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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구원과 회복 이사야 61:장 여러설교 정리
본문은 이 땅에 육을 입고 오신 메시야께 하나님의 신이 즉 성령이 임하셔서
메시야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케 하신 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예언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고 있고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예수 믿는 자들을 통하여 동일하게 임하고 있음도 보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메시야의 구원사역) 사61:1~3
▲1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기름을 부으사’(마솨흐)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삼상16:13),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는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45:7, 히1:9 등에도 나옵니다.
‘가난한 자’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마5:3)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한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시9:12, 18)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 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합니다. (레25:10, 렘34:8, 9)
‘갇힌 자에게 놓임’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 혹은
영적으로 소경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킵니다.
눅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문장의 내용을 볼 때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느니” 라는 “내게”는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를 말 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둘 다 됩니다. 예언의 2중적 성격 때문입니다.)
(눅4:18-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께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 성령이 임하신 후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첫째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 즉 복음입니다. (요3:16)
오늘날 목회자들 입에서 우리의 구원은 한번 구원받았으므로
영원한 구원이라고 떠드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현재진행 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루라” 는 헬라어로 “케데르가제스데” 라는 말은
완전할 때까지 계속해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NIV에서는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구원을 얻는” 이라는 표현을 영어 NIV에서는
“~ are being saved”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원받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바로 이 과정입니다.
믿음은 한 번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이 구원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달음질하며 복음 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2절,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여호와의 은혜의 해’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가리킵니다.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합니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입니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하나님의 신원의 날’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입니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바로 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요12:47, 고전15:52, 고후4:17, 계21, 22장)
항상 심판과 구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해는,
대적들에게 신원의 날, 보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추구하는 어린 아이 신앙에서 이제 벗어나 장성한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날을 내다보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3절,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4:1등
‘희락의 기름’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기 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습니다.(시23:5, 45:7, 암6:6)
그 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57:9).
‘찬송의 옷’
절망에 빠진 자가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 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합니다.
‘의의 나무’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얻으셔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여기에서도 먼저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서 재를 뿌리며
회개하는 자에게 화관 즉 영광의 면류관을 대신할 것이라는 것이며,
마음이 슬퍼하는 그 심령에 희락의 기쁨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로 인해 근심하며 마음이 상한 자에게
영광의 옷을 입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한 자를 의의 나무로 거룩케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 메시야의 회복사역 사61:4~11
그러므로 본문 말씀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2차적으로는 예수로 인해서 완전하게 회복되는 날이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회복하시는지 4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새롭게 다시 쌓고 일으킬 것입니다. (4절)
▲4절,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본국 팔레스틴 땅과 성읍이 황폐해졌던 사실을 가리키며(렘20:6, 28:6),
나아가서는 본장 전체의 문맥상 메시야의 도래가 있기 전
혹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세상은 사탄의 세상이 되었고 인간은 사탄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미혹할 때 자신이 이 세상을 넘겨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눅4:6)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시어서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천년 왕국을 통해 잃어버린 실낙원을 복낙원 시키실 것입니다.
황폐한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둘째로 택하신 자를 제사장으로 삼으실 것입니다.(5~6절)
▲5절,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절,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출19:6) 우뚝 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60:10)가리킨다고 해석됩니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리라'고 하신 말씀(66:21)이나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질 복음 시대(엡2:14)입니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셋째로 오직 예수로 인한 영원한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7절)
▲7절,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바벨론에서 당한 고통에 비교해볼 때
메시야 왕국의 도래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은
더욱더 엄청나게 크고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메시야 사역으로 인한 축복을 단순히 비교하기보다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그 무엇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차적으로는 포로지의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분깃’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얻게 될 구원의 축복으로 봅니다.
한편 원문에 보면, 앞 구절과는 달리 본절의 주어는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의 일종이므로
큰 의미 없이 동일한 주체를 의도하고 있는 화법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7절에 “배나 얻는다” 는 말씀이 두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를 믿으며 당한 수치와 고난을
하나님이 배나 되는 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약속된 보장이 없다면
누가 뼈아픈 고난과 수치를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고난도 수치도 아픔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대하15:7)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영원한 기쁨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이 기쁨을 영원히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이러한 언약을 영원히 지키실 것입니다. (8-9절)
▲8절,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본절 서두의 ‘키’는, 앞절에 진술된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통받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배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왜냐하면)입니다.
하나님이 그같이 하실 이유는
그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의 손을 빌어,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도
공의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바벨론의 교만과 불의의 강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납니다.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며’
이는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압제하고 강탈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월권 행사를 도모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그 영적 우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이방(바벨론)을 통해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단으로 사용된 이방 세력(바벨론)은
본연의 임무인 징벌의 집행 외에 과도한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바로 이 사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의해 체크되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를 통해서 회복시켜주는 이 영원한 언약을 받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천지는 없어져도 변하지 아니하고 이루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을 받을 수 있는 자를 8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를 미워하며 타협하지 않는 자들에게
언약을 지키실 것입니다.
사61:9절을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9절,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1)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2)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3)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4)
본문에서 “내가” 라는 의미의 말씀이 5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로 인해 구원을 받고, 죄사함 받은 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손에 받은 것이 없지만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기쁨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10~11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의의 겉옷’
겉옷은 긴 옷인데, 보호를 의미합니다.
이 ‘의’는 이스라엘의 자격,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덧입히신 그 무엇으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결과로 야기된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스스로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하거나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사실을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로 구속 사역을 이루게 하시어서 그 사역을 근거로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인 옷을 입히셨습니다.
▲11절, 땅이 쌀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5)
‘땅이 싹을 내며’
본서 저자가 여러 차례 사용한 이미지로, (45:8, 55:10, 11)
의미 하는 바는, 적시에 내린 단비로 촉촉해진 땅에서 새싹이 움트듯이,
메시야가 오시면 진리와 의가 돋아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의 택한 백성을 그곳으로 모으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찬양을 받기 위함입니다.
1) 육이 기뻐하는 단계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라고 하였는데
이 단계는 첫 단계인 육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자 그냥 감사하고 기쁨의 눈물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2) 내 영혼이 기뻐하는 단계입니다.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라고 하였는데
이 단계는 성령으로 거듭난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으로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영혼이 하나님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찬 기쁨인 것입니다.
3) 의의 구원의 옷을 입는 단계입니다.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라고 하였는데
이 단계는 이제 구원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믿는 자들의 단계가 이 단계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이 의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의의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의 모습임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4)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는 단계입니다.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앞에 세 가지가 이루어진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과 육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변화되어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어 가는 자들의 아름다움이
마치 신랑 신부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겉모습 보시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예수의 의가 얼마나 있는가를 보시고 아름답다고 칭하실 것입니다.
5) 예수의 의를 온 세상에 알리게 하시는 단계입니다. :11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심어주시고 구원의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싹이 열매를 맺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열매는 곧 예수의 의와 찬송이 되어서 온 세상에 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예수를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