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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 출40:36~38 2019.12.28.설교녹취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임재 구름'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오늘은 그 구름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내용입니다.
두 설교를 연결하자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자만이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까?
그런 근심과 걱정이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과연 나를 인도하실까?
를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임재를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임재'가 '인도'보다 선행 하기 때문입니다.
'임재'가 있어야만, '인도하심'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구름이 뜨면 떠나고, 구름이 뜨지 않으면 머무는 훈련
출40: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구름을 따라가는 인생을 산다..'
이런 말을 불신자들이 들으면,
또 굉장히 자아가 강한 교인들이 들으면
정말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입니다.
구름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고
또 방향을 정해 놓고 흘러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름을 따라가겠는가요?
물론 이 구름은, 신비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이 구름을 따라 갈 수는 있을지라도
구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도자는 '임재의 구름'이지,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단순한 교훈이고, 단순한 훈련입니다.
구름이 뜨면 떠나고, 뜨지 않으면 머무는 것이죠.
Go & Stop, 주행과 정지!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활동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주님이 가시면 언제든지 내가 따라가는 것이고
주님이 머무시면, 그 자리가 어디든지 나도 머무는 것입니다.
▲리더십에서 leading and following 이라고 말합니다.
인도와 순종,
이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이 인도와 순종은,
주님과 내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이죠.
주님이 나를 리드해 가실 때, 거의 동시적으로 나도 움직이게 됩니다.
둘이 함께 춤을 출 때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영적인 동행입니다.
룻이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이런 고백을 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룻1:16
동일한 원칙인 것이죠.
▲자 그러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여유롭게
춤만 추고 있었던 것인가요? 물론 아니죠.
구체적인 행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행선지는 약속의 땅이었어요.
저와 여러분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을 따라가거나, 치료나 표적을 따라가거나
세상 소문을 따라가지 마시고
명확한 하나님의 임재 구름을 따라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게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아주 단순한 훈련을 시키실 거예요.
그것은 go and stop 입니다.
언제 가는가, 언제 멈추는가.. 가고 서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죠.
이 두가지를 보자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아무리 좋아도
주님이 떠나라 하시면
주저함없이, 머뭇거림 없이 떠나셔야 합니다.
'어 나는 포기 못해!'
이런 반응을 보이면 안 돼죠.
그냥 주님의 뜨시면, 나도 뜨는 거예요.
소돔 성의 롯의 가족처럼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뒤돌아 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아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세속적인 것들을
결단하고, 내려놓고, 과감하게 떠나는 결단이 필요한 거예요.
이번 '신년 40일 기도회' 기간 동안,
여러분 안에 그런 '떠나는 결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이곳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떠나라는 명확한 명령이 없다면, 머물러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맘대로 떠나는 때가 됐다고 결정 하면 안 돼요.
다윗이 유대광에서 거의 10여년을 지내다보니까
'내가 이러다가 사울에게 잡히겠다'
두려워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을 갔잖아요.
하나님 분명히 광야 생활을 시작할 때
유대광야를 떠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갓 선지자를 통해
그래서 자기는 목숨을 건지겠다고 도망을 쳤는데
오히려 부하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죠. *시글락에서
그래서 아무리 힘들지라도, 내가 지금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 서 있다면,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떠나라'는 명확한 명령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 뭐 상황이 이렇고, 여기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
그래서 쉽게 던져 버리고 떠나는 것이
마치 내가 영적으로 순전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아니요.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태풍 한가운데도
그곳이 은신처로 바꿔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곳이 지상낙원 일지라도
구중궁궐 안이라 하더라도
그곳은 내게 벼랑 끝이 되는 거예요.
▲제가 캐나다에서 사역해 보았고,
또 미주의 교회들에 집회를 다녀보면
우리가 볼 때는 그 좋은 환경, 좋은 여건에 이민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분들이라고 부럽게 쳐다볼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곳에서 안착하고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마다 그 삶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게 사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땅 끝에, 오지에, 선교지에
정말 어려운 곳,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 가서 살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자리가
세상의 중심지요, 센터가 될 줄로 믿습니다.
