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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5장 15~21 시간을 구원하라

LNCK 2022. 1. 11. 11:01

◈시간을 구원하라               엡5:15~21         출처

엡5:15~16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본문 15절에 '자세히 주의하라' 라는 말씀은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40일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는데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서 묵상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매일매일 정말 너무나 복된 시간을 누리고 있는데 
어떤 분들은 '날마다 예수님 얘기를 하니까, 매일 매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의 다이아몬드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연마하기 위해서 커팅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수십 개, 52개, 56개 면을 가지고 있는 보석으로 탄생하는 것이죠. 

신앙은 매우 단순명쾌한 것이지만, 동시에 심오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단순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 가운데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요? 

엡5:16절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시간을 아끼라'는 뜻인가요? 

그럼 일을 막 급하게 서둘러서 빨리 하라는 것인가요? No  
아니면 시간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라는 것인가요? No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을 아낀다'는 말은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일을 할 때, 그 일을 빨리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좀 여유롭게 쉰다든지... 그런 것을 '시간을 아낀다'고 말하죠. 

그러나 현대인들은 일처리의 효율성을 높인 결과 
더 많은 여유를 얻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분주해졌잖아요. 

일을 굉장히 빨리 처리해 버리니까 
빨리 처리된 일은, 그 다음 사람에게 또 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고 
이것이 뭐 핑퐁으로 (서로 주고 받으면서) 가속화돼서 
현대문명의 가속화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죠. 
여러분이 10년 전, 20년 전에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요.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을 때 
어느 편지지에 쓸까? 그래서 편지지 고르고 
편지지가 없으면 또 가서 예쁜 종이를 고르기도 하고 

또 거기에 손글씨로 깨끗하게 써서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쓰고 또 우체국까지 걸어가서 우체통에 넣는 
그 모든 그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정말 소통하고 싶은 갈망이 
우리 마음 안에 충만해지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수많은 이메일과 SNS 메시지를 한순간에 뿌릴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시간을 아끼는 것인가요? 

물론 타임 세이빙은 됐죠. 시간은 절약했는데 
충만한 마음과 본질은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세월을 아끼라!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시간을 죽이는 삶 or 시간을 구원(구속)하는 삶 .. 이런 표현을 써봤습니다. 

우리가 보통 약속시간까지 한 두 시간 남는데 
시간을 어떻게 죽일까? 킬링타임 이란 말을 쓰죠.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삶'이 있고, 
반대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시간을 구원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영어로 Redeem the time   *엡5:16. 골4:5
'시간을 구원(구속)하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시간을 구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요? 
단순히 막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육아하고.. 그런 것을 의미하는가요?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오히려 시간이 뒤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학생들, 공부 자체가 즐겁다기보다는 
합격이라는 목표, 성적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날마다 죽은 것처럼 살아가야 되고 

직장인들은 실적과 월급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늘 전쟁을 치르듯이 살아가야 합니다. 

또 부모들은 '자식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정말 날마다 크레이지 모드로 미친듯이 살아가야 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것은 시간을 구원 redeem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이는 killing 삶을 사는 것이죠. 

왜냐면 매 순간이 소중한 가치인데 
너무나 무의미하게 잘못된 의미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는 세월을 아끼라는 뜻은 무엇인가요? *엡5:16, 갈4:5
오늘 본문 16절에 '세월'은 헬라어로 카이로스 입니다. 
양적인 시간이 아닌, 질적인 시간입니다. 

시간은 헬라어로 크로노스, 카이러스 두 단어를 사용하는데 
강물이 흘러가듯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기회와 의미가 담겨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건져내야(구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감과 색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물감과 색감은 어감이 다르죠. 

물감을 그냥 아무렇게나 흩뿌렸다고 해서 
아름다운 색감이 나오는 것은 아니죠. 

화가가 의도를 가지고 색깔을 아름답게 배치하고 
(마치 음을 아름답게 배열하는 것처럼) 
그때 아름다운 색감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인생에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내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건져내며 (구속하며) 살아야 한다.. 

본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NIV성경은 풀어서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로 번역했어요.

주어진 모든 기회를 잘 활용해라는 뜻인데,

원어에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라'는 뜻은, 

'하나님의 시간, 의미있는 시간, 꼭 필요한 유용한 시간으로 만들어라'는 의미입니다.

