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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4장 1~20 나실인 답지 않은 삼손의 모순

LNCK 2022. 1. 11. 17:01

 

◈나실인 답지 않은 삼손의 모순        삿14:1~20               여러 설교 정리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였는데도, 삼손은 나실인 답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삿14장을 보기에 앞서, 13:25절을 보겠습니다. 

삿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단지파는, 지금 블레셋에 인접한 지역입니다.
(나중에 단지파는, 자기가 받은 기업의 땅에서 아모리 족속을 다 몰아내지 못하여
그 중 일부가 북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단 지파가 2지역으로 나뉘죠. 삿1:34
지금 삼손의 배경은, 원래 단지파가 기업으로 물려받은, 블레셋 접경 지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삼손의 고향은, 단지파 소라 땅입니다. *13:2          주1)

이곳 소라 Zorah는 벧세메스 북쪽이자,

예루살렘 서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다 지파와도 아주 거리가 가깝죠.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입니다.' 13:25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삼손의 생애를 보면, 전혀 나실인 같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를 통하여 나실인으로 잉태하고 
나실인으로 택함 받았기 때문에, 

그를 임신했을 때부터, 엄마부터 포도주를 먹지 않았고, *태아가 같이 먹을까봐 
시체를 접촉하면 안 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부모는, 그런 규례를 지켜서 삼손을 키울 수 밖에 없었고 
삼손을 낳은 후에도 그를 나실인으로 키웠어요. 
그건 다 여호와의 사자(천사)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3:7, 14

그래서 삼손은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키워졌고,
어렸을 때도 나실인으로 키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손이 장성해서
나실인으로 사역을 해야 되는데 
전혀 나실인 같지 않는 모습이 계속 나와요. 

▲오늘 본문 14장에도 보면, 몇 가지나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는 것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참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에 '모순'이 들어가는데요. 
삼손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통해, 나실인 교육을 받았을 텐데도 (여호와의 사자의 명을 누가 거역하겠나요)  
왜 그는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것일까요?

자기 성질대로 가서 블레셋 여인하고 턱 결혼하고,  
화난다고 결혼식 치르는 기간에 또 자기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이런 모습들이, 우리가 삼손을 볼 때, 모순이요 수수께끼란 말이에요. 

분명히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였는데도, 그러했습니다.  13:25, 14:6, 19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래 14:4절 해석에서 설명하겠지만,

삼손이 자행자지한 것은,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삼손이 실수하고 범죄하도록, 하늘에서 원격 조종 하신 게 아닙니다.

 

삼손은 분명히 자신이 나실인의 신분임에도 그걸 망각하고,

자기 죄성에 이끌려 자행자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면 삼손은 블레셋을 무찌르고, 계속 블레셋에 불이익을 주며

여러 선한 결과를 낳았습니까?

 

그 답은, 삼손의 그런 자행자지와 죄성을 통해서도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으로)

하나님은 그를 들어쓰셔서, 블레셋을 물리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결코 자행자지한 삼손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건 성경 66권의 맥락과도 일치합니다. 

삼손이 신실했다면, 그는 더 위대하고 더 놀랍게, 더 경이롭게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행자지 했으므로, 하나님은 그 수준에서 그를 쓰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14:4절 해석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제 멋대로 결혼한 삼손

 

이제 본문 삿14:1~4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 한 여자를 보고
자기 부모에게 와서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14:1~2

이게 나실인으로 해야 될 일입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나실인은 율법도 잘 알아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출34: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분명히 율법에서 '네 아들을 가나안 사람들의 딸과 결혼시키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데 
네 아들에게도 그렇게 할까봐, 분명히 율법으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14:3 '그의 부모가 그 Samson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삼손이 자기 소견대로 행한 증거)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자 여기서 보면, 삼손이 분명히 나실인 인데도,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이방여인과 결혼하려고 해요. 

지금 삼손의 수준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아요. 
나실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 이 말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라는 말과 같죠.


◑'이 일은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의 해석  ★

  

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or 여호와께서)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자 이 말씀을 보면, 삼손이 작전을 짜고 블레셋을 치려고 한 것 같죠?

아닙니다. 삼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고 하시는 겁니다. 물론 삼손을 통해서죠.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자 의도했던 바가, 율법을 어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도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결국 죄악된 방법을 사용하여 
선한 목적을 추구하는 분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본 4절을 잘 이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자 의도한 사실과 
그것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치고자 한 점은 
순전히 삼손의 의지(죄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치려 하셨던 것입니다. 