임재가 있는 그 자리가, 승리의 자리가 되고,
그 자리가 천국을 경험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뜨고/ 가라앉는 것,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여기를 떠나시는가/ 아니면 계속 여기 머물러 계신가?
이것을 우리는 늘 주목해야 됩니다.
▲이 내용을 묵상하다가,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생각이 됐어요.
그래서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한 가지 분별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 인생은, 출국장에 서 있는가,
입국장 서 있는가?'
여러분, 공항 안에서 같은 건물안에 있어도
출국장에 서 있는 것과
입국장에 서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국장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름이 떠나시는데도)
마치 오늘 입국한 사람처럼,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입국장에서 있는데도 (구름이 머무시는데도)
'난 여기 공항에서 이제 곧 떠나겠다!'
마치 내가 이곳을 떠나야 될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의 인생이 출국장에 서 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익숙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지라도
빨리 떠나셔야 돼요.
하나님이 당신을 departure gate 앞에 세워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이 입국장에 서 있다면
이제부터 여기에 꾸욱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머무르는 기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때가 되면, 그 다음 인생의 자리로 떠나라고
나에게 출국행 티켓을 끊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발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권은 어떤 조직의 윗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직이 회의해서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행선지를 결정하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제 얘기을 간단하게 하면요.
저는 이제 온누리교회 21년차 사역하고 있는데요.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감사한 것은
교회에서 인사이동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게 미리 알려 주셨어요.
그래서 기도로 대비하게 하셨어요.
파트 타임에서 전임사역이 될 때도
또 성인 사역을 시작할 때도
밴쿠버에서 돌아와서 청년 사역을 시작할 때도.. 주님이 미리 알려주셨어요.
제가 밴쿠버에서 사역한지 한 3년차가 됐을 때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제가 한국행 티켓을 손에 들고 있는 거예요.
근데 저를 공항에 데려다 줄 차가 오지 않아서
'아직 때가 안 됐나?'
티켓을 들고 있으니까 때는 가까웠는데,
근데 아직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갈 때가 되긴 됐는데,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꿈을 이틀 연속으로 꾸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 해 겨울에,
청년들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제게 굉장히 많이 부어 주셨어요.
'청년들을 품어야 된다'고 감동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 이듬해 여름에, 하나님께서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청년사역을 하도록 인도해 주셨어요.
저는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나중에는 머리를 베컴처럼 그렇게 한가운데를 곧추 세우고
열심히 청년 사역을 했어요.
그렇게 한지 6년쯤 지나서
제가 가을에는 항상 그 이듬해를 대비해서
'하나님, 제가 내년에는 무슨 사역을 해야 됩니까?'
하며 하나님께 여쭤 보는데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딱 한가지 말씀만 하시는 거예요.
'웨이팅, 웨이팅, 계속 기다려라'
그런데 한 11월 쯤에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
'그런데 머리 곧추세운 것은 좀 내려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좀 늦게 인사 결정이 났는데
그해 12월 말에 양재 성인 사역을 맡게 되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내가 몸담은 조직이 결정할 것으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몇몇 결정권자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고백인 거예요.
▲우리가 굉장히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윗이 광야에 들어갈 때
'아 이것은 사울 때문에 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나 거시적인 하나님의 훈련 관점에서 보면
광야는, 하나님이 다윗을 인도하신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장에 그가 들어가 있는 것이지
사람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인생을 해석할 때,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이 조직의 결정 때문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부족한 거예요.
여러분의 앞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시는 '기준'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임재의 자리로 나를 인도해 가십니다.
출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40년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어요.
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명시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의 상징입니다.
그들을 인도하신 것은, 이런 기준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면 양식이 있을까?
