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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7장 해석

LNCK 2021. 11. 9. 16:41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못한 이스라엘             이사야57:장          출처보기

 

이사야 56: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진 57:장에서는 의를 행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애절한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    사57:1~13

 

▲1절,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여기 ‘의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에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죽을지라도’로 번역된 ‘아바드’나

하반절에 ‘거두어 감’으로 번역된 ‘네에사핌’은 모두

박해로 죽어감을 암시하는 용어들입니다.

 

유다에도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왕들이 많았는데, 대표적 인물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가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끝까지

가득 차게 하였더라"(왕하21:16).

 

본서의 저자 이사야도 바로

이 악명 높은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과거 성경에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의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실상은 재앙을 피하여 가는 것이다' (새번역)

 

즉, 의인이 너무 이르게 죽은 이유는,

그가 만연한 도덕적 악행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데려가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의인 아비야(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을, 성경은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상14:10~13)

 

2절,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1절의 ‘거두어 감을 당하다’와

2절의 ‘불리어가도다’의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로서

‘제거되다’ 또는 ‘사라지다’를 뜻합니다.

 

의인이 악인들에 의해 제거되거나 사라져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거나 무관심하다면

그 사회는 정의가 무너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비인도적 행위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본문은 의인이 죽어 사라지는 것을 평안에 들어갔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의인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안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지만

불이익을 받고 살아갈 때는

의인은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 단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이 단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편히 쉬느니라’

의인의 몸이 그의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는 듯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재림 때에 성도의 몸이 부활할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죽은 자를 ‘자는 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살전4:14)

 

3절, 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무당의 자식’

문자적인 뜻은 ‘마술의 아들들’로, 

참 신이신 하나님보다 이방인이 추구하던 마술, 마법 등에 탐닉해 있던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동방의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마술, 마법 등에 빠져 있었는데,

특히 므낫세 왕 때 아주 심하였습니다. (왕하21:6)

 

‘간음자와 음녀의 자녀’

일차적으로는 도덕적 기준이 문란해짐에 따른 성적 부패 현상

혹은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 규례까지 무시되어

음란함이 이스라엘에 만연하였던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아울러 이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영적 음란함에 대한 지적입니다.

 

특히 므낫세 통치 때 만연하였던 악하고 부패한 모든 행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이 바로 음란함이었습니다. (왕하21장).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음란함은, 우상 숭배 예식에 필수적인 동반 요소였습니다.

 

예수님도 당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어서

음란함에 대해 반복 언급하셨습니다. (마12:39, 16:4 등)

 

4절,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1절에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희롱의 대상은 그들(의인들)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경멸한 경우는 많았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그 같은 태도는, 결국 의로운 자들이 섬기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혀를 내미느냐’

‘혀를 감느냐’로도 번역되는데

순간적으로 혀를 밖으로 쭉 내밀었다가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경멸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절,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상수리나무 사이'는 테레빈 나무의 숲 사이로 보는 견해와, 

‘우상의 형상들’로 보는 견해(70인역)가 있습니다.

 

그 어느 견해를 따르든 간에 분명한 것은, 본 구절은

숲속에서 이방 신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테레빈나무로 만든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푸른 나무 아래’란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이방 우상 숭배 의식을 서술하는 대목에 대체로 수반되는

틀에 박힌 표현입니다. (왕하17:10, 대하28:4).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특히 이는 물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킵니다. (레18:21, 왕하23:10).

