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7장에서 미디안에 대승을 거둔 후에 돌아오니,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딴지를 겁니다.
자기들을 전쟁에 부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1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이고, 원래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한 조상 요셉의 후손들이고,
또한 땅분배 할 때 지역도 서로 인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에브라임이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그리고 과거 고대의 전쟁이 "약탈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전쟁의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기드온과 그 용사들이, 미디안 진영을 탈취한 물건 중에 금귀고리를 내놓은 일이 있는데, :25
그러니 에브라임 지파가 질투가 나고, 뿔이 났던 것이지요.
그런데 본문 삿8장에서, 기드온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 감각'을 보여줍니다. *여기서는 안 좋은 뜻
힘이 있는 에브라임 지파에게는 좋은 말로 타이르고,
힘이 약한 숙곳, 기브아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자비하고 매섭게 대합니다.
같은 동족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삿8장은 승전 후에 기드온이 빠른 속도로 변질되고,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삿8:10~12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남은 자가 1만5천명이고, 죽은 자가 12만명이니까 미디안 군대는 모두 13만 5천이었습니다.
지금도 3백명으로 남은 1만5천 명을 추격하고 있어요. 정말 이제 뭐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이죠. 아무리 패잔병이라고 해도, 1만5천 명을 3백명의 기드온의 용사들이 습격을 해서 승리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살문나와 세바를 사로잡습니다. 그냥 바로 죽이지 않습니다. 숙곳과 브누엘로 데리고 갑니다.
거기서 기드온은, 그야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반드시 내가 본때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났던 곳이죠. 얼마 전에, 허기진 3백명 용사들이 먹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해는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지리적으로, 숙곳과 브누엘(브니엘과 동일 지명)은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접경 지역입니다. 그래서 아마 두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대세가 분명치 않은데, 숙곳 사람들이 잘못 편을 들었다가 기드온에게 떡을 줬다가, 세바와 살문나가 이기게 되면 또 자기들이 다 죽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한 존재들이에요.
한국전쟁 말기로 가면 어떻습니까? 전쟁이 끝난 뒤에 어때요? 빨치산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낮에는 국군이 다스렸다가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와서 또 쑥대밭을 만들고
여기 편에 의해 죽고, 저기 편에 의해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정말 전쟁이란 그렇게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고 비굴하게 만드는 것이죠.
지도자라면 그런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살겠다고 하는 일인데...
근데 기드온은, 자기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그 동족들에게 기어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 세바와 살문나를 데리고 숙곳과 브누엘까지 온 것입니다.
앞서 자기가 한 말이 있거든요.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7 기드온은 자기가 약속한 그 말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숙곳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소년을 하나 붙들어 가지고 그 소년으로부터 숙곳에서 누구를 손 봐야 할지 블랙리스트를 만듭니다. 77명의 명단을 만들었어요. :14
여러분, 블랙리스트의 원조 격이 아닙니까. 어디를 가나 블랙리스트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어떤 정권이나 그게 있어요. 드러나게 그걸 복수하느냐, 그냥 조용히 하느냐? 아니면 안 하는체 하느냐... 그 차이지, 내용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정의롭습니까? 권력이 정의롭습니까? 권력이 정의롭다면, 예수님께서 권력자로 이 세상에 오셨겠죠.
권력은 이처럼 순식간에 힘이 생기는 즉시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권력으로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권력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면, 십자가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브누엘에 가서는, 자기가 약속한대로 망대를 헐어버릴 뿐만 아니라, 동족을 살해하는 것까지 보게 됩니다. :17
망대란, 그 성읍의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건물입니다. 망대를 헐었다는 것은, 그 브누엘(브니엘) 성읍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굴복시켰다는 상징적인 뜻입니다.
누구와 전쟁을 하는 것입니까? 미디안 과의 전쟁인데.. 결국 자기 동족들까지 죽이고 있다는 거예요.
기드온이 자기 승리에 너무 도취되어 한 순간 타락해 버리고 있습니다. 자기 힘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18~19절,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21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왜 이 전쟁을 끝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승리까지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미디안의 진영(:11)까지 쳐들어가서 그들을 도륙하는, 이런 보복전, 복수전이 되었는가요?
그것은 기드온 자기의 형제들이 다볼에서 그렇게 미디안 왕에 의해 죽었다는 거예요.
