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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3편 해석,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시험 든 시인

LNCK 2021. 12. 6. 15:29

 

◈시73편 해석,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시험 든 시인         시73:1~28         여러 설교 정리

 

※시편1권, 2권, 3권의 특징 비교

 

<시편 1권>은 1~41편인데, 거의 대부분 다윗이 기록한 시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그림자처럼 보여주는 왕 다윗이 기록한 
이 시편 1권을 통해서 

먼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의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훈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권을 읽을 때면,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구나' 라는 것을 연관지어서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권>은 시42~73편까지 입니다. 
시편2권의 시작은 '고라 자손의 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라'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반역의 이름이요, 저주의 이름이요, 형벌의 이름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고라 자손들은 그 이후에 하나님 편에서 서게 되었고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에 의해서, 성전에서 섬기게 되었어요. 

성전 문지기로도 섬기고, 성전 봉사자로도 섬기면서 *레위인임
그들은 조상 고라 와는 달리,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 2권을 시작하는 이 고라 자손들의 시를 통하여서 
시편2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그 왕으로부터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련해서 이 시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2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관련된 내용, 교훈들'을 담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시2권, 42~72편의 시를 읽을 때는 
'아 이게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연관해서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3권>은 시73~89편까지입니다.
이 시편3권을 시작할 때, '아삽의 시'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3권은 대부분 아삽의 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73~83편까지가 아삽이 기록한 시거든요.

그러니 시3권은 거의 전체가 아삽에 의하여 기록됐는데 
아삽은 누구입니까? 

다윗왕에 의하여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름 받은 예배인도자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3권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과 관련해서 
그리고 '예배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3권을 읽을 때면 여러분들이 
'아 예배에 관해서, 그리고 예배자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시편 3권에 있는 시들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은 아삽이 지은 열한 편의 시편 중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 인물로서

성전에서의 성가대를 전담한 수석 지휘자

또는 성가대 전문 관리자로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이 시편은, 성전에서 예배시에 공적으로 불려진 노래였을 것입니다.

 

△시편은 150편이나 있는데, 그 150편이 다섯 권으로 묶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73편은 3권의 첫째 시입니다. *3권 : 73~ 89편


제 3권은 모두 17편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아삽의 시가 11편에 나타나고(73~83편), 
그 외 고라 자손의 시가 4편, 
다윗과 에단의 시가 각각 1편씩 들어가 있습니다. 

보통 시편의 5권을 모세오경에 연관짓는데,

그렇다면 3권은 레위기와 연결됩니다.

사실인 것이, 시편 3권(73~83편)의 저자가 거의 다 레위인들입니다. 아삽, 고라, 에단.

 

이들이 레위인이요, 성막 제사를 돕고, 특별히 악장(성가대 인도자)이다보니, 

이들이 지은 시들이, 자연히 성막, 제사(예배), 성소 등.. 레위기적인 내용이 주로 나옵니다.

그 외 내용을 보면, 국민적 애국시들입니다.   

아삽이 지은 시편은 모두 12편입니다. 그 중 한 편은 제 2권에 있고(50편), 
그 외 11편은 제 3권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시편의 '제2 저자'입니다. 다윗에 이어서 분량이 제일 많습니다.  주1)

 

특별히 3권에는 악인들의 공격 앞에서 탄식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기도들이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74, 79, 80, 83, 89편 등)

 

당시 구약의 성도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 중의 하나는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에 대한 문제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딜레마에 빠진 시인 아삽 (1~16절)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서 자신의 신앙에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기자가 시기심을 가진 것은 그들이 가진 형통 때문입니다. :3

 

형통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화, 복지, 번영, 행복, 건강, 완전, 안전' 등을 의미합니다.

시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는 1절에서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막상 세상에서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니 시험이 들었습니다. 
즉,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그 부요함이 질투가 나고 부러웠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바라보는 악인의 형통함은 어느 정도입니까? 
4~9절까지를 잘 나타나 있습니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성경이 말하는 악인은, 영화에 나오는 ‘악당’같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이러한 악인의 모습은 어쩌면 교회 안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혼자 인생을 계획하고 멋지게 꾸려나가려 하고 있다면 
우리들 인생 또한 하나님 말씀 없이도 살 수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런 악인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 4절에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은 악인이 하나님의 침을 받아, 즉시로 급살되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잘못 할 때마다 급살맞아 죽게 하면

이 세상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급살맞아 죽어버릴 것입니다.

 

위 7절에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눈이 솟아나왔다는 말은, 돈벌 곳을 찾아 다니며 즐거울 곳만 찾아 다니기에

눈이 혈안되어 있다는 표현입니다.

 

의인이 잘 되고 악인이 안 되어야,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인데.. 반대입니다.

악인이 더 잘 됩니다. 돈이 많습니다. 교회는 돈이 없어서 쩔쩔 맵니다.

선교단체는 돈이 없어서 선교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인들은 그래서 술집에 가서 펑펑 돈을 씁니다.

신학생은 등록금이 없어서 알바를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돈이 많아서 수억원 짜리 차를 몰고 다닙니다.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악인이 건강하지요. 돈도 생각보다 더 많이 벌지요. 
재앙도 고난도 없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하지요. 모든 것에 부러움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까지 쥐고 있습니다. 8~9절

 

그들은 거만합니다. 그들의 입은 하늘을 호령합니다. 혀는 땅에서 큰 소리칩니다. 
아삽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실망하고 있습니다.