(모압, 암몬의) 몰록 신을 숭배했던 타락한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시행되던 곳은 그 악명 높은 힌놈의 골짜기였습니다. (대하 28:3)

 

이 끔찍스러운 제사는, 가나안 민족과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도 수행되었으며(왕하 17:31),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니키아, 카르타고 민족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때 처음 시작되었고, 국가적 위기 때에 가끔씩 자행되다가

아하스와 므낫세 때 널리 유행되었으며, 요시야 때 폐지되었습니다. (왕하23:10)

 

이러한 가증스런 우상 숭배 의식은 원래 모압과 암몬의 제사 의식이었는데

유다 왕 아하스와 므낫세가 받아들여 유다 땅에 확산시켰습니다. (왕하16:3)

계속해서 6~10절까지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6절,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들 중에 네 몫이 있으니,

그것들이 곧 네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또한 네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위로를 받겠느냐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들 중에 네 몫이 있으니’

‘매끄러운 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맨들맨들한 돌을 가져다가 우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를 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또는 이스라엘 우상 숭배자들이, 숲이 우거진 곳

특히 물이 흐르는 시냇가 돌들 중에, 우상을 세워놓고 숭배하였음을 뜻합니다.

 

‘몫’

‘기업’으로도 번역됩니다.

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직업처럼 그 일에 몰두하였던 것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전제’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의 일종으로 포도주와 기름을 제단 위에 부어 드리던 제사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이방 우상 숭배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드렸던 동일한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예물’

희생 짐승이 아닌 곡식 및 고운 가루를 제물로 드렸던 것을 가리킵니다. (레14:10)

 

7절,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거기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공개적으로 수치심 없이 감행되는 음란 행위에서 따온 이미지입니다. (겔23:7)

‘침상’은 우상 숭배에 사용되는 ‘제단’에 상응하는 용어입니다.

 

본절 전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위 영적 간음 행위를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겔16:16, 25)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우상 숭배 의식 속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의식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8절, 네가 또 네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네가 나를 떠나 벗고 올라가서

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또 네가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여 그 벌거벗은 것을 보았으며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기념표’란 새긴 이방 우상의 신상을 가리킵니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가정 수호신인 ‘라레스’와 ‘페나테스’의 신상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듯이,

패역한 이스라엘은 이방 신상을 집안에 두었습니다.

 

이 행위는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신상을 둔 곳은 다름 아닌 문과 문설주였습니다.

이 두 곳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새겨 두어야 할 곳이었습니다. (신6:9, 11:20).

 

바로 그곳에 패역한 이스라엘은 신상을 두었습니다.

이 행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15)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음란 행위를 할 상대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장면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공개적인 위반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불변의 언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출19:5, 23:32)

 

9절,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먼 곳에 보내고 스올에까지 내려가게 하였으며

 

‘몰렉’(멜레크) 

문자적인 뜻인 ‘왕’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마치 매춘부가 향수를 바르고 손님을 맞듯이

숭배하기 위해 그 앞으로 나아갔던 우상, (렘4:30, 겔23:40)

 

혹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던

앗수르, 애굽 그리고 그 외 이방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후자로 보는 것이 더욱 낫습니다.

왜냐하면 문맥적으로는 ‘우상’으로 볼 수 있으나

용어 자체는 문자 그대로 ‘왕’을 가리킬 때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향품’이란 외국 왕들에게 바치던 선물, 조공 등입니다. (호12:1)

 

‘네가 또 사신을 먼 곳에 보내고’

우상 숭배자들의 열심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내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정성껏 기름과 향품을 준비하여 이방 나라의 몰렉에게로 갔습니다.

가는 길이 멀고 피곤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열성을 보이며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스올까지 내려가게 하였으며’

저승까지도 내려보냈다는 뜻인데, 과장법입니다.

우상숭배를 위해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다는 표현입니다.

 

10절,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말하지 아니함은

네 힘이 살아났으므로 쇠약하여지지 아니함이라

 

10절의 의미는 이들은 헛된 것과 욕망을 추구할 때에는

‘힘이 나고 지치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여러 차례의 이방나라에로의 사신 파송이 아무 소득이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은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사신을 파송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11절,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하나님께 대한 관심조차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거짓 고백으로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은 것처럼 가장했습니다.

