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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9장 주석

LNCK 2022. 1. 5. 10:58

 

사사기 9장 주석             삿9:1~57                    출처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ㅇ여룹바알 - 본장에서는 '기드온'이란 본래의 이름 대신 이 이름만 사용되고 있다(2,5,16,19,24,28,57절).

본장에서 '여룹바알' 이란 이름만이 사용된 것은 본장의 사건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사건은 다름아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바알을 극심히 섬기는 자기 친족들과 더불어(4절)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하여

동족 상잔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6절).

 

그리하여 본서의 저자(사무엘로 추정)는, 일찍이 바알 단을 훼파한 기드온의 행동과 정반대되는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소행, 즉 바알 추종 세력들과 결탁하여 악을 도모한 행위를 대조시키기 위해

'여룹바알'이란 이름만을 사용했던 것이다.

 

ㅇ아비멜렉 -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로 본장의 왕위 찬탈 사건과 잘 부합된다. 

 

ㅇ세겜 - 예루살렘 북방 약 50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창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으나(수 17:7-9)

그 후 다시금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래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0:7;21:20,2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수 24:1)

당시 세겜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성읍이었을 것이다.

 

ㅇ그 어미의 형제...외조부의 온 가족 -

아비멜렉이 아비 기드온의 가계와 그의 어미의 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말이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가문 출신이다. 6:11  

 

그러나 아비멜렉의 어미는 세겜 사람이다(8:31).

세겜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점에 의거할 때(수17:7-9)

당시 세검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미와 그 외가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였을 가능성이크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아직껏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히위 족속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겸 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히위 족속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차지하고서 가꾸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창 33:18-20; 34:2).

 

이중 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부계로든 모계로든 완전한 이스라엘인이니

그가 벌인 왕위 찬탈전은 동족간의 싸움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히브리인과 히위인 간의 혼혈아인 셈이니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주민 간의 싸움이 된다.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아비멜렉은 자기의 형제들이 한결같이 왕권을 탐하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사실 무근한 것이며

그의 지나친 피해 의식으로부터 연유되었다고 여겨진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사악한 야욕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도 동일한 생각을 지녔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형제들로부터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침으로써

근을 아예 제거하고자 결심하였다.

 

요컨대, 아비멜렉은 스스로 탐욕에 취하여 무고한 형제를 의심하고 나아가서 살해까지 하였으나(5절)

필경 칼의 보응을 받아 처단되고 만다는 전형적인 악인의 행로를 보여 주고 있다(54절).

 

ㅇ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에다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국 세겜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건달패를 고용하여

요담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세겜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아비멜렉은 그 아비 기드온의 후광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하였던 셈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왕상 16:10).

 

3 그 어미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온 세겜 사람들의 귀에 고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말하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이제 기드온 가문에서부터 '돌아서'

세겜 출신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일에 대하여 '지지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4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ㅇ바알브릿 묘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언약을 맺은 바알브릿의 신당을 가리킨다.

 

ㅇ은 칠십 개 - 일반적으로 은 70세겔에 해당한다(NIV).

이것을 무게로 따질 경우 약 800g 곧 210돈 정도의 무게가 된다.

왜냐하면 1세겔(Shekl)은 11.4g에 해당하는 무게이기 때문이다.

  

5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인을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오직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본래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탓이다(8:30,31).

다윗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많은 처와 첩을 거느렸다(삼하 5:13).

그 결과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 위해 집안 싸움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삼하 15:7-18; 왕상 1:25).

 

이러한 일부 다처제 및 축첩 제도의 폐단에 관해서는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와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 부당성'을 참조하라.

 

한편 본절은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치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일을 두고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다.

 

6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으로 왕을 삼으니라

 

ㅇ밀로 모든 족속 - 밀로는 다윗이 여부스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다윗성에 속한 지역이다(삼하 5:7-9).

그러나 그곳은 세겜 성과 위치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며

다윗 때까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곳이므로 본절의 '밀로'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오히려 본절에 해당하는 원어 '칼 벧 밀로'는 문자적으로 '밀로의 모든 집'이니

이는 '밀로'라는 어떤 가문을 총체적으로 암시하는 말인 듯하다.