 

아래 10~11절에 드디어 그들은 하나님까지 무시합니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0절에, ‘잔에 가득한 물을 마신다’는 것은 
잔에 물을 가득 채워 마시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아느냐?'고 거드럼을 피고 있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은 반복적인 말을 뜻합니다.


자신만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마음의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그 눈에 보이는 것은 
‘악인들의 평안과 재물의 부요’뿐인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악인인데도 잘 풀리고 언제나 신세가 훤하고 
재산도 척척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뇌의 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3~16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자신을 향하여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죄 짓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바둥거린 것이 
다 의미 없는 것이었던 건가? 
그래서 속으로 ‘나도 저들처럼 살아야지. 
왜 남들처럼 좀 속이면서 좀 타협하면서 살 걸. 
그러면 좀 쉽게 살고 돈도 더 가질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그것이 주님을 배신하는 일이기에 
너무나 괴로워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직장에서 ‘융통성’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면 
상사와 꼬여 있는 일도 풀릴 것이고, 
거래처와도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것을 원하시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 부르짖듯 이렇게 기도합니다. 

“왜 저들은 허용하시면서 내버려두고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겁니까?”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참으로 어렵고 풀리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17절에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멸망을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왜냐면 로마서 2장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심판은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신 
그 주님의 성의와 배려를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 눈에 보이는 이 평안과 교만함의 태도는 
갈수록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꼴이 되는 것이며 
언젠가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 중에 깨달음을 얻은 아삽  (17~20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배자의 모습으로 섰다’는 것입니다.  :17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인데,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들어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참으로 믿음의 눈으로 영안이 열려서, 교만한 악인들을 보니까 
이들은 정말 미끄러운 곳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수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가장 견고한 곳에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가장 위험한 곳에 그들이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파멸로 던지니까 졸지에 망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악인은 지금 전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런 교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으며 
사람이 잠에서 깨면 꿈을 무시하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무시될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악인은 아무리 잘 되고 있어도 미끄러운 곳에 있는 존재입니다. 파멸앞에 있는 존재입니다. 

졸지에 지옥으로 떨어질 존재입니다. 

미끄러운 곳, 파멸되는 곳, 황폐한 곳, 전멸하는 곳은 결국 지옥입니다. 

 

관속에서 모든 이 세상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전멸할 존재입니다.

그들은 "잠시"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19절에서는 그 심판의 날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칠 것이며, 
20절에서는 그 심판이 오면 그들의 이 땅에서의 영화와 평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낱 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꿈 속 세상에서 힘세 보이는 무언가가 두렵고 겁나지만 
잠을 깨고 나면 거기서 마주쳤던 존재들이 실생활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헛웃음을 짓게 됩니다. 

세상의 온갖 권세와 부는 한낱 꿈과 같은 것입니다. 
더없이 견고하고 영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행복, 미래의 유산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감격의 찬양 (21~28절)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여기서 '마음이 산란하고 양심이 찔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 받고 나니까 과거의 무지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짐승처럼 우매 무지하였던 것입니다.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3절부터 하나님의 성전에서 부르짖던 시편 기자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주와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면서 기도를 마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잠시 세상을 향해 부러워하면서 
거의 쓰러지고 미끄러질 뻔해도, 우리가 다시 주님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주님만이 우리의 분깃이요 주님이 우리의 상급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부디 우리에게 주셨던 그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히 붙잡고 살아가는, 
마음이 정직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8

저(곽선희 목사)는 바로 며칠 전에 새문안 교회에서 교회장으로 치러진 
서재현 장로님이라고 하는 분의 장례식을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그 분은 본래 인천제일교회 장로님이기 때문에 
제가 인천제일교회에 있을 때 장로님이어서 
돌아가실 때에 제가 장례를 인도해 줄 것을 요청을 해서 
그러자고 한 결과, 그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 보다 더 겸손한 사람을 못 보았고,
그 보다 더 진실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그 손녀가 나와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추모사를 읽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는 할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진실과 겸손과 바르게 사는 길의 표본이 되어 주시고 
말없이 실천해 주신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제 할아버지로 모신 것을 저는 행복하게 생각하고……" 

특별히 이렇게 말하더군요. 
"할아버지 우리가 할아버지 같은 신랑 얻게 해 달라고 소원했던 것을 아시지요?"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앞길는 어떤 말이 들려질 것 같습니까? 
‘할아버지 같은 신랑감 얻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 소녀, 
그 관계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 성전에서 깊이 깨닫고 
저 앞에 있는 내 운명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을 보세요. 
비로소 밝은 세상,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주1)

아삽은 다윗의 악장의 한 사람이었고, 또 그 수석이었습니다.

대상 25:1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그의 네 아들도 모두 악사로 
다윗의 24 악대 중 4대의 장들이었습니다.
 
대상 25:2 아삽의 아들들은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 신령한 노래를 하며

 아삽은 단순히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음악인일 뿐 아니라 
열정적인 신앙인으로 “선견자”라 불렸던 사람입니다.

대하 29: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선견자 라는 말은, 선지자..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아삽은, 그저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었고, 하나님 말씀을 예언하는 선지자였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날의 찬양인도자도, 아삽처럼,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찬양인도자가 되면 좋습니다.

즉 찬양 사역이 곧 말씀 사역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