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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함을 피하라 잠12:10 출처
[날마다 기막힌 새벽 #669]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잠12:10
(*악인은 긍휼을 베푼다해도 잔인하다. 그러니 평소에는 더 잔인)
제가 혼자 커서
동물들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개,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러지요.
저녁이 되면 제가 꼭
아파트를 이렇게 돌면서 운동하는데
우리 아파트에도 길고양이가 다섯 마리 있어요.
근데 이제 사람들이 먹을 것도 갖다주고 그러다 보니까
가서 이렇게 만지면 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운동하면서 고양이 한 번씩 인사하고
그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는데..
그래서 오늘 가축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까
이렇게 눈에 딱 뜨여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려고 그럽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동물과 식물을
우리의 식량으로
먹을거리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에게도 식물도 먹고
동물도 먹이로 허락하여 주셔서
사람이나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의 고기를 먹는 일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요,
질서 중의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을 보면
동물들이 이제 사냥을 하는데
사냥을 할 때
간단해요.
왜 사냥하나?
먹으려고만 사냥해요.
그리고 쌓아두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해서
사냥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리고 고통 없이 빨리 죽여요.
<동물의 왕국>이나 이런 거 볼 때
사자나 호랑이가
사슴이나 이런 약한 동물들 사냥해서 잡히면
제가 잠시 채널 바꿨다가 다시 보고 그러거든요.
짧은 시간이지만
고통당하면서 죽어 가는 거 보기 싫어서요.
그렇지만 그거 잠깐이에요.
그래서 치명적인 급소를 물어서
금방 고통 없이 죽게 하더라고요.
에스키모인이나 인디언들이 사냥을 하는데
에스키모인들은 주로 육식을 하잖아요.
추우니까 식물이나 채소가 많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니까
그래서 주로 육식을 하는데
그 에스키모인들이 참 훌륭하더라고요.
동물을 사냥할 때
동물을 고통 없이 죽이려고 하는 게
그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예의예요.
그리고 먹이 때문에 죽이지만, 그 생명을 귀히 여겨요.
귀히 여겨요.
그리고 가급적 고통 없이 빨리 숨을 끊는 것
고통없이 죽이는 것
그걸 볼 때
에스키모인들, 인디언들 참 훌륭하구나..
그 정신, 그 마음이 참 아름답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즘 잠언을 읽을 때
이제 가끔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어요.
'잔인'
'잔인'이라는 단어를 가끔 쓰시더라고요. *5:9, 11:17, 12:10, 17:11, 27:4
여러분 '잔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어리석음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잔인함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이 잔인이라는 것을 찾기는 참 어려워요.
여러분 에스키모인들이, 인디언들이
자기 먹을 것을 위하여
생존을 위하여 동물을 사냥하는 일을
'잔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요.
제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에스키모인들은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고통 없이 죽이려고
그리고 이제 감사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사람에게는 잔인함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스포츠로 사냥하는 것을 볼 때
오락으로 사냥하는 일은
저는 찬성하지 않아요.
또한 사냥을 하더래도
여러분 잔인하게 하는 것
덫을 놓아 사냥하는 것
이런 거 참 (잔인한 방식입니다)
여러분 덫에 걸린 짐승이
걸려서 죽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통을 당해야만 죽어요.
여러분 그건 (덫 놓기) 사람이 하면 안 됩니다.
저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우리는 이제 가축을 기르잖아요.
사냥을 하다가 이제 짐승을 길러서 하는데
먹기도 하지만
이제 그것이 비즈니스도 됐잖아요.
큰 사업이 됐잖아요.
돈에 욕심이 나서
여러분 동물들의 그 뭐라 그럴까
동물들이 인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분 동물들의 그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고통스럽게
운동도 하지 못하게 그냥 가둬 놓고
그리고 또 이제 뭐
저는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들이
그냥 새끼만 낳게 하려고
비참한 가운데 가둬서
그렇게 새끼만 낳다가 죽는
그런 일들을 할 때
저는 그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어야 돼요.
그리고 인자함이 있어야 돼요.
그걸 지난 시간에 우리는
'덕'이라는 말로도 표현했어요.
덕은 인자함이에요.