그렇다면 아마 이는 아비멜렉의 외조부 전체 가문을 지칭하는 말일것이다(1절).

그렇지 않다면 세겜 사람과 함께 이 가문이 특별히 언급될 이유가 없다.

 

ㅇ기둥 상수리나무 - 큰 상수리나무이다.

아마 세겜의 이 상수리 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상수리 나무일지 모른다(창 35:4).

 

아니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베푼 것을 기념하여

그 아래에 기념비를 세웠던 여호와 성소 곁의 상수리 나무일지도 모른다(수 24:25,26).

 

7 혹이 요담에게 그 일을 고하매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소리를 높이 외쳐

그들에게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나를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ㅇ그리심 산 -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북동쪽에 있는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다.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수 8:33-35).

 

그러나 참화를 면한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5절)이 이곳에서

그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하는 세겜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ㅇ세겜 사람들아...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 본문에 밝혀져 있듯이

요담은 형제들을 복수하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양성한다든가 하지 않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취했다(롬 12:19).

 

이로 보건대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즉 이후 전개되는 내용 중 8-13절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의 우화로서

기드온의 처신을 상기시킨다(8:22,23).

 

여기서 등장하는감람 나무, 무화과 나무, 그리고 포도 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다(롬12:3).

 

반면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 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 공갈로 왕위를 서슴없이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10:6).

요담의 이러한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었다(22절 이하).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ㅇ감람나무 - 즉 '올리브 나무'(olive)를 가리킨다(공동번역). 그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이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임직식 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민 4:16; 왕하 9:6).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감람 나무에 비유되기도 하였다(호 14:6).

이처럼 감람 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굳이 왕을 뽑을진대 감람 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었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ㅇ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 확실히 감람 나무에서 나는 올리브 기름은

하나님께 제사할 때 드려졌으며 (레 2:1-16), 왕과 제사장의 성직 수임식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출 27:20; 레24:2; 민 35:25; 삼상 10:1).

그러니 감람 나무의 기름은 하나님과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영화롭게 될 만한 일에 사용되었다.

 

ㅇ내가...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 '요동하다'에 해당하는 '누아'는 '떨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 나무는 본절에서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ㅇ무화과 나무 - 오늘날에도 팔레스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팔레스틴에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군다나 무화과 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신약 시대 예수님의 비유에도 이 무화과 나무가 등장함은 우리가 익혀 아는 바이다(마24:32,33)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ㅇ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 - 무화과 열매는 그 당도가 높다. 때문에

설탕이 귀했던 고대에는 설탕 대용으로 음식을 달게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ㅇ포도 나무 - 팔레스틴 지방에서 감람나무와 무화과 나무와 같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수종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팔레스틴에선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한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ㅇ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 - 고대로부터 팔레스틴 및 시리아 지방

포도주의 질이 좋고 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헤브론 일대는 손꼽히는 포도주 산지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새 포도주'에 비유할 정도로(마 9:17)

이 포도주는 팔레스틴 지방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잔치 때는 물론(요 2:1-11) 평상시의 식사 때에도 음료수 삼아포도주를 마신다.

이와 관련 시편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주로도 바쳐졌다(삼상 1:24; 10:3).

그밖에도 포도주는 곤비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며(삼하 16:2)

'비위와 자주 나는 병'(딤전 5:23)에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소독약 대용으로도 쓰였다(눅 10:34).

이상과 같은 점에서 가히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술'이라 칭할 수 있다.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ㅇ가시나무 - '들 가시'뿐 아니라(8:16) 가시 있는 관목을 총칭한다.

이 나무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 3:18) 무화과 나무나 포도 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감람 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요담은 이 가시 나무를,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4,5절)에 비유하고 있다.

