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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삶의 원칙 P1 / 잭 푸닌

LNCK 2021. 12. 20. 10:32

https://www.youtube.com/watch?v=nYs_XwLwrXQ 

                                        *출처 동영상의 5분 36초부터~30분까지 정리     

예수님의 삶의 원칙 P1 / 잭 푸닌 - YouTube <한글 녹음>

◈예수님의 삶의 원칙 P1                      요5:19                         출처
The Principle of Jesus' Life  / 잭 푸닌 
               

지금 '예수님이 걸으신 대로 걷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Walking as Jesus walked

개역성경에는 '그가 행하신 대로 행할지니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일2:6

 

그럼 예수님이 행하신 삶의 방식을 우리가 알아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살 수 있겠지요.

요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모든 사역를 수행하시고 또 여기저기 다니셨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기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지 
끊임없이 듣기 위해서, 항상 열려 있는 내면의 귀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에게 항상 의존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마18장에서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어린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따라서 이 둘을 합쳐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사셨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묻고, 의존적이셨다는 뜻에서 '어린아이'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려고 하셨던 겁니다. 

이 비밀을 제가 한 번 발견하고나서부터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를 노예로 만들었던 습관들을 극복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삶에 계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기도 수월해진 것입니다. 

이럴 때면 아빠 손을 잡고 아빠가 가자고 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네 살짜리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 것이 예수님이 사신 방식입니다. 아주 단순한 삶이지요. 
그 분은 아버지의 이끄심에, 단지 반응만 하시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이 
바로 이와 같이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두 나무를 두셨을 때, 
아담에게 말씀하고자 했던 것은 

'네 앞에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네 자신이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스스로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네 자신이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갖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 
네가 무엇을 할지/ 말지, 네가 알아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 선악과 나무를 먹고 살기로 선택하면 너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는 생명 나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다른 삶의 방식이다. 
이 방식에 대해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해 
네가 이해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옳다고 이끄시는 대로 살기로 너는 선택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인간적 영리함과 능력으로 사는 것인데 
심지어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이런 방식으로 삽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해! 
나는 하나님이 하시라고 하는 말씀을 기다리거나, 들을 필요가 없어!' 

그런데 이것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혼란과, 패배와, 낙담의 삶의 원인입니다. 

성경에 있는 많은 명령이 
우리가 순종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사는 비결을 배운다면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의 이끄심에 의존해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삶이고 
바로 이것이 성령충만함을 받는 목적의 전부입니다. 

성령충만에 관한 가르침이 본래와 다른 방향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너무 초자연적인 은사들에 치우쳐 있으니까요.

저도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에 내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충만을 받는 일차적인 목적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여러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하라거나 / 하지 말라고

언제나 우리가 항상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우리에게 일러 주십니다.

 

▲이사야 50장4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사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예수님이 아침에 깨어나실 때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그 분을 아침에 깨우시고

그분의 내면에 귀를 깨우치사, 하나님의 음성과 가르침을 듣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나도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내가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치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아침에 잠깐 경건의 시간QT 을 갖는 것과는 다릅니다.

매일 아침 깨어날 때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듣기 위해

그때부터 하루 종일 귀가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음성이나 깨우침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예수님은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며, 좀 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요.

 

그 결과는,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들으셨기 때문에,

그날 도움이 필요한 누구를 마주쳤을 때, 언제나 그 사람을 위해 해줄 말씀이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사50:4

 

그러니까 예수님은 매일 아침에, 항상 들으셨습니다.

그 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기 위해, 항상 들으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 어떤 필요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다가왔을 때

그를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아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님을 이끄셔서, 그 사람을 위한 어떤 말씀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산다고 한 번 상상해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다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범주에 속한 크리스천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마귀가 이제까지 속여 왔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실제로 들을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거듭나서 하나님 자녀가 된 성도의 '타고난 권리 birthright' 입니다.

(구약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을 받았다면, 신약성도인 우리는

이런 '타고난 권리 birthright' 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에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나

나의 필요를 공급하는 말씀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성경 창세기 첫 페이지부터 나오는 메시지 입니다.

창1장에서 하나님은 첫째 날에 어떤 말씀을 하십니다.

둘째 날에도 어떤 말씀을 하시고, 셋째 날에도 어떤 말씀을 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하나님은 날마다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거듭난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매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성을 듣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내 귀가 그분의 음성에 귀 먹었기 때문이지,

하나님은 날이면 날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거듭난 그때 로부터, 하나님은 매일매일 나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매일 그 분께 귀 기울이는 일에 관심이나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 삶에 어느 날 정말로 깨어나서 기도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도저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어느 날 제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큰 일 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제게 하고자 했던 말씀을, 제가 하나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시 저는, 생명 나무를 의지해서 살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나는 똑똑하고, 성경 도 읽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재촉하심 prompting' 에 의지에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속에서 뭘 하라/하지 말라고 즉각 유도, 인도, 재촉하심)

 

구약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선지자나 몇몇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면, 선지자를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행2장의 오순절 때부터 생긴 엄청난 축복 가운데 하나인데

히8:11절을 보십시오.

