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최영기 목사의 리더십 2강, 베드로의 리더십 벧전5:2~3 출처
근데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리더십에 관해서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많이 없습니다.
그 예가 바로 벧전5:2~3절입니다.
베드로는 리더(목회자, 목자)에 대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벧전5:2~3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새번역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 번역본도 많고, 신학책도 많고, 신앙서적도 많고
뭐 정말 우리에게 엄청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는가요?
그런 정보의 홍수속에서
단순성을 상실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그래서 우리는 단순성을 회복해야 됩니다.
단순한 이의 단순한 순종입니다.
그러면 벧전5:2~3절을 보고서는
그냥 이 말씀 그대로 하면, 주님이 쓰실 만한 리더가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위 말씀에만 순종해도
주님이 쓸만한 목사가 되고
꽤 괜찮은 리더가 됩니다.
좀 단순해져야 됩니다.
단순한 이해,
단순한 순종!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죠.
▲1. ‘자진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벧전5:2
그래서 여러분들, 진정한 목회자가 되려고 하면
사역을 마지 못해 해서는 안 됩니다.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그래서 목회가 재미있어야 됩니다.
목회가 부담으로 다가오면
그런 목사님을, 교인들이 맨날 주일마다 보면서 힘들어서 어떻게 삽니까?
목회가 재미있고, 신나고 할 때
이런 것이 전달이 되지,
맨날 세상의 모든 짐을 자기 혼자 진 것처럼
‘아틀라스’처럼 힘들어하면 되겠습니까? *하늘을 짊어진 그리스 신
그럼 어떻게 하면 목회가 재미있어질까요?
거기에 목회자로서 ‘소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명 : 부르심
소명이 있을 때
목회가 되건/ 안 되건, 그건 내가 해야할 일이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주셨다는 확신이 있고
주님이 이 일에 나를 불러주셨으므로
주님이 이 일을 이루시리라..는 확신이 있고
그러다가 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아 내가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구나’
그래서 오히려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소명이 불확실한 사람이, 목회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적 소명이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그걸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가 재밌으려면 자꾸 이렇게 성취감(영혼구원과 제자만들기)에 집중해야합니다
다른 목회자와 비교하지 말고요.
그래서 국제가정교회 사역원 회원들은
매 년, 교인들 중에 몇 % 세례를 주었는지 묻습니다.
새신자를 전도했는지를 묻는 거죠.
여러분들도, 지금 교회 다니는 기신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영혼 구원해서 제자 만드는 것이 우리가 부름받은 사명이라면,
그러면 '영혼 구원'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꼭 만나면 물어보는 것이
‘지난 1년 동안 장년 세례 몇 명 주셨어요?’
저희 연구원에 좀 오래 다니신 분들은 '최영기 목사께서 그걸 또 물어 보겠구나'
이렇게 딱 긴장하고 나오고
세례를 일년 동안 한 명도 못 준 목회자들은, 멀리서 저를 보면 얼른 자리를 피합니다.
왜냐면 서로 인사하면, 제가 꼭 그걸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비교하지 말고, 성취에 목적을 두면
작은 목회를 하면서도 좋고 재밋을 수 있어요.
20명 목회 하시는 분이
한 부부, 그러니 두 명에게 세례를 줬습니다.
그러면 교인의 10%가 새신자가 생긴 거예요.
그리고 작은 교회 목회하시는 분들의 아픔을 이해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분들을 전도해서 세례주고, 제자 만들어 놓으니까
그분들이 얼마 있다가, 자녀들 교육 운운하면서 큰 교회로 가 버리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들, 하늘나라에는 기여했잖아요.
그 분들이, 예배 처소만 달라졌지, 하나님 나라 백성 된 것은 변동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엄청 모인 그곳에, 하늘나라에는 기여 못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진짜 그 교회에서 예수 믿게 된 비신자가 아주 드뭅니다.