내 어머니 아들들이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18~19 당시 문화 관습에 의해 기드온은 지금 그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너희들이 내 형제들을 살려 주었더라면 나도 너희들을 살려주겠지만 너희들은 내 가족을 다 죽였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안 죽이겠느냐?'
그래서 기드온은 마치 그 당시에 고대 왕들이 후계자에게 영광을 나누어 줘서 후계 작업을 준비하듯
자기 아들 여델, 그 어린자식에게 세바와 살문나의 목을 치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애가 아직 어려서,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 합니다. 두 왕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이지 마라. 네가 우리 목을 쳐라'
그래서 두 왕이 이제 죽음을 맞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들이 타고 있던 낙타 목에 걸려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집니다. :21 *요즘도 초승달이 그들 후손들의 상징이죠.
가질 만한 것을 가져야죠. 이 전쟁이 여룹바알, 바알과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그는 이걸 손을 데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들이 달 신을 숭배함으로써 생긴 이런 장식물, 이런 초승달 장식 같은 것을 가져서 뭘 하겠어요?
그 땅에 들어가면 그 모든 것들을 태워라, 진멸하라, 없애라! 하신 게 하나님의 명령인데 기드온은 그런 거 지금 신경 쓰지 않습니다.
▲22~23절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이렇게 서슬이 시퍼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주눅들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은 옛날에 그 포도즙 짜는 틀에서 숨어서 밀타작 하던 그 기드온이 아니구먼!'
서슬이 시퍼런 기드온에게 눌려서라도 '당신은 이제 왕이 되소서!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이 영원히 우리를 다스려 주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앞서 숙곳과 브누엘에서 기드온이 폭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두려움에서 나온 반응이 겠죠.
기드온은 그 요청에 어떻게 말합니까? '아니다. 나도,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의 왕은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다.'
여러분 정의를 말한다고, 꼭 그가 정의롭지 않습니다. 정의를 입에 달고 산다고, 그가 꼭 정의롭지 않다는 말이죠.
여러분, 설교 잘 한다고 의롭지 않습니다. 좋은 설교자 라고 꼭 의롭지 않아요.
좋은 설교를 듣는다고, 꼭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는 대로 자기가 살고, 말씀을 들은 대로 살아야.. 그가 좋은 그리스도인이죠.
답은 알죠.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왜 왕이 되겠느냐?' 이렇게 말하며 기드온은 왕의 자리를 거절했지만
그는 왕이 누리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챙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왕이 되는 길을 한 걸음씩 밟아갔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것이죠)
▲24~28절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그는 왕의 자리를 거절했어요. 그러나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들을 요구했습니다.
겉옷을 펼쳐 놓고, 다 걷는 것이죠. 그리고는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옷, 패물, 장식물, 금귀걸이 다 그냥 본인의 수중에 넣습니다.
그래서 그 금을 걷어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겉옷입니다. 왜 그걸 만들었을까요?
그는 자기의 본거지, 자기의 주 활동 무대인 오브라에 그 금 에봇을 둠으로써 마치 본인이 제사장 인 것 같은, 그런 위세를 나타냅니다.
마땅히 실로에 있어야할 신앙의 중심적 역할과 기능을 오브라로 가지고 오는.. 그리하여 본인이 군사력과, 정치 권력과, 종교적 권력을 거침없이 통합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인 스스로 왕이 안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모든 권력을 수중에 장악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재물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봇을 만들어서 마치 우상숭배 하듯 거기에다가 가나안 식으로 예배드리는 것, 제사드리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에봇'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고 만 것이죠.
어떻게 이렇게 기드온은 급속히 타락할 수 있을까요? 그게 인간이니까요!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근본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과 여건만 갖춰지면 누구나 그런 죄를 짓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얘기는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 한 분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인 것이죠.
(기드온같은) 어떤 사람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드온같은) 어떤 사람의 말과, 그런 속임수에 우리가 거짓되이 속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나가는 사람들인 것이죠.
왕이 되어달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이 왕이신데, 내가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 그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막 감동했을 겁니다.
'왕이 되려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왕의 자리를 저렇게 거절할 수 있지?'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누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40년 동안 사사 노릇을 하지요.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패배하고 맙니다.
그는 전쟁이라고 하는 거대한 큰 일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지만
그러나 일상에서, 자기 신앙을 드러내는 삶의 자리에서는 처절하게 패배하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어느 순간에 성령세례 한번 받는 게 중요합니까, 날마다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까?
