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6편 해석, 전쟁과 평화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노래함 시76:1~12 여러 설교 정리
이 시는 아삽의 시로, 배경은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군대가 침입했을 때 (왕하19:35).
산헤립의 군대 18만5천 명을 천사가 전멸시킨 그 때에 지어진 시편으로 봅니다. 주1)
본문은 총 12절인데
단락 사이에 포함된 ‘셀라’를 기준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절은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시온에 임재하신다고 노래합니다.
4~9절은 하늘에서 공의로 판결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위엄을 노래합니다.
10~12절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사방에 있는 모든 이들,
즉 이스라엘과 이웃하고 있지만 이방신을 섬기는 주변국들도
마땅히 두려워할 대상인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권고합니다.
1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알려지셨도다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알려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이 1절에 두 번 반복해서 쓰여짐으로써, ‘강조’되고 있습니다.
‘알려지셨도다’라는 말은
‘위대한, 큰 great’을 의미합니다. *히, 가돌
그렇다면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위대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산헤립의 군대 18만5천 명을 하루아침에 송장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산헤립이 얼마나 큰 소리쳤습니까?
신하 랍사게를 보내서 얼마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했습니까?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살렘’은 예루살렘의 오래된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처소라는 것을 회상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처소(거주지)가 있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성막이 있었고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옮겨옴
나중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거룩한 처소가 된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택하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도록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곳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전된 우리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므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온을 무조건적으로 택하신 것처럼
우리도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셀라) 주2) '셀라'
여기에서 ‘화살, 방패, 칼’은 인간의 전쟁 무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없이 하셨도다.’라는 말은 예루살렘을 정복할 수 있는 원수들의 세력을
없앴다는 의미입니다.
4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약탈한 산에서’는
앗수르가 여러 나라로부터 탈취한 물품들을 산처럼 쌓아두었음을 나타냅니다.
앗수르가 전쟁에서 탈취한 전리품들보다도
하나님은 더 영화로우시고 존귀하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스스로 자신들이 최강국임을 자랑했으나 앗수르는
잠에 빠질 것이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병거와 말도 잠들었다'는 표현 역시 앗수르의 막강한 군사력이 :6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적과 싸우신다는 사실은
성경이 다루는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군대를 꾸짖기만 해도 잠잠해집니다. :6
이 말씀을 보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시인 아삽은 7절에서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진노 앞에 그 누구도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수사 의문문을 사용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 법정에서는 불의가 이기는 경우도 있고,
상황이나 여건에 좌지우지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철저하게 공의롭고 완전한 판결만이 선포됨을 노래합니다. :8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산헤립 군대를 전멸시켰다는
심판의 소식을 들은 온 세상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잠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심판을 단행하신 이유는
땅의 모든 온유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9절에서 노래합니다.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여기서 ‘온유한 자’는, *이스라엘
아래 10절의 ‘노여워 하는 자’와 대조됩니다. *앗수르
시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0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사람의 노여움과 그 분노는
언젠가는 도리어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앗수르의 침공이 결국은 열방에 하나님의 찬양이 되었죠.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겨 보려는 온갖 발악들은
결국 주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게 만들 뿐만 아니라,
세상과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쁨과 영광을 더 크게 만들 따름입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앗수르를 물리친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하32: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앗수르와 산헤립) 의 악행을 허용하시는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문은 그 중 한 가지 목적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7, 10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행을 허용하시는 이유를, 본문에는 약간만 드러나 있지만 *1절 참조
그리스도인들을 연단시키시기 위한 도구로 악인을 쓰신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악인들의 악행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날까지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나를 연단시키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래 버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빨리 굴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은 다가오는 종말에 임할 심판을 세상에 경고하시려고
앞서 지금 심판을 행하시며,
그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두려운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 진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두렵고 강력한 재판장이십니다.
그분은 빈번하게 인간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이 시편의 메시지는, 의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갚으심을 기다리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때 주위에서 구경하던 경건치 않는 자들도
주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그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악한 행위마저도
온 세상의 절대적인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쓰일 것입니다.
아무도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경건하지 않는 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 굴복하고 심판을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1) 대적들도 그분을 막지 못합니다.(4~5절)
"주는 영화로우시며 약탈한 산에서 존귀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악한 횡포를 자행하는 자들을 패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존귀를 나타내십니다.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앗수르인들은 약탈을 위해 먼 땅까지 침입했습니다.
2) 어떤 무기로도 그분을 막지 못합니다.(6절)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들었나이다."
야곱을 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교만한 대적을 패하게 만드셨습니다.
여기서도 깊은 잠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대적들이 지금은 고요한 죽음의 침묵 속에 있습니다.
최고의 군대도. 치밀한 계획도. 위력 있는 무기도
하나님의 꾸짖음 앞에서는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3) 하나님은 온유한 자들의 구원이 되십니다.(9절)
여기서 온유함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갖 시련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겸손히 주의 구원을 바라며 인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온유함을 지닌 자의 태도에는 하나님께 대한 갓과 인간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인간의 분노를 찬송으로 바꾸십니다.(10절)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어떻게 해서 사람의 분노가 찬양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악인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해 갖고 있는 적의를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시는 기회를 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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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본 시편의 저자 시기는 예루살렘이 외부의 위협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거둔 후에, 그 승리를 찬양하기 위하여 지어진 시편으로
저작 시기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①여호사밧 왕이 통치할 때-암몬 족속이 침하여 유다 민족이 구원을 받은 때 (대하20:28).
②다윗이 에돔과 소바왕 하닷에셀에게서 승리를 거둔 후에 (삼하8:9, 10:6~19)
③아하스가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연합군을 물리친 후 (왕하16:5)
④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군대가 침입했을 때 (왕하19:35).
대부분의 학자들은 히스기야 왕 때 산헤립의 군대 18만5천 명을
천사가 전멸시킨 그 때에 지어진 시편으로 봅니다.
주2)
‘셀라’는 ‘들어올리다, 높이다’라는 단어 ‘살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셀라는 성경에 74회 나옵니다.
하박국에 3회(3:3, 3:9, 3:13)를 제외하면 모두 시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셀라는 예배 때 사용하던 음악 용어이며 가성, 또는 주악의 리듬을 올리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적 의미, 쉼 또는 중지의 의미,
강조의 의미, 영원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