 

그 같은 위선은, 하나님이 그들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랜 고통의 침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인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롬2:4, 5)

 

그들이 누구를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앗수르와 바벨론 세력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라고

약속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할 때

그 어떤 세력도 나를 두려움 속에 떨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2절,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행했던 공의를 보여주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공의를 행했기에 그것을 보여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공의를 행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이방의 도움을 요청하고 이방 신상을 숭배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12절에서 “너의 의를 내가 보이리라”

조롱적인 말씀입니다.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너의 안에 의가 있는가 보았더니, 의는 없고 무익함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거짓된 세력을 좇는 자들에게는 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허상과 허무와 허탈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손에 아무 것도 없고,

내 인생에서 이 땅에 아무 것도 남기고 가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내 안에 예수의 의만 가득 차게 가지고 이 땅을 떠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13절,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 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땅을 차지하겠고’

‘땅’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가 다시 얻게 될

유다와 시온 산을 가리키지만, 

 

이차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 곧 신약 교회 성도들이 얻을 영원한 천국을 가리킵니다.

 

13절에서도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계십니다.

네가 의지한 우상들, 즉 세상 것들을 향해 너를 구원해 달라고 해 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그토록 의지한 것들이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진실로 누구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13절 끝에서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충성된 종아” 하시고 큰 상급을 받은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사57:14~21

 

14절,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할 때, 그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볼 수 있으나, 

메시야 시대의 구원과 해방을 암시하는 예언으로도 이해 가능 합니다

 

15절,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통회’란

‘깨어지고, 부숴지고, 잘게 쪼개어진 어떤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성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를 암시합니다.

 

영적 구원 문제에 관한 한, 바로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자만이

이제 오실 참구속주인 메시야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마5:1~8)

 

*관련 설교  https://blog.daum.net/rfcdrfcd/15977480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했던' 세리는 의인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영적 교만에 싸여 있었던 바리새인은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눅18:9~14)

 

16절,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한마디로 이것은 14, 15절에 있는 약속, 

곧 통회하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과 다투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애3:33, 믹7:8, 9).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필경 파멸에 이르게 하십니다. (시7:11, 계14:11)

 

17절,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얼굴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얼굴’이란 은총의 현시(顯示)를 가리키므로,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그 반대인 은총의 사라짐을 뜻합니다.

 

‘아직도 패역하여’

문자적인 뜻은 ‘완고함을 계속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지고, 징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를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 취하실 하나님의 태도는 두 가지 중 하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그들의 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17절에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59:1-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18절,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여기 ‘길’이란 악행 혹은 회개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앞 절에 의존할 때, 전자(악행)가 옳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반복되는 죄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메시야를 통한, 그 백성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영적 구원을 암시함에 있어 질병의 치유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회개 자복하는 자에게 육적인 마음도 소성케 하여 주시지만

영적인 면도 치료하여 주십니다. 육적인 면도 치료받는 것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치료받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또한 위로도 하여 주시고, 회개한 자의 인생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한 자는, 이제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어떤 계획을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그 인생을 다스리며 인도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9절,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나 여호와’

히13:15에서 바울이 말한 ‘찬미의 제사’가 바로 ‘입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게 할,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일이란 ‘평강’에 관한 것입니다.

이 ‘평강’(샬롬)이란 완전한 평화로서, (요14:27) 

먼저는 유대인의 포로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으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파될

복음을 통하여 온 인류 중 택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적 평안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당시로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평안의 복음이 이방에게도 퍼질 것을

‘먼 데 있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드러내었습니다. (행2:39, 엡2:17).

 

20절,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의인과는 달리, 혼란과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길 없는 악인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바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바다’는, 결코 안식이 없는 그 무엇의 이미지로 종종 등장합니다. (43:2)

 

21절,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본절은 19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완고한 악인, 곧 회개치 못하는 자는,

19절에 언급된 평화를 나누는 일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이 표현은 약속된 영적 화해와 용서에 따른 평안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돌아갈 몫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재강조합니다.

48:장도 동일한 강조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의 입술의 열매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평강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한 악인에게는 이러한 평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고,

권세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평강이 우리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입은 나를 죽이기도 하고 나를 살리기도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여러분! 날마다 회개의 합당한 평강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