물론 둘 다 중요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성령 충만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힘겹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날마다 내가 죽노라!'
우리 신앙은 하루 분입니다.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 무슨 대단한 영적 경험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다음날 넘어지는 게 인간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거대한 하나님의 전쟁,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전쟁을 사사로운 전쟁처럼 변모시키고, 변질시키는 게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죠. 참 안타깝기 한량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악에게 지지 말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게 악에게 지는 길이거든요.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순환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길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 길에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악의 고리를 우리가 선함으로 끊어내는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 때 그때 악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또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지요.
그래서 제가 본문을 읽으면서 '야~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가 없다고, 호칭만 안 쓸 뿐이지 실제로는 내가 (기드온처럼) 다 그걸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럴 수도 있잖아요.
말은 뭐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가 없습니다. 다 형제자매 입니다...' 여러분들도 조심하고, 나도 조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눈을 부릅 뜨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이 얘기를 알았으면, 목회를 시작 안 했을 거예요. 19세기 설교자 찰스 스펄전이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번 이렇게 경고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목회에 뛰어들지 말라! *약3:1참조 그는 알았다. 우리는 교회 리더십의 자리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향력과 영예를 얻으려고 하기가 매우 쉽다.
물론 기드온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여전히 말은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지도, 응답, 구원을 찾기를 바란다. 우리가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에봇을 만들어서 입는다. 얼마나 교묘한가, 얼마나 치명적인가?'
팀 켈러 목사님이 사사기를 주석하면서 써 놓은 글을 읽고, 여러분과 같이 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는 얼마나 교묘하고 얼마나 치명적인가? 목회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영향력, 자신의 명예,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조종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얼마나 교묘하게 조종 manipulation 하는지..'
마치 목회자가 반드시 있어야
성도는 자기가 인도 받을 것 같고, 응답 받을 것 같고, 기도도 응답 될 것 같고... 그런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재자적)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가 그렇게 쉽게 변질되고, 타락 되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목회를 시작하지 말걸 그랬어요. 기왕 뛰어든 거 어쩌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끝까지 이 길을 같이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가는 것이죠.
저는 한 가지 목적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같이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구원의 대열에서 탈락하지 않는 거예요.
만약 탈락되면, 차라리 연자맷돌 메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29~32절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신명기 17장에 보면, '왕은 그 땅에 가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그랬어요. 신17:17 그러나 기드온은 아내를 많이 두고, 아들만 70명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세겜에도 첩을 두었다고 했어요.
세겜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영적인 모태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다 첩을 두었는데요, 그리고는 그 첩을 통해 아비멜렉을 낳았습니다. 아비멜렉은 '내 아버지가 왕이다'는 뜻입니다.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본인이 왕으로 스스로 취임한 겁니다.
그리고는 왕처럼 죽었어요. 묘실을 잘 꾸몄겠죠. 큰 묘를 만들어서 왕족처럼 죽었을 것입니다.
▲33~35절,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여기에 '바알브릿'이 나왔어요. 새로운 우상 하나 만들었습니다. 바알 2.0 버전 을 만든 거예요. 이렇게 우상을 업그레이드 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룹바알로 인생이 시작이 돼요. 바알과 싸우기 위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간 겁니다.
근데 타락하다 보니 바알브릿 이라는 '언약의 주, 언약의 바알' 이라는 신판 new 바알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우상에 눈뜨기 시작하고, 새로운 우상에 자기의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피해야 할 길은 여룹바알로 시작한, 즉 바알과 싸우기 위해서 시작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 바알브릿, 업그레이드된 바알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쳐서 우리를 사로잡아서 주님 앞에 복종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이스라엘이 기드온에 대한 은혜를 다 잊었어요. 그 집안과 자손을 선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대하지 않아요.
오늘 성경을 닫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본문은, 부모의 신앙이 자식들에게 전해지지 않아서 망했다는 얘기구나. 성경은, 부모의 믿음이 자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아서 망했다는 얘기구나! '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다음 세대에 전수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자녀들로 인해서 더욱더 흥황하고 있습니까?
오늘 기도할 때, '하나님 내 안에 숨겨진 야망, 탐욕, 그 더러운 동기들이
내 신앙을 한꺼번에, 한순간에 무너뜨릴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사오니 주님,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제 고백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이 믿음, 이 신앙의 결단이 자녀들에게 반드시 남겨 두고 떠나는 우리의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