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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2장 1~5 소리를 높여 우니라

LNCK 2021. 12. 28. 22:35

[하루 한 장] 사사기2장_소리를 높여 운지라 - YouTube

 

◈소리를 높여 우니라        삿2:1~5       2016.10.11.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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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 사사기 1장을 시작하면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수1:1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잘 읽지 않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는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모세의 이야기가 익숙하고, 
여호수아의 이야기가 익숙합니다. 

사사기는 계속 정신이 없어요. 
이 사람이 나왔다가, 저 사람이 나왔다가.. 가 반복됩니다.
12명의 사사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데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뭐 삼손이나 기드온처럼 좀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좀 알겠지만 
그것도 그나마 삼손과 기드온을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니라 
다른 설교를 들으면서 예화로 등장을 하는... 사사들은 주로 그런 인물들이에요. 

 

'유혹 받았다'는 설교를 할 때는, 삼손이 예로 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고 알아보는' 설교를 할 때는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이런 식으로 양념처럼 등장하는 책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사기를 우리가 제대로 공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사사기는 그냥 복잡하고, 잘 모르겠는 이야기이고, 

게다가 뒤로 가면 입에 담기에 끔찍한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니까 
이걸 메인으로 설교하지 않는 본문 가운데 하나예요.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라고 시작되는 이 혼란기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가 하면, 
이것이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많은 분들은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가 관계도 없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해야 되는가? 
그것도 3천년 전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왜 이걸 우리가 말씀으로 항상 봐야 되는가?' 

그래서 사사기는요, 주로 언제 읽냐면 성경통독 할 때 읽습니다. 
성경통독 할 때 그냥 빨리 읽어버리고 지나가지요.  
여기만 지나가면 사무엘서니까 
아이 그래도 사무엘서부터는 다윗도 나오고 솔로몬도 나와서 괜찮으니까 
이 사사기는 꾸욱 참고 그냥 지나가버려요. 

그런데 이 역사 속에 담겨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역사 속에는 분명한 패턴이 있어요. 그 패턴이 뭐냐면 
1)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2) 그에  대해 인간이 반응하고, 
3) 그 인간의 반응에 대해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고, 
4) 거기에 또 인간이 반응을 해요. 

이게 쌓여서 역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똑같아요. 

성경이라고 할 때, 우리는 거룩한 성, 경전 경을 써서 
거룩한 경전으로, 거룩한 책으로 성경을 보지만  *聖經

그렇게 역사를 보는 눈을 가지고 보면 
성경은 거룩할 성, 거울 경이 되는 거예요. *聖鏡
성경은 거울이에요.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인생이 어떠한 삶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정확한 거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기 전에 거울보고, 세수하고 나서 보고 
찍어 바르고 거울 보고, 옷 입고 거울 보고, 나가기 전에 거울 보고 
밖에 나가서도 얼마나 많이 봅니까? 수시로 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거룩한 경전이자, 거룩한 거울인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내 삶을 바라보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냐? 는 거에요. 

그래서 적어도 삼천년 전에, 그것도 중동 이스라엘 역사가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그 뒤로 오고 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현주소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내 위치에서 나를 보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그런데 점점점점 올라가면 보여요. 그쵸? 
아파트 십 층에 올라가면, 그 밑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다 보여요. 
그럼 100 층은요? 천 층은요? 

저 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금 2016년 우리 역사와 똑같아요. 

그 패턴을 바라보는 눈이 있으면 
우리는 또다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맨날 왜 저렇게 죄 짓고 
왜 저렇게 하나님을 떠나고 
아니 왜 말씀을 안 지키냐고 
왜 맨날 범죄하고, 저렇게 맨날 울고 불고 하느냐고... 우리가 말해요. 

그렇지만 역사적인 눈으로 보면 
지금 우리도 그들과 뭐가 다른가? 하는 거예요. 

과연 내가 바르게 살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보는 역사관이 필요한데 
사사기 2장은, 역사관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교과서에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내 자신을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눈을 갖기에 가장 좋은 교과서가 삿2장 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삿2장을 볼 때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보시면 좋겠어요. 
1) '과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나? 
2) 거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무엇인가? 

3) 그 인간의 반응을 평가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또 어떻게 나오는가? 
4) 거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또 어떻게 되는가?' 

