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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0장 1~3 일어나 빛을 발하라

LNCK 2021. 11. 12. 15:49

 

◈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60:장 1~3                출처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60장 1~3  

 

이사야서의 전체 주제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기 약 700년 전에

'메시아는 오시면 수난을 당하실 것이다.

 

그 수난을 통하여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메시아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어 이방인에게도 확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이방의 빛(light to the nations)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이사야서 전체 주제는 60장에 잘 요약되어 있고,

핵심구절은 이사야 2:장 2~3절 말씀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사2:2~3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방인들에게로 확장될 것이며

이방인들은 헌신과 물질을 통해 교회확장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이사야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4:22)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도, 처음 복음을 받고 전파한 12사도 모두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받은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비추는 빛이 되어

무수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사야 60장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일시적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일차적 의미는 그렇다 할지라도

그보다 훨씬 훗날인 신약시대 교회 확장과 축복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 주석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궁극적 목적입니다.

 

◑1. 세 가지 사실(Fact)

 

본문 말씀에 분명한 3가지 사실(fact)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1. 우선, 세상은 어두움에 덮혀 있고, 만민은 캄캄함에 사로 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 말씀은 언듯보면 미래시제 같지만 현재시제입니다.

땅은 어둡고 그 땅에 살고 있는 만민들은 더 깊은 어두움

즉, 캄캄함에 빠져 있다고 하는 인류의 현실을 말해줍니다.

 

19세기 말 찰스 스펄젼과 함께 영국 침례교회의 위대한 설교자로 꼽히는

알렉산더 맥크라렌은 땅과 만민에게 임해 있는 어두움을 3가지로 설명했습니다.

 

1) 무지의 어두움(darkness of ignorance)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 지식이 없어서, 배움이 없어서, 경제, 정치, 문화를

몰라서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영원세계, 영의 세계, 구원, 심지어는 인간 자신,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2) 슬픔의 어두움(darkness of sorrow)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슬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죽음 너머에 영원세계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시며 우리는 영으로 잠시 존재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3) 죄의 어두움(darkness of sin)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명국가의 백성이든 원시국가의 주민이든

복음의 빛이 없다면 인간은 무지하고 슬픈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과학자, 철학자, 종교인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세상에 빛이 왔다는 것입니다.

 

1절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절 후반에도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육신 (incarnation)은

바로 이 예언의 실현입니다.

 

요한복음 1:장 9~10절에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주인이 와도 알지 못합니다.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빛이 왔고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였다는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빛이 없는 사람입니다.

 

▲3. 더 중요한 세 번째 사실이 있습니다.

이 빛을 받은 사람은 또한 빛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빛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세 절 가운데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네 빛(your light)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0: 1절에도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3절에도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9~20절에도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빛이 되었다는 것은

빛을 받은 사람도 또한 빛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두움에 있던 사람이 빛을 받아서 단순히 반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도 또한 빛을 비추는 발광체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받으면 빛이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빛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빛이 된 것입니다.

 

 

◑2. 두 가지 명령 

 

이 세 가지 사실을 기초로 해서 BC 700년대에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일어나라(Arise)는 것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울 때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빛이 임하고 태양이 뜨는 환한 아침이 되었는데도 계속 잠자고 있다면

그는 게을러서 망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깨어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백일몽을 꾸며 삽니다.

어느 날 장례식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면 조금 자극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고 흐지부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강력한 설교를 들으면 재도전을 시도하곤 곧 포기합니다.

또한 죄악에 빠져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을 보게 되면

또다시 결심하고 일어나지만 곧주저앉고 맙니다.

 

오늘날도 영적으로 이런 상태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빛을 받아 빛이 된 자들이므로 일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빛을 발하라(Shine)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1)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전에 마귀의 종이 되어 어두움에서 살고 지옥 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빛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의 인생은 천국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지의 어두움으로부터 이제는 하나님, 구원, 영생, 부활을 알고

성령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마음이 있는 분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기쁨의 영이신 성령이 마음속에 충만히 임하여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어두움에서 헤매던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이제는 거룩함의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세시대의 그림을 보면 성자들 뒤에 빛을 상징하는

동그란 원모양을 그려 넣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과 영광이 우리 성도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창조에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은 매우 위대합니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과 빛, 그리고 온갖 짐승을 다 지으셨습니다.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놀랄 뿐입니다.

모기와 파리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구조가 얼마나 대단한지,

사자를 보면 얼마나 늠름하게 생겼는지,

독수리를 보면 날개가 얼마나 잘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창조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한 세상이 되어도 인간은 모기 한 마리, 파리 한 마리도 못 만듭니다.

인간은 아직 이러한 것들을 만들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이처럼 창조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의 영광보다 더 찬란한 영광이 구속의 영광입니다.