 

ㅇ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 이처럼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 나무더러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망을 만들고자하는

부단한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

 

한편 이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 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ㅇ내 그늘에 피하라 - 가시 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 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ㅇ레바논의 백향목 -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이다. 레14:4

본절에서 이것은 특별히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ㅇ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요담은 그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ㅇ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 여기서 '보답'에 해당하는 '그물'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 등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받는다고 하는 보응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절에서 이러한 잘목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정책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이는 곧 기드온이 7년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미디안(6:1)과 그 연합군들(6:3; 7:12)을 격멸하고

백성들을 구원한 것(7:19-21)을 가리킨다. 이처럼 요담은 자기 아버지 기드온의 공적을 언급함으로써

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이 기드온의 공로를 무시한 처사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세겜 사람들은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갚기는 커녕 그의 가족을 파멸시켰으니(4,5절)

배은 망덕한 죄를 범한 것이다.

 

18 너희가 오늘날 일어나서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 아들 칠십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그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의 왕을 삼았도다

 

기드온이 70 아들 중 막내인 요담만 유일하게 피신에 성공하였다(5절).

따라서 실제로 살해된 수는 69명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살인 미수죄 또한 살인죄나 다름없다.

따라서 70인을 죽였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ㅇ세겜 사람의 왕 -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를 인하여 즐기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여기서는 세겜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들이 행한 대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담의 예언이 언급되어 있다. 즉 이 예언은 진실과 의로움 없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세겜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여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ㅇ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 즉 세겜 족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전혀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은 행위였다면

나님께서 세겜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족의 소위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 행위였다. 16절 참조.

 

ㅇ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 이는 이미 아비멜렉 스스로가 세겜족들에게 협박한 내용이다(15절).

즉 아비멜렉은 세겜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괴롭히리라고 위협했었다.

 

ㅇ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 즉 세겜 족속과 밀로 족속이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오히려 그들 군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요담의 예언은 삼년 후 그대로 성취된다(22-27절).

 

21 요담이 그 형제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달려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거기 거하니라

 

ㅇ브엘 - '우물'(well)이란 뜻이다. 민 21:16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주시기로 약속한 후

말씀대로 물을 주신 우물이 있었던 곳으로 '브엘'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은 요단 동편의 모압 족속 지경이다.

 

따라서 요담이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한 곳인 이곳 '브엘'과 동일한 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요담이 그리심 산(7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요단 동편 모압 지경에 까지 도망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벧엘 남쪽 '엘비레'(El-Bireh)와 동일시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근거가 없다.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삼년에

 

본절에서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야사르'는

사사들의 재판을 의미하는 '솨파트'나 왕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라크'와 다르다.

이는 방백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지도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 용어이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야사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3년 동안 밖에 다스리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이다.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악한 성품이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악한 신을 보내신 것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의 근원이 되지 아니하시며

다만 당신의 주권적 섭리하에서만 악한 세력의 활동을 용인하고 계실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요일 1:5).

다만 본절은 욥기에서와 같이(욥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신 장면에서와 같이 

악령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활동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ㅇ세겜 사람들 - 여기서부터는 '세겜사람과 밀로족속'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1절).

 

ㅇ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 요담의 예언대로(19,20절) 마침내 아비멜렉과 세겜 주민들 간에

깊은 반목이 조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아비멜렉은 자칭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세겜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정책하시는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간에 쟁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인에게 행한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ㅇ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에게 행한 포악한 일을 갚되 -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율법적인 심판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신32:35).

따라서 본절은 요담의 저주(19,20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ㅇ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세겜 사람 - 세겜인은 아비멜렉의 역모에 동조하

거사 자금을 빌려 주었으며(4절)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한 죄(6절)를 면할 수 없었다.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하여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무릇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게 하니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ㅇ산들 꼭대기 -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및 세겜을 둘러싼 기타 산들을 가리킨다.

는 다른 지역에서 세겜으로 듸어오는 길목에 있는 산들이다. 7절 참조.

 

ㅇ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게 하니 - 아비멜렉에 대항한 세겜 사람들은

산적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 보아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매우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 형제로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뢰하니라

 

ㅇ에벳의 아들 가알 - 본장에서 분열되어 가는 세겜 성의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욕을 채워 보려한 인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외에 그에 대해서는 성경상에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의 아비 이름인 '에벳'이 '종' 또는 '노예'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천민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ㅇ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뢰하니라 - 다시 말해 세겜 사람들이 가알을 아비멜렉에 대항하기 위한

대표로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27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배설하고

그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ㅇ그 신당 - '바알브릿'(4절) 또는 '엘브릿'(46절) 신당을 의미한다.

