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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9장 2 지식 없는 소원, 소원 없는 지식

LNCK 2021. 12. 16. 07:54

[날마다 기막힌 새벽 #706] 지식 없는 소원, 소원 없는 지식 - YouTube

 

◈지식 없는 소원, 소원 없는 지식             잠19:2            출처

[날마다 기막힌 새벽 #706]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잠19:2

 

야고보서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즉 '사망의 원인은 죄고, 죄의 뿌리는 욕심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욕심이 만 가지 죄의 원인이지요.     *본문의 소원에 빗대어

 

그런데 오늘 저는

조금 다른 면을 생각해 보려고 그럽니다.

 

욕심은 무조건 다 나쁜 것일까요?

만일 욕심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욕심(소원)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우리 삶이라고 하는 엔진을

돌리는 연료 같은 것이 아닐까요.?

 

욕심(소원)이 없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드물지만,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요즘 텔레비전에 보면

꽤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보여지는데

 

무슨 자연인에 대한

산속에서 모든 것 다 버리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자연인들에 대한 방송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웠으니

사나이 대장부가 뭐 이만하면 좋지 아니한가?'

하는 게 어떤 사람의 멋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것이 멋있는 일이고

훌륭한 일일까요?

 

기독교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게하고 누워서

산속에서 혼자 나만 좋다고 살아가는 일을

옳다고,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두에 죄 얘기를 했는데

죄란 무엇일까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왜 하는가? 하면

욕심 때문에 하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렇게 말씀하는 거겠죠.

 

▲그런데 죄는요.

또 다른 방향이 있어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도 죄지만

여러분 그에 못지않게 어쩌면 더 중요한 죄가 있는데요.

 

그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죄예요.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성경은 나태, 게으름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근데 성경은 게으름과 나태를 악이라고 얘기해요.

 

그래서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은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 무섭잖아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마25:26

악함과 게으름을 동일시했거든요.

이렇게 책망하셨는데

 

여러분 그러니까

그냥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렇게 누워 있으면... 그건 게으름이에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참 훌륭한 일인데

그런 욕심 없이 사는 건 좋은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산속에서 나만 좋자고 있냐?

 

물론 병 때문에, 아픈 몸을 치료하느라고

그러는 것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일은

성경에서 그건 훌륭한 일로 보지 않고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것도 악한 일이고 죄다..

라고 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한 얘기를

우리에게 가르쳐 줘요.

 

'지식 없는 소원 zeal without knowledge 은 선하지 못하다.'  잠19:2

 

지식 없는 소원!

굉장히 중요한 면을 터치하고 있어요.

 

여러분 '소원'이라는 말을

달리 바꾸면 '욕심'이거든요.

 

무엇을 소원한다.

무엇을 열망한다.

그것을 내가 욕심낸다.. 라는 뜻이니까

 

소원은 욕심의 어떤 좋은 표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근데 소원인데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

라는 것이에요.

 

그럼 반대로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식 있는 소원은 악하지 않은 거예요.

 

지식 있는 소원은

여러분 선한 거예요.

 

그런 지혜로운 욕심

옳은 욕심

 

그것을 저는 의욕(義慾)

옳을 의(義)자, 욕심 욕(慾)자를 써서

만든 단어인데요.

저는 의욕(義慾)이라고 생각해요.

 

산상보훈에도 있잖아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5:6

하는 것이거든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나'

그건 욕심 있는 거거든요.

 

의에 욕심 있는 사람인데

그것은 욕심에 지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혜 없는 욕심,

어떤 욕심이 죄의 뿌리가 되는가 하면

 

지혜, 지식 없는 욕심이기 때문에

그 욕심이 죄로 가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살려고 하면

그냥 욕심 없이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혜로운 말씀에,

또는 의에 주리고 목 말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기독인의 삶이고

건강한 삶이고

잘 사는 삶이고

훌륭하게 사는 삶인 것입니다.

