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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9장 1~11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시는 하나님

LNCK 2021. 12. 16. 16:08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시는 하나님      삼상29:1~11      2021.11.28.출처
                                                               *원제목 : 은혜는 어떻게 오는가

우리가 살다보면 '이제는 끝났구나, 이제는 끝이구나, 
정말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이런 극한적인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뭐 젊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을지 몰라도 
왠만큼 인생을 산 사람들은 
'이제는 더 이상 내 힘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이제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제 정말 끝이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또 기가 막히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황이 호전, 역전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죠. 

그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끝내시지 않으면, 끝나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내 힘으로 뚫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면 

그 고난이 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사건들,
축복의 시간들이 되는구나..' 
이걸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체험적 신앙이에요. 

비록 내가 말씀 한마디 붙잡고 지나갔을 뿐인데 
근데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히게 우리의 믿음가운데 
놀랍게도 은혜를 차고 넘치게 부어주셔서 
그 위기의 상황들이 넘어가게 되고 

다 끝난 것만 같은 상황들이 오히려 다시 역전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기대하지도 못했던 열매와 선물을 허락하시는 것을 겪게 됩니다.

◑본문 설명 : 다윗이 처한 진퇴양난의 위기

본문 삼상29장은, 다윗이 그야말로 큰 위기와 어려움에 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사실은 
28:1~2절에 연이어 읽어야 이해가 쉬워요. 

삼상28:1~2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어요. 
근데 블레셋의 아기스에게 망명을 온 다윗이 
아기스 왕으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게 됩니다.

자기와 함께 이스라엘 - 사울의 군대를 치러 나가자는 것이죠.

다윗이 사실 아기스에서 편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에요.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사울에게 쫓기는 삶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좀 평안하게 지내보겠다고 블레셋에 망명을 했지만 
어떻게 망명한 시간이 쉬웠겠어요? 
1년 4개월 있는 동안에, 하나도 편치 않았습니다. 

이때 다윗은 남방에 있는 아말렉 사람들을 습격해서 
그들을 죽이고 전리품을 얻어다가 아기스에게 바치고는 
자기가 마치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빼앗아온 것처럼 보고를 했지만 
'언젠가는 들통날 수도 있다. 아기스를 속인 게 발각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늘 왜 없었겠어요? 그러니 하나도 편치 않은 시간들을 보낸 것이죠. 

(이렇게 아기스를 속이고 있는데) 문제는 아기스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신임을 얻게 된 것이 복이 아니라, 도리어 또 다른 화근이 된 것이죠. 

아기스는 다윗이 믿을만 하니까, 전쟁에 데리고 나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네가 이번에 나가서 전공을 세우면, 내가 영원히 평생 너를 내 경호대장으로 삼겠다.' 삼상28:2
이렇게 아기스의 큰 신임을 얻게 된 거예요. 

사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 가도 신임을 얻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28:1~2절에 이어서,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삼상29: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은 5개 도시국가의 연합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삼상6: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블레셋의 5대 도시

그래서 돌아가면서 5개 도시국가 중에서 한 지도자가 연합 국가의 왕이 되는 것이죠. 
지금은 가드 왕 아기스가 전체 블레셋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러니 각 도시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들을 집결시킨 중간 지점이 아벡입니다. :1

아벡은 가드에서 50~60킬로 떨어진 곳인데 
그곳에서 집결해서, 전 부대를 더 북쪽으로 진격해서 수넴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수넴 근처에 이스르엘 샘이 있는 길보아 산에 진을 쳤고요,  :1
양국 군대가 결전 태세를 갖춘 것입니다. 

29:2~3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지금 문제는 5개 도시국가 연합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아기스와 다윗과 그의 부하들 6백명이, 블레셋 군대의 후진에 따라가게 된거에요. :2

그러니까 앞에서 진격하며 나아가던 다른 블레셋 군대가 보기에는 
'이게 뭐야? 지금 이스라엘과 싸우러 가는데, 자기들 뒤에 히브리사람들이 뒤따라 오는 거잖아?' :3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아기스 왕에게 항의를 하는 거예요. 
'왜 하필 저 히브리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겁니까? 이 전장에' 

그리고 여기 방백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3
아까 말씀드린 5개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이죠. 

이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왕을 했기 때문에 
누가 한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절대 왕정처럼 
그 왕이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나머지 4방백들이 어필하면,   *아기스를 제외하고 4방백
그들의 말이 먹히는 때라는 거죠. 