히8: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옛언약에서는, 여러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누군가에게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언약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리라' for all shall know me, 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

 

그래서 새언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러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줄

누군가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직접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주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때로 기도 하시기 위해서 홀로 어디론가 가셔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가서 그 분에게 많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예수님이 하셨던 방식의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하는 식으로 기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 제 Zac Poonen 기도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냐면 그 전에는 제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그 분께 단지 많은 것들을 말하곤 했으니까요.

 

저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 하실 때,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말보다는 듣기를 더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사야 50장4절에서 읽은 것처럼요.

'주께서 나의 귀를 깨우치시되 .. 알아듣게 하셨도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딘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도로 2시간을 보내셨다면

제 생각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간은 틀림없이 5분 정도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2시간을 보내면서, 단 5분간만 말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깨달은 바로는, 그것이 제게 가장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의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깊은 경건과 진실된 믿음을 소유한, 성숙한 크리스천과 함께 앉아 있다고 가정하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가급적 자기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대신에 그 분의 말을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그런 분과 1 시간을 교제하며 보낸다면

저는 아마 5분간만 말하고, 55분은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제가 신앙이 어린 사람과 얘기를 한다면

그 때는 아마도 제가 55분을 말하고,

그 사람이 5분을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훨씬 더 경건한 분과 얘기를 한다면, 저는 제 말을 줄이고,

그 분께 더 많이 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보세요.

그것이 기도의 자리입니다.

내가 듣고 있어야 할까요. 말하고 있어야 할까요?

 

만약 내가 하나님과 함께 1시간을 보낸다면, 제가 55분간을 말하고 있어야 할까요?

아니지요. 저는 저는 55분 동안 조용히 듣고, 5분간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뭐 모르고 계시는 게 있어서,

제가 자세히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을까요?

 

내가 진 무거운 짐들 중에

그 분이 모르고 계시고, 무관심해 하시므로,

나의 많은 설명이 필요한 짐이 있을까요?

 

'예수님이 기도하신대로 기도하는 것 Praying as Jesus prayed' 이 어떤 것인지

전혀 이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그분이 걸으신 대로, 걷는 것 Walking as Jesus walked'이 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참고로, 영어로 '걷는다'는 표현은, '신앙생활을 하는 삶'을 뜻합니다. 산책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요. 

 

예수님이 걸으신 대로 걷는 것이란, 그 중에 한 가지는 '듣는 기도'입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듣기 위해, 내 귀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은 33년 반 동안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루셨고,

마지막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요17:4

 

▲이 사실이, 제 삶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왜냐면 그때 저는 깨달았으니까요.

 

이제 저는 세상 모든 곳을 다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이 제가 가기를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되고,

즉 좋다는 모든 일이 아니라, 주님이 제게 시키신 그 특정한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 눈에 좋아보이는 모든 일들을 다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주님이 시키신 특정한 그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까 그게 가능한 거죠!

 

예수님 자신도 마찬가지였어요.

예수님은 결코 아프리카나 중국이나 로마나.. 멀리 어떤 곳에도 가지 않으셨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셔서 선교하는 일도 필요했을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가 시키신 일은 아니었어요)

 

예수님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오직 이스라엘 경내에만 머무셨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습니다' 요17:4

하고 고백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이 나라, 저 나라로 가급적 많은 나라를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전도 여행한 나라들의 숫자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만, 

 

그게 과연 하나님이 그 분께 특별히 시키신 일인지,

그렇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에, 그렇게 많은 나라로 다니는 게 좋아보여서 다닌 것인지..

그건 하나님만 아시겠죠.

 

그렇게 전도여행을 다닐 여건이 안 되는 다른 사람은

'오 나는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양적인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듣는 것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양으로 말하면 그 분의 삶의 90%는 목수셨어요.

예수님은 30년 동안 전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엄청난 시간 낭비처럼 보입니다.

단지 3년 반 동안만 전도 하셨고, 결코 이스라엘 나라 밖으로 나가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대로 걷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의 삶

아주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수천 편의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 quantity 이 아니에요.

 

그것은 아버지께서 여러분이 하시기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자기 생이 마칠 때

'아버지 저는 여기저기 다니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시키신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저는 다 이루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저 (잭 푸닌) 의 기쁨인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갈수록,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잘 압니다.

 

저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 제가 하기를 원하시는 일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한 가지에 사로잡힌 바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시며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끝마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100가지가 넘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여러분은, 자기의 삶을 허비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시139편에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모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다 계획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저는 거의 만 79세가 되었는데요. *2018년

제가 어머니 태에서 나오기 전 1939년 쯤, 아직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

나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느 날 거듭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제 삶의 모든 날을 계획하셨습니다.

