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제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왔어요. 하나님의 품 안에!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분이 우리를 안아 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어요. '너는 내 아들이라'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자녀가 되었어요. 대단한 신분이요, 특권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된 우리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 살 수가 없어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우리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피해도, 주의 앞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주 멀리 주님의 낯을 피했는데, 거기가 주님의 면전 앞이라는 겁니다. 나는 멀리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이미 하나님이 와 계신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추적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피해도 우리를 추적해 주시고, 찾아내십니다.
내가 어디가서 꽁꽁 숨어있어도 찾아내시는 하나님! 이민을 멀리 떠나도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종종 우리가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어요. 믿음 생활 할 때, 어떤 때는 하나님께 막 매달리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실까 봐 두려워하고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 같은.. 버림 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라고 그러죠. *임재의 반대 시편에 많이 나와있어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내가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도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신다, 그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얘기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시139: 8~10절을 보면, 표현이 너무 멋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너무 멋있는 시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이렇게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디 cctv 도 이렇게 그런 게 있잖아요. 표적이 정해지면, 카메라가 그 표적을 계속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우리를 놓지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계속 나를 따라다니신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 삶 속에 가장 큰 축복이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목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분의 시선에서 우리를 절대 놓치지 않으신다는 거죠. '내가 어디로 갈지라도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말은 계속 하나님은 그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봐 주시고, 우리을 주목하시고 우리를 놓치지않고 우리를 계속 추적하시고
'우리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기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9~10
◑본문 시 139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도망자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묻혀 지냈죠.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시선을 벗어난 듯한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어둠의 시절을 보냈던 적이 많아요.
근데 오늘 이 시편의 고백은 뭐냐면 정말 자기는 도망쳐서 다녔는데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자기를 잊지 아니하시고, 계속 주목하고 계셨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안에 굉장히 원초적인 본능 중의 하나가 뭐냐면 "주목 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이것은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원해요. 나를 알아 주면 행복해져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많은 아이들 중에 내 이름을 불러 주면, 너무 좋은 거죠. 선생님이 내게 심부름을 시켜도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를 절절이 원해요.
사람들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가 뭘까요? 주목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안 없어져요. 사람이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때입니다.
여자분들이 머리에 핀도 꽂고, 머리 띠도 하고, 무슨 브로치를 달고 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아무도 안 알아주고, 말도 안 해주고, 본 척도 안 하면 무척 기분 나쁜 거예요.
우리도 불행할 때가 언제입니까? 아무도 나를 주목해 주지 않을 때죠. 주목해 주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잊혀져 갈 때...
▲사람이 우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도 나를 알아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나는 주목 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본능적으로 애를 쓰는 거죠.
아이들도 부모에게 주목을 받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고, 격려를 받고 싶어합니다.
근데 부모가 그걸 해 주지 않고, 오히려 혼만 내면.. 아이들이 정서에 상처를 받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직장에서는 보스에게 주목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암투가 벌어지죠. 더 많은 지지와 인정을 받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 하잖아요.
그리고 그 지지와 주목을 받을 수록 그것을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나 조회수들, 그런 것들이 다 뭐예요?
요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하는 게 주목 받고 싶은 욕망들이 그 안에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TV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대중들로부터 더 인기와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죠.
이것도 주목 받고 싶어 하는 본능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 불안함이 있고, 주목을 못 받을까봐 하는 불안함이죠. (연예인들이 앓는 병)
그런데 그 누구도 나를 계속해서 지지해주고, 주목해 줄 사람은 없어요. 내가 기대한 만큼, 그렇게 나를 주목해 주지 않습니다.
한 때는 내게 박수를 쳐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로 그 박수소리가 또 옮겨가잖아요.
▲성경에 보면, 사울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잖아요. 그야말로 최고 일인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성들의 노래 소리가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로다!'
백성들의 시선이 다윗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거예요. 사울이 이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은 굉장한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고, 키도 굉장히 큰 사람이고 인물도 잘 생기고, 왕이고, 모든 권세를 갖고 있는 백성들의 주목을 한 눈에 받고 있던 그런 성공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 시선이 언제부턴가 그가 다윗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의 시선이 자기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 지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군사들을 풀어서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요?