그래서 아기스 왕 혼자 결단한 다윗의 출정을 
다른 4 방백들은 승복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아기스에게 항의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기스가 대답을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다윗을 여러 날, 여러 해를 데리고 있었는데 
한 번도 그의 허물을 보지 못했다. 지극히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그는 사울을 피해서, 사울의 신하로서 망명 온 사람 아니냐? 
그러니 사울과 대치할 때, 다윗이 전선에 나가면, 
상징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 하는 그런 전략적 계산을 가지고 얘기하지만 
다른 방백들은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29: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러니까 다른 블레셋 방백들은, '아니 생각 한번 해보십시오. 
만약에 다윗이 전쟁 도중에 우리를 배신하면 
그 사람이 사울과 화해하기 위해서, 우리 목을 따 가지고 갈 사람 아닙니까?' 

과거에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얻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2백개를 잘라 간 사람이에요. *삼상18:25, 삼하3:14 foreskin(포경)

엘라 골짜기에선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미 도저히 블레셋 사람들과는 하나 될 수 없다는 걸 
방백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아기스의 눈에는 뭐가 씌었는지, 다윗이 자꾸 좋아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온 가족이 반대하는데, 왜 그 사람하고 결혼하겠어요? 
눈에 깍지가 씌웠으니까 결혼하지요. 다 반대하는데 말이죠. 
그런 일이 우리 인생에 있단 말이에요. 
그런 일에는,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점점 살아갈수록, 사람들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 같은데 
그 결정의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이끌려서 
결정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일을 하십니다*설교 주제

아기스가 이렇게 다윗에게 호의를 품도록.. 하나님이 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기스는 독특하게도, 그 누구도 다윗을 좋아하지 않는데 
자기 혼자 다윗에게 자기 마음이 끌려서, '어떻게 하면 내가 다윗과 같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시글락이라는 마을을 다윗에게 줘서 
거기서 공동체를 이루게 하다가 
전쟁 때 지금 불러들인 거란 말이에요. 

▲4방백들이 이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었어요. 
그 전에 블레셋이 사울-요나단과 전쟁을 할 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삼상14: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전쟁 도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점령을 하면 
히브리 사람들을 모아서, 자기 군대 전투병으로 소속시키는 거죠. 

그래서 블레셋 군대를 재조직할 때 
이 히브리 사람들을 뒤섞었다는 말이죠.  *전쟁 때 보통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군대를 만들어 놓았더니, 전쟁을 하는 도중에 
요나단과 사울이 우세한 전황으로 바뀌자 
이 히브리 사람들이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바람에 (사울 편에 붙는 바람에)  *삼상14:21
그냥 블레셋 군대가 서로 치는 일이 생겼어요. 

블레렛 군대 내에서, 누가 적인지 / 아군인지 모르게 된 거죠. 
완전히 대혼전이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블레셋은, 사울왕 초기에, 그렇게 했다가 전쟁에서 패했던 그런 악몽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히브리 민족들을 함부로 전쟁에 데려와서
자기들과 뒤섞어서 쉽게 군대를 조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기드온의 3백 용사 때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전쟁에서 내가 기꺼이 내 목숨을 바치겠다'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전쟁을 해도 
이길까 / 말까 한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이 전쟁에 대해서 회의적인 사람들은 
굳이 전쟁에 참여 시킬 필요 없어요.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뭡니까? 너무 사람이 많은 거예요. 
싸울 의사도 없고, 왜 불렀는지 부르심에 대한 소명도 없고, 
무엇 때문에 교회에 이렇게 사람이 많냐는 겁니다.

뭐 하러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하나님께서 다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말이에요.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울 만한 사람 3백명이든, 7천명이든 
그 숫자로도 족합니다.

맨날 허수만 부풀려져 가지고 
뭐 숫자만 많았지,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무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전쟁을 치르겠어요? 
그런 심정이란 말이에요. 

29: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건은 얼마나 유명했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서 널리 퍼졌던 이 노래가 
블레셋까지 다 전해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블레셋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사울보다도 다윗이 더 위험한 인물이다' .. 이게 깊이 각인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다윗을 데리고, 전쟁을 지금 치르겠다고 아기스가 데리고 왔으니 
다른 방백들이 누가 이걸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반발이 있게 마련이고 
결국은 아기스가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6~7

29:6~7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아기스가 지금 오히려 미안한 표정이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다윗은 지금 전쟁에서 사울과 싸우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도 명색이 다음 이스라엘 왕으로 하나님께서 정말 기름부어 세워놓은 사람인데 
자기 백성하고 전쟁을 치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어떻게 왕이 됩니까? 

