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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2장 해석

LNCK 2021. 11. 3. 17:23

 

 

◈깰지어다 떠날지어다       이사야52장         여러 설교 정리

 

이사야 52장의 앞부분은 51장에 이어지는 말씀이고, *52:1~12

뒷부분은 53장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53:13~15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촉구가 51:17~22입니다.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깨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얘들아, 깨야 할 존재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과 같았다면,

이제부터는 맑은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두 번째 촉구가 오늘 본문 52:1~6입니다.

(52:1~2)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시온(예루살렘)을 향해

‘깰지어다 깰지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에도 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하고,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서 살다가 죄악이 관영함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 하십니다.

이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기운을 차릴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2절 하반절에는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전에 짐승처럼, 또 죄수처럼 바빌론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지만,

이제는 그 죗값을 충분히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건을 ‘상거래 행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판 전 주인이고, 이스라엘은 팔린 물건이고,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산 새 주인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팔린 이스라엘을 되찾아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팔 때에 돈을 받고 넘겼으면 돈을 주고 되찾아 와야 하는데,

‘값없이’ 팔렸기 때문에, ‘돈 없이’ 속량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것이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지라도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며,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이 정말 깨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세 번째 촉구는 52:7~12절인데,

구원의 날을 그림언어로 표현하며, 부정한 삶에서 떠나 정결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11~12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자기 백성들에게 “깨어라, 깨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 만지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물러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촉구인 것입니다.

 

▲1절,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의 평행구로 봐도 무방합니다.

 

예루살렘은 여기에서처럼 흔히 여성에 비유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것은, 문맥상 포로 및 고통과 대조를 이루는

기쁨, 번영의 미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여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란

문맥상 이스라엘을 침입하는 이방 군대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귀환이후에도, 두 차례 정도, 큰 외적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본 예언의 그 1차적 의미는, 그 완전한 성취 시점을 먼 미래로 잡고 있다고 봅니다.

 

먼 훗날 곧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되는 날, 

이스라엘 곧 교회는, 부정하고 불의한 세력의 통치 없이

완전한 성결을 이루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7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즈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시고 계시는데

이 말씀을 곧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모두 깨우시는 말씀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영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옷부터 벗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서는 잠옷을 벗어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육적의 포로의 옷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포로의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입니다.

 

할례 받지 않는 자와 부정한 자가 사는 것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은 하나님의 거룩한 옷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 잠에서 깨어난 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덧입으라는 것입니다.

 

(레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2절,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일어나 앉을지어다’

이 용어는 영예로운 진리, 

왕의 자리 등에 앉기를 권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포로 귀환할 이스라엘이

포로 해방이라는 차원을 넘어

무너진 왕조를 다시 회복할 것까지 내다보게 됩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되어질 것입니다.(9:1~7)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예의 줄을 스스로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떨어버려야 할 티끌은 “나는 노예다” 라는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이스라엘이 값을 받지도 못한 채 포로가 되고, 죄수가 되었으니

이제 값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값을 치렀든, 안 치렀든지 간에

일단 포로나 노예의 소유주가 된 자는

일정한 값을 받지 않고는,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바벨론은, 이스라엘 포로에 대한 그 같은 태도를 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자유의 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시대 교회 역시 ‘죄 아래 팔린 자’입니다. (롬7:14).

그러나 이들 역시 값없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55:1).

 

말하자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행위에 관계없이 죄인(죄의 노예)이지만

값없이 베푸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또는 원수 마귀에게 “나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 라는 사실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절,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포로 이스라엘이 값없이 자유의 몸이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그 유사한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과거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애굽 땅에 내려갔었는데

그 후손들은 값을 받지도 못한 채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산헤립 등 앗수르의 군대에게

수차례 공격 받고 포로로 잡혀간 바 있었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마치 이스라엘의 소유주인 양 행사하다가..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과거의 예들을 근거로 할 때

이스라엘이 비록 값없이 바벨론에 팔려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5절,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내놓는 탄식 같지만, 

문맥상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과거처럼 이스라엘이 값없이 포로로 잡혀갔으니

이스라엘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강력 개입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여기서 ‘떠들며’는 자랑한다는 뜻인데, 

‘슬픔의 비명을 지른다’는 뜻도 있습니다. 

두 경우 중에 어느 것이 옳든 간에, 이것은 하나님이 강력히 개입하시는 이유가 됩니다.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근본적 이유는, 그들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의 거룩하신 이름의 영예 때문입니다. (겔20:9, 14)

 

▲6절,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1~5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계획의 중요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앞문맥에서 밝힌 예언을 그대로 성취시킴으로써

당신의 영화로운 권능과 주권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7절,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운 발을 5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

둘째는 평화를 공포하는 발,

셋째는 복된 소식을 가져오는 발,

넷째는 구원을 공포하는 발,

다섯째는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발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은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 ‘좋은 소식’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인류에게 주신 최고, 최대의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소식입니다.

그 소식이 평화의 소식이고, 복된 소식이며, 구원을 공포하는 소식입니다.

 

온 성의 백성들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승전의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을 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8절,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지금은 무전도 발달되어 있고, 전화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고대에는 말을 타거나 걷고 뛰어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성벽 가장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파수꾼은 멀리서 전령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면,

먼저 그 소식을 왕궁에 알려서 왕이 그 전령이 가지고 오는 소식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파수꾼들이 보는 것은 전령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온을 통치하기 위해서 오시는 모습입니다.