다윗에게 돌려졌던 백성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한번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아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죠. 그러니까 사울이 나중에 미쳐버립니다. 정신 이상이 되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많이 주목을 받고 싶은데 응당 주목을 받아야 될 왕인데, 그 백성들의 시선이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옮겨가고 있는 이게 무서운 겁니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요!
주목 받고 싶다는 이 원초적인 욕망, 근데 그 욕망은 채워지지가 않아요.
그걸 원하면 원할수록, 현실은 더 멀어져 가는 겁니다. 아무도 나 만을 주목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사울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중에 큰 고통이 외면, 잊혀짐 당하는 것입니다.
무시를 당함, 거절을 당함, rejection. 나는 한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사람들로부터 내가 무시를 당하는 거에요.
오직 신앙의 힘 아니고는, 이것을 이기기 힘들며
정말 신앙의 힘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만, 이것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때로는 남편으로부터, 아내로부터 부모로부터, 직장 보스로부터 거절과 무시를 당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은 냉정해요. 사람들은 빨리 잊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버리기까지 해요.
제가 한 번은, 연예인들이 모인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들은 지금은 매우 화려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불안이 드리워져 있어요.
대중의 시선이 언젠가 다른 누구에겐가로 옮겨지면 자기는 곧 잊혀질 존재라고 하는 사실에 늘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예인이 아니라도
은퇴하고 나면, 비슷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은퇴하지 않아도, 아직 현직에 있어도
크게 사회적으로 성공 못한 사람들은, 거의 다 우울하고, 삶에 자신감이 없습니다.
이래 저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서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를 계속 기억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본문의 다윗은 점점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피신을 다니는 가운데 그런 점점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식 속에 한때 히어로로 뛰어났던 영웅,
이스라엘 왕 사울도 시기할 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지지와 환호를 받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지지는 점점 자기를 떠나가고 그는 도피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다윗은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근데 오늘 이 시편의 고백을 보면 모두가 잊을지라도, 잊지 않고 다윗을 주목하시는 분이 계신 거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그래서 9절에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여기서 '새벽 날개'란 뭘까요?
여러분 정말 아직도 어둠이 짙은 새벽 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가득한 그곳에서 바다 끝에 정말 인적이 드문 그곳에 가 있는다 할지라도
즉 그야말로 다윗은 지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있어요. 도망을 치고 도망을 쳤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갔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땅끝입니다. 이젠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철저히 낯선 이방 땅에서, 마치 이방인처럼 살고 있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0
하나님께는 땅 끝이 없는 거죠.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땅 끝이나, 바로 내 코 앞이나 동일하다는 거지요.
▲저는 호주에 처음 갔을 때 1990년 12월 15일 날 그때 직항이 비싸서, 저희는 홍콩을 거쳐서 두 살 된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홍콩을 경유해서 호주로 갔습니다.
지구의 남반구, 완전히 뚝 떨어진 곳입니다. 대부분 나라는 북반구에 있잖아요. 그리고 호주에는 또 오지가 많습니다.
그 낯설고 낯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호주로 오도록 소개하신 분이,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날 눈물이 뚝 떨어져요. 이제 정말 제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죠.
그런데 놀라워요. 그곳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계시는 거죠. 저보다 먼저 호주에 이민을 와 계신 것 같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의 행방을 놓치지 않으세요. 아무리 숨어있어도 하나님은 알아내세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위치추적 장치가 붙어 있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세팅된 장치가 있어요.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나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피해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다윗의 고백,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주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을 시야에서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외면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부재를 느낍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음을 느낍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왜 나를 버려 두십니까? 나는 하나님을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려울 때 어디 계셨습니까? 거기에 계셨으면, 왜 나는 혼자라고 느끼는 것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내 생각이고, 내 느낌일 뿐입니다. (웬만큼 내가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계속 불순종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나를 결코 떠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피신을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죠.
그 후에 골리앗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잠시 뿐이었어요. 그는 사울의 미움을 받고 죽음의 위험속에서 한 때 블레셋 땅으로 피신합니다.
여러분, 블레셋이 어떤 나라입니까? 적국입니다. 골리앗이 살았던 나라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이제 골리앗의 출신지인 그 블레셋 땅으로 도망간 거예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적국과 타협한 것입니다. 어쩌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러면 이 정도로 내려갈 때는 '이 분이 내가 알던 다윗이 맞나?' 싶어요. '다윗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요.
다윗은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가요. 인생이 한번 꼬이면 계속 내려가는 거에요. 좀처럼 반등이 쉽지 않아요.