따라서 어떻게 보면, 28:1~2절과, 29:1절 사이에 있었던
사울이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서 물은 일,
그야말로 사울이 레드 라인을 건너갔던 일,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도저히 찾아가서는 안 될 사람을 찾아갔던 그 엄청난 일, 

지금 다윗도, 그 사울처럼, 비슷한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사울처럼, 찾아갈 데가 아닌데 찾아간 결과를... 지금 고스란히 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만약에 블레셋 편의 군대 최일선에 선다면, 그 또한 (사울처럼) 레드 라인을 건너는 것이죠.

 

그런데 비슷한 상황에서, 사울은 버림을 받았지만, 다윗은 건짐을 받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이 그를 데려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 갈등 상황이
하나님의 은혜란 말이에요. 

반대로 블레셋 방백들이,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윗과 저 육백명 군사를 우리 진영의 최일선에 배치해서, 
그들을 화살받이로 씁시다'
이렇게 나올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하심이었죠.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시는 하나님   *이 설교의 주 논지

그래서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살리시기 위해서, 
괜히 블레셋 다섯 방백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큰 위기를 겪었을 때도
압살롬의 부하들 가운데 아히도벨(압살롬의 모사)과 후새(다윗 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갈등을 일으키시는 것도

때로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저(조정민 목사)는 과거에 사북사태 때, 기자로 취대하러 갔다가 거기서 죽을 뻔했어요.
*1980년 강원도 사북에서 일어난 노사갈등,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사북 광장에 제가 홀로 취재하러 들어갔다가, 시위대에 붙잡혀서 사북역에 갇혔어요. 
보니까 시위대는 전부 탄광에서 일하다가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술에 취해가지고  완전히 눈 색깔이 시뻘건 사람들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죽이자. 죽이겠다!'고 했어요. 
제가 사과 궤짝 위에 올라갔습니다. 
'나를 죽이기 전에 내 말도 좀 듣고나서 죽이시라' 

'여러분들의 기록은 오늘 당장 뉴스로 다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의 기록은 반드시 기록될 것이고, 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야 되고 
여러분들은 나한테 얘기를 해줘야 됩니다.' 

그랬더니 시위대의 의견이 둘로 쪼개져서 
여전히 다수는 죽이자는 것이고 
소수는 저를 보호해서.. 결국 끄집어내서 사북역 경계선 밖으로 까지 저를 끌고 나왔어요. 

그때 누가 한 사람이라도 돌을 던지거나, 누구 한 사람이 주먹질을 시작했으면 
그 날 저는 거기서 맞아 죽는 거예요. 

저는 그때 아직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뭔가 계획이 있으시고, 살리시겠다면... 살리는 거예요.

하나님은 시위대 중 소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어요. 그래서 저를 살게 하셨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소명을 가지고 살면, 
죽고 싶어도 안 죽어 집니다. 사명을 마치기 전까지는요!  

다윗은 기름부어서 어차피 하나님께서 쓰기로 했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는 블레셋으로 가서는 안 될 곳에 갔어요. 

하나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다윗이 망명길에 올랐다고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버리십니까?

하나님이 그와 같이 안 가실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안에서 (즉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는 가운데) 잘못된 선택을 할 때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안타깝게도 가서 안 될 곳에 갔기 때문에 
만나서는 안될 사람(아기스)을 만났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 삶이 편치 않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에요. 

다윗이 평안을 구해서 갔던 블레셋의 1년 4개월은 
도리어 더욱 불안한 1년 4개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다윗을 여전히 지켜보고 계셨고 
다윗을 보호하고 계셨다는 거예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찬성/반대로 나눠지게 한단 말이에요. 
다윗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가, 자기들 서로 갈등 구조로 가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자꾸 물질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신 단 말이에요. 

그래서 에스더가 사흘 금식했더니,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이 바뀌어서 
홀을 내밀어, 그의 청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에5:2 
하나님이 아하스에로 왕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통곡하면서 울고 금식하고 했더니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우리가 본다는 말이죠. 

우리가 기도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우리가 기대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당장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눈앞에 펼쳐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금 삼상29:6~7절의 이런 상황이 펼쳐진 거예요. (위에 있음)
방백들이 갈라져서, 서로 갈등하며 다투는 것입니다. 1대4로.

그래서 아기스가 오히려 다윗에게 미안해 합니다. 사과합니다.