그것에 비하면, 매년 전체 교인의 10% 씩 세례를 준다면,
결국 딴 데 가서 예배드려서 섭섭하긴 하지만
당당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몇 명 데리고 목회했냐?' 물어보실까요?
그 질문 보다는 '네 교회에서 몇 명 구원받았느냐?' 그걸 물어보실 거예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 할지라도, 교인 숫자는 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영혼 구원 하고 있다',
'그래도 이런 가운데서 남아있는 성도들은 삶이 변하더라'
이렇게 목회자가 떳떳할 수 있습니다. 기 죽지 마십시오!
이런 것이, 내가 소명을 깨달았을 때, 그때 시작이 되는 겁니다.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시고, 성취(영혼구원과 제자만들기)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2. 계속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익을 탐하지 말고..' 벧전5:2
이 말씀도 그저 쉽게 읽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목회자들은 보수, 사례비.. 이런 것이 사역지를 정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주위에서 가만히 보면서 의아한 게 하나 있습니다.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큰 교회에서 초청이 오든지, 모교회에서 초청이 오면,
산기도 하고나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 받았다면서 큰 교회로 부임해서 갑니다.
저는 항상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의아한 것이
'왜 하나님은 작은 교회에서, 주의 종을, 큰 교회에로만 보내실까?'
저는 큰 교회 목회하시던 분이, 산기도 가서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뜻이다'며 작은 교회로 가는 분들은 거의 못 봤습니다.
아주 소수의 별난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솔직히 얘기합시다.
이게 '이익을 탐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회한다는 자부심도 있고,
그런데서 자기를 불러줬다는 자아 충족도 있고
그런데 가면 대우도 받고, 교단에서도 인정 받고..
솔직히 말합니다. 그거 아니예요?
물론 많은 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그렇게 목회지를 옮기시지만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는 베드로의 권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교회도 이제 연륜이 쌓이다보니까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시는데요.
자꾸 '내 은퇴 후에 내 사역, 내 생활'을 너무 염려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은퇴한 다음에,
자기를 아들처럼 섬겨 줄 이럴 사람을 뽑아놨더니
또 후임자는 와서 자기 나름대로 하는 사역이 있으니까
그러면 은퇴하신 선임자는 배신 당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소송전도 생기면서, 교회가 싸우고 깨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목사 안수 받을 때부터 은퇴를 기도했었습니다.
과거에는 은퇴한 후에 깨지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느끼는 게,
'목회를 잘 시작하시고, 성실하고 열심히 목회하면 되는데 (이런 분은 많은데)
은퇴가 훨씬 어렵구나! (이런 분은 적구나!)
나는 은퇴를 잘 해야 되겠다!'
그런데 은퇴를 잘 하려면, 두 가지를 포기해야 되더라고요.
하나는 돈이고, 또 하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수 상황이니까, 꼭 여러분이 저처럼 하시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또 교단에서 은퇴 이후의 어떤 교단법이 있으니까, 그걸 따르시면 됩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은퇴했다는 거예요. 그걸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저뿐만 아니라 12년이상 모든 사역자는
1년당 1개월로 쳐서 은퇴사례금 받는 걸로 끝냈습니다.
제가 20년 했기 때문에, 20개월치 사례금을 퇴직금으로 받고 끝냈습니다.
그것도 그냥 교회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20개월로 나눠서 달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뭐 큰 부담이 없었어요.
또 사역도 은퇴 후에도 자꾸만 꼼수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후임을 어렵게 만들고, 그러곤 자기 사역이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순종 잘 하는) 후임자를 찾고.. 이렇게 꼼수를 쓰니까 되겠어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정말 내가 우리 교회의 유익만 생각을 하고
내가 금전적인 이익이라든가, 또 교회에 지장이 될 사역은 포기하고..
그래서 저는 은퇴하고 나서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냥 매일 취미활동이나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내가 자꾸만 사역을 하려고 하면,
비행기 값이라도 대 달라고 손을 벌여야 되는데, 그게 싫었던 거예요.
