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원을 얻었지만 여전히 모순투성이요, 연약함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죄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전인적으로 자라가야 할 영역들이 아직 남아있는 거예요. 노예에서 풀려난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거죠.
◑3.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신 약속은 넓고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처럼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성장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품도, 그리스도를 닮기 까지 계속 자라가는 겁니다.
옛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살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도 피곤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피곤하게 살아가야 되는... 그 성질이.. 변해야 하는 거잖아요.
갈수록 속이 넓어져야죠. 점점 더 이전보다 더 넓은 용량, 세상을 마치 다 품어낼 듯한 그런 용량으로 자라가야 된단 말이죠. 그리스도의 성품까지 자라가야 하는 겁니다.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에게 소원(구원의 완성, 성화, 성숙)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리'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불어 넣어 주세요.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으면, 우리에게 새로운 소원이 생깁니다.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 갈망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나는 이전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는 변화되고 싶다는 거죠.
'그리스도를 닮고 싶다..'는 거죠. 기도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가 깊어지는거에요.
'하나님, 내 삶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싶지 않아요. 멈춰 있고 싶지 않아요. 이전과 흡사한 삶으로 반복되고 싶지는 않아요. 나아지길 원해요. 더 깊은, 더 풍성한 성도의 삶을 살기 원해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불어 넣어 주시는 소원은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가요? 봐야될 것을 보지 못하니까, 눈이 어두워져 있으니까, 영적으로 감각이 어두워져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까요? 비전이란,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걸 보는 거예요.
바울의 가지기 원했던 비전은 이런 것이었어요.
엡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기도인거죠. 눈이 밝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우리에게 베푸실 지극히 크심의 어떠함을 알게 되면 가슴이 막 뛰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역은 너무도 풍성하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기도제목 중에 기도가 그거예요.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에 기이한 것들을, 그 약속들을 보게 하옵소서' 시119:18참조
결코 지금 나의 이 상태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 이 정도 수준으로 끝나는 게,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돼요. 더 깊은 곳으로, 더 풍성한 것으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무엇이며' 이게 뭔지를 아는 게 눈이 열려야 돼요. 마음의 눈을 밝혀주십시오!
오늘 밤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주십시오.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엡1:18~19 그래서 비전이 보여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우리가 달려가야 할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이 무엇인지...
여러분, 눈이 열리면 멈춰 있을 수가 없어요. 눈이 열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보았으니까!
▲눈에 보여야, 소망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책망을 하고 난 다음에, 백성들에게 임무를 하나 부여하죠.
수18: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매 지파에 세 사람씩을 뽑아, 차지할 기업의 땅들을 돌아보고 오도록 명령을 한 거예요. 남은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 지도를 그려오게 한 거예요.
여호수아의 의도는 뭘까요? 그 직접 가서 보고, 두루 다니며 지도를 그리는 가운데 그들의 무덤덤했던 가슴에 불을 지르려고 합니다.
현장을 보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발로 밟는 땅을 주겠다'고 하셨던 그 땅을, 직접 밟아보게 한 거예요. 매 지파에 세 사람씩 대표로 가서, 먼저 그 땅을 보고 오게 한 것이죠.
땅을 밟고서 이곳저곳으로 보고다니는 동안에 가슴 속에 기대와 열망이 일어나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배를 만드려면 바다를 보여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배를 만들게 하면, 배를 만들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렇지만 바다를 보여주면, 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좁은 세계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으면 새로운 욕구가 일어나야 정상입니다. 이전에는 좋지 않았던 욕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죄를 통한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구, 그러나 은혜 안에 들어오면, 새로운 욕구가 일어나요. 새로운 desire가 일어나요. 거룩한 욕구, 거룩한 굶주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주시고 싶어 하셔도, 받을 백성의 마음이 중요해요. 직접 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도 40년 전 정탐꾼 시절에 가나안 땅을 보고 난 이후에 비전이 생긴 겁니다. 뚜렷한 거죠. 본 거예요.
미리 보는 것이 비전이고 환상이에요. 믿음이란 뭘까요? 보는 거잖아요.
히11장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증거니' 믿음을 가지니까,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거예요. 남들은 못 보는데, 자기 눈에는 보이는 거예요. 그것이 믿음이 하는 일이에요.
오늘날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해요.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은 앞을 봐요. 비전이 열려요. 멈춰 서 있을 수가 없어요.
믿음의 사람은 미적거리지 않습니다. 치고 나가는 거에요. 수세에 몰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공격적이에요. 여러분 타인에게 끌려 다니지 않아요.
안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늘 미루다가 결국 내몰리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늘 새로운 소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하나의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거죠.