그럼 실제로 한 번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올라와 말하되' 
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많은 사람이 기대감에 부풀었겠죠. 

1) 그런데 그 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1

이게 아까 말씀드린 역사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이게 1단계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출애굽을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셨고 

하나님이 그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들어가게 하셨고 
또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겠다고 약속, 언약하셨어요. 

2) 그런데 인간은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한 마디로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2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왜 다 죽이고, 없애고, 초토화시키라고 했는가요? 
그래야만 그 제단들을 헐 수 있어요. 

바알이라고 하는 너무나 강력한 신,
너무나 현실적인 신,
너무나 물질을 숭배하게 만드는, 
너무나 육체를 더럽히는 이 악한 신 바알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 악한 신 바알의 제단을 다 헐어버려야 되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걸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1절과 2절의 온도 차이를 느끼십니까?
1절은 하나님의 전폭적인 사랑, 하나님의 인도 하심, 하나님의 맹세,
하나님의 언약이 등장하는데 

2절은 그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아요. 하나도 그것을 듣지 않아요. 
순종하지 않고, 다 배역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우리의 인간의 뜻대로 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참 이상하시네?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믿는데, 바알도 좀 믿읍시다. 

아니 하나님 몫도 받고, 바알 몫도 받고.. 얼마나 좋아요? 땡큐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왕이면 곱빼기로 받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고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게 마치 그런거죠. 

'내 아내가 있는데, 아내 사랑도 받고 
아니 딴 여자 사랑도 좀 받고.. 그럼 좋잖아요. 
이중 삼중으로 땡큐지 뭐!' 이런 거랑 똑같은 거예요. 

이게 좋아요? 아내가 알면 이건 난리날 일이죠. 당장 쫓겨날 일이죠. 
마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왜 하나님, 바알 신전 좀 안 헐었다고 왜 저렇게 흥분 하신데?' 

이 말은 뭐죠? 하나님을 인격적인 신으로 믿지 않는 거죠. 
하나님을, 나와 유일하게 언약을 맺은 
나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유일한 신으로 믿지 않는 거죠. 

그냥 하나님도 적당히 믿고, 바알도 적당히 믿고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예요. 
중간에서 머뭇머뭇하면서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거에요. 

3) 자 그러면 이제 다시 3절로 갑니다. 
그런 인간의 반응에 대해, 하나님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가나안 족속)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자 이제 사사기에 나타나는 어마어마한 재앙의 시초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이제 사사기에는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공격을 받아요. 

근데 그 공격이, 외부에서 오는 공격만이 아니에요. 
외부에서 적들이 쳐들어오고, 
안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계속 가시가 돼고, 올무가 돼요. 

그들이 내쫒지 않았던 가나안인들, 살려두고 종으로 부렸던 사람들 
그 안에 있던 바알 신과 아세라와 아스다롯과 모든 우상의 음행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가시와 올무처럼 찌르는 거에요. 

안팎으로 지금 이스라엘은 고통당하게 되는 
그 암울한 사사기 역사의 시초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3단계입니다.
인간의 반응에 따른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셔서 우리 삶을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딘가 계셔서 그냥 '아이고 그래 너희가 이렇게 하는구나. 할 수 없지 뭐'
라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
그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수행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2)  
하나님은 반드시 평가하십니다. 3)
반드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고 
하나님을 배역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어요. 
이것을 우리는 잘 몰라요. 

살아가면서 뭐 잘못해도 주일날 나와서 예배하고 
뭐 어쨌든 잘 살아도 주일날 예배하고 
'하나님은 용서해주시겠지, 다 이해해주시겠지...'  
하나도 문제가 없어 보여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평가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거에요. 

4) 자 그렇게 됐을 때, 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인간의 반응도 있습니다.

2:4~5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이 울었다' 그랬어요. 
'보김' 이란 말은, '우는 자들'이란 뜻이에요.

오죽하면 그 지역의 이름을 '보김 - 우는 자들'로 바꿨을까요!
그 지역이 어디냐면 벧엘 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아주 거룩한 이름을 가진 이 벧엘이
'우는 자들'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 오명을 갖게 되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까? 
울려고 온 게 아니에요.
울려고 온 게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러 왔어요. 
샬롬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샬롬을 찾아온 이 가나안 땅이 
지금 통곡하는 땅이 되어버렸다는 거에요. 왜요?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놓아버린 게 아니에요.
하나님도 잡고, 세상도 잡았더니 (양다리 걸치니)
그 백성은 통곡하는 백성이 되었다는 겁니다. 