지금 다윗은 이 전쟁에서 자기가 빠지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목에까지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감히 청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우리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이런 문자를 씁니다.
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감히 청하지 못할지언정 그것을 마음속으로 바란다'라는 뜻이죠.

그런데 그렇게 다윗이 원하던 상황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그렇게 내가 간절히 원하긴 했으나,

도저히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 결국 이뤄지는 것을 보고서,
성도들은 이걸 하나님의 은혜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실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람이 좋아보이건/ 싫어보이건 
그런 것들이 다 내 생각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이겁니다. 

지금 다윗으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오기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만약 아기스를 따라가는 척 하다가, 중간에 어디론가 도망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시글락에, 지금 6백명 군사들의 가족들이 
다 인질로 잡혀 있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반드시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다윗이 기도한 흔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윗이 '화살기도'를 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하나님, 제가 여기 들어온 것은 죽을 죄를 지은 겁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의 손에, 내가 나 자신을 의탁한 것이야말로 
하나님 정말로 제가 해서 안 될 짓임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부디 살아서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 안 했겠어요? 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그 얽힌 상황을 못 푸시겠어요? (푸십니다)

하나님의 팔은, 우리 팔처럼 짧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손은, 우리 손만큼 작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어떻게 해서든지 의로운 길을 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응답해주시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이미 응답을 해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하나를 원했는데, 두 개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만큼 가기를 원했는데, 저만큼 더 가게 하시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합할 때, 하나님은 그런 일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눈물이 터지죠. 감동하죠. 
'아~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구나.' 이걸 알게 됩니다. 

사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대가 다 길이 막힌 것 같지만 
우리가 의로운 길을 가기로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는 첩경을 펼쳐 보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어려운 시대에도 여전히 믿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의로운 삶이에요. 

주님은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운 길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우리를 뭐 당장 어떻게 하시지 않아요. 

우리가 그 길을 가더라도 (본문의 다윗처럼)
그분께서는 우리의 길을 돌이킬 수 있는 플랜B, 플랜C 가 있기 때문이죠. 

주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상계획 contingency plan 도 있어요. 
일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했지만 
진짜 아브라함이 순종한답시고 칼을 들어서 이삭을 내리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비상계획이 발동되신 거죠.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응답하시고 
우리가 불신으로 행동하면, 하나님은 그 불신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신뢰하지 마세요!

아기스가 다윗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은, 너무나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아기스의 판단이 틀린 것이었죠.

물론 그게 다윗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아기스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역사였죠). 

29:8~10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아기스는 다윗 일행에게 다음 날 새벽에 떠나라고 합니다.
아기스는 끝까지 다윗에 대한 호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온 블레셋 땅에서 다들 다윗이 누군지 아는데 
지금 아기스 혼자만 모르고 있는 거예요. 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권력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온 국민은 저자가 간신이고, 악한 자라는 걸 아는데 
정작 최고 통치권자는 그걸 몰라요. (교회에도 그럴 수 있죠)
그러고는 본인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신앙인이란 누구입니까? 
'내가 늘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래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고집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옳다고 그래요. 
자기가 옳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는 것, 
신앙 안에서 성숙해간다는 것은 
나는 절대로 옳지 않다는 걸 아는 거예요. 

나는 늘 잘못 볼 수 있고, 잘못 들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겁니다
여러분 누구도 객관적으로 100% 올바로 듣거나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움직이는 방법은 
우리가 못 볼 걸 보게 하거나 
볼 것을 못 보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발람도 그랬었죠.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가 임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못 보게 하는 겁니다. 

부부가 은혜롭게 산다는 것은 
서로 간에 결점을 못 보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잘 삽니다.  

그러나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알아요. 
그 아내가 얼마나 여우같은지... 
그 남편은 또 얼마나 남몰래 못된 짓을 하는지... 다 알아요.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그의 결점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신비하게 일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이 
하나님의 손길, 또한 또 다른 영적 존재(마귀)에 의해서 
얼마든지 우리는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진실을 듣고 사는 게 아니에요.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이고, 
하나님이 듣게 하시는 대로 듣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문을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우리 눈을 그렇게 보게 만들면, 

우리는 그렇게 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영적 존재란, 우리의 보는 시각과 듣는 청각과 
이 모든 것들의 프레임을 만드는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아셔야 합니다. 

영적 존재란 우리의 프레임(틀)을 만들어서 
그 프레임에 가두는 존재구나... 