-어디로 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내가 거주할 수 있는, 정착할 수 있는 땅이 있을까?
그런 기준이 아니었어요.
만약에 우리가 우리 인생의 다음 행선지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임재 구름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을 좇는 인생이 된다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일지라도
기근이 있으니까 양식을 구하겠다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가 실수 하고, 죄를 짓고, 거짓말에 빠지게 되잖아요.
'달콤한 인생' 나오미도, *나오미의 이름 뜻
양식을 구하러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가
쓰디쓴 인생 '마라'가 되었다고, 스스로 한탄하지 않습니까?
빈들의 예배자 다윗 조차도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땅에 머물렀어야 되는데
오히려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해서
위기 가운데 빠지고, 수치 가운데 빠졌었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
혹한의 밤에는 불로 녹여 주시고
폭염의 낮에는 구름으로 덮어 주시는.. 그 섬세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섬세한 인도하심인 줄로 믿습니다.
그 섬세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로는, 구름 구둥의 인도가 더 이상 필요없었나?
그런데 제가 본문에 말씀을 묵상하다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결국에 가나안 땅에 도착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가나안 땅에서는
더 이상 임재의 구름, 인도의 구름이 필요하지 않은 겁니다.
더 이상 이동하지 않으니까요.
광야 가운데서는 사방 동서남북 중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지 못하니까
인도의 구름이 필요했지만
여기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나서는
더 이상 떠돌아 다닐 일이 없잖아요.
구름기둥의 인도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것이 착각이었어요.
공간상의 이동이 없기 때문에
"공간상의 방향감각"은 필요가 없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들에게는
"영적인 방향 감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에 정착하는 순간에, 영적인 방향감각을 상실했어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역사의 이정표,
비전, 목표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버린 휴머니즘 세상이죠.
물질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적인 관점이죠.
그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인류는, 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시킨 게 아니라,
스스로를 미로 안에 가둬두고 살아가는 거예요.
젊은분들은 영화 <메이즈 러너>를 아마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 보면, 굉장히 거대한 움직이는 미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미로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 소년들이 있습니다.
근데 한쪽 소년들은, '이 미로를 빠져 나가야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또 한쪽 소년들은, '아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것이 안전하다.
여기서 편하게 지내자' 그런 주장을 했어요.
그래서 현세주의는, 영화로 표현하자면 이런 거죠.
'미로의 출구는 어차피 없다. 그냥 여기 있자.' 이게 현세주의 입니다.
'미로의 너머는 아무 것도 없다. 이 세상이 전부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현세주의는 필연적으로 쾌락주의로 가게 되어 있는데
그냥 여기가 전부이니까, 최대한 여기서 재밌게 지내다가 가자,
여기가 끝이다.. 라는 주장입니다.
▲1998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여러분, 이런 책이 어떻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을까요?
그것은 현세주의 관점, 쾌락주의적 관점 때문이에요.
'어차피 출구는 없는 거야! 우리는 미로 속에 갇혀 있어!'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미로 안에서
누가 더 치즈를 많이 얻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그게 인생과, 역사와, 국가의 비전의 전부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미로 안에 살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즉 영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누가 더 많이 소유 할 것이냐?
누가 더 즐길 것이냐? 누가 더 강해질 것이냐?'
전부 거기에 혈안이 되어서, 이 미로 밖을 나가야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죠.
여기에 거대한 역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도대체 인생을 살다보면,
사실 우리도 크리스천 이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미로 안에서 내가 어떤 애를 써도, 어떤 노력을 해봐도
결국에는 "이 미로 안에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미로 안에서 내가 아무리 땅을 많이 차지한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른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은 들..
여러분, 출구가 없는 미로에서
내가 출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할 수 있죠.
'하나님은 출구도 없는데, 탈출을 시키신 것일까요?'