▲아끼라!

그래서 16절에 '아끼십시오' 라는 단어는 
Redeem 구속하라는 뜻이에요.                                                    *헬, 엑사고라조

쉽게 표현하면 Save the time 이지만
좀 더 뉘앙스를 살려서 표현하면 Redeem the time 입니다. 
우리 성경에 '세월을 아끼라(구속하라)'가 원래 그런 뜻입니다.    엡5:16, 골4:5 

'구속 redeem'이라는 말은  
그 대상을 구해 내기 위해서, 내가 값을 치르는 거예요. 희생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되찾아오는 것이죠. 

마치 원석을 다듬는 수고를 통해서, 보석이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물감을 사용해서 심혈을 기울여 그림의 색감이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당신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경건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당신의 삶을, 의미 있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 대가를 치러야 된다, 값을 치러야 된다 ..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시간을 그렇게 구속해 내야 하는가요?
그것은 시간을 빼앗겼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죠. 

시간을 빼앗긴 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로노스'로 킬링 타임만 하면서 사고 있는 거죠.
시간을 빼앗겼다면, 내 인생도 빼앗긴 거예요. 

왜 빼앗겼는가요? 
악한 사단이 마치 자기가 시간과 공간의 주인인양 행세를 하면서 
이 시공간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6
악한 시대, 악한 세상이 된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공간 자체가, 악한 흐름 가운데 흘러가게 된 것은 
악한 사단이 이것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악한 시대가운데 종노릇하면 살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시대가운데 살지만, 거기에 종속되어 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 개념을 다시 얘기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셨고 
이제 구속받은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구속하며 살아야 된다.. 는 말씀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

 

시간을 함부로 의미없이 낭비하지 말고,
의미 있는 시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 쓰기 위해서

내가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꿔야 되는데, 

거기에는 '구속' 즉 뭔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꼭 요구된다는 것이죠.  


◑자 그러면 그렇게 '타임 세이빙', 즉 시간을 구원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요? 
본문 엡5:17~22절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Time Redeeming (시간 구속)과 같은 말

▲1. 첫번째로, 시간을 구원하는 삶은 <사명자의 삶>입니다

 

엡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오늘 본문에 '주의 뜻을 분별하라'고 했지 
'사명'이라는 단어가 안 나오는데, 왜 사명자의 삶인가요? 

여러분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왜 분별하나요?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분별하는 거죠. 그게 사명자의 삶이죠. 

주기도문에 보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주님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구원하려면 
무조건 바쁘게, 열심히,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방향부터 찾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번째 모의고사를 보고서 
그리고 이제 쭉 공부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시간을 좀 절약을 해야 될 텐데..' 
그래서 제가 하루 스케줄을 보니까 
하교 후에 집에 와서, 저녁 식사하고.. 
저희는 그때 가족예배를 매일 드렸거든요. 

그러니까 가족예배 드리고, 독서실 와서 큐티하고, 성경통독 하고, 기도하고 
..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가는 거예요. 

'안되겠다,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시간을 좀 절약해야겠다' 
그래서 도시락을 아침부터 두 개를 들고 나와서 
하나는 학교에서 먹고, 하나는 바로 독서실 가서 먹고 

이런 (경건의) 시간들을 다 빼고, 그냥 하루 종일 공부만 했어요. 

그러니까 매일 두 시간씩을 더 공부한 것 같아요. 
그럼 성적이 올라야 되잖아요? 

4월, 5월, 6월 가는데..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주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개입해 주신 거죠. 

급기야는 제가 고3인데, 8월 말 방학이 끝날 쯤에는 급성 맹장수술까지 하고 
병실에 누워 있다가 9월달에는 기운이 없으니까 시간 다 지나가고 

10월, 11월에 배치고사 보고 이제 대학에 지원을 해야 되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아요? 
두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 제가 예배하는 삶을 다시 회복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가족 예배드리고, 매일 예배드리고, 매일 개인 경건생활 가지고 
그러니까 공부한 시간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놀랍게 성적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연대 영문과 입학)
하나님 안에 있는 인생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우리가 시간 좀 아껴보겠다고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일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럼 당장에 단기간에 시간은 타임 세이빙을 할 수 있지만 
장기간의 근본적인 시간, 자신의 수명은 단축되겠죠. 

