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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가정교회 P1

LNCK 2021. 10. 23. 09:21

 

◈교회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가정교회 P1     P2      P3     마28:19~20         스크랩, 녹취

 

가정교회는 목회하는 한 가지 방법론이 아니고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를 회복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여러분이 동의하실지/말지 모르지만

적어도 가정교회 하시는 목회자들은

이것을 목표로 하면서 가정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적인 교회’라는 말은 어디에나 다 적용되는 것이고

모든 교회의 관행이나 또 조직이나

이런 것이 다 성경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이론이 끼어들고 관행이 뒤섞이면서

성경과 차츰 멀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교회의 지난 2천년 역사를 보면 다 그랬습니다.

 

가정교회가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이 될지/ 안 될지는 사실 모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단순한 성경해석과

-단순한 순종

이 두 가지 원리를 굳게 붙잡으면,

 

끝까지 성경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이런 의도로 저희들이 가정교회를 통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열매는 앞으로 40~50년 더 있어야 드러나게 되겠지만

아직 가정교회 식으로 목회한지 20여년 밖에 안 되지만,

‘이게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이나 원칙을 붙잡지 않고

‘성경대로’를 붙잡을 때

언제든지 성경 하나 붙들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면서

 

얼마든지 우리가 잘못되었으면 고쳐나가고

모자라면 보충한다.. 는 자세를 갖고서 계속 한다면

아마 1백년 후, 2백년 후 가정교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 때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와

조금 더 가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걸 해보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껏 한 20여년을 해 왔는데

성경적인 열매,

즉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게 되고,

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변화되고

교회 생활에 기쁨이 있더라.. 하는 이런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래서 살펴보니까, 약 4가지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성경대로’ 교회를 목회하기 위한 4가지 중요한 기둥(원칙)!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네 기둥’이라고 부르니다.

 

집을 지을 때, 기둥 네 개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것처럼..

기둥은 다시 말해 ‘기초’라는 말이죠.

 

◑1. 첫 번째 기둥 :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신 존재 목적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누구와 같으냐?’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시면서

‘내가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교회’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세우든지,

예를 들면 빌딩을 건축할 때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 따라서 구조도 달라지고 배치도 달라집니다.

건축하는 목적이 교육을 위한 거냐, 상업을 위한 거냐,

아니면 주거를 위한 건물인가?

이런 목적에 따라서, 건물의 구조나 배치가 달라지듯이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셨다’고 하셨을 때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목적!’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깊이 생각 안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보기에는

‘그럼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그 목적이 뭘까?’

 

여기에 따라서 ‘교회론’이 생겨서 복잡하게 설명해 버리면

그게 다 맞는 얘긴데.. (너무 복잡해서) 머리에는 안 들어옵니다.

 

저희 가정교회에서 해 보려고 하는 것은

‘단순성’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처음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비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지식)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영어 및 우리말 성경번역본만 해도 여러 개가 있고,

엄청난 논문이 출판되고 있고

기독교에 관한 엄청난 분량의 책이 출간되어 있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셀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초대교회에서 봤던 그 능력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순성을 상실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큰 문제를 당했을 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보통 어떤 겁니까?

무슨 말씀 하나 딱 붙들고 해결하지 않으세요? (해결책이 단순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 – 이것을 길게 얘기하면 안 되고..

긴 얘기들은 다 맞는 얘기지만.. 힘이 안 들어가 있습니다. 즉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신 목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뭐가 없을까? 살펴보다가..

 

▲저희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대사명’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너무나 여러분들이 잘 아시고

일년에 한 번 이상은 이 구절로 설교도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대 사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the great commission

교회의 존재 목적을 찾는다고 하면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이 말씀은 누구에게 주셨냐? 하는 것입니다.

 

일반 제자들이 아니라,

12제자입니다. 사도들입니다. 