자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세상 안에는 출구가 없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탈출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면 출애굽과 가나안 여정이라는 것은
그저 자리옮기기에 불과 하잖아요. 거기나 여기나 똑같은 거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와
출애굽의 내용이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엑소더스를 시작 하셨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능자이시고 절대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셨던 임재의 구름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시는 여정의 마지막은
그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주거나,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을 보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반드시 질문해야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부터는 사라진 것일까?'
40년 동안 그 임재의 구름만 하루종일 쳐다보며 살았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 임재의 구름이 사라진 것일까?
성경에 보면, 솔로몬 성전에서 영광의 구름이 나타난 적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로, 하나님의 성막이나 다른 곳에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어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순간, 만나와 메추라기도 멈췄고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어디에 정착하면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을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인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로
더 이상 임재의 구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성막 위에 임하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요.
더 이상 바라 볼 필요도 없었어요.
왜냐면 정착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은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는 비구름을 바라봐야 되는 땅이었습니다. *임재의 구름과 대비
더이상 임재의 구름, 인도의 구름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비를 멈춰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7번 엎드려, 조각 구름 일지라도
비구름을 간절히 사모하며 바라보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
▲오늘 본문에 36절에도 '여정 동안에'
38 절에도 '그 여정동안'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정은, journey, 여행 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 여정이 끝났을 지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여정은 끝난 게 아니에요.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바라던 목적지에 도착을 해도
여전히 인생의 여정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 이제 내가 더 이상 하나님께 그 다음 인도하심의 구름을
간구할 필요가 없어!' 이런 굉장히 심각한 영적 오류에 빠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길을 갈 때는 너무너무 간절해요. (광야 길에 비유)
'제가 어느 대학을 가야 할까요?
제가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해야 될까요?
제가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떤 사업을 해야 될까요?'
그때는 너무너무 간절히 기도해요.
그런데 그것이 딱 정해지고 나면,
대학만 가고 나면,
직장만 들어가고 나면,
결혼만 하고 나면,
돈만 벌고 나면.. (가나안 정착에 비유)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요.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요.
갈급 하지 않기 때문에 엎드리지 않아요.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요?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을 얻고,
그 언약이 성취되어서 약속의 땅까지 들어가는 체험을
우리의 삶에 했을지라도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의 구름을 사모하고, 주목하지 않으면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
주셨던 그 약속의 기업을 가져가 버리시는 거예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세상과 세속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인생 여정, 이 역사의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를 방황할 때는, 임재의 구름이었고,
가나안에 정착해서도, 여전히 비구름입니다.
근데 그 임재의 구름이나, 비구름이 우리를 인도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제가 이렇게 묵상하면서
임재의 구름이 우리를 인도 한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나안 땅,
이면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나안 땅이었지만,
그 임재의 구름이 결국 우리를 인도한 곳은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은 거예요.
아브라함의 여정을 보면,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의 종착지가 '아들'이었나요?
아닙니다.
25년 동안 아들을 준다.. 라는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밀당을 하시면서
결국에는 '하나님'(임재)을 주목하게 만드신 거예요.
표면적으로는 '아들'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어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 역사도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시는 그 전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입니다.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민족이 되는 것!
그것이 최종 목적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역사의 수수께끼의 정답입니다.
인생도, 역사도.. 출구가 없는 미로가 맞아요.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설계를 잘못 하신 것도 아니고
출구가 없는데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속이시는 것도 아니에요.
'출구가 없는데, 출구가 있는 미로 입니다.'
이게 수수께끼 입니다.
출구가 없는데, 없기 때문에
출고가 있는 미로!
이것이 인생과 역사의 아주 신비한 여정입니다.
제가 좀 설명을 드릴게요.
제가 몇 년 전에 가족과 제주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에 아시아 최대의 미로 공원 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미로에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찾는 출구는 없어요.
'내가 여기에만 도착하면, 내 인생은 완벽하게 해결되는 거야.
내 인생은 완벽하게 완성되는 거야.
가나안 땅에만 도착하면, 우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거야.