▲14:4절의 번역상의 이견이 있습니다. (중요)

새번역 '그의 부모는,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려고 
이 일을 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공동번역 역시 이렇게 번역, 주어가 '주님')

그런데 개역은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주어가 '삼손')

히브리 원문에는 동사 '치시다'의 주어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개역개정에 '삼손이'를 집어넣었는데, 원전에는 없습니다. 

원래 히브리 문법상 주어를 밝히지 않고, 동사로 주어를 유추해서 문장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역은 주어를 '삼손'으로 가정하고 번역을 했고,  *없는 '삼손'을 삽입한 거죠.
새번역, 공동번역은 주어를 '주님'으로 가정하고 번역을 한 것이죠. *없는 '주님'을 삽입한 거죠. 

                                                                      *'치시다'가 3인칭 단수 동사라서 둘 다 가능

그런데 본 절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럴 경우 이런 해석이 되는 거죠.
'삼손은 자행자지 해서,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자기 소견대로 행했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계기로,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고 하셨다'  .. 이 해석이 맞죠.

그러니 하나님이 삼손의 방종을 방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본 절의 주어를 '삼손'으로 가정하고 해석을 하면
'삼손이 자행하지 해서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소견대로 행했는데, 
이 모든 것은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고 사전에 계획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개역개정이 이렇게 번역) 삼손이 영웅이 되는 셈입니다.

그가 블레셋을 치려고, 블레셋에 '위장 결혼'을 해서 적진에 들어간 투사가 됩니다.

 

그러면 결국 삼손의 모든 과실이 미화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게 되어버리는 셈이죠.

이건 성경 전체 맥락과 맞지 않죠. 성경은 목적도 선하고, 수단도 선한 것이 일관된 흐름입니다.

 

나아가 삼손의 이방여인과의 결혼까지, 다 미화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삼손이 지가 좋아서, 지 육신대로 행해서 결혼한 것이 맞습니다. :2~3

 

물론 '여호와께서 삼손을 움직이신' 것은 맞습니다.  13:25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도 맞습니다. 14:4

 

다만 그렇다고, 본문은 결코 삼손의 자행자지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일이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을 계기로 사용해서라도

블레셋을 치는 기회로 삼으셨던 것이죠.  '덮어쓰기'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삼손이 옳바르게 행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며,

나중에 삼손이 비참한 최후를.. (어쩌면)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해석상 혼란은, 4절의 주어가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개역개정은 '삼손'을 주어로 채택했고,

새번역, 공동번역은 '주님(여호와)'를 주어로 채택한 데서.. 완전히 180도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영어성경 KJV는 소문자 he 라고 번역해서, 주님인지/삼손인지 모호하게 번역했느나,

NASB 는 대문자 He 라고 번역해서, 주어가 '주님'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삼손의 결혼을 통해서 블레셋을 치려고 한 주체가 '주님'이라는 거죠, 삼손이 아니라!

'However, his father and mother did not know that it was of the LORD, 

for He was seeking an occasion against the Philistines.' 14:4 

 

 

◑삼손이 포도원에서 사자를 찢어죽이다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14:5

 

원래 나실인의 규례에 의하면,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삿13:4, 민6:1~8

민6:3절에는, 나실인은 포도열매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삼손은 '배 밭에 들어가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는다'고,

아예 포도밭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혹시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포도를 따 먹으러 들어갔던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딤나의 포도밭, 즉 이방 블레셋 땅입니다. 그러니 외국에 나가면 좀 느슨해지기 쉽잖아요.

 

놀랍게도 그 포도밭에는 '젊은 사자'가 있었습니다. 젊은 사자란 힘이 쎈 사자를 뜻합니다.

(어쩌면 삼손이 포도밭에 들어온 것, 또한 그 후의 딤나 여인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막아서는 경고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삼손이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사자를 찢어 죽인 것과는 문맥이 안 맞습니다)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나실인이 포도열매를 먹으면 안 되니까, 부모에게 혼날까봐 얘기를 못하는 거죠.

-그리고 나실인은 사체를 만지면 안 되는데, 결국 사자를 죽이는 과정에 그 사체를 만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삼손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일은, 방종하는 일입니다. 

이게 지금 성경에 '반면교사'로 기록되어 있는 거지, '본받을 일'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삼손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여...'  :6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지만, 자행자지 할 수 있다니까요!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고 해서, 무슨 천사나 예수님처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해서 사역을 멋지게 행하면서도.. 자기 육신을 따라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와 결과는, 자기가 거두게 되겠지요, 삼손처럼!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8

 

사자가 죽으면,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와서 살과 내장은 금방 뜯어먹을 것입니다.