지금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되기는커녕, 왕궁과 점점 멀어져 가요.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져 가는 거 같습니다.
현실은 약속과 거리가 멀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점점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 같았어요.
▲여러분,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도 비슷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고, 반짝 초기에 너무 너무 좋을 때가 있지만 어느 순간에 가면, 우리의 신앙이 미궁으로 빠질 때가 있어요.
영혼의 어두운 깊은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오래도록!
때로는 이제 자기가 '신자'라는 정체성까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진짜 예수 믿는 거 맞나? 신앙이 자라기는 커녕, 철저히 세상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 오래하다가, 젊은 날의 그 뜨거운 열정이 다 사라지고
청년부 때는 임원도 하고, 단기선교도 가고, 불덩어리 였을 때도 있었고 철야도 참석하고, 그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다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젊은 날의 그 뜨거운 열기는 다 사라지고 지금 보니까 명목적인 껍데기 신앙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가슴도 식고, 그 뜨거웠던 옛날의 신앙은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고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없고, 신자의 명목만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진짜 예수 믿는 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과연 과거에 진짜 신앙이 있었던 사람인가?' 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한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뜨겁게 믿음 생활을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아득한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께 매달릴 힘마저도 없는.. 그래서 하나님을 붙들고 있던 손마저도 놓아버리고..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도 나를 놓아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죠.
그래도 교회를 빠질 수는 없고, 안 다닐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저리,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별 별 어려운 일들을 다 겪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 길이 얼마나 허망하고 허무합니까.
근데 언제가 가장 어려운 때인가요?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람들마다 어려운 순간이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가장 힘든 순간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힘들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까? 그러나 힘은 들어도, 견뎌 내게 하는 힘이 주어지면, 그럭저럭 살 수 있어요.
붙잡을게 하나 라도 있으면, 그 힘듦을 이겨냅니다.
근데 신자에게는 그 붙잡는 줄이 바로 하나님 입니다. 근데 어느 날 그 줄을 자기가 놓아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줄을 놓친 적이 없는데도, 자기가 실망과 낙망에 빠져서 더 이상 자기가 그 줄을 붙잡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삶의 모든 걸 하나씩 다 포기해 버립니다. 놓아버립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거죠.
▲본문 시139편의 배경을 보자면, 다윗이 지금 그 지점까지 내려간 것이지요.
적의 나라 블레셋까지 가서,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야 하는 그 절박한 순간까지 다윗이 내려간 거예요.
여러분, 다윗은 정말 영적 감수성이 예민해서 시편을 쓰고, 믿음이 특출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 골리앗을 넘어뜨릴 때만 해도 그는 정말 익사이팅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에요.
근데 이제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하여 적군을 땅까지 들어가서, 심지어는 거짓말하고, 미친 척하고... 자존심이 완전히 다 구겨져 버렸어요.
오직 생존만을 위하여 겨우 살아내는 삶... 그 이상의 그 어떤 희망도 다 꺼져 버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는 게 너무너무 구차해져 버린 거죠.
여러분 이렇게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면, 심각한 지경까지 망가져요. 신앙의 자존심 다 내팽겨쳐 버리고 '저 사람이 한때 그렇게 블레셋 사람들을 떨게 만들었던 이스라엘의 영웅인가?' 블레셋 사람이 의심할 정도가 되었어요. 과거의 용맹한 다윗은 흔적도 없어졌어요.
여러분, 누구나 신앙의 침체기를 겪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도, 어느순간 신앙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가 있어요.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감격도 없고, 가슴 떨림도 없고 그냥 무덤덤해지는...
'내가 예수 믿는 거 맞나?'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막 그냥 신자로서의 그 어떤 정체성을 다 내팽개쳐 버리는 거죠. '먹고 살아야지 뭐!'
여러분, 코로나 19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굉장히 힘들어지고 있어요. 마치 전쟁을 만난 것 같아요.
세상은 그런 겁니다. 다윗의 삶에도 회오리 바람이 한 번 치니까 그냥 곤두박질치는 거예요.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 아닙니까.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 아닙니까.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인기가 그냥 하늘 높이 치솟았어요. 인생이 빵빵 계속 잘 나갈 것 같았어요.