갈렙은 85세인데, 난공불락의 산지를 내게 달라고 그러잖아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왜 그런 선포를 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믿음은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한다는 거죠.
▲우리 사랑방 목자하시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분가를 계속 시키는 거예요.
분가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전도해서 성도만들고 그래서 많아지면 분가시키고..
이 정도면 됐는데, 또 분가를 하고, 또 분가를 하고.. 몇 번째를 분가하는 분들을 봤어요. 새로운 목표, 새로운 소원이 생기는 거죠. 안주하지 않는 거예요. 계속 하는 거예요. 움직이는 거예요. 앞으로 가는 거예요. 정복해 나가는 거예요.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 현실 안주형이 아니죠.
▲여러분 여호수아가 답답해 한 것은 무엇입니까? 축복의 땅을 목전에 두고, 그냥 뭉개고 있는 거예요.
가나안을 목표로 지금 요단강을 건너왔는데 목표가 바로 코 앞에 있는데 뭉개고 있는 거예요.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3 아마 여호수아가 한참 오랫동안 보고 보다가 답답해서 지금 이 말을 하고 있을 거예요.
왜, 왜 뭉개고 있느냐? 본 게 없으니까 주저 앉아 있는 거에요.
눈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니까, 근시안이니까 그저 그 앞에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좀 더 가면 그들에게 약속한 땅이 예비되어 있는데 발로 밟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 있는 그 땅에 그냥 안주하는 거예요. 근시안들이에요.
신자는 근시안을 고쳐야 합니다. 멀리 보는 눈을 가져야 돼요.
멀리 보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어요. 오늘 여러분들의 눈이 열려서, 뭐 지금 당장에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코 앞만 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에요.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 마디의 설명보다,
매 지파에 3명씩 뽑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직접 보게 했습니다. 자신들이 취할 땅을 다녀보고, 지도를 그려오게 했습니다. :4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지도로 그리게 한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보고 오는 게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그려오게 한 거죠.
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요.. 본 게 있으면, 쉽게 안주할 수가 없어요. 못 봤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여호수아는 단순히 그냥 땅을 돌아보게 하지 않았어요.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어요. 그 모든 지형도를 그려오라, 즉 자세하게 살피라는 거예요.
대충 보면 그릴 수 없어요. 수없이 다녀봐야 그림으로 그릴 수가 있는 거잖아요.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챙겨 보도록 했어요.
▲여러분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려오라고 하면서, 의도한 것이 뭘까요?
1) 첫째로는 구체적인 비전이 생기도록! 비전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요.
안 본 사람에게는 비전이 생길 리가 없어요. 오늘도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그때 비전이 생기게 되고,
그 비전은 열정을 일으키게 되고, 나태하지 않고, 주저앉지 있지 않고, 쉽게 만족하지 않고 위험할지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용기가 생기는 이유는 보았기 때문에!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두루 다니면서' 목표가 분명해진 겁니다.
하나님이 주실 축복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맵을 그려오게 한 것은 사명과 연결되는 거예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라는 거죠.
가나안 정복은, 그 땅에 그냥 잘 살라고 주신 땅이 아니에요. 새로운 미션! 가슴 뛰게 하는 새로운 미션을 그 땅에 주신 거예요.
◑적용
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해 문제들이 많아졌습니다. 난공불락과도 같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19가 한 2년 동안 지금도 끝이 나지 않고 새로운 변종이 생기면서, 끊임없이 돌파감염이 일어나면서 우리를 몰아가고 있잖아요.
모든 게 멈춰 서 버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리고 이런 코로나19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문화의 대변혁,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 삶의 양태 등 모든 게 다 바뀌고 있어요. 수십 ~ 수백 년 동안 바꿀 수 없었던 것 까지도 그냥 급변하게 만들고 있어요.
우리를 어디론가로 몰아가는.. 적응하지도 않은 상태속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시작된 New normal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일상)이
계속 Abnormal (더 새로운 게 또 나오니까, 뉴노멀이 또 비정상) 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난제들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을 때,
우리는 혹시라도 '이 정도면 선방한 것 아닌가?'하고 만족하고 끝나버릴 수 있어요.
아니에요.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돼요.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올 때 더 힘이 나요.
왜냐하면 우리 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가나안 정복의 핵심은 하나님이 치르시는 전쟁이기 때문이에요.
백성들은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나아가기만 하면
길은 하나님이 여신다는 거죠.
여러분 계속해서 바라볼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 사명입니다.
두루 다니며 우리가 할 일이 보이는 거에요.
다니다 보면 할 일이 보여요.
내가 정복해야 될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거죠.
우리는 이 땅에서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돼요.