 

제가 영락교회 고등부를 목양할 때

고등학생 하나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 위에 형을 제가 아는데

그 형이 서울대를 간 아이예요.

 

그것 때문에, 아마 형 때문에 좀 스트레스가 많아서

얘는 공부를 때를 놓쳐서 잘 못한 거 같습니다.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뭐냐 그랬더니

'공부가 인생의 전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무슨 공부가 인생의 전부겠냐?'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우리 집 아이들 중에도

공부 열심히 하는 아들이 있고

좀 열심히 안 하는 아들도 있는데

 

저는 열심히 안 했다고 뭐

'공부 다 잘해야 하나?

뭐 다른 거 잘하면 되지..' 

 

정말 저는 제 아들을 놓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정말 저는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공부가 인생에 무슨 전부냐? 아니다'

 

그랬더니 학생이 아주 마음이 좋아서 돌아가려는데

제가 조금 말을 덧붙였어요.

 

'야,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너 공부 못하지?' 그랬어요.

 

학생이 저한테 불의의 일격을 당했어요.

급 당황했어요.

 

머뭇거리더니 "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짓궂게 또 장난을 쳤어요.

 

'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그딴거 물어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네가 공부를 지금 못 하고 있는데

공부 못하는 게

신념 때문이냐? 핑계 때문이냐?'

 

학생은 얼굴이 좀 빨개지더니

'목사님 핑계가 맞습니다.'

 

'그렇지? 그거 핑계야!

공부가 뭐 인생에 전부겠냐?

 

그런데 공부를 잘하면, 쓸 데가 많지 않니?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고...'

 

그래서 그날 얘기를 잘 풀었어요.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쓸 일이 많지 않냐?

 

근데 게을러 놓고

그걸 합리화하려고 하는 일은 비겁한 일이 아니냐?

 

하는 것이

제가 그 학생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교훈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이 있어요.

 

고린도전서 4장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을 강조해요.

 

그런데 그 충성은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4:2절이에요.

 

4:1절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너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1절과 2절 사이에는

'그리고'라고 하는 접속사로 연결되어있어요.

 

그러니까 1절과 2절은 한 문장이에요.

'너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1~2

 

충성만 얘기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 그게 본문의 지식 이거든요.   *잠19:2

 

충성을 얘기하는데

순서가 충성이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의 비밀(지식)이 먼저예요.

 

이렇게 '그리고'라고 하는 접속사로 연결되면

앞에 나오는 것이 더 본질적이고 더 중요하고

그다음에 오는 것은 딸림이거든요.

 

으뜸, 딸림의 형식인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이 먼저야,

그리고 충성해야 돼!

 

사도 바울은 지혜 없는 충성을 했던 적이 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단인 줄 알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예수 믿는 사람 잡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게 지혜 없는 충성이에요.

 

이게 오늘 본문과 맥이 같아요.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

 

아무리 욕심(열심)으로

충성스럽게 열심히 해도

 

지식이 없으면 선하지 못하듯이

 

아무리 열심을 다해 충성해도

지식이 없으면

그 충성은 합력하여 악을 이루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지식충성

지식소원, 욕심

이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하잖아요.

이 시간을 통해서 얻는 게 뭘까요.?

 

지식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 마음과 생각을 아는 지식!

 

말씀을 배워요.

그래서 이게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여러분, 이 지식이 중요하지만

지식만 있으면 뭐 해요?

 

소원(열심)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 지식 없는 소원은 좋지 않은 것이지만

 

지식만 있고 소원이 없는 것도

선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이 중요한 것은요.

지식소원의 균형과 밸런스

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날기새 통해서 아무리 배우면 뭐 해요?

깨달음이 많으면 뭐 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사는 것에 대한 소원을 가지세요.

 

욕심을 가지세요.

거기에 주리고 목말라 하세요.

 

그리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넘어지면 또 도전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바울과 같은 삶을 한번 살아보세요.

 

그래서 우리 지식과 소원

지식 있는 소원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이 땅에서도 천국 살고

하나님 나라를 사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