그러나 어느 그 순간부터 자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고 사울에 위해서 추격을 받으면서 그 인생이 험한 꼴을 당하다보니 그의 삶이 밑바닥을 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저 살기 위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러분, 신자가 힘들다는 것은 세상적인 요인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순간부터, 세상에서 어려움은 예상했던 거죠. 그럼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으면 충분하죠.
근데 언제부턴가 하나님이, 내 삶에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게 그냥 탄탄대로가 열리는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이끄시는 성화의 과정 때문에, 어려움을 통과할 수밖에 없죠. 문제는 은혜가 그 시련을 이기게 만드는데 은혜가 없어졌어요.. 은혜가 사라져버렸어요.
은혜가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고, 하나님이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와 상관 없는 곳에 계신 거 같고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린 거 같고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순간을 지금 다윗이 맞이한 겁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레슨을 받아야 됩니다. 신자들이 이런 시기를 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무슨 레슨을 받아야 하는가요? 내 삶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는 것을 붙잡는 레슨 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가슴 뭉클한 간증 거리가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사건과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일들이 계속 벌어져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신다.'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그 레슨을 통과해야,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가 언제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일 때입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 보면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여기에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여전히'입니다. '내가 낄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8
이 말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라는 거죠.
우리의 느낌으로는, 하나님이 부재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still, 계속적으로, 변함없이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자기 의식가운데서 일시적으로 사라진 적이 있어요. 그건 자기 의식에서 사라진 거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닙니다.
다윗의 의식에는, 하나님의 존재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의식에서는, 다윗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깊은 것이며 다윗이 신앙으로 지금 고백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서 늘 붙들고 있어야 하는 신앙의 핵심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당신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기에는, '하나님의 부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부재로 느껴지는 시간조차도, 하나님은 늘 임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 놓지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한 레슨입니다.
◑본문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거예요. 왜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셨다는 겁니다. 그 말은 깊은 곳까지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모태에서 나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거죠. 우리 출생의 비밀을 다 알고 계세요. 우리 부모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계시는 분이세요.
그 하나님은 우리의 DNA를 결정하신 분이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양만 지으신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도 지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까지 읽고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아시는 정도가 아니에요. 누구보다도 깊고 정확하게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친한 친구들끼리라도 깊은 비밀은 다 안 털어놓아요. 너무 너무 친한 친구들끼리는 어느 선까지는 비밀을 털어놓죠. 그런데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친해도 내가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을 수는 없어요.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털어놓지 않습니다. 다 털어놓는게 좋지만... 다 털어놨다가 큰 일 날수도 있습니다. 안 털어놔야 같이 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세요.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도움이 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 사정을 다 아세요.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주목하신다'는 것은 :15~16 우리를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는 거죠.
하나님은 다윗의 생애를 놓치지 않고 돌보십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넘겼습니다. 사울이 죽이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어요.
여러분, 사울의 광기는 갈수록 펄펄 날 때었습니다. 바로 다윗 앞에서 그를 죽이려고 창을 던져 버렸잖아요. 그것도 두 번이나!
근데 여러분,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십니다. 다윗이 죽지 않은 게 자기 실력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셨어요. 하나님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도, 당연한 얘기지만, 자기 실력이 아니었어요. 그 증거는, 그가 물매돌을 5개 준비해 가지고 간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 실수하면 두번째 돌 던지고, 네 번까지 실수할 수 있다고 본 거죠. 혹은 단 한 번에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는 없다고 나름 계산한 거죠. 물매돌을 여러 번 맞추어야 승산이 있다고, 다윗은 계산한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물매돌 단 한 개로, 단 한 번만에 골리앗을 무너뜨렸어요. 다윗의 인간적 실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와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겉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자기 아들을 잘 아는 그의 아버지 이새가 보기에도 별로 안중에도 없는 말째 아들이었고요. 그래서 집에서 머슴처럼 부린 거죠.
사무엘이 형들에게 막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다윗을 주목 하신 거죠. 아무도 다윗을 주목하지 않았어요.
그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영적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분별력이 없었을까요? 그만큼 다윗은 외모도 볼품 없었다는 거죠.
심지어 다윗은 그 기름붓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어요. 아예 포기한 자식이었다는 거죠. 아껴서 일부터 들판에 멀리 숨겨둔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저 어디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 그 다윗을 불러왔던 거죠.
