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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5편 해석, 주여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 시85:1~13 여러 설교 정리
본문의 시편은 저작 시기가 포로에서 돌아온 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룹바벨을 통해 돌아올 때나,
에스라 또는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올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1~3절은 포로애서 귀환케 해주심에 대한 감사하고,
4~7절은 거칠어진 이스라엘의 심령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8~13절은 그 간구에 대한 응답을 확신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시인은 바벨론 포로에서 되돌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바사를 물리치고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돌이키다(슈브)’는 구약에 종종 나오는 말인데,
우리 인간 편에서 돌이킬 때, 이는 ‘회개’를 뜻합니다.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가 돌이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회개의 은총을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포로에서 돌아오긴 했으나, 폐허가 된 터전 위에서
시인은 ‘주여,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은 파괴된 성읍의 회복 이전에, 심령의 부흥을 바라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1851년 10월에 17세의 소년으로
켐브리지 워터비치 교회로 부임했습니다.
워터비치 교회는 스펄전이 부임할 당시 40명이 모였는데 얼마 안가서
4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엄청난 숫적 성장과 함께 삶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워터비치는 본래 술과 불경으로 악명 높은 마을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헐벗고 불쌍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죠.
그런 마을에서 가장 악독한 건달들이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였습니다.
술취함과 방탕함은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이 일하러 나갈 때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나가고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마을 이 끝부터 저 끝까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찬송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심지어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도덕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스펄전은 본문 시85편을 배경으로
‘평화, 어떻게 얻고 어떻게 잃어버리나? Peace: How Gained, How Broken’
그 주제는 아래 8절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순종해야) 평화를 얻으며, 그래서
과거의 어리석은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어었습니다.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매일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라는 결심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목소리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져 있을 때나
기도로 마음을 쏟아 놓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주님의 구원은, 다른 말로 ‘하나님과의 화평’의 회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화평이 회복되어야
내 삶의 화평, 평화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출발은 ‘말씀을 듣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과거의 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데, 더 자세히 말하면,
여기서 ‘어리석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슬라 입니다.
이 케슬라 라는 단어의 원뜻이 바로 ‘자기신뢰 confidence’입니다.
'그들은 다시 자기신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이 뜻이에요.
그래서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가 필요합니다.
왜냐면 과거의 어리석은 죄로, 즉 자기를 신뢰하고 살았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본래부터 사랑과 진리는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10a
그래서 사도 요한도 말하기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요1:17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사랑과 진리, 긍휼과 진리를 각각 따로 떼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진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곧 진리요, 진리가 곧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사랑을 베풀고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진리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의와 화평도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10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의와 화평을 서로 떼어놓았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평화란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아닙니다.
의와 화평은 하나입니다. 의가 화평이고, 화평이 의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하나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애, 화평을 따로 떼서 한 가지만 가지려고 하니까,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애와 화평을 가지려면, 두 개를 다 가져야 합니다.
즉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결국 땅과 하늘이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의는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불의가 가득 찼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을 만드신 하나님은 땅도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의가 하늘에만 가득찬 것이 아니라 땅에도 가득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의보다 불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고 했습니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듯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사랑과 진리로 가득찬 삶을 살아갈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의와 화평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사랑과 진리, 의와 화평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위대한 계획이요 섭리입니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이렇게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
땅에서 진리(진실도 됨), 하늘에서 의.. 가 회복될 때,
시인이 바라던 부흥이 회복되어지며,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6
이때 삶의 환경 역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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