그 소식은 전령이 전하는 소식과는 비교될 수 없는 좋은 소식이기 때문에

파수꾼이 있는 힘을 다해서 기뻐 외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때에’

파수꾼들이 한 목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심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포로 귀환민들과 함께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일순간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묘사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에 대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눈이 마주 보리로다’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이 표현은 민14:14에서도 등장 하는데, 

그곳에서는 ‘대면하여 보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베일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가까이서, 

공개적으로 또 명백히 보게 되는 사실을 드러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됩니다.

 

▲9절,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구속하셨음이라’ 

여기 ‘구속’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그 구원이 암시하는 바, 

메시야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까지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구속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는 10절에 의하면

온 세상 백성이 그 구속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래할지어다'

왜 노래하라고 명령하십니까? “위로하셨고” “구속하였기” 때문에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았고 위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전투를 위해 자신의 튼튼한 팔을 과시해 보이는 용사로부터 취한 이미지입니다.(겔 4:7)

 

‘모든 땅 끝까지도 ... 구원을 보았도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은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는 근거가 됩니다. (66:18~20)

 

▲11절,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우상을 좋아하는 이방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성결케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그 모든 우상, 신상 따위를 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습니다(창35:1~5).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 조치는, 세상 우상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와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단절될 것을 명령할 때

본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고후6:17, 18), 

 

요한도 그리스도인이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그 죄의 동참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명령할 때 본절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계18:2, 4)

 

‘여호와의 기구(器具)를 메는 자들이여 ... 할지어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포로로 잡혀갈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고

그것을 자신들의 축제 때 사용했던 사실과(단 5:2~5), 

 

고레스의 명령으로 본국 귀환시 그 기구들도 같이 옮겨 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 1:7~11)

 

성전의 일을 맡아 보는 제사장과 레위 족속은,  (민1:50, 4:15)

일반 백성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성결하고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습니다.

 

어디서 떠나라는 것입니까? 바벨론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련 없이 바벨론을 떠나, 본토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바벨론은 죄악이 가득 찬 우상의 숭배의 도시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히 떠나야 할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떠날 때 두 가지 주의 사항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날 때 바벨론 우상을 가지고 떠나지 아니할까

염려해서 하나님은 부정한 것은 만지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영적 잠에서 깨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혹시라도 세상에서 섬겼던 우상 같은 것들은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돌부처만 우상이 아니라 성경은 탐심도 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3:5)

 

2절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세상적인 생각, 수단, 방법들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각과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주의 사항은 ‘여호와의 기구 메는 자들을 정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모든 성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러한 성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되어서 가지고 올 때

정결케 하고 옮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예배에 대한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나아올 때

정결한 마음으로 나오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바벨론을 떠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시며

뒤에서 호위하여 주실 것입니다. 즉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와는 대비를 이루는 상황이 제시됩니다. (출12:33, 39, 신16:3).

바벨론을 떠날 때,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고, 도망치듯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앞장서서 인도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뒤에서 호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개별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고,

우왕좌왕하며 돌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1차 귀환에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도 아래에 돌아왔고,

2차 귀환에서는 에스라의 인도 하에 돌아왔습니다.

3차 귀환을 인도한 사람은 느헤미야였는데,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의 청을 받아들여서,

모든 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조서(비자)를 내려 주었습니다.

 

심지어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대동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칠칠하게 인도해주셨던 것입니다.

 

▲13절,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본절은 '그리스도의 승귀'를 뜻합니다.

이에 대해선  https://blog.daum.net/rfcdrfcd/15979597  를 참조하세요. (강추)

 

이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하는 대상은

40장 이후에 계속 나온 ‘여호와의 종’입니다.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는 다음과 같은 신약 성경과 관련해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본서 저자와 빌립보서 저자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분의 승귀라는  

위대한 주제를 진술할 수 있었습니다.

 

▲14절,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본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질리듯 놀란 것은 종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 종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15절,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그가 상해 있는 동안(14절)에,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놀라게 한다'는 말은, 정결례를 위한 물뿌림을 뜻합니다.

 

‘놀랠 것이며’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제’를 어떤 학자들은

‘기뻐 뛰게 할 것이다’, ‘경배할 것이다’ 등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에 팔레스틴에서 발견된 매우 오래된 본서 사본에 따르면, 

본 동사는 ‘뿌릴 것이다 sprinkl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KJV,  NIV).

 

이 번역은 맛소라 본문의 직역과 동일합니다.

더 나아가 '뿌린다'는 것은 레4:6, 8:11, 14:7 등에 나오는 것처럼

(정)결례 집행을 암시합니다.

 

(정)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뿌리던 자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본서의 ‘종’의 사역 역시

제사장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의 종’은 그토록 무섭게 상해 있는 동안

바로 이 결례를 집행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많은 무리에게 전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 바로 그 분이

오히려 대제사장으로서 물과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열방을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너무도 고난을 많이 당하신 수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들은, 속죄적 정결을 위한 것입니다.

 

‘입을 봉하리니’

이 표현은 어떤 소식에 압도되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수난과 종의 사역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형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 예언을 복음 자체에다 다음과 같이 적용시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2:9).

 

13~15절은

53장에서 전개될 위대한 주제(여호와의 종의 수난)의 요약이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