고대 제사 의식에서는 신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다.

 

특히 포도 수확기는 가장 즐거운 계절 중 하나였으므로(사 16:9; 렘25:30)

신당에서 배설된 연회는 축제 분위기였음에 틀림없다.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가로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 장관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ㅇ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추장이었다(창 34:2).

따라서 본절의 표현은 이방인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차라리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즉 가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타족속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몰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한편 공동번역과 RSV는 본절을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스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세겜 성 거민들을 히위족 하몰의 후예들로서

당시까지도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무리로 본 데서 비롯된 번역이다. 1절 주석 참조.

 

그렇다면 이는 곧 세겜 성은 어디까지나 세겜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29 아하,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더하고 나오라고 말하니라

 

ㅇ군대를 더하고 나오라 - 가알이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하는 장면이다.

 이 말은 가알의 추종자가 아비멜렉의 추종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반역하는 일에 용기를 가지도록 했다.

 

30 그 성읍 장관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ㅇ그 성읍 장관 - '장관'에 해당하는 원어 '사르'는 일반적으로 '방백' 또는 '통치자'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런데 28절에서 '장관'으로 번역된 원어는 '파키드'로서 '대리인'(deputy) 또는 '감독자'란 의미다.

이 두 단어가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스불에게 적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스불'은 아비멜렉을 대신해서 세겜 성을 다스린 관리였던 것 같다.

 

만일 그가 군대 장관이었다면 아비멜렉의 도움없이 자기의 힘만으로도

아직 완전히규합되지 않은 가알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31 사자를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가로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 형제가

세겜에 이르러 성읍 무리를 충동하여 당신을 대적하게 하나니

 

ㅇ사자를...가만히 보내어. 스불은 아비멜렉 휘하에서 그 성읍의 장관이었기 때문에

세겜의 정황을 그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스불의 세력이 가알의 영향력을

꺾기에는 다소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은밀하게 밀사를 보내어 아비멜렉에게 세겜의 상황을 알렸던 것이다.

 

ㅇ성읍 무리를 충동하여 당신을 대적하게 하나니 - 가알이 세겜 사람이 베푼 연회석에 참석하여(26,27절)

반역을 도모했지만 아직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불은 그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멜렉에게

가알과 그의 형제들에 의한 반역의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32 당신은 당신을 좇은 백성으로 더불어 밤에 일어나서 밭에 매복하였다가

 

아침 일찍 세겜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밤에 미리 세겜성 앞에 있는 밭에 숨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33절).

이러한 매복 작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당시, 아이성 전투에서 이 전술로 크게 성공을 거둔 바 있다(수 8:1-23).

 

한편 '밭'은 세겜 성읍 백성들이 농사짓는 곳으로, 그 성 밖에 있었다(42절).

 

33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은 일찌기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 가알과 그를 좇은

백성이 나와서 당신을 대적하리니 당신은 기회를 보아 그들에게 행하소서

 

스불이 아비멜렉에게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 이러한 기습 작전을 펴도록 충고한 것은

그때가 잠에 취했던 적들이 이제 막 깨어날 무렵인 바 미처 아무런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40절).

 

34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떼로 나눠 세겜을 대하여 매복하였더니

 

아비멜렉은 스불의 말에 따라 군대를 비밀리 이동하기 위해 밤에 이동함으로써

손쉽게 세겜 성과 인접한 곳에 이를 수 있었다.

 

35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문 입구에 설 때에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백성이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난지라

 

본문에는 가알이 무슨 이유로 아침 일찍부터 성읍 문 앞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 행차에는 스불 뿐 아니라 일부 병사들도 동행하였을 것이다(36,39절).

추정컨대 아마도 앞서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던 가알(29절)은

적정을 살펴보려고 성읍 문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으니

도리어 아비멜렉이 가알을 치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36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스불이 그에게 대답하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가알은 세겜 성읍의 장관인 스불을 따라 성읍 문 앞으로 나간 것 같다.

이로 보아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 편인 것을 눈치채지못했음에 분명하다.