우리가 그런 결정을 할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시간 좀 아껴보겠다고 예배를 포기하고, 타협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을 제해버리고 
그리고 막 달려가는 거에요.

시간을 아껴보겠다고 주유소에 들르지 않고 
액셀레이트만 밟고 사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근본적인 본질적 가치가 있는 시간
즉 카이로스를 다 놓쳐버리는 인생을 사는 거예요. 

여러분 2018년도에는, 아침 첫 시간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큐티하고, 첫 시간에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겠습니까?' 주님께 여쭙고,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오늘 내가 하는 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오늘 저의 삶에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신년에는 이러한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일은..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사명의 차원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직장 생활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직장 생활은 경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는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타임 킬링이 아니라 
타임 세이빙, 진정 가치 있는 시간을 건져내며 사는 것이죠. 

사명자의 삶을 살면,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빛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을 보십시오. 33년을 사셨는데 
그 중에 3년 딱 공생의 사역하시고, 3년 사역하시고 떠나셨어요. 

하지만 그 짧은 3년 동안, 매일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사셨어요. 
그리고는 그 3년을 통해서, 온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 놓으셨다고요. 

만약에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대로 
시간을 절약하면서 사는 것을, 
여러분 현대인들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순식간에 급하게 일을 능률적으로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에 내가 개인 시간 보내고 유흥을 즐기는 것... 크로노스의 삶을 사는 겁니다.

만약에 그런 관점에서 
그런 인생이 복된 인생이라고 본다면 
예수님의 삶은 참 복이 없는 인생이 되겠죠.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일찍 인생의 일들을 다 끝내놓고 노후 보장이 되면 
그냥 하염없이 오랜 세월 동안 장수하며 즐기며 사는 것은,

아무 의미 없이 '타임 킬링'한 것만 되는 거죠.
    
근데 성경은 시간을 그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성경은 시간을, 사명의 관점, 카이로스의 관점으로 봅니다.   

베드로후서 3:8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무슨 뜻이냐면, 단 하루를 살 지라도,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주께서 천년의 가치로 해석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백수를 누리고, 천수를 누린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산다면 
카운트가 (셈이) 올라가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주님 앞에 가봤더니, 심지어 하루 조차도 카운트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인생이 아닌 
그냥 내 개인적인 소원, 세상적인 기쁨을 이루는 인생을 사는 것은 
무의미한 크로노스의 시간만 사는 것이며, 킬링 타임일 뿐이며,

 

그건 의미있는 삶으로서의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고 있는 거예요. 
내 인생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으로 주님이 카운트해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 하루를 사셔도 
아버지의 뜻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사셨던 것이죠.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사는 거예요. 
Time killing and Life saving
'시간은 그냥 대충 보내고, 수명은 무조건 길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사명은 없으면서, 수명만 긴 인생이 
마치 복된 인생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사셨어요. 
Life killing and Time saving (redeeming)
그 뜻은, 자신의 생명은 내어주시면서도,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을 사셨어요.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인생을 사셨어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 생명을 내주더라도 
사명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혹시 짧은 인생을 살더라도, 그게 내 시간을 잡아먹어도, 크로노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시간을 구원하는 삶이란 '성령충만한 삶' 입니다. 

엡5:18 '또한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십시오' 

이 말씀의 진의가 무엇입니까? 
육적인 삶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영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죠. 

제가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우리가 많이 아는 우스갯소리가 생각이 났어요. 

남편이 어느 날 책을 보다가 
너무나 지혜로운 글귀를 읽고서, 아내하고 나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내에게 문자를 친 거죠. 

'여보 세상에는 세가지 소중한 금이 있대, 황금, 소금, 지금!' 

아내가 감동했다고 답변할 줄 알았더니 
'그래 그러면 나도 세 가지 소중한 걸 알려줄게요. 
현금 지금 입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 모르시는 소리입니다. 
크리스천 일지라도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도 좀 만져야 되고, 술도 좀 마셔야 되고, 사람도 좀 만나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분들 중에도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 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의 상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이것은 분명히 다른 거에요. 비유로 설명한다면 
전에는 새장 문이 예전에는 닫혀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내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된 이후에는 
새장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창공을 비상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나 예전에 내가 먹던 물과 모이가 그리워서 
새장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죠. 
그러나 새장 안에는, 그게 편하다고, 그게 좋다고, 
계속해서 거기 머물러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의 향락과, 물질의 풍요함에.. 그것에 젖어서 살아가는 삶 
그런 사람은 Time killing and life killing 이죠. 
시간도 무가치하게 흘려보내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도 무가치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만약에 그렇게 인생을 산다면 빼앗긴 인생, 빼앗긴 시간입니다. 
새장 문이 열렸는데, 나가지 않는 거에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저항 시인 이상화의 외침처럼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 조국의 땅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수에게 빼앗긴 들에 서 있다는 이 서러움, 고통.. 이런 것이 있는 것이죠. 