가족 마저도, 아버지 마저도 안중에 없고, 주목하지 않았던 아들이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다윗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름 붓게 하시고 그리고 많은 훈련 속에 하나님은 그를 추적하시고 그를 놓치지 않으시고, 그를 돌보시고 끝까지 그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 했을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지켜 주시고 주목하시고 그를 떠나신 적이 없으시고, 그를 버린 적이 없었고, 그를 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게 아니에요.
그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은 나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 다윗 같은 신앙인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인생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우리가 인생에 최선을 다한다고 다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실력도 갖추어야 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되지만 그걸로 인생이 되는 게 아니에요.
다윗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생애에 어떤 일도 우연히 벌어진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손을 언제나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의 일상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숨이 막힐 정도로 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주목하고 계세요.
여러분, 기도가 뭡니까? 우리를 주목하시는 하나님과 내 눈을 맞추는 거예요.
무엇을 일일이 구하지 않아도 돼요. 기도가 뭐를 다 구하지 않아도, 아니 응답하지 않으셔도
우리의 시선이 그 주님의 눈길과 마주치고 있을 그 때 그러면 충분한 것이죠. 그분의 임재 안에 잠겨 있어 보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너무도 귀중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귀중할수록 그 대상을 계속 주목하고 있잖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주목하고 있어요.
귀중하지 않으면 내버려 둬요. 그것을 주목할 이유가 없어요.
여러분, 누가 쓰레기통을 주목하겠어요? 매 시간마다 쓰레기통을 지켜보는 사람 있습니까?
난초를 키우시는 우리 교인을 보니까 너무 정성껏 난초를 바라보더라고요.
시간만 나면 난초를 주목하고 시간만 나면 물이 부족한지, 뭐가 부족한지 문제가 없는지, 잎사귀 하나에도 문제가 없는지 저녁에도 방에 불을 다 끄고 '잘 자라' 그러더라고요. 난초가 뭐 진짜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주목한다는 것은 '돌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눈에 띄는 말이 있는데 '주의 오른손'입니다. 돌보신다는 뜻이죠. 귀중하기 때문에!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0
여러분, 엄마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죠. '아이가 뭐 어디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하고 점심 때나 한번 찾고, 저녁 때나 한 번 찾는 그런 엄마는 없죠.
여러분 계속 분초마다 쳐다보는 거죠. 사랑받고 있다는 거죠, 아이가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죠.
다윗은 도망을 다닐 때 힘들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땅 가드 왕 아기스 앞에 가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전전긍긍 했습니다. 여러분, 골리앗을 쓰러뜨리고서 그냥 스타가 되었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추락의 길을 걸었어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인생이 끝난 것 같았어요. 심지어 죽음의 위협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겠어요? 자기 인생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올라갔던 사람이.. 그렇게 추락했어요. 얼마나 비참했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를 주목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계속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그를 계속 추격하고 계셨어요. ※20세기의 유명한 복음주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님이 '하늘의 추적자'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할 때 힘들어합니다. 왜 힘들어 할까요?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쓸데없는 자로 취급 받았다고 여길 때 비참해지는 겁니다. 그냥 잊혀지는 게 아니라,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불행감을 느낍니다. 마치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시선이 나에게서 떠난 적이 없으시다.' 이게 우리 신앙의 근거요, 기초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물리친 때만 그를 주목한 게 아니에요.
그가 피신해서 도망을 치고, 그 인생의 밑바닥을 칠 때도 하나님은 계속 그를 주목하고 계시고, 그를 돌보고 계십니다.
다윗의 생애 중, 한 순간에만 주목 하신 게 아니라 다윗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지켜봐 주셨습니다.
다윗의 자전적 시라고 말하는 시편 23편 6절에 매우 중요한 대목이 이렇게 나옵니다. '내 평생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어디에요? "내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추적해다녔다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속 따라다니셨다는 것입니다. "내 평생에!"
내가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로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사랑의 추격자'라고 불리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으신 하나님!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합니다.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아요.
왜 자기 자존감이 떨어지죠? 자존감이 떨어지면 굉장히 위험해요.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어떻게 심해지면 죽고 싶어져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니까 '내가 살아서 뭐하나?' 살고 싶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의 삶에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요. 연속적으로 취업 시험에 계속 실패를 하면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떨어져요.
다시 입사 지원서를 쓰고 싶은 용기가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분, 취직 시험에 떨어진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거죠.