그런데 어떤 분이 꽤 큰 후원금 2~3억을
개인적으로 국제가정교회사역원에 후원해 주셨어요.
뭐 그러니까 제가 사역을 안 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국제가사원 원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게 바닥이 다 나서, 이제는 진짜 은퇴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은퇴 목사님들, 좀 어렵지만, 교회에 부담 주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은 은퇴를 좀 미리 준비하시고
그 다음에 목사님들은 다 바쳐서 했으니까
교회에서 돌봐 드리는 게 맞죠.
하나님께서는 포기하니까 주시더라고요.
제가 딱 포기하니까, 어떤 분이 개인적으로 헌금해 주실 뿐만 아니라
휴스턴 서울교회에서도 1억 5천만원을 국제가정교회사역원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가 원한 것도 아니고, 자원해서 도와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는 은퇴했지만,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사역을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3. '지배하려 하지 말고' 벧전5:3
이렇게 목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뻔한 걸 놓치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지 말이죠..
단순한 이해, 단순한 순종, 이거를 붙잡으세요.
성경 읽다가 내가 미처 못 깨달은 것 있으면, 보충 하시고요
성경 읽다가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고치시고
단순한 이해, 단순한 순종!
그래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이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리더십이 되자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뭐 어쨌든 간에 (유교의 영향 때문인지) 지배하는 시스템 아닙니까?
주장하는 리더십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정교회를 하게 되면서 보니까
좌우간 교회 성장에 상관없이
열매가 있냐/없냐는 지도자의 역량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건 예수님도 인정하신 거잖아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의 역량의 차이는 인정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그 자기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 하세요.
그래서 이제 교회가 성장하느냐/ 안 하느냐?
뭐 열매가 있냐/ 없냐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에 달려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이 쓰실만한 종'이 되면 됩니다.
그렇게 주님이 쓰실 만한 종이 되려면 '종이 되는 리더쉽'이 되어야 하는 거 잘 아시죠?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벧후5:3 (새번역)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개역개정)
종이 된다는 것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성공시키는 거다..
이런 얘기를 제가 많이 했기 때문에, 긴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갖고 고민을 좀 했어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과 같은 뜻인데 막10:44
교회에서 으뜸은 담임목사 아닙니까.
그런데 담임 목사가 그러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때 제 착각은, 종이 되면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딜레마에 빠진 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토요일 날에 설교 준비 하는데
어떤 부부가 싸움 하다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러다가 아주 크게 번져서 큰 일 날 거 같은데, 저희 집에 좀 와 주세요'
그러면 못 가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제가 '나는 말로만 종이야!' 이러면서 자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섬기는 종'의 확실한 의미를,
저희 교회 한 평신도 한테 배웠습니다.
우리교회의 한 목자였는데, 이민 1세대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출세한 한인 중의 한 분이었어요.
벡텔은 미국에서 가장 큰 건축회사인데, 거기의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 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분인데,
제가 그분께 물어봤어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건설은 노가다판인데, 거기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올라갔어요?'
그러니까 이 분이 씨익 웃으시면서 '나는 그냥 성경대로 했어요!' 그러시더라고요.
'무슨 뜻이에요?'
'나는 남을 성공시켜 주려고 했어요!'
그 말에 제가 팍 꽂혔습니다.
'아! 종이 되는 리더십이 바로 이거구나!'
종은 남의 필요를 위해서, 남의 성공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개념에서, 제가 개념을 변경하게 되었죠)
이 사람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까, 회사의 어떤 사람이 정보를 요청하면
필요한 정보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도와준 것입니다.
어떤 큰 물건을 팔았을 때 하자가 발견되면
다들 발뺌을 하는데
거꾸로 감동의 기회로 삼아서
총력을 경주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줘 갖고, 고객에게 감동을 줘서
또 주문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 이것이 종이 되는 리더십이구나. 남을 성공시켜 주는 종!'