여러분 영적인 삶,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에 헌신하세요. 
운동경기를 해도 질질 끌려다니면서 경기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경기를 주도하며 이끌어가는 팀이 있어요. 

예전에 하목사님이 부교육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일을 시켜도 안 해! 
일을 시켜야 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일을 시키기도 전에 
목사님, 제가 이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학교에서는 선생님 눈치보고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보고.. 하는 그 사람의 인생에 
발전이 있을까요. 행복이 있을까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이 정도 타협하며 적당하게 살면 되지..' 
그 사람의 인생에 성장과 기쁨과 충만함이 있을까요? No

하나님 제가 2018년에는 영적인 삶을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단과 선언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3. 세 번째로 시간을 구속하는 삶은, <예배자의 삶>입니다.
 
19절 '여러분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찬송합니다.' 

성도들이 만나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홀로 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주님께 찬양하라! 

마크 채목사님이 계세요. 근데 이분이 늘 즐겁고 충만해요. 
그래서 그분을 보면서 저는 '너무너무 부럽다. 참 좋겠다.' 

근데 계속 보니까, 원래 그분의 타고난 성격이 좀 들떠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꼭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뉴욕과 뉴저지의 청년들 집회 하러 제가 뉴욕에 몇 번 갔는데 
거기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수련회 장으로 가는 거예요. 

마크 채 목사님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그 4시간 동안 내내 찬양을 틀고, 찬양을 혼자 중얼거리고, 따라부르고 
정말 찬양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차를 타면 찬양을 듣기도 하지만 
뉴스도 듣고, 딴 생각도 하고, 스포츠 소식도 듣고 하는데 

제가 채목사님을 보면서 '참 배울 게 있다..' 
그래서 제가 따라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정말 틈만 나면 찬양을 듣고, 갈 때도 올 때도 항상 찬양을 들으니까 
제 영혼이 충만해 지더라고요. 

가시적 공간만이 성전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살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셨던 이유는 
그가 걸어다니는 '찬양 주크박스' 같은 인생이었기 때문이죠. 

목동이 배운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찬양 작곡, 작사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한 그 뜨거운 마음, 그 사랑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많은 시를 썼고, 많은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성전에서 찬양에 사용하는 수많은 악기들을 만들어 냈어요. 

우리는 악기 하나 배우기도 어려운데 
다윗은 그 수많은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찬양이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순cell group으로 모여서, 사역팀으로 모여서 
세상 잡담하며 그냥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찬양과 간증과 말씀이 풍성한 모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고난을 지나가도,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아도 
여러분의 심령에 찬양이 충만하면 
타임 세이빙, 타임 리디밍 
즉 시간을 구원(구속)하면서 살 수 있어요. 

왜냐면 사람들은 내 인생이 힘겹고 어려우면 
'아~ 난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요.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일 때도 
십 여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할 때도 
늘 찬양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하루하루를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 놀라운 반전의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4. 네 번째로, 시간을 구원(구속)하는 삶이란, 믿음의 삶입니다. 

20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일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왜 믿음의 삶인가요?
20절에,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라'고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게 아니에요. 어려운 일에도 감사하는 거예요. 
형통과 고난의 만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근원적인 신뢰와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예요. 

'하나님, 왜 제 인생에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왜 제 직장을 가져가셔서, 저를 무직자로 만드십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신체적인 연약함,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을 갖게 하시는지 
저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으로 살아가라는 거예요.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좋은 때이든지, 안 좋은 때이든지 
밝은 날이든지, 궂은 날이든지.. 어떤 날이든 간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의 씨앗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신뢰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죠. 

