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시71편 해석, 노년의 기도

LNCK 2021. 12. 3. 20:34

 

◈시71편 해석,  노년의 기도          시71:1~24              여러 설교 정리

 

오늘 말씀은 다윗이 노년에 쓴 시입니다. 

그는 노년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돌아보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늙을 때 나를 버리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18


시편 전체 150편 중에서 표제어가 있는 시편은 116편이고,

표제어가 없는 시편은 34편 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무런 표제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누가 기록했는지, 언제, 무슨 사건을 배경으로 기록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내용적으로, 다윗의 시편과 비슷하다고 추정할 뿐입니다.

 

어제 살핀 시편 70편이 다윗의 시인데,

그 시편이 본문 71편의 서론 역할을 하기 때문에

표제어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시는 '기도해 대해서' 정말 깊은 진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시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시입니다.

 

◑노년의 기도(1~13절)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다윗이 기록한 시편, 특히 하나님께 탄원을 드리는 시편에는

위 구절이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것은 시인(다윗)이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을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건져주시고, 풀어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봐서,

시인 자신은 수치를 당할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자신의 말을 들어주시고,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시인이 아주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주께 피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시인은 자신이 피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밤길을 걷고 있는데, 괴한이 쫓아온다면 피해서 도망을 가야할 것입니다.

그 때에 앞에 파출소나 경찰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피할 곳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더 견고한 삶은 없습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겪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그건 내가 인생에 패배하지 않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생 길에서 수많은 전투(작은 교전)를 치르지만, 전투를 다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큰 판도를 가르는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밀고 밀리고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께서, 이미 이기신 싸움에
우리를 동참하도록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질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는 절대 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후 승리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대전'에서 결코 패하지 않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는 밀리거나 부상당하는 일이 있어도, 주님이 전쟁을 이기도록 끌고 나가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인이 '수치를 겪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신실한 신앙인은, 마지막에, 결코 수치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지금 혹시 승승장구하게 보일지 모르나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결국 '지는 전쟁, 수치를 당하는 전쟁'을 
지금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하루의 전투에서 이겼다고, 지금 잔치를 벌일지 몰라도
훗날 마지막에는 결국 패한 전쟁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잠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고, 인기가 하루아침에 치솟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전투 Combat 에서 잠시 이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궁극적으로 전쟁 War 에서 승리가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2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義)를 근거로 하여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실 때,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고 
항상 당신의 의로우심에 근거하여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에게 누적되어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즉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참고로, 처음 두 절(1~2)은 시편 31편의 처음 세절과 유사합니다.

시 31: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시31편이 표제가 다윗의 시이므로, 그래서 시71편도 다윗의 시라고 보는 거죠.

 

시인은 하나님이 바위와 반석이 되시며, 요새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산에 등산을 가시면, 바위를 한 번 보면서 묵상해 보십시오.

어쩌면 거대한 산 전체가 ‘바위’로 여겨 질만큼,

발 아래 밟히는 것이 모두 바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바위와 반석이 되시며, 영원한 요새가 되시기에

유한한 세상의 그 무엇으로부터 영원히 보호를 하시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로 항상 피한다’고 고백합니다.

 

1~3절에서 주목할 것은, 시편 기자가 당위성에 기초해서 이렇게 구한다는 점입니다.

2절을 보면 “주의 의”로 나를 건져달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어떤 직접적인 계시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하나님께서 마땅히 자신을 구원해주셔야 함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손’은 ‘힘’이나 ‘영향력’을 뜻합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할 때에 ‘일손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을 52일만에 재건했던 느헤미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왔다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장중(掌中)’은 문자 그대로 ‘손바닥 안’입니다.

 

시인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힘이 아무리 강하고, 그 영향력이 커다할지라도,

또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장악력이 제아무리 세다 할지라도

하나님과는 비교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인은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합니다.