그래서 가정교회 하시는 목사님들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얼마나 많은 상을 받을 것인가는, 2차 목표이고,
목자와 목녀들이 천국에 가서 나보다 더 많은 상을 받을 것을 1차 목표로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라'는 말도, 다 이런 맥락입니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나눠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주위 사람들, 세상 사람들을 성공시켜주는 도구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성공의 도구가 될 것 같으면, 나를 가까이 할 것이고..
그러면 전도의 계기가 열리죠.
보통 사람들의 본능은
자기 성공을 위해서, 주위의 사람들을 다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내 주위 사람의 성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이 되는 리더십입니다.
이것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4. 그 다음에는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벧전5:3
그냥 단순하게 이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이 쓰실 만한 목회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이 쓰실 만한 목사가 되면, 사람들이 나를 좇아와 줘요.
모범이 되십시오.
근데 우리 목사님들은 아직도 내가 계속 싸워야 되는 어떤 죄 문제도 있고
자기 약점의 문제도 있고, 과거에 받은 상처 문제도 있고 이러니까
자꾸만 우리는, 나의 어떤 문제나 약함들을 교인들이 보면, 시험 받을까봐
가급적 스스로 가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새는 교인들이 영악해서 아무리 가려도 다 봐요.
목사님만, 교인들이 자기 약점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아요.
'모범이 되십시오!' 이러니까
이런 말씀 때문에 항상 자기를 가리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항상 모범된 모습을 보여야 되고,
모범된 언행을 보여야 되고, 자꾸 이런 식으로 하니까...
근데 여기서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11:1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내가 사도로서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냐, 나를 본받아라' 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얼마나 애를 많이 쓴 것을 본받으라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을 본 받았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을 지향했다는 것을 본 받으라)
우리 목사님이 그것(지향하는 삶)만 보여 주시면, 교인들이 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주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가?'
저도 개인간증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제가 목사이지만 (평신도인) 여러분들 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도 좋은 사람, 미운사람, 싫은 사람이 있고요.
목사들끼리 느끼는 경쟁심도 약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질투가 잠시 생길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근데 차이가 있다면, 제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여러분보다 몇 배 더 노력하고,
실패했을 땐 여러분들보다 몇 배 더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그 얘긴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성도에게 본이 되는 거죠. 성도가 목회자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고, 우리 목사들은 뭐 새벽만 되면 그냥 벌떡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뭐 기도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것처럼,
부부싸움은 하나도 안 하는 것처럼,
애들은 그냥 다 말 잘 듣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하면) 성도들이 목회자를 어떻게 배웁니까?
'목사님은 목사라서 그게 되지만, 나는 안 돼 (본받을 수 없어!)'
그러지 않겠어요?
성도가 목회자를 보고 배울 수 있기 위해서는
좀 공감대가 형성이 돼야지요.
'아 우리 목사님도 아주 가끔은 부부싸움을 하시는구나!'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주님 닮아가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이 얘기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고전11:1
'우리 목사님도 주님 앞에 바로 살려고 얼마나 애를 쓰시는 구나'
이 이야기를 해 주라는 거지요.
그러면 성도들도 목회자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지향하는 삶'을 보고 배우는 거죠.
그렇지 못하고 목회자가 항상 다른 얘기, 항상 잘 한 얘기, 완벽한 얘기만 하면
성도들이 질려가지고 '어휴 정말 잘 나셨네요!' 이렇게 되어버린다 말이죠.
'양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벧전5:3
그러기 위해서는 좀 목사님들이 자꾸만 목사님끼리만 만나지 마시고
교인들 하고 같이 좀 어울리세요.
그래야 목사님을 보고 배울 게 아닙니까.
목사님은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는지..
또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들어도 주고,
조언도 해 주는지... 주위에서 성도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그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입니다.
또 '성도의 교제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죠.
목회자가 항상 고립되어 있고, 만나면 항상 목사님들끼리만 만나고,
교인들 앞에서는 언제나 거룩한 얘기만 하고.. 그래서 하면 어떻게 본이 되겠어요?
-
- 현재글최영기 목사의 리더십 2강, 베드로의 리더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