앞으로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 삶이 마치기로 되어 있는 날까지 다 계획을 하셨습니다.

 

시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 뭔가 내게 정해 놓으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 모든 사역이 절대 아닙니다.

그 중에 '내게만 특별히 정해 놓으신 사역'이 있다니까요!

그 일만 (골라서, 잘 분변해서)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에 가도록 되어 있지 않았고, 아프리카에 가도록 되어 있지 않았고,

중국에 가도록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30살이 되실 때까지, 목수로 살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30세 때 비로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아까 사50:4절에서 읽었듯이 매일매일 듣고 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기를 원하셨던 구원사역을 완수 하실 수 있었고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시며,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직전에

아버지께 드린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요일 2장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제가 시작하면서 인용했던 본문 말씀인데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walk  as he walked.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는 삶'이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삶이, 정한 날이 이르기도 전에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처럼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매일의 삶에서, 그 일을 아버지께 물어서, 

아버지께서 시키신 그 일만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살려면, 요일2:6, 여러분도 그러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의 마지막이 이르렀을 때, 하늘을 우르러 보며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하신 일을 제가 이루었습니다' 요17:4

 

내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나라에 가봤는지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한 나라, 이스라엘만 다니신 게 그게 전부였고

돈은 얼마나 버셨나요?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몇 년 동안 전임사역자로 지내셨나요? 3 년 반 그게 전부입니다.

너무 짧지요, 인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다지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길만한 화려한 경력이 아닙니다.

30년 동안 목수였던 분이셨어요

 

그리고 3년 반 동안 순회 전도로 여기저기 다니셨어요. 단지 한 나라 안에서만!

오늘날 만약 이런 전도자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분은 매일매일 자신이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정확히 아셨고, 그것을 끝마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이 세상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습니다'

그 기도가 진심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귀 기울여 하나님 아버지께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려고 하면, 마귀가 또 발빠르게 대처하는데,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우리를 아주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귀기울여 들을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가 그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자기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이 어떤 중대한 죄를 범하지 않아도..

불결한 영화를 보지 않고 상당히 깨끗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정기적으로 교회 모임에 출석하고, 크리스천의 의무를 다 하며 성실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헌금도 열심히 드리고요..

여러분은 이런 모든 것들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주님 앞에 서게 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면서 '주님이 시키신 그 일'은.. 안 하고 심판대 앞에 선 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해서, 너무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듣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평소에 제 자신을 위해 드리는 가장 큰 기도 중에 하나는,

'주님 제가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제게 시키신 그 일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입니다.

 

제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저는 교회에 매주 출석했고, 이것도 했고 그것도 했고,

주님의 일을 위해 헌금도 했고, 그 모든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제게 시키신 그 일은

어쩌다 보니 못하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다른 일은 제가 열심히 했으니, 좀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 주님 앞에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탯속에 있을 적에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정하신 일들을 제가 다 이루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만큼 많은 곳에 다니거나

다른 사람들이 한 것만큼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시키신 그 일은 다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요일2:6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세요. '주님, 주님이 저를 이 땅에 부르셔서 맡기신 그 일,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그 일을.. 제가 감당하며 살기 원합니다!'

 

여기에 경쟁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각자 고유한 일의 사명이 다르니까 서로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설교자로 부르시지 않으셨더라도

여전히 여러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다 마치면, 큰 기쁨으로 여러분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의 사고방식의 전적인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면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가급적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기도 다니고, 저기도 다녀야 한다,

-가급적 규모가 큰 일을 추진해야 한다.

왜냐면 세상은 일의 양 quantity 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단체들도 대부분, 항상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의

숫자를 가지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양에 치중하신 적은 극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막판에 예수님이 성취하신 사역의 결과를 본다면요

사역의 마지막에 예수님 주위에 함께 모인 사람들의 숫자만을 놓고 본다면

 

3년의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의 결과가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던 11명의 제자들,

오순절날에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갈릴리에 더 많은 제자들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11명의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그 11명의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 11명으로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을 그대로 계승해서 섬기게 했고,  

그런 일은 매 시대마다 계속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2천년 동안, 이 세상이 점점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어져 왔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서, 저 잭 푸닌은 소원합니다.

'주님, 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큰 교회 말고, 저는 그런데 큰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역사를 바꿀 그런 사람 11명의 제자를, 제가 얻을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마칠 수 있을 텐데요...' 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양질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마치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하나의 일에, 열정적으로 붙잡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요일2:6

우리가 예수님처럼 행한다고 해서,

그것은 완전주의 perfectionism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리스도 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완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버지께 귀기울여 듣는 습관을 가진다면,

점점 더 성숙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가셨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P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