5~6절의 표현은 흔히 하는 말로 하면 시인은 ‘모태신앙인’ 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다가, 인생 늘그막에 하나님을 만나서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는 것도 은총과 복이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한평생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은총과 복입니다.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이상한 징조’라는 표현이 좀 이상합니다.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 특이하게 보이는 것, 
놀라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마 둘 다 포함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일들을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의 실패와 고난을 보면서 사람들은 
지금 시편 71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를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는 것을 보면서는 다시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삶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했겠지만, 
그 모든 삶의 경험과 여정을 통해 시편 기자가 배운 것은 
하나님이 그의 견고한 피난처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6절에서처럼 여기서도 종일토록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하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삶이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이고 
따라서 모든 찬송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망의 확신 가운데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9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시102:24에는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라고 했는데
본절에서는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가 가진 능력이나 그의 이용가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나 이용가치가 덜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를 버리려고 합니다. 그 현상은 나이가 들게 되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인간의 생각이지 하나님이 그러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께 나가서 늙을 때 나를 버리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늙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치매에 걸리지 않고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다윗을 건질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잠시 다윗을 고난에 두고 있을 뿐입니다.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오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5~13절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의 삶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그의 피난처로서 신뢰할 만한 분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쇠약해져 있지만, 지금도 그에 대한 확신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상황에 개입하셔서 의를 나타내시고 그를 구하셔서

자신의 수치 뿐 아니라 하나님의 수치를 벗을 수 있기를,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구합니다.

 

◑ 노년의 기쁜 찬미(14~24절)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다시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더욱더욱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시편 기자는 평생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능력과 이용가치로 평가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하나님이신 주님을 ‘더욱더욱’ 찬송할 것이며,

자신은 도저히 측량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측량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도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14절부터 말씀에서는 이런 기대를 더욱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미래의 기대 : 더욱더욱 찬송할 소망의 하나님(14~24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14절)

 

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이것이 시편 기자의 찬양의 순수한 동기입니다. 

그는 단순히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힘들기 때문에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정말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젊은 날 할만큼 했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늙어 백발이 되어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신실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어려서부터 너무 잘 알고 경험해 왔기 때문이죠.

 

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늙어서 할 일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 감당할 때까지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이 뭘까요? 오늘 시편을 보면 분명히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 시간만큼 하나님과 더 오래 함께 했다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오래 경험했고 하나님의 구원을 더 오래 맛보았습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것은 과거보다 덜할지 몰라도, 하나님과 인격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졌어요.

그리스도인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지낸 세월만큼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고 원하는 것도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시편 71편의 저자처럼 우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항상 그렇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더욱더욱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해야 합니다.

 

19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 힘’과 ‘주의 능력’을 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힘과 능력은 ‘주께서 행하신 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것과는 다른 분이십니다.

이러한 일은 젊은 사람들은 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이가 든 부모님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말하면,

자녀들은 흘려듣습니다. 때로는 귀찮지만 효도 차원에서 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들려주셨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그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을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전해주어야

그들도 후에 그 자녀들에게 그러할 것입니다.

 

20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21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2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24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공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하나님께 피하며, 반석과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던 시인이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술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찬양할 것이며,

또한 하루 종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겠노라고 합니다.

 

지금의 찬양과 읊조림이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장래에 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본문과 같이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

“여호와여 나를 도우소서”와 같이 시작되는 시편을 ‘탄식시’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편이 시편 전체 150편 중에서 36편이나 있습니다.

이러한 시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시인이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오지만,

거기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니,

지금의 상황은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고난과 고통의 시간에 한숨을 쉬었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에 생각해 보니

그것들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느슨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고,

그래서 지금 주님 안에서 누리는 생명이 싱싱하게 살아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에 고난과 고통이 있고,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 또한 자신의 삶과 신앙을 느슨하지 않게 만들어 주어서,

더욱 더 주님과의 관계를 훨씬 더 깊고 넓게 만들어 줄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