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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목사의 리더십 강의 1강 P2

LNCK 2021. 12. 5. 22:56

◈최영기 목사의 리더십 강의 1강  P2             P1               출처

 

◑2. 그 다음 질문은 '리더십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냐,

후천적으로 계발하는 것이냐?'
이런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뭐 정답이 있겠습니까?
제가 보니까, 어떤 사람은 타고난 리더십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그래서 골목대장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리더십은 타고난 자질도 있긴 있는데 

리더십은 그냥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음악도 그렇죠.

예를 들면,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있죠.

그런데 그 분도 연습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천부적인 재능은 없다 하더라도

내가 열심히 연습하면.. 어느 정도 상당 수준까지 됩니다.

 

사람이 열심히 해서 갈 수 있는 어떤 한계선이 있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은, 그 한계선이 일반 사람보다는 좀 더 높겠죠.

그런 차이죠.

 

그래서 여러분들도 리더십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거니까

여러분들 꼭 배우셔야 됩니다.

 

이런 강의도 들으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리더십에 관한 책도 읽으시고

그래서 자꾸만 리더십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서

이제는 강사가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배우셔야 됩니다.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셔야 됩니다.

 

 

◑목회자 리더십에는 <소명>이 중요하다

 

우리가 리더로서 중요한 것은

성도들을 동기부여를 해서, 교회의 존재 목적 대로 성도들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분명한 소명의식이 없이

그냥 상황 때문에, 뭐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고.. 이렇게 되면

본인이 어떤 소명의식이 없으니까

확신이 나올 수가 없고

 

분명한 소명의식이 없는 목사 밑에서

교인들이 어떤 소명의식을 갖고 섬긴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뜨거운만큼 뜨겁고요.

목회자가 희생하는 것만큼 희생합니다.

 

목회자 자신이 분명한 소명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교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봉사하겠습니까.

 

▲그런데 소명의식은, 그 개념을 조금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신학교에 갈 때

‘나는 소명 받았다’ .. 이렇게 말하는데

 

가만히 그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신학교에 가고 싶은 욕구를 주시고

기도원에 가서 무슨 음성 듣고 와서.. 내가 소명 받았습니다’ 그러는데

 

제가 가만히 보니까

보통 사람이 얘기하는 “소명 받았다”는 말은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목사 직분을 갖는 그 자체가 소명이 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보다 먼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분명하고도 뚜렷한 어떤 ‘목적’이 있어서 *구령의 열정 같은 것

그걸 이루기 위해서

신학교도 가고, 목회자가 되는 거지,

 

‘목회자가 되는 것’ 그 자체가 소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다

‘목회자가 되는 것’ 그 자체를 소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명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뭡니까?

신학교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사 되기로 마음 먹는 것입니다.

 

소명 받는 게 중요하지, 목회자가 되고/ 안 되는.. 차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관적으로 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소명이란 것이, 다른 말로 부르심인데요,

그 말은, 내가 자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소명은, 제가 이렇게 보면

이런 소명을 가진 분들이, 정말 리더십을 잘 발휘하더라고요.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우선 하나님의 필요가, 자기 눈에 보입니다.

 

1) 우리가 주의 종이면,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필요’가 자기 눈에 보이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필요가 보인 다음에는

내가 그 필요를 채워드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깁니다.

 

3) 내가 하나님의 그 필요를 채워드릴 수 있는

경험이나 은사를 갖고 있는가요?

 

이 세 가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내게 하나님의 필요가 보이는가?

-그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내게 있는가?

-그 일을 실천할 수 있는 경험이나 은사가 내게 있는가?

 

요즘은 정말 교회개척이 힘들어졌는데

개척하시는 분들은 대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할 때, 어디서 해야 할까?

저는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개척을 잘 하신 분들은

어떻게 시작하냐면

‘어디에 복음이 없는가?’를 보더라고요.

그게 하나님의 필요니까요.

 

교회가 없든지, 복음이 없는 그곳!

그게 하나님의 필요를 보는 눈입니다.