그래서 악한 영들에게 붙들리면,

여러분 생각이 고정관념처럼 굳어져서 도저히 바뀔 수가 없어요. 
그 (마귀가 만들어 주는) 프레임에서 못 벗어난 단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프레임을 주셔서 
은혜로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하셨고 
은혜로 결정하고, 은혜로 반응하는 삶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다는 거예요. 


◑다윗이 실수로 아기스에게 내려갔으나, 성령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나 여러분이 잘나서 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의해서 결정하고 사는 삶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도록 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해서 사는 삶이 가능해졌습니다.

이게 엡2:8~9절 말씀입니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의 모든 결정과 선택과 행동을 자랑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스스로 전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우리의 생각조차도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우리가 보는 관점이나, 시각이나 
듣는 이 모든 것들이 

즉 우리의 가청 범위, 가시범위, 
우리가 깨닫는 자각의 범위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보고 있구나... 이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더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해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구나.. 

내가 적진에 있더라도, 수많은 적들이 내 눈앞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내 잔이 넘친다고 고백하도록
허락하시는 분이구나..' 이걸 깨달았던 것이죠.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삶!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다윗이 빠져나올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온단 말이에요. *본문 삼상29장

사울과 비교하자면, 사울은 찾아가서 안될 곳(엔돌)을 가서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는 인생을 살고 말았어요.

그러나 비슷한 위기를 만난 다윗은 달랐어요. 평소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찾았기 때문이죠. 그 차이에요.

그래서 구원받았다는 건 뭡니까? 
구원받은 삶이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삶이 시작되는 거에요. 

그 구원을 박차 버리거나,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게 되면 
있어서는 안될 자리에서, 자기의 삶이 펼쳐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걸 모르고 
자기가 가서 안 될 곳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어떻게 하든지 그 (멸망의) 자리에 가기를 원하고 
그 자리에서 뭐 안 할 짓을 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서.. 인생이 꼬여서 
나중에 풀 수 없는 지경을 만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구원받은 삶이란, 
신기하게도 우리가 가야할 곳에 가게 하시고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시고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사실(진실)대로 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가면 
사실대로 말을 못하고 살게 됩니다. 
늘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과장하거나, 비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의 연속되는 것이죠. 

그러고도 조금 잘 먹고 잘 살면 
거기서 과감히 떠나지 못하고 
거기에 빌붙어 사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죠.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삶이 시작되면 
'아~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요15:7에서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뜻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구하지, 
내 뜻을 따라 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러면 대담하게 구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구원못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 또한 이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빌4:6~7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사는 비결이 어디에 있어요? 

이렇게 염려가 많은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어디서 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그런 능력을 얻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롬8:27~28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이게 너무 중요한 말씀이에요. 
여러분들은 이걸 달라고 자꾸 기도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있으면' 
실수하더라도, 잘못 구하더라도, 성령께서 통역을 잘 하셔서 
하나님한테 성령님이 나 대신 간구해주시는 거예요. 

'지금 이 사람이 입으로는 이걸 구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사실은 속마음으로 이걸 구하고 있는 겁니다' 라고 전달해주는 거예요. 

성령이 하시는 역할은 이런 역할입니다. 
근데 이걸 사도 바울은 나중에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서로 충돌하게 만든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내가 입을 열어서 무엇을 구하든지 간에 
성령께서 그걸 신기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고, 통역을 해주시고 
아름답게 번역을 해주셔서.. 결국 하나님께 저가 이걸 구하고 있는 겁니다. 
라고 전달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어쨌든 기도의 자리에 앉는 게 중요하고 
어쨌든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게 이토록 중요한 까닭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A를 구했는데 B가 올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응답되는 까닭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란 말이에요. 

기도를 할 때, 왜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되느냐 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정상회담 할 때 통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상들은 영어가 짧잖아요. 
또 어떤 때는 형편없는 말을 해요. 

그런데 뛰어난 통역관들은,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잘 통역합니다. 
실제 대통령이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잘 통역을 하는 거죠. 
그래서 상대방이 꼭 들어야 할 말을, 통역하는 유능한 통역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실제 대통령을 통역했던 두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는데 
비화를 들으면 우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과거에 대통령은) 말해서는 안 될 걸 막 말한다는 거예요. 
그 통역관이 그렇게 통역하지 않아요. 
아주 격식에 맞춰서, 대통령이 마치 아주 능수능란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통역을 한단 말이에요. 
그게 좋은 통역관이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 성령이 그렇게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엉망진창으로 구하더라도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그 분이 아름답게 통역을 하실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결국은 해피 엔딩으로 이렇게 끝납니다.

삼상29: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시글락)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