△'하나님, 앞이 캄캄하고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를 알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데 
제 인생에 그 다음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미래를 알려주시면, 제 인생이 평안해지고 좋아질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니죠. 제가 말씀 드렸어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나는 거기서 십자가 진다, 나 죽는다' 이렇게 세 번 얘기하셨잖아요. 

그런데 제자들은 다 들떠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리도 한자리 차지하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도 감을 못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단 한 사람, '예수님이 죽겠구나' 이거 알았던 사람이 누구라고요? 
가룟 유다죠. 
미래를 알았기 때문에 가룟 유다는 배신했어요. 

근데 정반대로,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알고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부어드렸던 마리아는 
미래를 알았기 때문에 헌신했어요. 

미래를 아는 지식이, 배신과 헌신을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 어떠한 일이 와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오늘 내가 주님을 향해서 진정성이 없고 
그냥 무의미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내일 인생에 안 좋은 일이 오면 
당장이라도 짐 싸들고 주님을 떠나는 거예요. 

오늘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삶,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다섯째로 시간을 구속하는 삶이란,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십시오. 

21절에 '서로 복종하라'고 되어 있는데 
왜 제가 '서로 사랑하는 삶'이라고 소제목을 잡았는가요?

'서로 복종하는' 것은, 단순히 서로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내 곁에 보내주신 사람, 
내 가족, 이웃, 믿음의 동역자들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최선의 사랑과 교제를 나누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최근에 비행기에서 'Realive'라는 영화를 하나 봤어요.
한국에 개봉되지 않은 영화였어요. 

두 가지 의미인데,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냉동인간 재생에 대한 이야기에요. 

또 한 가지는 Real-live 진짜 산다는 게 무엇이냐?.. 에 대한 이야기에요. 

주인공 마크 저비스 라는 사람은 30대의 촉망받는 예술가였어요. 
그런데 의사가 암 진단을 하고, 1년을 선고합니다. 1년 남았다... 

그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다가,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냉동인간이 되기로 선택하죠. 

그래서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정말 그 마지막 시간들을 친밀하게 최선을 다해서 서로 교제하고 
기쁨을 나누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그리고는 자살을 해요. 

왜냐하면 더 자기의 신체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전에 
최대한 좋은 컨디션에서 자기 자신을 냉동시키는 거죠. 

거의 1백 년 가까이 지나서, 그가 냉동인간에서 깨어난 첫번째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렵게 인생의 시간을 연장받았는데 
1백 년 뒤에 그가 갖고 있었던 암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인 기술이 많이 진보하고 발전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얻은 생명, 그렇게 얻은 인생의 연장된 시간인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허무한 이야기가 나와요. 

주인공이 '나를 다시 죽게 해달라고..' 
무슨 의미인가요? 

왜냐면 그가 깨달은 것은, 무조건 무의미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연장된다고 해서 

인생이 가치 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백 년 뒤에 깨어나보니까, 자기 곁에 아무도 없잖아요. 

무조건 시간의 양이 길게 주어진다고 해서 
가치있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한 가지 그가 더 깨달은 것은 
마지막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친구들과 연인과 가족과 그 마지막에 쏟아 부었던 그 사랑의 나눔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마냥 하염없이 생물학적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을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벧전4:7~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라' 

여러분 서로 사랑하면서 사십시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리고 수평적으로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하루의 순간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사랑을 선택하며 사셔야 되는 거예요. 

△예전에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을 때였어요. 
19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엄청난 대형사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하철 안에서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던 
그런 기록들이 쭉 남아 있어요. 

한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 거예요. 
그리고 엄마에게 했던 첫 마디가 '엄마, 엄마는 나 없이 살 수 있어?' 

엄마가 상황을 모르고 장난 인줄 알고 
'난 너 없이도 잘 살지!' 

딸이 대답합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데려가나 봐! 
나는 엄마 없이 살 수 없어'

그리고 '사랑한다!'는 얘기를 다섯 번 하고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어요. 
그 엄마는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딸을 잃고 나서 '나도 너 없이 살 수 없는데..' 
'그 고백을 해줬어야 하는데..' 

여러분 하루 한 날을 살아도, 사랑하며 살아야 되는데 
왜 그렇게 싸우며 다투며 사는지요! 

인생의 시간은 하염없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시간을 구원하면서 하십시오. 
(대가를 지불해서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시고, 가족을 사랑하면서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