대학만 가면, 돈만 벌면, 자식만 성공하면, 결혼만 하면
내 인생은 완벽하게 이루어진 거야!' ..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인생 여정에서, 역사의 여정에서.. 완벽한 출구는 없어요.
그런데, 미로의 출구가 없다 라는 것이,
진정한 출구를 찾는 단서가 된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지점에 있는 출구는 하늘이에요.
하늘이 언제나 열려 있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삶은
내가 여기에만 도착하면, 내가 이것만 얻으면
이것만 내가 취하면, 내 인생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실망하고, 절망하는 거예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나도
인생은 출구가 없는 거예요. 갈증에 대한 해갈이 도대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었죠.
미로의 어느 지점에 서 있든,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인생과 역사의 최종 출구는
천국이고, 영원이고,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최종 출구이자, 항상 내 머리 위에 드리우고 있었던 출구였어요.
내가 그 출구를 유심히 바라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도시의 마천루 빌딩숲 안에 갇혀서
더 이상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하늘이 늘 땅 위에 포개져 있는 것처럼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은
이 인생의 시공간에 미로 안에 있는 나를 보고 계셨고,
늘 부르고 계셨던 것이죠.
나는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서
날마다 임재의 구름을 보며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가나안 땅 안에 들어가서도
내 시선의 초점, 내 영혼의 최종 종착지는 하나님의 임재 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시84편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84:1~2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구중궁궐에 들어가면
이제부터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쉬고, 놀고 먹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지향점이 아니라
우리 영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입니다.
땅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동안 그렇게 친한 척 하고,
그동안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어도
땅을 얻고 나면, 등 돌리고 변절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목적이 된 사람은
광야이든/ 궁궐이든 변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상황이 어떠하든
내가 길을 가고 있던/ 아니면 한자리에 멈춰서게 되었든
'하나님'이 내 인생에 유일한 궁극적인 목적지가 되는 사람들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인생의 숱한 고민들의 유일한 한 가지 해답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가시는 곳에, 내가 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름을 따라가는 40년 광야 여정은
무계획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크리스찬 영성은 '무계획의 계획'이에요.
무계획의 계획!
저는 굉장히 사실 시간을 치밀하게 짜서 쓰는 걸 좋아하는 성향입니다.
대학생 때는 한 5분 단위로 끊어서 시간표를 써서 살았어요.
계획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웠을 지라도
그 분이 떠나지 않으시면, 나는 여기 있는 것이고
그 분이 떠나시면, 나도 함께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찬들이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하나님더러 싸인만 하라는 거예요.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어요.
내가 하나님을 인도하는 구름을 띄울 수 있나요?
어불성설이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는 구름을 띄우시는 것이죠.
▲<언어의 온도> 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와요.
"여행 Tour 라는 단어는 '돌다. 돌아오다' 라는 뜻이다.
여행이 즐겁고 두렵지 않은 것은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올 집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다"
우리가 인생 여정을 그다음에 A지점, B지점, C지점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결국에 우리가 돌아올 곳은 하나님의 임재 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출발해서
다시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에서 시간 여행 중인 것이죠.
시간 세계에 있다가, 천국으로 여행 가는 게 아닙니다.
관점이 정반대로 바뀌셔야 돼요.
오히려 천국에 원래 내 집이었고, 거기가 출발지였고
우리는 잠시 시간 세계에 여행을 온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린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겁니다.
내가 이 땅에서 그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까? 노심초사 하지 마세요.
우리 최종 목적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날마다 궁극적으로 천국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날마다 천국을 바라보며, 그분의 임재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양은 목자가 그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인도할 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나이 시력이 1미터도 안 되기 때문에
한 치 앞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임대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장(손바닥) 중에 붙들려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2020년을 바라보며, 내가 인생의 어떤 목적지를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되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그 임재의 충만함 가운데
압도적인 은혜의 장 중에 붙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주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