 

그래서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이더라도

거기에 복음이 없기 때문에,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교회개척이 시작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개척 하시는 이런 분들은

교회개척은 점점 힘들어지고, 안 된다고 봐야 됩니다.

가정교회는 조금 소망이 있긴 하지만, 대동소이하게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가정교회도 쇠퇴기에 들어서

쇠퇴기 말기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교회가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개척이 힘든데

그래도 개척을 하려고 그러면,

교회에서 시작하지 말고

섬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세우려고 개척을 하면

이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섬겨줘도 다 알아요.

자기 교회에 데리고 오려고 그런다는 것을!

 

교회 개척은, 모든 사심을 버리고 섬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필요입니다.

 

큰 교회도 관심 없고, 세상 사람들도 관심 없는 그 곳,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랑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세상도 관심 없고, 큰 교회도 관심 없는 그 사람들!

그곳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모이는 낮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섬김과, 나아가 개척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섬기다가

자연스럽게 목장이 형성이 되고

교회가 태동되고...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교회개척을 잘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유튜브 BCGI 에 들어가면,

청주 사랑의교회 안국철 목사님의 대담 동영상이 올라가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의 필요에서 교회개척을 시작한

가장 좋은 예라고 봅니다.

 

그분은 대전에서 큰 교회의 부목사로 있다가

청주에서 어느 교회에 후임으로 가기로 했는데

막상 거기 가니까, 은퇴했던 목사님이 마음을 바꿨어요.

 

그래서 큰교회로 돌아가기는 넘사스럽고

먹고는 살아야 되겠고

그래서 영어학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애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다들 깨어진 가정 출신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싸우고 이러니까

가서 부모들 싸움을 말리기도 하고

이러다가 그 다음에 자기 집에서 모이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다가 사람이 점점 많아지니까

예배처소도 마련하고.. 이래서 금년에 처음으로

120~140명이 모여서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도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컨텐츠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한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지금이라도,

'내가 이렇게 목회를 소명 없이 끝낼 수는 없다!'

이런 분들은, 나를 목사님으로 어쨌든 불러 주셨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연은 없으니까

 

어쨌든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하여간 우연이거나 낭비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소명을 찾으셔야 합니다.

(※참고로, 소명이 있는지 없는지 긴가민가 확실치 않은 것은, 소명이 없는 겁니다.

소명이 있는 사람은 100% 분명합니다. 요동도 없고 타협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내게 있습니까?

그 하나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은사와, 경험이 내게 있는가요?

 

그래서 여기 모이신 목사님들은 다 목회 방법론을 좇지 마시고

소명을 갖고서, 사명감을 갖고서

목회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리더십의 다양성

 

자 그러면,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해 지는데

제가 ‘나는 리더십이 없다..’ 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저는 어떤 특정 그림을 그려갖고

‘리더는 이래야 된다’ 하는 그런 그림이 있어서

그랬다(내가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리더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알려진 어떤 리더가 되려고

내 자신을 거기에 맞추기 보다는,

 

자기가 어떤 리더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목회자 정도 되면, 뭐 이 정도는 다 들었을 터이지만

제가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1) 목표 지향적 리더십이 있고,

목표 지향적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과정 지향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좋지만, 과정을 바르게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게 다 장단점이 있어요.

목표 지향적이면, 일을 어쨌든 끝내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너무 목표 지향적으로 가버리니까,

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불협화음이 생기는 거죠.

 

과정 지향적, 이런 분들은

방법은 바르게 잘 하는데 너무 쩔쩔 맵니다.

그래서 맨날, 마치 공무원처럼, 바르고 옳게.. 이것만 하지

성취를 못 해 냅니다.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2) 또 관계지향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관계를 제일 중요시하게 여깁니다.

 

반대로 사역 자체를 중요시 여기는

과업 지향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관계가 중요한 분들은, 좋은 관계속에서 지내는 장점이 있지만

어려운 결정을 못 내립니다.

일부 사람들이 반대하고, 누구를 상처줄 것 같으면.. 쩔쩔 맵니다.

아무 일도 못 합니다.