건조한 지역이라서 곧 앙상한 뼈만 남겠지요.

두개골이든지, 갈비뼈든지 그 뼈를 집으로 삼아, 벌들이 둥지를 튼 것입니다.

그래서 꿀(벌집)이 그곳에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여전히 삼손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릴 수 없습니다. 

사체를 만져서는 안 되는, 나실인의 규례를 어긴 것이 되니까요.

 

삼손은 여기서 '수수께끼의 재료'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셔서' 된 일입니다. 

삼손이 잘 해서, 그를 쓰시는 게 아니라

삼손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있지만, 최소한으로 그를 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삼손의 결혼식 잔치와 수수께끼

 

이제 삼손은 블레셋 땅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딤나 여자랑(이름 안 나옴)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당시 결혼식은 일주일간 열렸나 봅니다. :15
하객으로 그곳 남자들 30명이 참석했습니다.  :11

(이 여인은 들릴라가 아닙니다. 들릴라는 16장에 나오며, 그의 고향은 가사이며, 그는 기생입니다)

 

당시 문화는, 잔치 때 놀이로, 퀴즈를 주고 받았나 봅니다.

딤나 사람들이 삼손에게 퀴즈를 냈을 수도 있고 (성경에는 기록 없음)

삼손은 딤나 사람들, 즉 30명의 하객들에게 이런 퀴즈를 냅니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이 퀴즈(수수께끼)를 내고, 베옷 30벌, 겉옷 30벌로 내기합니다. 푸는 기한은 잔치 기한인 1주일!

당시는 옷이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당히 고가의 내기를 한 것이죠.

삼손이 이길 자신이 있었나 봅니다.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옷 30벌)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그 내용은 여러분이 다 아시므로 중략합니다.

 

: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30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의 장인은, 삼손이 '심히 노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19

이제 다시는 딤나로 안 내려올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 딸을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이게 다음 장(15:)에서, 삼손이 여우 3백마리를 붙잡아, 꼬리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이 보리밭을 불태우는 빌미가 됩니다.  15:4

 

정말 엉망진창의 계속되는 연속입니다. 

지금 삼손은 앞으로 계속 삿16장끝까지 그럽니다.  

주의 일을 하기는 하는데, 좌충우돌, 나실인의 규례를 무시하고 넘나들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면서... 주의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덩달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주십니다.  14:6, 19, 13:25

그리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즉 주님의 섭리 하에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4:4

 

▲정리하면, 본문은 희소식과 안좋은 소식을 둘 다 우리에게 줍니다.

1) 희소식

지금 본문의 삼손이,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많은 분들이 몰랐다고 봅니다.

 

물론 블레셋을 쳐야 한다는 일반적인 애국심, 상식적 수준의 신앙심은 있었겠지만, 

그가 고도로 사전에 계획해서 결심하고는, 그런 숭고한 목적을 갖고 행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삼손은 그저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좌충우돌 자행자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을 치려는 애국심과 신앙심으로, 딤나 여자와 결혼한 게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 눈에 보기에 예뻐서, 그는 결혼식 하러 내려갔다가   *14:3

또 한 번 와장창 하고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블레셋을 치는 일'로 덮어쓰기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14:4

 

*이렇게 해석할 경우, 14:4절의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를

'여호와가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라고 주어를 고쳐야죠. *공동번역, 새번역, NASB

  

그런데도 하나님도 덩달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주십니다.  14:6, 19, 13:25

그리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즉 주님의 섭리 하에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4:4

 

그러니 이 얼마나 우리에게 희소식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좀 부족해도, 좀 모자라도, 삼손처럼 좀 좌충우돌하고 실수가 많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성숙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삼손이 온전하고 성숙되지 않았지만,

모태로부터 그를 부르시고, 그 부르신 언약에 따라, 그를 놀랍게 도구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이건 분명 희소식이 맞고요!

그러나 희소식만 있는 게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무서운 소식도

삼손의 이야기에 동시에 같이 들어 있습니다. 

 

2) 무서운 소식

본문은 사실 오늘날의 사역자들에게 큰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

그 사역자에게 성령이 임하여 주시고, 기름부어 주시고,

그를 통해서 블레셋 같은 마귀의 나라를 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실은 그가 삼손같이, 자기 육신을 따라서, 자행자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그를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주의 종)으로 불러주시고,

계속 그를 사용해 주십니다. 그를 수태고지를 통하여 나실인(주의 종)삼아 주셨으니까요!

하나님은 그 언약을 계속 지켜나가 주십니다.  *마7:15~23 참조

 

그런데 오늘날에,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내가 만약 삼손같은 괴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얼마나 나는 스스로 가슴 뿌듯해 할까요?