▲직장을 다닐 때도 '영적인 도해 spiritual mapping' 를 해야 돼요. *영적 지도 작성 및 분석 출근을 할 때, 첫 출근을 하고 다니면서
사단의 진영들이 어디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내가 싸워야 할 전쟁이 어떤 것인지... (도해를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3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여러분 어마어마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되는 거에요.
무신론적이며, 하나님을 그저 거부하는.. 저항하는 이 문화의 한 가운데
굉장히 세속적이며.. 그 세속화가 심각하게 이루어져 있는 그 캠퍼스 안에서
영적 도해를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는지
-왜 나에게 이것을 보게 하셨는지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전쟁을 치르잖아요.
감사하게도 우리 중고등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도회를 만들고
막 투쟁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초등학교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기도회를 열고
교장 선생님을 위해서 모여서 막 기도 하고..
교장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지 모르겠습니다.
아~ 멋있는 거예요, 여러분!
꼬마들인데 막 교장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학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에요.
교장 선생님도 못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그냥 수세에 몰려 끌려다니면 정복 당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정복해야 될 영역들이 있어요.
지형과 동향을 살펴봐야 돼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교회가 몇 개이고, 학교가 몇 개,
병원이 몇 개, 모텔이 몇 개, 술집이 몇 개인지 (이렇게 파악하는 것이 영적 도해 spiritual mapping)
파악하고, 그 분위기가 세속적에서 영적으로 기울어지도록 기도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강력한 역사들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최근에 해운대 바닷가를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트렌스젠더 바가 보이더라고요. 새로 생겼나봐요.
간판을 일층에 크게 붙여놨어요. 그런데 그 옆에 도로에는
우리 교회에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더라고요.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여러분, 어디 (우리 교회가 버티고 있는) 해운대에 트랜스젠더 바가 들어와요?
기도하셔야 돼요. 영적 공격이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청소년들, 노숙자들, 저소득층, 깨어진 가정들
그냥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데요.
돌아다니면 눈에 보이게 되는 거죠.
왜 그 땅을 돌아다니며 보는 일을 할까요?
그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있는, 그 땅에 가나안의 족속들, 우상들, 산당들
하나님을 거부하는 반문화적인 그 많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는 그 땅을
정복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어야 돼요.
악한 것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사단의 진영을 점점 우리가 정복해 갈 때,
사단의 진영이 입지가 좁아져 가고
나중에는 결국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통해 그 땅의 우상을 몰아내고
악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문화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땅이 되기를 원하셔서
당신이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거예요.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그냥 잘 먹고 잘 살라고,
단순히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을 위해서
그 백성을 이끌어 내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섬기는 땅으로 바꿔 놓는 그날까지
우리 직장과 학교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이유가 있는 거죠.
▲최근에는 '쇼 미 더 마니' 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아넌딜라이트 Anandelight (한국 개신교인 래퍼)
라는 청년이 아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랩 가사에는 예수님 얘기로 가득 차 있어요.
앞에 심사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요.
'당신이 그런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인 얘기를 계속 노래로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막 이렇게 저렇게 디스하고, 공격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예수 믿는 얘기를 자꾸 하고, 기독교적인 얘기를 많이 하니까
막 사람들이 디스할 때 '너는 어떻게 할 거냐?' 그러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끌어안을 거에요. 그리고 축복해 주겠다는 거죠.'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을!
그 래퍼의 세계가 그렇잖아요.
막 욕을 하고, 노래 가사가 그런 거잖아요. 굉장히 욕을하고, 공격적인 그런 가사죠.
그곳에 예수님의 복음을 랩을 통하여 증거하겠다고 정면승부를 건 거에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높이고
성경의 얘기를 랩으로 노래하고, 성경의 가사들이 막 노래로 나오고...
그 어두운 문화 안에서 예수의 그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아넌딜라이트의 삶이, 세상에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이 열려 질 때,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눈이 열려질 때, 그게 나를 사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에 관한 것들이
열려질 뿐만 아니라 엡1:18
우리에게 주신 사명,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그 일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이 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잘못하면 교회 놀이로 전락해요. 교회 놀이!
그냥 우리끼리 모여서 띵까 띵까 하며 노는 거죠.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축복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에요.
신앙생활은 현상유지가 아닙니다. 현상유지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돼요.
신자로서 어느 지점에 딱 멈춰있는 경우가 있어요. 거기서 딱 멈춰있어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안 나가요!
변화도 일어나지도 않고, 어떤 사명을 위해서도 달려가지도 않고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냥 나중에 나는 천국 갈 거고, 이제 하나님이 나를 천국에 받아줄 거고 *이것도 considerable
그러니 적당한 수준에서 신앙생활 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정복해야 될 영역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죽을 때까지 계속 있어요.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안 죽어요.