만일 스불이 아비멜렉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가알은 그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37 가알이 다시 말하여 가로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로 좇아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좇아 오는도다

 

ㅇ므오느님 상수리 나무 - 문자적으로 '점장이의 상수리 나무'란 뜻이다.

아마 이곳은 점장이가 그 상수리 나무에 앉아 점을 쳤기 대문에 이런 식의 이름으로

특별히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므오느님'은 세겜 성 인접지였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사항이 없다.

 

38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관대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가 너의 업신여기던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ㅇ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 만일 가알이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수비에만 전력을 기울였다면,

아비멜렉의 세겜 성 공략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알았던 스불은

의도적으로 가알의 자존심을 부추겨 정면 대결로 유도하였다.

 

39 가알이 세겜 사람들의 앞서 나가서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ㅇ세겜 사람들의 앞서 나가서 - 공동번역은 이를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로 번역하였다.

이는 곧 가알이 진퇴양난의 사태에 빠진 세겜 사람들을 추스리며

몸소 그들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지휘하는 것을 가리킨다.

 

40 아비멜렉에게 쫓겨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서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가알은 아비멜렉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아갔을 것이다(39절).

그러나 이른 아침에 불시의 습격을 받은 그들은 전투를 위해

사전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전했으므로

아비멜렉이 이끄는 네 떼의 사람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세겜 성문 입구까지 아비멜렉군에 의해 쫓겨왔던 것이다.

 

41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 형제를 쫓아 내어 세겜에 거하지 못하게 하더니

 

ㅇ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 아비멜렉이 이번 기회에 세겜 성 내부에까지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자기가 거하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돌아간 후 다시금 세겜 성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42-45절).

 

마 이번에는 성내로 들어가서 싸우게 되면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판단했기에 되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루마'는 '높이', '높다'란 뜻이다.

이 역시 세겜 부근인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42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ㅇ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세겜 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이처럼 밭으로 나온 것은

아비멜렉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것은 아비멜렉이 더 이상 그 성을 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세겜 성 사람들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들의 성읍 방어는 허술했을 것이다.

 

43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떼로 나눠 밭에 매복하였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그들을 치되

 

아비멜렉은 일단 반역의 주동자를 제거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아루마로 퇴각하였다(41절).

그런데 이튿날 세겜의 백성들이 밭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42절)

그들 모두를 제거하여 후한을 없애버리기로 결의한 듯하다.

 

아비멜렉은 이번에는 전술을 달리하여 군사를 세 떼로 나누어 매복시켰다.

리고 세겜 사람들이 모두 성에서 나온 후 한 떼는 성문을 차단하고

나머지 두 떼는 성밖의 세겜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륙하게 하였다(4절).

 

44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떼는 앞으로 달려가서 성문 입구에 서고

그 나머지 두 떼는 밭에 있는 모든 자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죽이니

 

아비멜렉이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목적은, 그 성에서 나오는 자들을 칠 태세를 취한것 뿐 아니라

밖에서 그의 군대에게 쫓긴 자들이 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밖으로 나온 성읍 백성들을 제외하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밖에 있는 자들만 치면 성을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멜렉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필경은 취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ㅇ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 아비멜렉이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자인 세겜의 장관 스불(31-33절)은 미처 그를 돕지 못한 듯하다.

 

만일 성내에 거하던 스불이 아비멜렉을 도왔다면 아비멜렉은 성읍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그는 끈질기게 저항하는 성읍 주민들로 인해 고전을 했다.

 

ㅇ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 29:23)를 선고하는 것이다.

 

한편 일찍이 여호수아도 여리고 성을 점령한

그 무너진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선고한 적이 있다(수 6:26).

 

46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당의 보장으로 들어갔더니

 

한편 여기에 언급된 '망대'는 세겜 사람들이 포도밭에 세워 둔 막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사 5:2).

망대는 그 성읍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는 파수막 역할을 하였다.

 

세겜 망대는 세겜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천 여 명도 거뜬히 운신할 수 있는 견고한 요새였던 것 같다(49절).

그래서 쉽게 점령할 수 없었던 아비멜렉은 화공법을 사용하여 공격하였던 것이다(6절).