 

목사는 못 되야 될 때는, 좀 못되야 합니다.

너무 착한 목사는.. 이건 아닙니다.

 

과업 지향적인 리더십

이런 분들은, 사역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일은 될지 모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상처주고 말이죠.

그건 또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균형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러나 자기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어느 성향인가? 그걸 아는 것이 좋고

 

그렇다 그러면, 자기 성향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해야지

자기 성향에 벗어나는 어떤 자기가 좋아하는 리더,

그 스타일이 자기와는 전혀 다른데,

그 사람처럼 되려고 애를 쓰면 엄청난 에너지 낭비가 옵니다.

(별 성과는 못 거두고요)

 

그래서 자기 생긴 대로 하십시오. (자기 성향 대로 개발하십시오)

 

그래서 자기가 생긴대로 하되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주위에서 이렇게 보면

또 어떤 분들은 너무 자기 생긴대로 하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 남으려면 남고 떠나려면 떠나요!

그래서 성도들이 진짜 막 떠나버리는 교회들도 있어요.

그건 또 아니죠.

 

그래서 자기의 어떤 성향을 먼저 잘 파악하고

자기 약점을 커버하려고 어느 정도 애는 써야 합니다.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쓴다 해서

과업 지향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과업에 자기 약점이 있음을 알고,

너무 관계에 매여서 일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이렇게 자기의 성향은 알지만,

자기 약점을 알아서 보완하려고 애는 써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 안 될 때는

자기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자기 동역자로 삼는 겁니다.

 

저는 제 큰 약점이, 세부상황을 잘 기억 못해서

얼마 전에도 어느 집회에 갔다가

 

저를 초청한 목사님하고 차 타고 오다가 대화 중에,

‘우리 교회 주일 헌금이 얼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어휴 뭐 교인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굉장히 헌신적이네요

저희 교회도 이 정도인데..’ 그러니까

 

‘그래요?’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0을 하나 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세부적으로는 어둡습니다.

 

그대신에 제 주위에서는

굉장히 세부 사항에 강한 이런, 저를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백간사, 구총무, 성총무 이런 사람들이

아주 세부적 디테일에 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나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이런 사람들과

동역을 하시고,

 

많은 경우, 목사님들에게는

자기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모입니다.

그래서 사모님 말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사모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하고 왜 이렇게 다를까? 왜 나하고 같이 생각하지 못할까?’

 

그래서 부부로 붙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로 이렇게 목회자의 어떤 약점을 커버해 주기 위해서

사모를 붙여주시고

사모뿐만 아니더라도

자기의 어떤 특별한 약점이 있을 때는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이런 사람과 동역해서

 

자기 리더십이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자기 나름대로의 리더십을 보전은 하지만

또 배째라 이런 식으로 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리더십에 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에 보면, 이 두 가지 리더십이 있습니다.

 

-복음서적 리더십

-사도행전적 리더십

 

많은 분들이 이 둘의 차이를 몰라서 혼동을 겪습니다.

 

복음서적 리더십이란,

예수님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이렇게 카리스마가 있는 개인이 핵심에 포진하고

자기의 꿈과 비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동심원을 만들어서 가는 겁니다.

 

예수님 같은 경우는 가장 중앙에 예수님

그 바깥에 세명의 핵심 제자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 바깥 동심원에는 12제자들

그 바깥 동심원에는 70제자들

그 다음에는 500명 .. 이런 식으로 동심원을 그려가는

이것이 ‘복음서적 리더십’ 입니다.

 

선교단체 리더십이 다 이런 복음서적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서적 리더십에는

서열도 분명하고, 나는 누구의 제자다.. 이렇게 말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님이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옥한흠 목사님도 아주 초기에는 이단시비에 말렸거든요.

 

그 중에 가장 큰 게 뭐였냐면

‘서신서에는 제자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런 것을 교회에 도입하느냐?’ 는 시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서신서에는 ‘제자’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까?

