어나면, 없는 사람이 더 힘들어져요. 
거의 완전 벼랑끝에 서게 되는 거죠.
對사회적인 역할을 교회가 강화해야 됩니다.

구체적으로 지역을 끌어안는 전략들이 필요합니다. 
왜요? 재난을 당했으니까요. 

자살도, 이게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할 수 없는 게 
對사회적인 현상입니다.

제가 관계기관에 있는 분들을 만나니까 
'교회가 그 문제를 도와 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요. 
국가가 그것까지 일일이 음지를 다 돌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시대의 선택과 집중을 생각해 보면 

▲1. 첫 번째, 참된 예배를 더욱 지향해야 합니다.
온라인이든지/ 오프라인 이든지 정말 진정한 예배는 뭐냐? 
정말 우리가 살아있는 예배를 경험 하고 있는가? 

모이지 못할 때는, 교회 예배당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갈망했어요.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많은 경우에 형식화된 예배, 죽어있는 예배, 
그 예배 속에 영적으로 깊은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가 어디에서나 (가정에서, 줌으로) 진정한 예배를 드릴 때 
모여드리는 예배는 더 귀중해 지거든요.

이제 온라인 예배를 열어 놓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더 중요해 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오늘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가 예배다워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로 이미 들어와 버렸어요. 
그 가운데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친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교회에 올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진정한 예배란..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초월적 체험을 하게 하는 이 경험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물리적 한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릴 것인가? 
사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서 드리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공간은 매우 중요하지만, 공간을 넘어서는 참된 예배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 두번째는 말씀 사역이죠.
지금 이슈들, 수 없이 많은 오늘날 다원주의로 인해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그래서 목회자가 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뜨겁게 증거하는
그 능력이 드러나야 될 때이고,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그 문제들을 
말씀을 가지고 답을 해 줄 수 있는.. 
선포의 기능이 더 강력해진 시대가 될 것입니다. 

▲3.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격탄을 맞은 게 전도입니다. 상황은 더 어려워졌어요. 
전도지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는 안 되고 
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다가가야 하고, 
또 지역 교회가 갖는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진정성을 가진 전도로 다가갈 때, 
아직 교회의 전도의 문이 완전히 다 닫힌 건 아닌 거 같아요. 
전도해 보면 지금도 많은 사람이 반응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코로나로 인한 인간의 무기력, 죽음, 절망, 불안.. 
전도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전도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됩니다. 

그외 소그룹의 문제 등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통해서 앞으로
버림받은 교회가 될 것인가, 매력적인 교회가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점점 극복하며 나가고 있지만 
또 다른 팬데믹이 찾아오는 거죠. 
또 온다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요?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된 교회의 고립화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요?

자, 우리가 후기 현대 사회, 탈종교화, 탈교회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때 세상 속에서 교회의 영향력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신천지의 폐쇄성과 흡사한 한국의 (일부) 교회,
교회가 풀어야 될 과제입니다.

단순히 이제 뭐 전도지 들고 세상에 나가는 방식은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될 시기입니다. 
공공선을 추구해야 됩니다. 
교회론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거죠. 

또한 교회와 가정과의 연결,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코로나 라는 거대한 팬데믹 으로 일어난 변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는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고.. 그게 문제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자꾸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그래요.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전에 다니던 길이 없어져 버렸어요. 
이제 새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way maker 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이 단순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길이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굉장히 신경을 날카롭게 해서 진단하고 가야 돼요. 
지금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선생(먼저 가본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코로나 이후는, 우리가 풀어야 될 난제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그리고 난제들이 많다는 걸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도리어 기회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렵다는 말이지, 풀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이런 시대일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위험한 시도임에는 틀림없어요. 

많은 교회들이 실제로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제 편안하지 않아요.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됩니다. 
도전 해야 되고, 거칠게 좀 모험적이어야 합니다. 

위험하지만 시도해야 돼요. 
그러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여러분, 재난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 안에, 혐오, 배타성이 많이 넘쳐나게 되었어요. 
갈등 사회가 심화되었습니다.

이때 교회가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하게 붙들어야 될 단어 중에 하나는 '환대'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그것을 강조해서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대 하셨잖아요. 

우리가 교회 내부의 환대는 물론이요, 그리고 교회 바깥까지 끌어안는.. 
한국교회의 배타성을 극복하는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를 원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슬그머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면 큰일 납니다. 

새로운 일상 new nomal 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전과 다른 세상, 다른 교회, 다른 성도들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큰 그림을 좀 바라봐야 하겠고 
어찌됐던 이 교회의 건강성을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리고 우리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회복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원력이 얼마나 빠를수록 건강한 교회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한 교회로만 서 있다면
주님이 말씀하셨던 그 교회로만 서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교회는 세상에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혼란한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할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할 때 입니다. 

스캇 솔저가 지은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라는 책이 몇 해 전에 나왔습니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교회가 있어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교회, 교회는 강력해져야 합니다.

목회자들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영적으로 무장하고 
깨끗한 영혼으로 말씀의 검을 예리하게 갈아서
오늘 시대에 답이 되는 우리 사역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