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시편 87편 해석,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LNCK 2021. 12. 23. 17:53

 

◈시편 87편 해석,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시87:1~7      여러 설교 정리

                                                                     -시편 설교 모음-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고라자손의 시, 곧 노래>입니다.

‘시 곧 노래’는 ‘찬송시’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에 곡조가 붙여져서 예배 때에 찬송으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편은 열방이 언젠가는 주님께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시편 86:9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86: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시편 말고도, 구약 예언서에는 
열방이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여러 곳에 나옵니다.
            *구원의 보편성 https://blog.daum.net/rfcdrfcd/15979264

이 시편은 하나님의 성읍, 즉 시온의 영광스러운 일들에 대한 노래입니다. 
시인는 시온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읍으로 묘사한 후에 
열방이 어떻게 아이들처럼 모여들어 그곳에 거하며 기뻐하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온의 영광 (1~3절)

 

1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터전’이란 ‘기초, 토대 foundation’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산을 기초로 삼으셨다는 것은  :1
구약시대 때 ‘성전’에 기초를 둔 것을 말합니다. 
신약적 해석으로는 '교회'를 의미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늘 성전이자 교회에 임하여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부가 거기입니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사는 전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온의 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도성을 가리킵니다.

하필 '문'이라 쓴 것은, 당시 고대사회에 성문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매매를 하는 등 도시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 였습니다.

과거에 한양에 비유하면, 종로에 해당하는 그런 중심지 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이란 '출입하는 곳'입니다.

즉 '문'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를 통해 말씀과 진리와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이유는 아래 구절과 같이, 시온에서 말씀과 구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2:2~3)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즉 온 세상을 복음화하는 기초도, 예루살렘  :1

온 세상을 선교하는 통로(문)도 예루살렘,

그래서 시온,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성’이라 부르고, 또한 '영광스럽다'고 노래합니다.

  

예루살렘이 여러 선지자들과 많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성이여”, “영광스럽습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스럽다’는 말은 ‘카바드’라고 하는데 ‘무겁다, 존경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견고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대하 7: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그 외에도,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하여 볼 때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만국의 구원 (4~7절)

 

1~3절이 하나님의 구원의 출발점인 예루살렘에 대해서 노래했다면,

4~7절은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민족들이

시온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2:2~3참조)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라합은 ‘애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30:7

라합,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 같은 이방 나라가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고 말씀하는데

혈통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신앙적, 영적으로 이런 이방 나라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2:3

  

하나님은 애굽과 바벨론을 굴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과 바벨론에 그들의 노예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두 나라에서 모두 아무 힘이 없는 노예요 포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노예들을 사용하셔서 이 거대한 괴물들을 사냥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게 하심으로 바로를 굴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라는 포로를 통하여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을 굴복시키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금덩어리로 있을 때에는

주위 사람들의 미움이나 받고 핍박을 받지만 녹아서 스며들 때에는

세상 전체의 맛을 바꾸는 능력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악의 세력 속에 집어넣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연단되고 연단되어서 정금같이 나올 때 그 거대한 세력을 굴복시키고 

영광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분을 아는 백성의 숫자에 애굽과 바벨론 

심지어는 블레셋과 두로 그리고 구스까지 포함시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돌아온 것은 마치 그들이 시온에서 태어난 것처럼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되었고 시온의 신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거룩한 성에서 태어난 것처럼 

개종한 자로서 그들은 시온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하게 보이는 사람이 강하게 보이는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약하게 보이는 사람이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는 훨씬 더 큰 사람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적으로 약하게 보여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4

또한 ‘블레셋’, ‘두로’, ‘구스’는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인정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즉 이런 나라들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을 통해서 그들이 구원 받을 것을 뜻합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던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반복적으로 싸우기도 하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들 나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4절과 연관지어 5절을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민족 전체 단위로 구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등, 단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이방인도 포함됩니다.

 

즉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민족이나 인종으로 인한 차별은 없어질 것이지만,

구원은 각자 이루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이 구절을 확대해석하면
시온은 구원 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세대에 유명하게 될 훌륭하고 선한 사람들을 많이 내게 될 것입니다. 

 

지혜와 경건으로 이름나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자의 이상을 잘 아는
왕과 선지자와 지도자들의 요람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진정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자기 시대에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4절, 5절, 6절에 계속해서 '(태어)났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신약에서는 교회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중심이 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대에 전쟁을 치르고 승전하게 되면, 패전한 나라의 사람은 대부분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노예가 될 사람들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숫자를 세며 이름을 올려 등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을 그렇게 숫자를 세시고, 이름을 기록하신다고 하십니다.

 

7 노래하는 자와 뛰어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이 시편은 거룩한 성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축제를 말하며 끝이 납니다. 
원래 배경은 노래하는 자들과 춤추는 자들이 행진하며 
거룩한 축제 의식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모습은 미래에 있을 것입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자들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나의 근원이 네게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구원과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 시온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절에 터와 기초가 시온산에 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이 계속 7절까지 반복되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사람과 뛰어노는 사람들(춤추는 사람들 또는 피리를 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등록하신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근원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노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본래 라합(애굽), 바빌로니아, 블레셋, 두로, 구스에 속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도 우리의 시온에서 났다고 말씀해 주시고,

민족들을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기록해 주실 때에 우리의 이름도 기록해 주셨습니다.

 

△사실 터와 기초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바벨론 포로기 70년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민족적 정체성, 국적.. 이런 것들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언어나 문화를 잃어버린 사람도 그 중에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이방에 흡수통합 되는 거죠.

 

특히 고대에는 자기가 섬기는 왕이 없으면, 곧 자기 나라(국적)가 없다는 뜻이며,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심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본 시편을 포로 귀환 후 스룹바벨 때 썼다는 설이 있죠. 아래 참조)

 

이런 정체성이 만약 없으면, 포로귀환 후에 이스라엘은

쉽게 이방에 동화되어 민족이 없어지거나,

(실제로 앗수르에 망한 북왕국 10지파가 흐지부지 되었죠.)

아니면 다시 다른 왕에 귀속된 노예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가운데서, 시인은 자기들의 기반이

예루살렘과 시온에 있다고, 강력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기원은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통하여

이방과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까지 내다보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실제로 신약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

 

오늘 본문 표제어에는 ‘고라자손의 시 곧 노래’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이 시편이 언제 기록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유력하게 여겨지는 두 시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절에 여러 나라에 대한 언급 가운데, 바벨론은 나오는데,

앗수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이 그 후에 기록되었다고 보면,

유다 자손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했을 때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바빌론 포로생활은 유다 자손들에게 잊힐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인데,

그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이

그 때에 기록된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됩니다.

 

둘째는, 히스기야왕 때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애굽’을 ‘라합’이라고 칭했고,

히스기야왕 때는 유다와 바벨론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 시대에 앗수르 산헤립의 공격을 이기고,

모든 나라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은 것을 근거로 삼습니다.

 

이 시편이 언제 기록되었든지 간에, 시온(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으로 퍼져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