I'm totally different from you! 나는 여러분들과는 클라스가 완전 다른 사람이야!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만하고, 자부심이 도를 넘쳐서 자기 만족 self-confidence이 되는 거죠.

 

그러나 삼손의 최후를 보십시오.

물론 그가 히11장 믿음의 조상들의 계보에 들어간 것은 다행이지만,  히11:32

사사기 16장에 보면, 차마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난을 그가 겪게 되는 것을 봅니다.

두 눈이 다 뽑히고, 사슬에 매여 마치 소처럼 무거운 연자맷돌을 돌려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삼손을 조롱하는 것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어쨌든 사사기의 삼손의 이야기는, 좋은 소식만 있지 않고,  무서운 소식도 같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은사를 믿고, 자기 힘을 믿고, 자기 능력을 믿고서

나실인의 거룩함과 성화를 추구하지 않다가, 아작난 삼손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다가 초주검이 된 그의 모습'을 마치 비디오처럼 환하게 보는 것입니다.  롬8:13

 

처참하게 연자 맷돌을 돌리던 삼손은, 혹시 자기를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내게 차라리 머리카락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에게 놀라은 은사와 능력과 괴력이 있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머리깎인 삼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와 자비와 신실한 언약 이행으로

그의 머리카락이 점점 자라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그가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등재된 것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손처럼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괴력을 소유하여,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삼손처럼 되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괴력을 소유했으나,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자행하지하다가

결국 여호와의 영이 자기를 떠나버리시고, 그 떠나심조차 깨닫지 못했던 삼손처럼

되지는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삿16:20 

 

 

◑삼손, 그리스도의 예표

 

이런 삼손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계시는데요.

삼손은, 그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자기가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는 듯 합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4:14

 

이것은 댓귀법(평행법)으로 된 시입니다. 풀이하면, 

먹는 자 = 강한 자 = 사자 = 블레셋 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블레셋)를 삼손이 찢어버립니다. 

그 사자를 찢어버림을 통해서 '단 것'이 나오잖아요.

즉 이것은 블레셋에서 해방됨을 뜻하고요,

그동안 잃었던 땅들을 다시 회복하게 되니까, 거기 소산인 '단 것'을 먹게 되리라는 겁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리는 땅이라 그랬잖아요.

그러니 사자(블레셋)을 찢어 죽이면, 땅이 회복되면서 거기서 '단 것, 꿀'이 나오는 것입니다.

           *꿀을 '대추야자' 열매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열매가 정말 꿀맛이거든요.

 

그러면 삼손이 블레셋을 어떻게 찢습니까? 물론 나중에 나귀 턱뼈로 블레셋인 1천 명을 죽이기도 하지만

'삼손이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아서 죽인 자보다 더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삿16:30

 

그러니까 삼손이 사자(블레셋)를 자기 품에 안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자를 품에 안아서 사자를 죽였지만, 이것은 예고편이었고,

나중에 16장에 가면, 삼손은 다곤 신전에서 기둥을 껴안고, 블레셋 인들과 함께 죽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에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삼손이 수수께끼를 냈지만, 그 수수께끼 속에 자기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손이 블레셋을 품에 안고 죽음으로써, 해방과 구원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단 것, 꿀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날 구원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요5:39

그래서 본문 삼손의 기사를, 삼손의 영웅전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삼손의 전기가 아닙니다.

삼손(입다, 기드온)을 통하여,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예표되는가? ..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 관점으로 우리가 본문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삼손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도 하지만,  *1차 해석

오늘 우리 각자 크리스천의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  *2차 해석

왜냐면 오늘 우리 각자 크리스천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는 '작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손이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습에서, 우리는 구원자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제멋대로 사는 모습에서, 우리는 불완전한 오늘의 신자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태어났다는 자체 부터가, 장차 나사렛인으로 태어나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요,

삼손만, 예수님만 나실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가 각자 나실인으로 부름 받은 것이죠.

 

만약 '나는 나실인이 되기 싫다. 그건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구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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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삼손의 출신지, 소라 Zorah
이곳은 처음에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으나(수 15:33) 
이후 단 지파에게로 넘어갔죠(수 19:41). 

그러나 왕국 시대에 이르러 유다의 세력이 강성해졌을때 다시
그 땅은 유다 지파에게로 반환되었어요.(대하 11:10). 

이처럼 소라 땅이 두 지파의 기업으로 왔다갔다한 이유는 
아마 그곳이 두 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러나 이 땅은 사사시대 동안은 계속 단 지파의 기업으로 존재했었죠.