 

12제자를 우리가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는 보낼 사, 무리 도 *使徒

 

사도는, 한 곳에 머물러 목회하지 않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지도자를 세우고, 다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교회개척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얼핏 생각하기에는 수제자 베드로가 담임을 해야할 것 같은데

야고보가 한 이유가 뭔가?

 

베드로의 사명은 ‘사도’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세우고

다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야되는 사도이기 때문에

(*다른 해석 있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사도로 봄)

 

이것이 사도에게 주어진 명령이니까

사도는 어디에 가든지 이것(교회 개척)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신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을 때

교회에 주신 그 사명, 교회의 존재목적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28:19~20절에 동사가 4개가 등장합니다.

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서 1개만 명령형이고, 나머지 3개는 분사입니다.

‘제자를 삼아’만 명령형이고, 나머지 3개는 분사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자를 삼아’라는 번역이 좀 약해 보입니다.

‘제자를 만들어라’가 좋다고 봅니다.

 

또 ‘제자를 삼아’ .. 이건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제자가 되는 것은, 외적 신분 상의 변화를 의미하진 않거든요.

 

마치 어느 재벌가에 가정교사로 들어갔다가, 그 집의 며느리가 될 때

‘며느리 삼았다’ 하는데... 이건 단순한 외적 신분상의 변화이거든요.

 

영어로 Make disciple 인데, 제자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그 존재 자체를 바꾸는.. 강력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가정교회에서 추구하는 ‘단순한 순종’이란 이런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 당시의 제자들 틈에 섞여 있었다고 가정할 때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 만들어라’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으로 방법론으로, 성경에는 그게 분사 participle로 나옵니다.

-가서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오늘날 우리가 마치 그 당시 제자들 틈에 섞여서

이 명령을 그대로 똑같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단순한 해석, 단순한 순종’이라는 것!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를 만들어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럼 ‘성경대로’가 뭔가 하면,

‘아~ 예수님이 제자를 만들어라 하셨으니까

그럼 내가 제자를 만들어야지!’ 하는 이런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자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제자란 무엇이냐?

-제자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갑론을박) 논의하는 것은 차제의 문제이고,

 

단순한 순종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그런 줄 알고, ‘제자를 만드는 실제 액션’입니다.

‘우리가 제자를 만들어야 되겠구나!’ 하며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성경대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나 목사님들이

‘제자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 이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의 특징이 뭡니까?’ 하고 세미나에서 물어보면
참석자들의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제자란 따르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입니다.

-닮는 사람입니다.

 

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제자가 아니라 학자가 키워지는 것입니다.

 

제자의 중요한 특징은 뭐냐 하면,

‘전수’입니다.

-배워서 전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원강사는 제자가 없고, 수강생만 있습니다.

왜냐면 가르치는 사람은 항상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항상 배우기만 하잖아요.

 

우리가 잘못 하면, 제자를 키운다고 하면서

수강을 키우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배워서 전수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제자훈련 하면서, 또 여기서 실수 할 수 있는데요.

그런 무엇을 배워서, 무엇을 전수하는가요?

 

그러면 이제 많은 분들이

‘복음입니다’

‘말씀입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서 어떤 데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있든지, 배우고 있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된다.. 라고까지 말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말씀을 배워서 전수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닌데,

그게 좁게 이해를 했기 때문에

자꾸만 제자가 아니라, 학자가 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는,

무엇을 배워서, 무엇을 전수시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배워서

예수님의 삶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이란 것도 굉장히 추상적이지요.

배워서 전수해야 될 예수님의 삶은

2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기 전 날, 폭탄선언을 하셨죠.

‘내가 너희가운데 한 명에게 배신당해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굉장히 두려워하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 말 중에 핵심은

‘내가 떠나는 게 너희에게 낫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는, 정해진 곳 한 군데 밖에 못 계십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만민을 구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낼 터인데

그가 내가 한 말을 너희에게 모두 기억나게 할 것이고

(무슨 약속까지 하셨냐면)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니라!’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4:12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P2 는 다음 토요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