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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위에 세워진 파숫군 사62:장 6~9 출처
우리 성도는 ‘헵시바’ 입니다.
‘헵시바’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 나의 기쁨이 네게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아도, 또 서로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이사야 62장 6~9절은 이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성도가 해야 될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 가운데는 어려운 일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도생활이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바쁜 일을 이유로 기도시간을 생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성도에게 바쁜 일이 생기면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그리고 놀러가는 것은 생략을 잘 안해도 기도시간은 쉽게 생략하곤 합니다.
둘째, 기도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기도하기 위해서는
영혼이 믿음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기도가 하기 싫어지고 기도를 해도 메마른 기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믿음이 약해질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고 신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이처럼 기도생활은 우리가 다 아는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의무인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동안 진행되어오는 교회역사 가운데 분명히 검증된 증거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으며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능히 뚫고 헤쳐나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기도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1. 성도의 두 직분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두 가지 직분을 주셨습니다.
▲첫째, 파숫군(watchman)의 직분입니다.
6절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파숫군입니다. 파숫군을 요즘말로는 보초 또는 초병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전쟁이 나면 성이 있는 도시마다 성벽위에 파숫군을 세워 도시를 지키게 했습니다.
파숫군은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파숫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로마제국당시 폼페이 라는 큰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기 79년 8월에 폼페이 근처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폼페이 주민 2만명이 화산재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남녀가 연애를 하다가 그만 화산재가 떨어져 그대로 화석이된 것도 있습니다.
또한 그 도시를 성벽위에서 지키던 파숫군들이 모두 자기자리를 옮기지 않고
창을 가지고 도시를 지키다가 화산재가 떨어져 그대로 화석이된 것들도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초병은 자기자리를 떠나면 안됩니다.
천사들에게도 각자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자리와 지위를 지키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마귀와 귀신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리가 뭔지를 알아야 하고 그 자리를 지킬 줄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파숫군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숫군은 경성(警省)해야 합니다.
파숫군들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졸지 말고 눈을 뜨고 있어야 됩니다.
시편 127편 1절에는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파숫군의 임무는 경성하는 것입니다.
보초가 졸거나 자는 것은 온 도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중범죄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은 조는 파숫군을 사형에 처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자리를 경성하고
기도하며 지키는 파숫군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숫군은 위험이 오면 잠잠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6절에는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숫군이 파수를 보는데 외적들이 처들어오면 “외적이 온다. 일어나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됩니다. 만약 파숫군이 한밤중이라고
‘모두 수면중일 테니 깨우면 안되겠다’하고 조용히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타락한 유대 지도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이사야 56장 10절에는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파숫군이 졸고 자며 누워 있으면 그 파숫군은 ‘벙어리개’이고
짐승들이 와서 그 도성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56장 9절에는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숫군은 낮이나 밤이나 파수해야 합니다.
폼페이의 군사들은 로마 황제들이 그들을 파숫군으로 임명하여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화산의 용암이 날라와 화산재가 그들을 덮쳐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숫군으로 세워주셨으니
낮이나 밤이나 잠잠치 말고 기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여호와를 기억나게 하는 자(remembrancer)의 직분입니다.
본문 6절 후반에는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군대에서 계급이 높은 지휘관에게는 그를 돕는 의전장교가 따라다닙니다.
이 의전장교의 사명은 지휘관에게 “오늘은 몇 시에 무슨 약속이 있고,
몇 시에 무슨 행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됩니다”하면서
하루의 스케줄을 알려드리고 약속한 것이 있으면
약속을 지키라고 깨닫게 하는 사명인 것입니다.
고대 동방국가의 왕들에게도 이런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기억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기억나게 하는 자는 왕이 백성들에게 약속한 것을 기록해 놓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 백성들에게 가서 “하수구를 고쳐 주겠습니다.
여기다가 뭘 세워 주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것을 다 기록해 놓습니다.
따라서 '기억나게 하는 자'(remembrancer)를 기록자(recorder) 라고도 합니다.
왕이 약속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가 “폐하, 오늘 이 약속을 지키셔야 하는 날입니다”라며
왕에게 그 약속을 깨우쳐 실현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6절 전반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잊어버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을 기억나게 해야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 생각나게 해서
그 약속 실현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기억나게 하는 자’ 혹은 ‘기록자’는 언제, 어디서 왕이 무슨 약속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기록해 놓고 있다가 왕에게 그 약속을 기억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왕이 그 약속을 지키는 왕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으로 기억나게 하셔서 그 약속을 실현하도록
하는 영적인 작업이다’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 성경에 이렇게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내게 실현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는 수없이 귀중한 약속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않으며 주장하지도 아니하면
그 약속의 실현을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사명은 파숫군처럼 잠잠치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기억나게 하는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 믿음이 충만해져서 마음에 감사가 오고 성령의 은혜와 기도응답,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심도 체험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게을리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부지런히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가지 명령
‘파숫군’과 ‘여호와로 기억나게 하는 자’라는 두 가지 직분을 가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첫째, 너희는 쉬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본문 6절 후반에는 ‘너희는 쉬지 말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기도에는 공중기도도 있고 개인기도도 있는데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는 개인기도를 잘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중기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독대하는 시간을 갖는 개인기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약해지면
기도가 약해져서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기도를 쉬지 말아야 됩니다.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를 쉬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께선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은 피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피곤한 상태를 이해는 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피곤으로 잠든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2장 4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군대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보초가 자면 적이 와서 그 보초의 생명과 총을 빼앗고
결국은 그 보초가 있는 곳을 통해 적이 침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초는 아무리 육신이 피곤해도 졸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면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피곤해도 금요철야와 새벽기도에 나오셔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기도를 쉬지 말아야 됩니다.