죄를 심판 하시되 우리에게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가 받아야 될 죄 값을 대신하여 심판받게 하시고

공의를 이루게 하시며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를 용서하고 영생과 부활을 주신다고 하는 이것이 사랑의 극치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사람입니다.

 

불신자들은 우리에게서 빛과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로 나오게 됩니다.

마귀와 귀신 악령들은 세상 권력, 명예, 지식, 돈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빛과 영광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쳐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과 빛이 우리에게 임하여 있습니다.이 세상의 전기 불을 다 합쳐도,

이 세상의 햇빛, 달빛, 별빛을 다 합쳐도 이 빛보다 찬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19절에는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빛은 한 번 비추면 사라지지 않는 빛(everlasting light)입니다.

 

빛은 저절로 비추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을 보고 비추라고 하는 건 모순된 명령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모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내적인 빛(Inner Light)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은 5:장 15절에서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불을 켜가지고 둥근 사발(bowl)을 의미하는 '말'로 덮어두면

빛이 비취지 않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불을 켜면 그것을 '말' 아래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빛을 비추어 책도 읽고 밥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빛을 받았으나 이불을 쓰고 누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을 발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우리의 변화된 삶(Life)을 통해서 빛을 발하는 겁니다.

슬퍼하던 사람이 기도하다가 성령의 은혜를 받고 성령의 능력 침례를 받으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럼 사람들이 매일 슬퍼서 울던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기뻐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상 숭배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면 얼굴이 밝아져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허무감에 방황하던 사람이 영원을 바라며 삶의 의미를 깨닫자 눈동자에 빛이 납니다.

죄악에 빠져 가족을 괴롭히던 사람이 거룩해져서 자신과 남에게 이익을 주며 삽니다.

이것이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저는 공군소위 때 허구한 날 술을 마시다가 예수 믿고 바뀌어

군대에서도 성경을 보고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놀라게 되고 그들 가운데

또 빛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똑같거나 더 나빠졌다면 빛을 비추는 게 아니라

어두움을 더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입술을 열어(Speech)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빛을 발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올해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은 한 명이 최소한 세 명을 전도해야 됩니다.

‘1+3’ ‘나는 올해 세 명, 누구를 전도할까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 영혼을 구원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시키는 대로 빛을 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선교에 동참해야 됩니다.

선교 헌금을 작정하셔서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힘을 드려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해야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선교 명령입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선교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빛은 밝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빛이 찬란한 사람도 있고 희미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찬란한 빛이 됩니까?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 가운데

찬란한 빛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건전지라 할지라도

전기의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충전을 받아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충전을 받아야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빛을 비춘 결과

 

이사야 선지자는 성도가 빛을 비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을

3절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그리고 4절에는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것이라’

 

8~9절에는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열방의 빛이 되시고 성도들이 빛이 되어 빛을 비추면

열방과 열왕이 이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볼 때에 지중해 섬들에 사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 이방인들이구름떼처럼, 비둘기떼처럼 날아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에 처해 있던 불신자들이 구름떼처럼

교회로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전도하면 사람들은 교회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오는 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로 20절에는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빛이 세상에 와도 어두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택하신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를 막는 교리가 아니라 전도를 격려하는 교리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실패도 하지만 다 실패하지는 않습니다.

세 명을 전도하면 세 명 다 나오지 않아도 한 명은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택하셔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들은 세상에 살며 거짓된 빛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이 거짓된 빛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증거 하는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빛을 비추고 선교하는 것은 결코 실패 할 수 없습니다.

 

마치는 말

 

저는 목회자가 될 계획이 없었습니다. 목회자가 뭐하는지도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두움 가운데 살면죽어서도 어두운 세계로 갑니다.

그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지옥은 한 번 가면 못 나오는 영원한 어두움의 세계입니다.

그곳은 영원히 벌 받는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의 장소’ 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 영벌의 장소로 가지 마시고

참 빛 되신 예수님을 믿어 빛을 받아 빛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빛을 받고도 머뭇거리시는 분은 일어나십시오(arise). 그리고 빛을 비추십시오.

 

‘비추려고 해도 내 빛이 어두워졌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생각하는 분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하나님과 1대 1로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우리 교회 표어가 1+3 즉, 한 사람이 세 사람을 더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60:장 22절에는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만 명 이상으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작은 자도 천을 이루고 약한 자도 강국을 이룹니다.

 

‘1+1000’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333 배나 작은 ‘1+3’ 비전을 가지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면 안되겠습니다.

 

선교는 실패할 수 없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원인은 빛을 비추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은 빛을 비추는 한 실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실패, 악한 사단은 물러가라고 선포하며 나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