코로나19로 안 죽을 거예요. 사명이 끝나기 때문에 죽는 거죠.
하나님은 오늘도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사람을 찾고 계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전투력을 가진 사람을 부르시고 계세요.
가던 길에서 멈춰서, 두 손을 다 놓고 있는 사람을 사용하실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노예기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기질이 있었던 것처럼요.
죄에 끌려다니던 사람들, 수동적으로 살던 게으른 사람들,
적당하게 현실과 타협하며 살았던 사람들...
그들은 끊임없이 그 예전의 노예적 삶을 그리워하잖아요.
여러분 비전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가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니에요. 신자 모두가 비저너리 Visionary 가 되어야 돼요. *비전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은혜를 받으면 여러분, 희한한 일이 일어나요. 뭔가 그림이 그려져요.
자꾸 멈춰있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상상력이 복원되고요. 새로운 것을 보게 해요.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적당히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저 미적거리면서 그냥 예수 믿는 것, 교회 다니는 정도로 끝내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꿈이 생기고 가슴이 뛴단 말이죠.
'이대로 살면 안 되지.. 이대로 살면 안 되지..' 라는 마음이 계속 들고
내 기도가 깊어져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게 꿈을 꾸게 하시고, 잠을 설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하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꿈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있어야죠.
내가 기도할 때 가슴이 뛰어야 되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맛보았습니까? 여러분,
신앙의 세계는 들어가면 갈수록 더 신비롭고 경이롭고 끝도 없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몇 년 해 오셨습니까?
30, 40, 50년 그 연조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영적 세계에 대한 벅찬 기대감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여러분, 은혜도 얼마나 놀라운지.. 어메이징 그레이스 라고 그랬어요.
그 끝없는 은혜와 축복의 강수안에 푹 잠겨서 헤엄을 치는 경험을 해야 되죠.
얕은 곳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거대한 심해로 나가야 해요.
거대한 심해로 들어가서, 평생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하며 더 깊이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바울이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세상의 모든 게 다 배설물 같이 여겨지는 거에요.
그 보잘 것 없는 것에 내가 눈독을 들이고, 평생 매달리고 살았던 것에 대해서
너무도 안타까운 생각을 합니다.
'내가 저거 붙들고 이제껏 살았나?' 자신이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깨달음이 온 거잖아요. 왜요? 진짜를 발견한 거니까!
실체를 발견하니까 그림자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가짜를 붙들고 몸부림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될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있는 곳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신앙이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그저 그냥 평행선을 달리면서, 그냥 계속 한 곳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지체하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지는 않는지?
조그마한 어떤 목표를 완성했다고 거기에 자족해 버리고,
성급한 만족을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아직도 땀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있다는 거죠.
믿음으로 발로 밟고 나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발로 밟는 땅을 다 네게 주겠다'는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여러분 '오징어게임' 하지 마시고 정복게임을 하셔야 돼요.
정복시리즈 일탄, 이탄, 삼탄을 여러분의 삶속에서 만들어 가셔야 돼요.
'아직도 여전히 나는 그 승리에 배가 고프다'고 고백하는 성도...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승리를 맛보도록 하나님 우리와 함께 싸워주십니다.
▲여러분 벌써 정복했어야 할 영역을 미루다가
오히려 점령을 당한 영역은 없습니까?
벌써 정녕 점령을 했었어야 되는데, 벌써 끝장냈어야 되는데
세월을 보내면서.. 오히려 내가 점령을 당해 버립니다.
더 깊은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이 갈망이
여러분들의 평생에 식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분깃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이라는 말이죠.
교회에 다니고, 직분 받고, 그저 몇 가지 봉사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훨씬 더 큰 거예요. 여러분!
내 삶에 찾아오신 그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신 분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기업의 풍성함을 매일 매일 맛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고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선봉에 세우셨습니다.
가는 데 앞장 서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소극적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이런 소극적인 모습은
마치 다된 밥을, 제 발로 차고 있는 것 같아요.
다 되어 있는 밥인데, 근데 제 발로 차버리는 거예요.
한 발자국만 더 나가보라는 거예요.
두려워 하지 말라! 영적 나태를 극복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코로나19 때문에.. 라면서, 끊임없이 내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주저앉아 잊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코로나19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실 일을, 반드시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코로나19에도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얼마든지 바꿔놓으십니다.
여러분 성경의 스토리를 보세요. 어디든지 그냥 역전이잖아요.
성경을 어디든지 보세요.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다 되는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