샬롬을 찾아서 들어온 가난한 땅이 
엔 샬롬의 땅이 됐어요.  *엔 샬롬 : 샬롬의 부재

평화 없는 땅, 평화가 없는 죽음의 땅, 통곡의 땅, 눈물의 땅! 
여러분 이럴 거면 애굽에서 왜 나왔어요? 
이럴 거면 광야에서 왜 여기까지 온 거에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왔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놓치고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서 바알과 아스다롯과 타협을 해버리니까 

이제 그들의 인생은 다시 애굽에서처럼 통곡하는 인생, 
광야에서 처럼 방황하는 인생

여기는 분명히 가나안인데, 약속의 땅에 왔는데 
그들은 지금 눈물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굉장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리 모습이 어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그분의 은혜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삶이 어땠습니까? 
눈물의 삶, 아픔의 삶, 고통의 삶이었어요. 

내가 왜 살아가는지 의미를 모르고,
왜 이런 집에 태어났을까? 나는 이거밖에 안 될까? 하는 열등감에 빠지고 
눈물이 나고, 이렇게 살면 뭐 하나? 
매일매일이 인생의 끝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예수님 알고 나서, 하나님을 알고 나서 얼마나 감사하셨습니까! 
아 이런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구나!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분이 계시구나! 

이러한 나를 정죄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신 
우리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할렐루야! 

그런데 중요한 건, 그 품에 안긴 뒤로 
우리가 정말 샬롬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도 계속해서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서 양다리를 걸치면서 
우리가 하나님 품에서도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엔 샬롬'
즉 평화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삿2:1~5일절은, 
1) 하나님의 약속과 
2) 인간의 반응, 
3)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4) 그 평가를 받은 다음에 나오는 인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게 인간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내가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토록 사랑하시는 백성, 

하나님이 이토록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토록 언약을 주시고, 
언약을 맺고 또 끝까지 복을 주시려고 노력하는 그 백성이 
왜 결국은 '통곡하는 백성'이 되고 말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1단계 그리고 3단계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구원하셨고,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은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가가 끝나면 
우리는 통곡하게 되든지/ 아니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좌우하는 게 어디에요. 2단계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그 사랑의 아름다운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얼마나 내가 그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감사하는가? 

그러면서 내가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나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걸 가지신 분이요,
모든 걸 할 수 있는 분이요, 모든 게 가능한 분이요. 
모든 것이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오직 그분을 신뢰하며, 내 삶을 주님께 맡겨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의 교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 세상 만물의 모든 것, 가장 좋은 것, 
저 하늘에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는데 

우리는 그 하늘의 좋은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허황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은 지금 내게 주어지지 않는 미래의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 현재는 이 땅에서 얻을 것에 만족하고, 
이 땅에서 얻을 것을 좇아가면서 
하늘과 땅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야단맞고, 심판받는 겁니다.
그래서 통곡의 눈물을 쏟는 내 삶이 될 것인가요? 

다행한 것은, 이스라엘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되었지만 
우리의 역사는 현재 입니다. 

현재 지금 우리는 2단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기회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당히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릴건 잊어버리고 
'아니 무슨 말씀을 다 지켜? 적당히 지키면 되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지..' 하면서 나머지는 다 잊어버리고 

나의 유익을 따라서, 내가 좋은 것만 
내가 유익한 것, 내가 지금 이익되는 거, 내가 잘되는 것만 
붙잡아서 몇 개만, 축복의 말씀한 주섬주섬 챙기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사사기의 말씀을 통해서 제게 무슨 말씀을 주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그 말씀앞에 서서 
내 삶의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는.. 
그리하여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서서 
내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칭찬하시며 
하나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델로 우리를 세우실 만한 
그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한번 거듭나겠는가요? 

이 새벽에 이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군사로 
시대를 밝히는 등불로 우리를 사용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통해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나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부터, 우리 가정부터, 우리 직장부터, 우리 교회부터 
우리 공동체부터 시작될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