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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맞이할 (새)예루살렘의 영광 이사야60:장 10.11.14.출처1 출처2
*예루살렘: 포로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뜻하며,
궁극적으로는 신약의 교회를 뜻함
이제 이사야서는 60~66장까지 종말론적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서의 대부분은, 마지막에 종말론적인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언서를 기록함 목적은, 마지막 때에 종말에 대해서
깊이 깨닫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3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일어나라’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옵니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집니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실 메시야를 통한
교회의 탄생과 확장을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말4:2, 엡5:14)
‘네 빛이 이르렀고’
이 ‘빛’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이, 마지막 종말 때에 해야 할 일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빛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절에,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네게 임할 때, 나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예수의 신앙을 가질 때, 내가 예수의 빛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도,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요1:9, 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것을 뜻합니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9: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자연의 현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영적으로
세상이 암흑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디를 보아도 온통 캄캄한 영적 세계가 될 것입니다.
▲3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2:3, 11:10, 49:22, 54:3)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땅으로 오심으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도,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7교회로 편지로 써서 보내라고 하신 내용입니다. (계1:11)
일곱 교회는 초대 교회 당시에 교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인 계시록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계시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계12:1절의 “해sun를 입은 여자”는
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옷 입듯) 입은 여자, 즉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가, 빛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빛을 입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다시 오실 예수를 알리기 위해, 일어나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만 보더라도
초대 교회들은 예수로 뜨겁게 시작하였지만, 잘못된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책망이 없었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를 돌아볼 때, 칭찬보다도, 책망 받은 교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시대 예수로 시작된 교회들이 마지막 때에
“해를 입은 여자”인 신령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마지막 때에 자신의 영광을 입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교회를 통해, 마지막 때의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 큰 일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사60:4~9
▲4절,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안기워 올 것이라’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입니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입니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에 걸치듯 업곤 했습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예언의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이끄는 4개 군단에 의해 멸망 받고
유대 민족은 전 세계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본절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를 끝내고 돌아오는 그 날을 예언하고 있기도 하지만
예언서는 이중/ 삼중적 계시가 있으므로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마지막 때에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신령한 “해 입은 여자” 교회로서, 돌아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에게 독립의 기쁨을 주었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그들은 그동안 모은 수많은 재물들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예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넓게, 아주 포괄적으로 보면, 1차적으로 그런 뜻은 아니지만,
4차적인 해석으로,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1차적으로는 ‘신약 교회’를 뜻하며
2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 귀환’을 뜻하며
3차적으로는 마지막 때, 교회의 선교적 확장을 뜻하며
4차적으로 (가장 덜 중요한 해석으로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한다고 봅니다.
▲5절,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이 말씀도 긍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은, 마지막 때 예수님 재림 직전에
신령한 교회 “해의 영광을 입은 여자”인 교회에 주어지는 영광이라고 봅니다.
‘네 마음이 놀라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바다의 풍부는,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합니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거룩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6절,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에바의 약대’
미디안의 장남으로(창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이 에바라 불렸습니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습니다.
‘젊은 약대’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혹이 하나뿐입니다.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킵니다.
‘스바’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여왕의 나라입니다. (왕상10:1, 대하9:1)
금과 유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렘6:20, 겔27:22)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이방도, 열방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영광’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나타날, 교회의 영광, 예루살렘의 영광입니다.
▲7절,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게달’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라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성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21:16, 17, 42:11)
‘느바욧’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 명으로(창25:13, 대상1:29),
그 후손이 아라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과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입니다.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해 입은 여자”인 교회를, 스스로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에 짐승들을 노아 방주로 모으셨던 것처럼 모으실 것입니다.
그 모습을 8~9절에서 구름과 비둘기로 섬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8절,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저 구름같이’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는 ‘비둘기’는, 본문에 나온 그대로,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입니다.
▲9절,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 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이(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66:20
그들이 오는 것은 자신들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9절에 “드리려 한다”는 말씀이 두 번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하나님께 자신과 물질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즉 빛이 임한자만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영광은, 곧 교회의 영광입니다.
이사야서는 60~66장까지 종말론적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서두인 60장은 ‘교회의 영광, (새)예루살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선교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큰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9절 끝에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말씀을 주목하시고
그 영화롭게 하시는 근거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진 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고난, 십자가, 희생) 가운데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자는 파멸되리라. 사60:10~14
이 말씀도 포로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주의 종들에 대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살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된 자들에게
이방인들과 권세자들이,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10절,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합니다.
▲11절,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성문이 항상 열려’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26:2, 행14:27, 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문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문빗장도 없을 것입니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21:25, 26)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 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킵니다.
11절에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때에는 교단과 교리 초월하여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말씀은 12절과 14절의 말씀입니다.
▲12절,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개역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왜냐하면)가 있습니다.
바로 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굴복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슥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만다는 것을 경고로 외쳐야 합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용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롬1:16, 18)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였는데
본문에서는 신약교회를 섬기지 아니하면, 반드시 진멸될 것이고,
신약교회를 괴롭히던 자들은, 발 아래 굴복된다는 사실입니다. :14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이 13절에 있습니다.
▲13절,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입니다.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합니다.
이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 쓰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레바논의 나무들로 건축 되었듯이
신약교회는, 거룩함으로 자신들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거룩한 심령에 하나님이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를 섬기고
그들 앞에 굴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14절,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를 높이고 영접한 것은
나귀 새끼를 보고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예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이러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두 증인(신약교회)의 권세에 대해 계1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창세 이래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두 증인(신약교회, 전도자)의 거룩함은 계14: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4. 말세때, 교회의 영광 사60:15~22
“영영한” 이라는 말씀이 15절, 19절, 20절, 21절에서 4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영원히 빛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영원한 약속이 어떤 것인지 5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15절)
▲15절,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을 무시하고 미워하고 천대와 멸시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이러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고난과 환난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전9:25)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겠습니까?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둘째로 하나님이 구원자이신줄 알게 될 것입니다. (16절)
▲16절,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열방의 젖을 빨며’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네 구원자 ... 알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인줄 알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세상들이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할 것을
본문에서는 ‘열방의 젖을 빨며 유방을 빨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가, 하나님의 화려한 성전에 거할 약속입니다. (17-18절)
▲17절,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왕상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합니다.
1)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입니다.
2)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습니다.
▲18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성벽’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25:16),
‘성문’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24:7),
혹은 양의 문(요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입니다.
계시록 21장 10-21에 보면 하늘 예루살렘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졌습니다.
본문에서도 놋 대신에 금을,
철 대신에 은을,
나무 대신에 놋을,
돌 대신에 철을 사용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러한 성전을 감독하는 것이 의이고, 화평이 관원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곳에는 화평과 의가 충만한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다시는 강포한 일이 없을 것이며 황폐와 파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벽이 구원이고 성문이 찬송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자 들만이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로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빛이 되실 것입니다.(19-20절)
▲19절,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0:26, 계21:23, 22:5)
“영영한 빛이” 19절 20절에 두 번 반복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얼마나 강한지
태양도 달도 빛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곳에는 슬픔이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여러분!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절대로 천국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믿음으로 이겨서
천국에서 모두 만나서 영원토록 함께 사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의로운 자만이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21-22절)
▲21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절,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마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으로
교회라는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