 

리더십 스타일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적 리더십’이라고 부르면 좋을 건데

 

‘복음서적 리더십’의 핵심에는 개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적 리더십’의 핵심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은 ‘사도행전적 리더십’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제자는,

어느 개인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목자 목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목자 목녀 뿐만 아니라, 많은 '삶 공부'를 인도하는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정교회에서는

‘나는 누구의 제자다’ 라는 말은 뭔가 낯설게 들립니다.

 

우리는 교회(공동체)의 제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제자가 아니라요!

 

그래서 선교단체에 있던 이런 분들이 교회를 시작하면서,

목회를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이

선교단체에서 하던 그대로 교회에 와서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기본 바탕이 틀리거든요.

 

‘사도행전적 리더십’과 ‘복음서적인 리더십’이 서로 섞일 수가 없는데

이것을 섞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헉헉 대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거의 없지만

제자훈련을 오래 했던 분들 가운데서는

우리 세 축 중에서

‘삶 공부’는 삶 공부로 도입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기가 했던 제자훈련을 계속하겠다.. 이랬던 분들이 있습니다.

 

4~5년 하고는 안 되어서

결국은 삶 공부를 도입하더라고요.

 

왜요? 그 기반이 틀린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복음서적 리더십에 기초한 것이고

우리 삶 공부는 사도행전적 리더십에 기초한 것인데

 

그래서 삶 공부, 제자훈련이 다 이런 철학위에 세워진 것인데

두 개를 같이 다 하려고 하니까, 일치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성경공부 시리즈, 제자훈련 과정을 많이 만들어 놓고는

거기에다 가정교회를 하면서, 가정교회식 훈련이 좋긴 좋은데

옛날에 하던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에다 가정교회 하나를 하나 더 얹어서

‘생명의 삶’ 이런 것은 도입을 하지만 *가정교회의 ‘생명의 삶’

옛날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선, 교인들이 너무 허덕 허덕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전혀 철학이 다른 두 가지 시스템을 공존시키려 하니까

교인들은 피곤하고

가정 교회는 제대로 정착이 안 되고..

 

그래서 여기에 혹시 그런 분들 계시면

마음을 정하세요.

지금까지 해 왔던 제자훈련 방법이 있으면, 그걸 그대로 하세요.

 

괜히 가정교회 한다 그러고

여러분도 고생하고, 교인들도 힘들게 하지 마시고요.

 

가정교회 하려고 그러시면

철저하게 ‘세 축’ 대로 하세요

 

‘삶 공부’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 공부’가 성경공부 자체로 다른 것보다 더 우세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철학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는, 복음서적 리더십에 기초한 것이고 *제자훈련

또 하나는, 사도행전적 리더십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그래서 정신이 서로 틀리기 때문에

이게 서로 조화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로 마음을 정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주도적인 성격의 목사님들, 힘들어 하는 게 그런 거죠.

선교단체에 있었던 분들은, 복음서적 리더십에 강하잖아요.

거기서는 어쨌든간에 내(목회자)가 핵심에 있습니다.

내가 제자도 키우고 이랬는데...

 

사도행전적 리더십에 들어가서는

복음의 핵심에 목자와 목녀를 넣고는

나(목회자)는 이 사람들을 성공시키는 사람으로 내려앉으려고 하니까

그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것을 다 극복하고, 가정교회 하시는 선교단체 출신 목사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제가 잘 압니다.

 

 

▲우리 리더십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제가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가정교회의 핵심가치, 즉 정말 신약교회를 회복하는 이 일이

우리 목표라고 그러면,

 

이것은 주님께서 꿈꾸셨던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 공동체가 목표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제는 다 됐다,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 못 합니다.

계속 가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 까지

우리가 계속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우해서, 30~40년 아니라

70~80년이 아니라, 더 늦게 주님이 오시면

그 때까지라도 계속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핵심가치가

‘세 축’이라기 보다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대로’ 입니다.

 

성경이 그렇다 그러면,

아니라 그러면 아닌 줄 알고

 

성경이 하라고 그러면 하고

하지 말라 그러면 안 하고..

 

단순한 말씀의 이해와 단순한 순종

제가 말씀드렸죠?

이것을 끝까지 붙드셔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