직장에서도 승진에서 반복적으로 누락될 때 거듭된 사업의 실패를 경험할 때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년들은 연애에서 실패를 할 때 그러면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요.
무엇인가 성취감을 맛보지 못할 때 자꾸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열등감이란 게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남이 나를 무시해 하기 이전에 내가 나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결국 그런 사람은 갈 곳이 없어요. 그럴수록 내적으로는 그 깊은 곳에는 뭐가 있습니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낮은 자존감에 빠지면 주로 어디로 가느냐면 .. '중독'에 빠져요. 낮은 자존감과 중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독에 빠지는데.. 예를 들면 '게임 중독'에 쉽게 빠지죠. 그 안에서 게임을 하면서, 그 세계 안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거죠.
그래서 죽으라고 게임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밤새며 죽으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게임에서 성취감을 맛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성취감은, 거짓된 것이죠. 거짓된 만족감입니다. 자신이 속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가?' 삶이 계속 뒤쳐지는 듯한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불안해 하고, 삶이 흔들리는 거죠.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환대와 환호를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더 불행해져요.
사람들이 나를 주목해 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언제나 나를 바라보시며, 나를 주목하시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시면 한 분이 계세요.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신다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요.
▲바로 그것을 알려준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가를 십자가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너무도 중요한 거예요. 십자가를 바로 이해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경험하면, 그 십자가에서 엄청난 파워가 나와요!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하나는 나를 놓치지 않으세요. 나를 외면하지 않으세요.
나를 끝까지 주목하시며, 당신의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로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그것이 본문에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특별히 시139편이 주는 핵심적인 23~24절에 있어요.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139:23~24
다윗은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하나님에게 다 열어 놓고 있습니다. '나를 살펴 주십시오.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십시오.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오픈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어떤 것도 감추지 않아요. 왜 이렇게 하는 거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인 다윗의 심정을 여기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고 가까이 다가오시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와 친밀함을 나누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친밀함, intimacy 주목하시는 그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결국은 가까이 다가오셔서 다윗과 친밀함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 오늘날 잃어버린 것이 뭘까요? 이 친밀함이에요.
오늘 우리는 SNS가 발달해 있지만 SNS가 우리를 서로 더 친밀하게 만들지는 않는 거 같아요.
매 시간 시간마다 울리는 까똑 까똑 소리, 저는 카톡이 올 데도 별로 없어서, 늘 무음으로 해 놓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관계 맺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걸 느끼시죠?
따뜻한 공동체를 맛보기 어려워요. 또 어디를 가나 경쟁적이에요. 알고 보면 다 경쟁관계입니다.
또 계속 평가를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요. 누구와도 자기 깊은 것을 나누기 어려운 것이죠.
자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줄 사람도 없고 자기의 문제를 다 꺼내 놓지도 않고 살아가요.
누구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겠어요? 그래서 그 분과 정말 친밀해지고 싶은 관계.. 누구와 그렇게 하겠습니까? 없어요.
여러분들의 얘기를 충분히 모든 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요. 한 20분 들어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듣고 앉아 있는데도 '야 그만해라 그만해라'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사람이 없어요. 내 마음을 완전히 오픈해서 그것을 받아 줄 사람도 없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받아 주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무한히 받아 주실 수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함을 나누기 원하세요. 우리와 형식적인 만남을 원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더 깊은 것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기도가운데,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고 그 털어 놓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오늘 그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그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고 그 임재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인생입니다. 더이상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좇아다니지 않아도 돼요. 이미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눈을 떼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네가 너무도 나에게 귀중한 존재'라고 말씀하세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게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저만치 거리를 두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세요. 우리의 심령,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찾아와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동행만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우리의 삶이 어떤 상태에 있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살아간다는 걸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인생은 복이 있습니다. 별 별 일이 다 일어나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비록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겨져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도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아버지시고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피해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땅끝에 간다 할지라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우리를 잊지 않으세요. 우리를 돌보고 계세요.
우리를 계속, 우리의 모든 삶에 관여하시고, 개입하시고 때론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혼란스러워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내 생각대로 내 인생이 돌아가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으신 분이시고, 모태에서부터 나를 지으시고 나의 속 쓰림과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내 부모보다, 내 친한 친구보다 그 누구보다 나를 깊이 아시고 나를 돌보시고, 보살피시고, 지키시고, 주목 하시고 내 인생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내가 비록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