 

ㅇ엘브릿 신당의 보장 - '엘브릿'은 '계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릿'(4절;8:33)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보장'에 해당하는 원어 '체리아흐'는 '동굴'이나 '지하 방'과 같은 은밀한 장소를 가리킨다.

 

공동번역은 이를 '밀실'로, RSV와 NIV는 '요새'(stronghold),

Living Bible은 '은신처'(refuge)로각기 번역하고 있다.

 

ㅇ들어갔더니 - 이처럼 세겜성으로부터 세겜 망대로 피한 사람들은 다시 위기를 느끼고

엘브릿 신당의 은밀한 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즉 거기에는 바알의 도움이 있어 안전할 줄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삼은 보장이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47-49절).

악인의 종국은 이처럼 처참하고 가련하다(잠 3:25).

정녕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반면에 주 여호와께서는 재앙의 날에 피난처가 되시며(렘 17:17), 구원의 산성이 되신다(시 28:8).

 

47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의 모인 것이 아비멜렉에게 들리매

 

본래 유능한 전술가는 적들을 한 곳으로 유인,

그곳에 모인 적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작전을 편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스스로가 한 곳에 모였으니

이를 전해 들은 아비멜렉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48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살몬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무가지를 찍고 그것을 가져 자기 어깨에 메고

좇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의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ㅇ살몬 산 - 지명의 뜻이 '그늘'인 점으로 보아 울창한 숲으로 덮힌 산인 듯하다.

혹자는 에발산에 대한 다른이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그리심 산과 관련된 산꼭대기로

오늘날의 셀만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달리 언급된 사항이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49 모든 백성도 각각 나무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좇아 보장에 대어 놓고 그곳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죽었으니 남녀가 대략 일천명이었더라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꺽어 온 나무 가지로

(48절) 신당 보장 앞에 불을 놓았다. 이것은 보장에 불을 붙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불타는 나무의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연기로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도 손쉽게 죽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ㅇ남녀가 대략 일천 명이었더라 - 이로 보아 그 보장은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도 벌어졌을 것이다.

 

50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를 대하여 진 치고 그것을 취하였더니

 

ㅇ데베스 - 세겜 북동쪽에서 약 1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 사람들도 세겜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했음에 틀림었다.

 

51 성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ㅇ성중에 견고한 망대 - '성 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란 뜻으로 데베스 성의 최후의 보루를 가리킨다.

 

ㅇ그 성 백성의 남녀 - 단순히 '그성 백성들'이라 하지 않고 '남녀'란 말이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여

혹자는 이들이 그성에서 구별된 사람들 곧 그 성의 지도자들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본절에서 특별히 남녀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된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성중의 모든 백성이 그 견고한 망대로 피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에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53절).

 

52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서 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ㅇ불사르려 하더니 - 세겜인들을 공략할 때 사용하였던 것과 꼭 같은 화공법

을 사용하려는 것을 가리킨다. 49절 주석 참조.

 

53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ㅇ한 여인이 - 남자들이 활과 창과 칼로써 항쟁하는 동안에, 여인들도 그 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투쟁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ㅇ맷돌 윗짝 -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자 재산목록이었다.

여인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것 같다.

 

ㅇ그 두골을 깨뜨리니 -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54절).

 

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소년이 찌르매 그가 곧 죽은지라

 

ㅇ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하노라 -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 가는 그 순간에서도 명예로운 죽

음을 원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블레셋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의 병기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치게 한 일이 있다(삼상 31:4).

이런 풍습은 오늘 날까지 중동지역에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5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ㅇ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싸워야 할 명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아비멜렉의 죽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ㅇ이스라엘 사람들이...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한때 흥왕하는 듯하여도 쉬 와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가히 영구적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이는 우리 성도들은 자칫 모임의 순수성이 흐려지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안 세겜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은 끝이 난다.

 

56 아비멜렉이 그 형제 칠십인을 죽여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저자는 결론적으로 아비멜렉의 악행과 그를 추종한 세겜 사람들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ㅇ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 -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가문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반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짐짓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르는 악을 범했었다(9:2).

 

또한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한 왕위를 차지하므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을 저질렀었다(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