어느 누구도 기도를 충분히 했다고 자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마치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아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르막길 3분의 2 정도를 올라갔다가 ‘내가 많이 올라 왔으니
이제는 페달을 놓자’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자전거가 뒤로 곤두박질해서 출발한 제자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기도 많이 한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기도를 하고 앞으로도 기도를 많이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응답이 없어서 낙심이 된다는 이유로 기도를 쉬지 말아야 됩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인이 스펄젼 목사님을 찾아와서 “나는 우리 남편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지금부터 10년을 기도하겠습니다. 그래도 안 들어 주시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안들어 주시는 분으로 알고
내가 더 이상 기도를 안할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도 안 나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젼 목사님께서 “자기 달력에다가 시간을 정해놓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 시간까지 기도응답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자가 누구냐? 당신이냐?”라며
그 부인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조금 기도하고 안들어 주시면
그만한다는 식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한번 기도해도 급한건 즉시 응답하시지만,
수십년을 기도해도 때가 안 되었으면 더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때를 믿고 기도를 쉬지 않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를 해도 간헐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은 부흥회때만 뜨겁게 기도하고 평소에는 기도를 쉽니다.
이런 기도는 지속성과 일관성이 없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걸어가면서 운전하면서 그리고 운동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번 기도를 많이 하고 푹 쉬는 간헐적인 기도가 아니라
쉬지않고 하는 기도 즉,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파숫군이 쉬면 도성은 외적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왕에게 기억나게 하는 자가 쉬면 백성들은 왕의 약속을 이루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쉬는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시고
깨어나셔서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본문 7절에는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괴롭히라는 참으로 놀라운 명령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뭘 구해도 계속 강청하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으신 분은 하나님께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어
강청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해결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로 8절 말씀에는 연약한 과부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동내 재판관이 들어주질 않자
과부가 계속 그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강청합니다.
그러자 재판관이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처럼 간절히 강청하는 과부의 소원만큼은 들어줘야 되겠다.
만약에 안 들어주면 귀찮아서 견딜 수가 없겠다”라며 결국 과부의 소원을 들어 줍니다.
예수님 말씀은 기도는 이런 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5~8절에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 얘기가 나옵니다.
이 친구가 밤중에 찾아와 떡 세 덩이를 주라고 하는데 한 덩이도 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옆집이 낮에 떡을 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그 집 문을 두드려서 친구가 찾아왔는데 아무것도 줄 것이 없으니
떡 세 덩이만 빌려달라며 강청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떡을 줄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계속 문을 두르리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네가 나의 친구여서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도 강청하니
내가 떡을 안줬다가는 밤새 잠을 못잘 것 같아서 주는 것이다”라며 떡을 줬습니다.
이처럼 승리하는 기도는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 왜 주무십니까? 하나님, 이거 들어주시고 일하십시오”라며
하나님을 괴롭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어서 괴롭히지 말고 기도로 괴롭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쉬시면 원수들이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괴롭히지 아니하면
원수들이 와서 우리 승리를 뺏어가고 이방인이 와서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포도주를 다 뺏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하나님의 교회가 보호를 받고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는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승리하고 부흥하는 핵심은 간청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의 강한 부으심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부흥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로 나아가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을 보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치는 말
성도들은 어려워도 이 두 가지 직분과 두 가지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파숫군’과 ‘여호와로 기억나게 하는자’라는 두 가지 직분을 가진 성도들은
스스로도 기도를 쉬지 말고 하나님을 괴롭히는 강청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고 이 기도의 사명을 이뤄야 합니다.
호텔은 물론 모텔이나 여관도 없고 온갖 위험한 짐승이 다니는 정글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정글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비결은 나무를 가져다가 큰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을 피우면 위험한 짐승들이 왔다가 그냥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큰 불을 일으키면 정글 속에서도 편안히 잘 수 있습니다.
교회도 기도의 불을 일으켜야 평안과 부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도 고치신다고 약속하셨고 축복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우리 기도를 들어 성령의 능력도 부어 주시겠다고 이미 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약속을 붙들고 강청하는 기도의 불을 크게 피워
불이 올라가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불이 약화되면 짐승이 슬슬 오기 시작하고 불이 꺼지면 자고 있는 나그네를
짐승이 먹어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미 원수가 와서 먹어야 되겠다며 벼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불을 크게 피워야 됩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강청하며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