용기 있는 것도 중요하고
지혜로운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일은
온유함
인자함
덕 있는 마음인데
그것은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여러분 짐승에게까지라도
이 자연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품어야 해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땅을 정복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정복'이라는 말을 오해해요.
우리 세상적인 가치의 정복은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노예로 삼고 부리고.. 그러는 것이에요.
그래서 '땅을 정복하라' 그랬으니까
동물들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되고
'이거 다 우리 거다' 하고
짓밟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기독교의 정복의 개념은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기독교의 정복의 개념은 '섬김'이에요.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신 말씀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식물과 자연과 동물을
우리 보고 '섬기고, 보호하라' 하심이에요.
'내가 저들의 생명을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맡긴다.'
하는 것이에요.
저들이 어려움 없도록
고통당하지 않도록
저들도 잘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보호하고
저들의 생명을 보전해 줘라.. 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이에요.
▲근데 우리는 우리의 욕심 때문에
자연도 파괴하고
산림도 파괴하고
짐승도 고통스럽게 하고
잔인스럽고...
여러분 그래서 사람들이 벌을 받아요.
여러분 그것이 공해예요. 공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고
동물들을 함부로 살해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시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잖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잔인하면 안 돼요.
가축의 생명이라도 귀중히 여겨야 돼요.
가축 기르는 것은 우리가 먹기 위해서 기를 수 있어요.
팔기 위해서 기를 수 있어요.
결국은 도축하겠죠.
그렇지만 여러분 잔인해서는 안 돼요.
그것들을, 그 생명이 있는 동안은 잘 보호해주고
저들도 행복하게
저들도 기쁘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책임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 주셨어요.
여러분 개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요.
여러분 개도요.
이렇게 개 얼굴을 보면
눈을 보면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슬픔도 있고요.
외로움도 있고요.
미움도 있고요.
공포도 있고요.
행복도 있고요.
그거 다 읽을 수 있어요.
동물도 그걸 느낀다는 거예요.
여러분 동물들은 인간을 믿고 살아야 되잖아요.
특히 가축들은
여러분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능한 한 저들도 행복하게 해주려고
우리들 때문에 먹고 살고
잠자고 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돌보는 일,
이게 하나님이 주신
우리 창조의 책임이라는 것,
여러분이 기억하시고
환경도 보호하시고
자연도 귀히 여기시고
그리고 동물들, 가축들의 생명도 귀히 여기시고
그러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되기를 바랍니다.
▲근데 조금 더 지나치는 분들도 있어요.
지나치게 동물을 학대하거나
잔인하게 하는 사람들
매정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도에 지나치게
그러는 사람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는 건 알고 있지만
지나치지 않게
그저 동물은 동물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하는데
사람에 대해서도 인자하고
정을 베풀고 섬기고 축복하듯이
자연과 동물과 이 세상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세상을 사랑할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관리자로 맡기셨거든요.
그래서 오늘 저는 잠12:10절 말씀
지나갈 수도 있는 말씀인데
저는 그 말씀이 좋더라고요.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가축의 생명까지 돌보는 사람!
오늘 굉장히 중요한 단어예요.
그를 '의인'이라 그랬잖아요.
저희집 아이들이 대개 저 닮아서 그런지
개, 고양이를 참 좋아해요.
우리 막내 아이 같은 경우는
학교 다닐 때
길에서 집 잃은 개를 보면
학교도 안 가고
그 집 찾아 주느라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그랬던 걸 봤어요.
얼마 전에도 길고양이 하나가
집에 들어왔는데
그놈이 병들어 죽어 가니까
병원에 데리고 가더라고요.
치료비를 백만 원을 썼다나 그러더라고요.
아주 중병이 돼서
피를 갈아 줘야 되는데
결국 백만 원 썼는가 본데
그 고양이는 죽었어요.
백만 원이 적은 돈 아니지요.
특히 우리 아들한테는.
근데 저는 동물의 생명을 살리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번 돈 백만 원도 쓸 줄 아는
제 아이가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 가지고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엉뚱한 얘기를 했었습니다.
'의인은 가축의 생명을 돌본다.'
하는 이 단순한 말씀인데
잔인하지 말고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자연에게나
잔인한 사람 되지 않고
온유한 사람
인자한 사람
정이 많은 사람
저들을 돌보는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